# 기억의 빈자리
밤새 루나는 잠들지 못했다.
카엘은 거실 구석에 앉아 있었고, 루나는 침실에서 별을 안고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마음. 딸의 숨소리, 남자의 존재, 내일 아침의 위협. 그 모든 것이 한 공간 안에 섞여 있었다.
새벽 다섯 시경, 루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카엘은 이미 깨어 있었다. 그는 창문을 통해 동쪽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이 깨어났어요?"
"아직입니다."
루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손이 떨렸다. 어제 저녁 이후로 자신의 손이 자기 손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물을 끓이려다 멈췄다. 무엇을 잃었는지 정확히 알아야 했다.
욕실 거울 앞에 섰다. 한 달 전, 세 바위에서 정령 실과 계약을 맺기 직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해보려고. 얼굴은 같았다. 눈도 같았다. 하지만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외형이 아니라, 내부의 빈 공간처럼 느껴졌다.
루나는 눈을 감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려고. 별이 고열에 시달리던 밤. 그 전날, 그 전전날. 어릴 적 일. 부모님의 얼굴. 첫 사랑의 얼굴.
첫 키스.
그 순간이 있었다. 분명히 있었다. 누군가와 손을 잡고, 밤하늘 아래서, 입술이 맞닿았던 순간. 하지만 그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윤곽만 남아 있었고, 감정만 남아 있었다. 그때의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 행복이 얼마나 깊었는지는 알 수 있었지만, 왜 그 사람의 얼굴은 사라졌을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을 바라봤다. 무언가를 찾으려는 눈. 그 눈에 자신이 남아 있는가.
손가락 끝이 찬 물에 닿았다. 세수를 했다. 얼굴을 들었다. 거울 속 자신은 여전히 낯설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일부를 정교하게 지워낸 것처럼.
거실로 나왔을 때 별이 깨어 있었다.
"엄마?"
"여기 있단다."
루나는 딸을 안아 올렸다. 별은 아직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루나의 목에 안겼다. 카엘이 일어났다.
"조식을 준비하겠습니다."
루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을 안은 채 의자에 앉았다. 딸의 머리를 쓸어 내렸다.
"별아. 어제 밤은 잘 잤니?"
"응. 엄마가 옆에 있었으니까 잘 자고 싶었어."
"그래, 아기."
루나는 별의 뺨에 입을 맞췄다. 이것은 남아 있었다. 이 감정, 이 사랑. 이것만큼은 아무것도 빼앗을 수 없었다.
별이 움직였다. 자리에서 내려가고 싶은 신호였다. 루나는 딸을 내려놨다. 별은 거실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창문 근처에 가서 밖을 봤다.
"엄마, 마을이 왜 조용해?"
"사람들이 아직 안 일어났나 봐."
"나 밖에 나가도 돼?"
루나는 잠시 생각했다. 아침 일찍, 아직 마을 사람들이 나오기 전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조금만. 5분만."
별은 환호성을 질렀다.
정원은 이슬로 젖어 있었다. 별은 맨발로 풀 위를 뛰어다녔다. 루나는 현관에 서서 딸을 지켜봤다. 별이 작은 돌 위에 올라섰다. 높이는 겨우 한 뼘 정도였지만, 별은 그 위에서 팔을 펼쳤다.
"엄마! 나 높아!"
"그래, 우리 별이 정말 높다."
별이 내려왔다. 다시 뛰어다니다가 멈췄다. 담장 너머 나뭇가지를 보고 있었다.
"저기 올라갈 수 있을까?"
"아직 너무 높아. 위험해."
"다른 아이들은 올라가는데?"
루나의 손이 멈췄다.
"별?"
별이 돌아봤다. 그 작은 얼굴에 뭔가 간절한 것이 있었다. 어른이 될 수 없는 간절함. 그저 자신도 할 수 있는 아이가 되고 싶은 간절함.
"다른 아이들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아이들이 자기들은 할 수 있대. 나는... 나는 왜 안 돼?"
루나는 말을 잃었다. 별은 작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쳤다.
"여기가 이상해. 여기서 뭔가 나와. 따뜻한 거. 아이들이 말해, 나 다르대. 내가 다르대."
"별이가 다르지 않단다."
"엄마는 왜 자꾸 거짓말 해? 나 알아. 나 다른 거 알아. 다른 게 싫어. 다른 아이들처럼 그냥... 그냥 무섭지 않은 아이가 되고 싶어."
별의 목소리가 떨렸다. 루나는 딸을 안아 올렸다. 별은 엄마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무섭니?"
"응. 내 안에 뭔가 있어. 그게 자꾸 나와. 엄마는 그거 봤어?"
루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별의 가슴에서 흐르는 빛을 봤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빛이 팔뚝을 타고 올라오고, 목을 거쳐 얼굴을 밝혔다. 그 빛은 아름다웠고, 동시에 두려웠다. 딸의 몸 안에서 흐르는 정령의 피. 그것이 깨어나고 있었다.
루나는 침실로 돌아갔다. 별을 침대에 누이고 그 옆에 누웠다. 별은 엄마의 가슴에서 귀를 떼지 않았다.
"엄마의 심장 소리가 나야 별이가 잠들어?"
"응."
"그럼 엄마는 언제 자?"
루나는 딸의 등을 문질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별이 천천히 숨을 고르다가 다시 잠들었다.
루나는 깨어 있었다. 자신의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딸의 정령 혈통이 깨어난다는 것은, 더 많은 계약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더 많은 기억 상실. 더 깊은 공백.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가는 것.
시간이 지났다.
오전 열 시경, 미르 시장이 방문했다. 루나가 현관에 나갔을 때, 그는 이미 카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마을에 손님이 있다고 들었네요."
"예. 별의..."
루나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미르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눈이 천천히 루나를 훑어 내렸다.
"정령과 계약하셨어요?"
루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기억이 빠졌어요. 첫 계약이면 보통은 한두 가지 작은 것들이 빠지는데, 당신은 뭔가 훨씬 중요한 걸 잃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 마을에는 정령을 본 사람들이 있어요. 아주 오래 전에. 계약한 사람들도 있고요."
미르는 루나의 팔을 잡았다. 손의 온기가 전해졌다.
"달빛골은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누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죠.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이 미래를 약속했을 때만 가능해요."
"미래를..."
"당신이 여기서 살아갈 거라는 약속. 별과 함께 이 마을에서 자라날 거라는 약속. 당신이 계속 정령과 계약하면서 자신을 잃어간다면?"
미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건 약속이 아니라 도주입니다. 언젠가는 당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릴 거고, 별은 혼자 남겨질 거예요."
루나는 미르의 손에서 팔을 빼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빠져나갈 수 없었다.
도주. 약속. 미래.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르겠어요. 하지만 정령과의 계약만으로는 안 된다는 건 분명합니다."
미르가 돌아갔을 때, 루나는 혼자 현관에 남겨졌다. 카엘은 침실에서 나왔다. 그는 대화를 들었을 것이다.
"별이 깨어나고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정령의 피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뜻이에요. 더 많은 계약이 필요하다는 뜻이고, 그건 당신의 기억을 더 빼앗는다는 뜻이에요."
카엘이 가까워졌다.
"당신은 선택해야 합니다. 별을 정령의 길로 내보낼 것인가, 아니면 당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것인가."
"그 둘 중에 다른 길은 없단 말이에요?"
카엘은 답하지 않았다.
오후, 루나는 혼자 세 바위로 향했다. 별은 미르에게 맡겼다. 마을 외곽의 숲은 조용했다. 계절이 바뀌려는 시점에서 나뭇잎들이 노래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세 바위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였다. 루나보다 약간 나이가 많아 보였고,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루나를 보는 순간 무언가를 인식했다.
"루나 맞죠?"
"누구세요?"
"에스터라고 합니다. 당신을 찾아왔어요."
루나의 몸이 경직되었다.
"정령 혈통의 아이들을 보호하는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제가 그곳의 일원이에요. 당신의 딸 별이에 대한 정보가 저희에게 들어왔어요."
"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시간이 없다는 거예요."
에스터가 한 발 다가섰다.
"정령 혈통의 아이들이 각성되면, 그것을 감지하는 자들이 있어요. 귀족 연맹의 추적자들. 그들은 당신의 딸을 격리하거나 제거하려고 할 거예요. 당신은 그 전에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
"네. 당신의 딸을 우리에게 맡길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그 아이를 지킬 것인가. 하지만 당신이 계속 정령과 계약한다면, 당신은 점점 약해질 거예요. 기억을 잃는 것은 단순한 망각이 아니라 자신의 강함을 잃는 거거든요."
루나는 에스터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멀게 들렸다.
"당신이 정령과 계약할 때마다 뭔가를 잃잖아요. 첫 번째는 뭐였어요?"
루나가 대답하지 않자, 에스터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계속했다.
"첫 키스의 기억이죠. 그 사람이 당신의 딸의 아버지였을 거예요. 당신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기억을 정령에게 내줬어요. 그리고 당신은 계속할 거고, 결국 당신은 당신이 아닌 누군가가 될 거예요."
루나는 에스터의 말에 반박하려다 멈췄다. 자신이 정말로 그 길을 택해야 하는지 몰랐다. 별을 지키는 것과 자신을 잃는 것 사이에서 흔들렸다.
"어떻게 기억을 되찾을 수 있습니까?"
루나의 목소리는 떨렸다. 손가락을 깨물었다. 자신의 결심을 다지려고.
에스터가 종이를 꺼냈다. 그 종이에는 무언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루나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 종이 위에 적힌 글씨를 읽으려고 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하지만 그 종이가 뭔지는 알았다. 기억 회수의 방법. 아니면 별을 포기하는 방법.
루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자신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별을 포기한다? 그럴 수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잃더라도, 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제 딸은 제가 지킵니다."
루나는 종이를 받지 않았다. 손을 떨며 그것을 거절했다. 그 순간, 루나는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명확히 알았다. 기억 속에서 헤매면서도 별을 지키겠다는 선택.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약속이었다.
"그럼 죽을 준비를 하세요. 당신과 당신의 딸이."
에스터는 종이를 땅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사라졌다.
루나는 혼자 남겨졌다. 종이는 바람에 날려 세 바위 틈 사이로 사라졌다. 루나는 그것을 주우려다 멈췄다. 이미 선택했으니까. 이제 돌아갈 수 없었다.
저녁이 되었을 때, 루나는 별을 데리러 미르의 집으로 갔다. 별은 시장의 딸과 함께 놀고 있었다.
"엄마!"
별이 뛰어나왔다. 루나는 딸을 안아 올렸다. 별의 손이 루나의 목을 감쌌다. 그 순간, 빛이 흘렀다.
손가락 끝에서 시작되었다. 가늘고 부드러운 빛이 손가락을 타고 팔뚝으로 올라왔다. 루나의 팔을 감싸며 퍼져나갔다. 가슴에 도달했을 때 그 빛은 더욱 밝아졌다. 온 몸을 감싸는 은은한 빛. 마치 누군가 루나를 감싸 안는 것 같았다.
루나는 그 빛 속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따뜻함. 안정감. 그리고 깊은 연결감.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영혼을 감싸 안는 것 같은 느낌.
"별아."
루나가 중얼거렸다.
"엄마가 너를 지켜줄 거야. 뭐가 와도, 뭐가 일어나도. 엄마가 너를 지켜줄 거야."
별이 더 깊게 엄마의 목에 안겼다. 빛은 더 밝아졌다. 그것은 정령의 축복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모성애. 루나가 남은 모든 기억으로 만들어낸 사랑.
집으로 향하는 길에, 루나는 하늘을 봤다. 별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밤하늘이 점점 검어지고, 별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루나는 딸을 더 깊게 안았다.
"별아, 엄마가 너를 지켜줄 거야."
그 순간, 산 너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그것은 정령의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횃불이었고, 많은 발걸음의 소리였고, 무언가 거대한 것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루나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별이 루나의 목에서 얼굴을 들었다.
"엄마, 뭐가 봐?"
"아무것도 아니야, 별아."
루나는 서둘러 눈을 거두었다. 하지만 산 위의 연기는 계속 피어올랐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루나는 별을 더 꼭 안고 집으로 향했다.
밤거리는 조용했다. 달빛골의 좁은 골목길은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었고, 가끔 창밖의 불빛만이 그들의 길을 밝혔다. 루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별은 엄마의 불안감을 감지한 듯 조용히 몸을 맡겼다.
집에 도착했을 때, 루나는 먼저 창문의 빗장을 모두 잠갔다. 문도 안쪽에서 굳게 닫았다. 별은 이미 이 행동의 의미를 안다는 듯 침묵했다. 여섯 살 아이치고는 너무 조숙한 침묵이었다.
"별, 방에 가서 침대에 누워 있어."
"엄마는?"
"엄마는 밖을 봐야 해."
별은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루나는 창문 사이로 얇게 고개를 내밀고 밖을 살폈다. 산 위의 연기는 여전히 피어올랐다. 이제 더 가까워 보였다. 그리고—
발소리가 들렸다.
마을 입구 쪽에서 오는 발소리. 많은 사람들의. 루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에스터의 말이 생각났다. '정령 혈통의 아이들이 각성되면, 그것을 감지하는 자들이 있어요.'
별이 깨어났을 때 빛을 흘렸다. 루나가 세 바위에서 정령과 계약할 때 그 빛을 본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미 오래전부터 별의 존재를 알고 있던 누군가.
루나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별은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눈을 감지 않았다.
"별아, 혹시 무서워?"
"조금."
"뭐가?"
별이 엄마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이미 어른의 절망이 담겨 있었다.
"엄마도 무서워하는데... 나는 용감해야 할 것 같아. 다른 아이들처럼."
루나는 딸의 머리를 쓸어올렸다.
"별이는 이미 충분히 용감해. 엄마보다 훨씬."
"근데 엄마는 자꾸 무서워해. 나한테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까봐."
"그건 엄마가 너를 사랑해서야, 별아."
"그럼 엄마는 왜 자꾸 나를 잊어?"
루나의 손이 멈췄다. 별의 눈이 울컥했다.
"엄마가 자꾸 내 이름을 틀려 불러. 아까도 그랬어. 그리고 어제 내가 이 장난감을 줬잖아. 근데 엄마는 받은 거 잊었어."
별이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목재 목걸이를 보였다. 루나는 그것을 본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별이 말하는 것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뭔가를 놓쳤다. 계속 놓치고 있다.
정령 실과의 계약. 첫 키스의 기억. 루나는 자신이 뭔가 중요한 것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뭔지는 기억할 수 없었다. 마치 안개 속에서 무언가를 더듬는 것처럼.
"엄마가 미안해, 별아. 엄마가 약해서."
루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자신의 기억 상실이 딸에게까지 상처를 주고 있었다.
"엄마는 약하지 않아. 엄마는 가장 강한 사람이야."
별이 엄마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다시 한번 빛이 흘렀다. 손가락 끝에서 시작되어 팔 전체로 퍼져나갔다. 루나는 그 빛 속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은 기억을 느꼈다. 따뜻한 손. 그리고 이 빛. 이 빛을 본 것이 한 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밤하늘 아래서, 누군가의 팔이 자신을 감싸던 그 느낌. 하지만 그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그 부분만 정교하게 지운 것처럼.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달빛골의 시장은 어디 있나!"
루나는 벌떡 일어섰다. 별을 침대 아래 숨을 수 있는 공간으로 데려갔다. 옛 목조 집의 구조를 이용해, 루나는 이미 이런 상황을 대비해 놓았다.
"별아, 여기 있어.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엄마는?"
"엄마는 괜찮아. 엄마는 너를 지킬 거야."
루나는 별을 숨긴 후 현관으로 나갔다. 문을 열지 않은 채로.
"누세요?"
"달빛골의 시장 미르를 찾고 있습니다. 귀족 연맹의 명령으로."
루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귀족 연맹. 레이언. 카엘이 경고한 그들이 이미 온 것이다.
루나는 천천히 현관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열 명 이상 서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횃불과 검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맨 앞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당신이 루나인가?"
루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령 혈통의 아이를 낳은 여자는 이 마을에 한 명뿐이라고 들었다. 당신이 맞지?"
"제 딸은 여기 없습니다."
거짓이었다. 하지만 루나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세 바위에서 정령의 흔적을 감지했습니다. 그 흔적은 당신과 당신의 딸에게서 나왔어요. 숨을 수 없습니다."
남자가 한 발 다가섰다.
"저는 레이언입니다. 귀족 연맹의 추적자. 그리고 당신의 딸을 찾아내는 것이 제 의무입니다."
루나의 몸이 경직되었다. 카엘의 말이 맞았다. 내일 아침이 아니라 오늘 밤. 그들이 벌써 왔다.
"당신의 딸을 내놓으세요. 그럼 당신은 살려주겠습니다. 하지만 저항하면..."
레이언이 검을 뽑았다. 그 검의 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정령의 축복을 받은 검. 루나는 그것을 본 적이 있었다. 카엘이 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모양의 검.
"미르 시장은?"
루나가 물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당신의 시장은 우리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마을은 더 이상 당신의 피난처가 아닙니다."
루나의 가슴에서 뭔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미르. 자신을 받아주었던 유일한 어른. 그도 배신했다.
하지만 루나는 얼굴을 들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제 딸을 찾지 못할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우리는 정령 혈통을 감지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마을의 모든 집을 뒤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레이언이 손을 들었다. 추적자들이 횃불을 높이 들었다.
그 순간, 마을의 중앙 광장에서 종 소리가 울렸다.
딩, 딩, 딩.
밤중에 울리는 시장의 종. 그것은 비상의 신호였다. 루나는 그 소리를 들었을 때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았다. 미르. 그가 배신한 게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보호하려고 마지막까지 저항하고 있었다.
"미르 시장이 무슨 짓을 한 건가요?"
루나가 물었다.
"그는 당신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짓이죠."
레이언이 대답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체포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을의 모든 주민들에게 당신과 당신의 딸을 찾도록 명령했습니다. 찾지 못하면 이 마을 전체가 불에 타게 될 것입니다."
루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다. 정령과의 계약.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 자신의 기억을 계속 잃으면서라도, 별을 지켜야 한다.
루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레이언이 따라왔다. 루나는 침대 아래에서 별을 꺼내 안았다.
"별아, 우리 나가야 해."
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엄마, 무서워."
"엄마가 있잖아. 엄마가 너를 지킬 거야."
루나는 아이를 안고 뒷문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이미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카엘이었다.
"당신들은 왜 여기 있어요?"
루나가 물었다.
"나는 약속했습니다. 별을 지키겠다고."
카엘이 말했다.
"그리고 당신의 기억을 되찾도록 도와주겠다고."
루나는 카엘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진정한 결연함이 담겨 있었다.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 그리고 자신의 기억을 돌려주려는 다짐.
"당신의 첫 키스의 상대는 누구인가요?"
카엘이 물었다. 루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 기억은 사라져 있었다.
"저입니다."
카엘이 말했다.
"당신이 잊어버린 그 기억은 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당신이 다시 그것을 되찾을 때까지."
루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분노와 그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기억이 이 남자의 것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자신을 지키려고 한다는 것. 그 두 감정이 뒤섞여 루나의 가슴을 가득 채웠다.
"제 딸을 도와주시겠어요?"
"네. 저는 당신과 당신의 딸을 지킬 겁니다."
카엘이 손을 내밀었다.
루나는 그 손을 잡으려다 멈췄다. 별을 한 팔로 안은 채 카엘의 눈을 들여다봤다. 그 눈 속에는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이 살아 있었다. 밤하늘 아래서의 그 순간. 첫 키스. 그리고 그 이상의 것들.
"만약 내가 당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루나가 물었다.
"그럼 제가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카엘의 대답은 단순했다.
루나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별이 갑자기 루나의 품에서 몸을 경직시켰다.
"엄마... 뭔가..."
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작은 몸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손가락 끝이 아니라 온몸에서 한 번에. 마치 누군가 별의 내부에서 깨어나려는 것처럼. 그 빛은 밝고, 뜨겁고, 두려웠다.
루나는 별의 몸을 감싸 안았다. 빛이 루나의 팔을 태웠다. 하지만 루나는 딸을 놓지 않았다. 그 통증 속에서 루나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다.
"별이!"
루나가 외쳤다.
"여기가... 여기가 이상해!"
별이 비명을 질렀다. 그 목소리는 아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여러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나오는 것 같았다. 정령의 목소리. 별의 몸 안에 깃든 정령의 피가 완전히 각성되고 있었다.
루나는 딸을 더욱 깊게 안아 올렸다.
"진정해! 엄마야! 엄마가 여기 있어!"
루나의 목소리는 빛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별의 각성하는 정령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루나는 딸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 마치 자신의 목소리가 딸을 현실로 묶어두는 닻이 되기를 바라며.
"별아! 엄마가 여기 있어!"
그 순간, 집 안에서 레이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을 잡아라!"
검은 옷을 입은 추적자들이 뒷문으로 쏟아져 나왔다. 카엘이 검을 뽑았다. 정령의 축복을 받은 검이 하늘을 가르며 빛을 내뿜었다.
"루나! 앞으로!"
카엘이 외쳤다.
루나는 별을 안고 숲으로 뛰어들었다. 별의 빛은 여전히 루나의 팔을 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루나는 멈추지 않았다. 딸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
"별아! 별아! 엄마가 여기 있어!"
그 목소리 속에 루나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첫 키스의 기억도, 잃어버린 이름들도,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이 순간만큼은 분명했다.
루나는 별의 엄마였다.
그리고 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었다.
세 바위. 정령들이 있는 그 장소로 향하는 길. 루나는 딸을 안고 밤의 숲을 헤쳐 나갔다.
뒤에서 카엘의 검 소리가 들렸다. 추적자들의 비명이 들렸다. 말발굽의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점점 멀어졌다.
루나는 별을 안고 달렸다. 별의 빛이 어둠을 가르며 나아갔다.
밤하늘의 별들처럼,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