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밤이 깊어가며 바늘이 손가락을 뚫고 나갔다.

라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은색이 흘렀다. 피가 아닌, 옷감처럼 투명한 빛이. 손가락 끝에서 출발한 그것은 검정 천을 따라 흘러내렸다가 실 위에서 응고되었다. 라나는 손을 돌려봤다. 상처 자국이 없었다. 피도 없었다. 그저 은색 빛만 손가락을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재봉틀이 멈춘 것은 새벽 세 시였다.

수선실의 탁자 위에는 이제 여섯 벌의 옷이 놓여 있었다. 지난주의 검은 드레스. 오늘 아침 들어온 구겨진 작업복. 점심때 도착한 찢어진 내복. 오후의 소매 없는 셔츠. 저녁의 낡은 치마. 그리고 밤열한 시에 들어온 아이의 원피스.

각각의 옷은 완벽하게 복구되어 있었다. 마치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처럼. 라나는 손을 내려놨다.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손님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많아진 건지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 토끼가 온 다음날부터? 아니면 토끼가 옷을 입고 울음을 터뜨린 그 순간부터?

입소문이 마을을 타고 퍼져나갔다. 한 명이 말하면 열 명이 듣고, 열 명이 말하면 마을 전체가 안다. 하지만 그 속도는 예상을 벗어났다. 라나의 손이 "마음을 고친다"는 소문이 마을 구석구석에 퍼졌다. 누가 처음 그 말을 꺼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소문은 살아있는 것처럼 자라났다.

수선실 앞에는 매일 밤 대기열이 생겼다.

기침. 그리고 문 밖에서의 침묵. 라나가 "들어오게"라고 말할 때까지의 그 짧은 기다림이 의식처럼 반복되었다. 누군가는 옷을 내밀 때 손을 떨었고, 누군가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은 채 옷만 건네고 떠났다. 라나는 모든 손님을 같은 방식으로 맞이했다. 침묵으로. 그리고 손으로.

월요일, 상인 조합 회원의 아내가 왔다. 버려진 웨딩드레스를 들고. 드레스의 소매는 찢겨 있었고 허리 부분이 뜯겨나가 있었다. 라나는 말을 건네지 않았다. 여자는 라나를 바라보다가 옷을 탁자에 내려놓고 떠났다.

화요일, 대장간의 조수가 왔다. 검댕이 묻은 작업복을 들고. 팔 부분이 타다만 자국이 남아 있었다. 라나는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따라 만져봤다. 누군가의 두려움이 옷에 스며 있는 것 같았다. 조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수요일, 여덟 살 정도 되는 아이가 어른과 함께 들어왔다. 아이의 원피스는 검은 잉크로 가득 칠해져 있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망친 흔적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제발"이라고만 말했다. 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요일과 금요일에도 손님들이 계속 들어왔다. 옷의 형태는 달랐다. 치마, 셔츠, 내복, 스카프. 하지만 모든 옷 뒤에는 같은 것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혔거나,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입은 순간. 그 때를 멈추게 해달라는 침묵의 요청.

라나는 밤새 재봉틀을 돌렸다.

손가락이 아팠다. 바늘이 살을 몇 번이나 뚫고 지나갔다. 하지만 통증은 오래 남지 않았다. 은색이 흘러나오면 상처는 닫혔다. 마치 처음부터 손가락이 손상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밤마다 꿈을 꿨다.

누군가의 기억이 라나의 수면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신랑 앞에서 옷을 벗겨지는 꿈.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화염 속에서 누군가를 밀어내는 꿈.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검은 펜으로 쓰인 단어들을 읽는 꿈. 라나는 그 꿈들 안에 있었다. 하지만 라나는 아니었다. 라나의 눈으로 보지만 라나의 감정이 아닌 누군가의 절망이 라나를 채웠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라나는 자신이 누구인지 헷갈린 적이 몇 번 있었다.

라나는 손을 들었다. 은색이 손가락을 감싸고 있었다. 처음에는 손 끝에만 있던 빛이 이제 손목 근처까지 올라와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손이 라나의 팔을 잡고 올라오는 것처럼. 라나는 손을 내렸다. 공포가 가슴팍을 스쳤다.

하지만 공포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라나는 그것을 다시 해석했다.

이것은 저주가 아니다. 이것은 대가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의사는 환자의 병으로 피로해지고, 사제는 신자의 죄로 무거워진다. 라나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손님들의 상처를 담으면, 자신도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일이라는 것이다.

라나는 자신을 설득했다.

이 은색 빛은 피가 아니라 일의 흔적일 뿐이라고. 손가락의 떨림은 피로일 뿐이라고. 밤의 꿈은 공감의 증거일 뿐이라고. 라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정이 자기기만임을 알면서도.

새벽 일곱 시, 누군가가 수선실 문을 두드렸다.

라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손님을 맞이하는 시간은 오후 세 시부터다. 그 규칙은 정해진 것이었다. 하지만 두드림은 계속되었다. 라나는 문을 열었다.

카일이 서 있었다. 대장간의 주인. 새까만 그을음이 얼굴에 묻어 있었고, 눈은 피로로 충혈되어 있었다. "어제 화재 사건을 기억하나?"

라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제?"

"어제 오후. 내 대장간 옆 목재 창고에서 불이 났다. 진화 중에 누군가 다쳤고, 그 옷을 어제 밤에 누군가 들고 왔을 거다."

라나는 생각해봤다. 어제 밤의 손님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이름은 이미 잊었다. 그들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옷만 기억났다. 그리고 옷 뒤의 감정들. 타오르는 두려움. 무언가를 놓친 죄책감. 누군가를 밀어낸 후회.

라나는 그것들이 모두 같은 사건에서 비롯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카일이 손을 들었다. "이건 너무 빨리 퍼지고 있다. 마을이 너를 이상하게 보기 시작했다. 상인 조합에서도 움직이고 있다. 에스더가."

"에스더?"

"상인 조합의 회장. 넌 그녀를 모르나?"

라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모르는 것이 많았다. 마을의 세력이 어떻게 나뉘어 있는지, 누가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런 것들은 라나와 상관없었다. 라나는 옷만 고쳤다. 옷만.

카일이 한숨을 쉬었다. "그냥... 조심해. 좋은 일이 항상 계속되지는 않는다. 이 정도 규모면 누군가는 반드시 나설 거야."

카일이 떠난 후, 라나는 창문을 열었다. 새벽 바람이 들어왔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라나는 그 냄새를 맡았다. 소나무와 이끼의 냄새. 그리고 무언가 타버린 냄새도.

라나는 창을 다시 닫았다. 카일의 경고가 마음에 걸렸다. 손님들이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불안했는데, 이제 그것이 누군가의 눈에 띄었다는 뜻이었다. 라나는 손님의 수를 제한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오후 세 시가 되자, 손님들은 어제보다 더 많이 들어왔다. 라나가 거부할 수 없었다. 그들의 눈빛이 너무 절실했다. 라나는 손님들을 받아들였다.

오후 다섯 시, 라나는 더 이상 받을 수 없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없었다. 손님들의 절망 앞에서 라나의 거부는 무너졌다.

결국 라나는 모든 손님을 받아들였다.

마지막 손님은 중년의 여자였다. 얼굴에 멍이 있었다. 손에 든 옷은 파란색 원피스였다. 원피스의 칼라가 찢어져 있었다.

여자는 라나를 바라봤다. 눈물이 고여 있었다. "당신은... 우리의 천사예요."

라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저 옷을 고칠 뿐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우리를 고쳐주잖아요."

"옷을 고칠 뿐입니다."

라나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목소리는 이미 나와 있었다. 여자는 라나의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가 옷을 탁자에 내려놓고 떠났다.

라나는 혼자 남겨졌다.

수선실의 불을 끄고 나가려 할 때, 라나는 창밖을 봤다. 마을의 상가 지역이 보였다. 상인 조합의 건물도 보였다. 그 건물 앞에는 여자가 서 있었다. 우아한 흑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 가슴에는 금색 핸드백이 들려 있었다. 여자는 수선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여자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두운 거리에서 두 개의 시선이 마주쳤다. 여자의 눈에는 호기심과 함께 뭔가 다른 감정도 섞여 있었다. 적대감. 또는 계산.

라나는 한 발 다가갔다. 여자도 한 발 나아갔다. 거리가 줄어들었다. 라나는 그 여자의 얼굴을 더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세련된 화장, 정교한 드레스, 그리고 차가운 눈.

"당신이 라나인가?"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날카로웠다.

"나는 에스더다. 상인 조합의 회장."

라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에스더는 라나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봤다. 마치 무언가를 평가하듯이.

"내 손님들이 당신의 수선실로 가고 있다더군. 내 재봉실의 손님들이."

"그들이 원했다면."

"원했다?" 에스더가 웃음을 흘렸다. "당신이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어. 옷을 고치는 것만이 아니라."

라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얼굴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옷을 고칠 뿐입니다."

"그래. 그렇게 말해두는 게 좋겠어. 마을은 이상한 것을 좋아하지 않거든."

에스더가 돌아섰다. 그 순간, 라나의 손이 떨렸다. 은색 빛이 손목을 넘어 팔뚝까지 올라와 있었다. 라나는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에스더는 멈추지 않고 걸어갔다. 하지만 그녀의 뒷모습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라나는 무언가를 마주쳤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적인지 경쟁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자신의 길을 가로막을 무언가였다.

라나는 커튼을 내렸다.

밤이 깊어가며 수선실은 조용해졌다.

라나는 탁자에 앉아 있었다. 손 위에는 은색 빛이 감싸고 있었다. 손목까지. 팔뚝 아래까지.

라나는 손을 들었다 내렸다. 다시 들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라나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밤은 더 깊어졌다.

라나의 손에서 흐르는 빛은 한밤중이 될 때마다 더욱 선명해졌다. 은색 실처럼 손가락을 감싸고, 손목까지 올라왔다가 팔뚝에서 멈췄다. 라나는 그 빛을 바라봤다. 두려움과 경이 사이의 어떤 감정으로.

파란색 원피스가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칼라의 찢김이 완벽하게 복구되어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손상되지 않았던 것처럼. 라나는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만져봤다. 바느질의 흔적조차 없었다. 자신이 한 일인데도, 그것이 자신이 한 것 같지 않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라나는 손을 쥐었다 펼쳤다를 반복했다.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마치 손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손. 라나는 그 손을 바라봤지만, 그것이 자신의 손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창 밖으로 숲의 바람이 들어왔다. 소나무 냄새가 코를 스쳤다. 그리고 그 냄새 속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타버린 것. 연기. 재. 라나는 그 냄새를 깊이 들이마셨다. 왜인지 모르게 그 냄새가 익숙했다. 하지만 기억하려 할수록 그것은 안개처럼 흩어졌다.

라나는 창문을 닫았다.

다음날 오후, 손님들이 옷을 가져갔다.

토끼는 검은 옷을 입고 나갔다. 그 옷을 입은 후 토끼의 눈은 더 이상 절망적이지 않았다. 대신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이었다. 마치 자신의 과거를 다시 보고, 그것을 받아들인 것처럼. 토끼는 라나에게 감사를 표하려 했지만, 라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필요 없었다.

재단사 미르는 스커트를 입고 울었다. 하지만 그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놓아주는 눈물이었다. 미르는 라나의 손을 꼭 잡았다. 라나는 그 손을 받아줬다. 짧은 시간 동안만.

그 다음 손님들도 비슷했다. 구겨진 작업복을 입은 남자, 찢어진 내복을 입은 여자, 물이 묻은 치마를 입은 아이. 모두 자신의 옷을 입은 후 무언가를 마주하고 돌아왔다.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더 가볍거나, 더 단호하거나, 더 평온했다.

라나는 모든 것을 조용히 지켜봤다.

오후 네 시, 올리버가 나타났다.

그는 수선실 근처의 골목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책이 들려 있었고, 펜을 입에 물고 있었다. 라나가 손님들을 배웅하고 나오자, 올리버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여우분이시네요. 라나라고 들었습니다."

라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올리버는 신경 쓰지 않는 듯 계속했다.

"저는 올리버라고 합니다. 마을의 이야기들을 수집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요. 당신의 수선실이 요즘 마을에서 꽤 유명해졌다고 해서 말이에요."

"이야기를 수집한다?"

라나가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올리버는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소문, 비밀 같은 것들 말입니다. 모두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당신의 수선실에 들어온 사람들은 나올 때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쓴 것처럼 변해 있어요. 신기하지 않나요?"

라나는 올리버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선의인지 악의인지는 판단할 수 없었다.

"저는 그저 옷을 고칠 뿐입니다."

"그렇게 말씀하는군요."

올리버는 책에 뭔가를 적었다. 라나는 무엇을 적는지 보려 했지만, 올리버는 책을 재빨리 닫았다. 그 순간, 라나의 손이 떨렸다. 올리버의 눈이 라나의 손으로 향했다. 라나는 그 시선을 느꼈다. 올리버가 자신의 손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은색 빛이 손가락을 감싸고 있다는 것을.

올리버는 책에 적었다. 손가락에서 은색 빛을 목격했다고. 그 빛의 색깔, 그 빛의 강도, 그 빛의 움직임까지 세밀하게 기록했다.

"혹시... 손가락이 괜찮으세요?"

라나는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괜찮습니다."

"그렇군요. 아, 저도 이따가 옷을 가져올게요. 소문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거든요."

"가져오시면 좋겠습니다."

라나의 대답은 진심이 아니었다. 하지만 올리버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니, 알아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책을 들고 다시 골목으로 사라졌다.

라나는 손을 꺼내 봤다. 은색 빛이 팔뚝까지 올라와 있었다. 손을 멈추려고 했지만, 손은 계속 떨렸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팔을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올리버가 자신의 손을 기록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라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불안감은 자라났다. 누군가가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 누군가가 자신을 기록하고 있다는 느낌.

밤이 되자 손님들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지난주보다 더 많았다. 열 명, 열두 명, 열다섯 명. 정확한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였다. 모두 상처 입은 옷을 들고 있었다. 모두 라나의 손을 필요로 했다.

라나는 닷새 동안 밤새 재봉틀을 돌렸다.

월요일 밤,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이름을 이미 잊었다. 화요일 밤, 타다만 작업복을 가져온 남자의 얼굴이 희미해졌다. 수요일 밤, 검은 잉크로 칠해진 원피스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손님들의 이름은 사라졌고, 그들의 얼굴도 흐릿해졌다. 남은 것은 옷과 그 옷에 담긴 절망뿐이었다.

손가락은 계속 떨렸다. 그 떨림이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라나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처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 떨림은 일상이 되었다. 재봉틀의 리듬과 맞춰져 있었다. 바늘이 옷을 관통할 때마다 손가락도 함께 떨렸다.

라나는 밤마다 꿈을 꿨다.

꿈 속에서는 누군가의 기억이 섞여 나타났다. 한 여자가 남편을 때리는 장면. 한 남자가 아이를 버리는 장면. 한 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우는 장면. 모두 다른 사람의 기억인데, 마치 자신이 겪은 일처럼 생생했다.

라나는 아침마다 깼다.

손에는 여전히 은색 빛이 감싸고 있었다. 이제 그것이 팔뚝을 넘어 팔꿈치까지 올라와 있었다.

라나는 자신의 변화를 인식했지만, 그것을 멈추지 못했다. 손님들이 계속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라나는 그들을 거부할 수 없었다. 거부할 수 없는 손님들과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 사이에서 라나는 손님들을 택했다. 손님들의 절망이 자신의 두려움보다 컸다.

닷새가 지난 후, 손님들이 다시 옷을 가져갔다.

모두 같은 표정으로 나갔다. 뭔가를 직면하고 돌아온 표정. 라나는 그들을 배웅했다. 아무 말 없이. 아무 질문 없이.

그들이 떠난 후 수선실에는 또 다른 손님들이 들어왔다. 이번엔 스무 명이 넘었다. 라나는 모두를 맞이했다. 모두의 옷을 받았다. 모두에게 닷새 후라고 말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손님들은 더 들어왔다.

마을의 상가 지역에서도 들어왔고, 중소 장인들의 구역에서도 들어왔다. 심지어 라나와 같은 외곽 지역에서도 들어왔다. 라나는 그들이 어느 구역에서 왔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모두 같은 것을 필요로 했다.

라나의 손.

재봉틀의 소리는 밤새 멈추지 않았다. 바늘이 옷을 관통하는 소리, 실을 당기는 소리, 매듭을 짓는 소리. 모두가 섞여 하나의 리듬을 만들었다. 그 리듬 속에서 라나는 자신이 누구인지 잊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은 모르고 있었다. 그것이 망가지는 것인지, 구하는 것인지.

새벽 다섯 시, 라나가 창밖을 봤다.

마을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상가 지역의 가로등들이 희미하게 켜져 있었고, 숲에서는 새들의 울음이 들렸다. 평온해 보이는 새벽. 하지만 라나의 눈에는 그것이 평온해 보이지 않았다.

창 너머로, 상인 조합의 건물이 보였다.

그 건물 앞에는 여자가 서 있었다. 우아한 흑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 가슴에는 금색 핸드백이 들려 있었다. 에스더였다. 그녀는 밤새 수선실을 관찰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들어오는 것을 본 것이다. 이십 명 이상의 손님들이 밤새 들어왔다는 것을 본 것이다.

라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에스더도 움직이지 않았다.

두 시선이 다시 마주쳤다. 이번에는 거리가 멀었지만, 라나는 에스더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더 이상 호기심이 아니었다. 계산. 그리고 결정.

에스더는 돌아섰다. 그녀의 뒷모습에는 무언가 확정된 것처럼 보였다. 라나는 그것을 알았다. 에스더가 이제 자신을 '문제'로 보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라나는 다시 커튼을 내렸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마을의 세 개 세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인 조합의 에스더는 라나의 손님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손님들의 이름을 적고,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감시했다. 중소 장인들의 리더 시온은 숲의 사냥 조직을 통해 라나의 수선실 주변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밤마다 손님들의 출입을 기록했다. 그리고 외곽 지역의 카일은 라나를 보호하려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침묵하고 있었다.

라나는 여전히 옷만 고치고 있었다.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마을의 권력 투쟁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을. 자신이 누군가의 적이 되었다는 것을. 자신의 손이 단순히 옷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질서를 흔들고 있다는 것을.

라나는 또 다른 옷을 집어 들었다.

은색 빛이 더욱 강해졌다. 이제 그것은 팔꿈치를 넘어 어깨까지 올라와 있었다. 라나의 몸이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라나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손이 움직였다. 바늘과 실이 옷을 꿰었다. 누군가의 슬픔이 옷 속에 갇혔고, 라나의 손이 그것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라나 자신의 무언가가 옷 속에 갇혔다.

라나는 손을 멈추려고 했다.

저주라고 외치고 싶었다. 도움을 청하고 싶었다. 누군가 자신을 멈춰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손은 계속 움직였다. 마치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손가락이 떨렸고, 은색 빛이 더욱 밝아졌다.

라나는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눈썹이 흐릿해졌고, 이제는 눈동자까지 희뿌옇게 변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라나를 지워내고 있는 것처럼.

라나는 손을 멈추려고 했다.

공포가 목구멍을 조였다. 이것이 저주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대가라는 것은 거짓이었다. 자신이 손님들의 상처를 담으면서, 자신 자신이 사라지고 있었다. 은색 빛은 라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하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손가락은 계속 떨렸다. 바늘은 계속 옷을 꿰었다.

라나는 손가락을 들었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았다. 은색 빛 속에 완전히 잠겨 있었다. 라나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라나의 목을 조이고 있는 것처럼.

밤은 계속 깊어갔다.

손님들은 계속 들어왔다.

그리고 라나의 손은 계속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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