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첫 균열

약지가 움직였다.

한지선의 눈이 반짝였다. 2주 전만 해도 약지는 완전히 마비 상태였다. 신경 회복의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이 속도라면 3개월 복귀는 충분히 가능했다. 은메달을 넘어서는 순간이 오는 건 아닐까. 다른 선수를 통해서라도.

재활실의 온도계는 23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3주차 훈련, 신경 재구성의 골든타임이라 불리는 시점. 이준호는 지선의 지시에 따라 손가락을 천천히 펼쳤다. 엄지. 검지. 중지.

"좋아. 계속."

지선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눈은 예리했다. 그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신경이 얼마나 깨어났는지, 뇌가 어느 정도 신호를 받아들이는지—모든 것이 읽혔다.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건 시절, 자신의 신체를 읽듯이.

이준호는 8초. 손가락이 완전히 펼쳐졌다가 돌아오는 데 8초.

"예상보다 빠르네."

강은비는 옆에서 심리 평가 차트를 보고 있었다. 지난주 대비 불안감 지수는 올랐다. 2포인트. 하지만 신체 움직임은 분명 개선되었다. 그 간극—신체와 심리의 불일치—가 강은비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지선과의 충돌은 이제 익숙했지만, 말해봐야 들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한 번 더."

지선의 손가락이 이준호의 손목을 잡았다. 맥박을 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신경 신호의 강도를 느끼는 것이었다. 심장 박동이 일정한가. 신경이 과부하 상태는 아닌가. 모든 것이 지선의 손끝에 집중되어 있었다.

"다시."

엄지. 검지. 중지. 약지.

"느낌이 어때?"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가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자신의 손이 아닌 것처럼. 남의 손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이준호?"

"네. 좋습니다."

목소리가 텅 빈 통 같았다. 강은비가 심리 평가 차트에 뭔가를 적었다. 이준호의 불안감은 신체 개선과 반비례하고 있었다. 신경이 깨어날수록, 뇌는 더 강하게 거부했다. 의학적 회복이 시작되어도 뇌는 여전히 손상 부위를 '죽은 것'으로 인식한다. 신체와 뇌의 신호가 충돌할 때, 선수의 정신은 그 사이에서 찢어진다.

강은비가 지선을 바라봤다. 지선은 이준호의 손을 다시 잡았다.

"내일부터 강도를 올린다. 신경이 이 정도 반응하면 더 자극해야 깨어난다."

"센터장님."

강은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심리 평가 결과를 보셨나요? 이준호의 우울감 지수가 지난주 대비 17포인트 상승했습니다."

"그건 회복 과정의 필연적 신호야. 신체가 깨어나면서 뇌가 혼란을 겪는 거지. 심리적 안정화는 신체 회복 이후에 따라온다."

"아니요."

강은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신체 회복과 심리 안정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합니다. 심리 붕괴가 심해질수록 신경계는 더 경직되고, 그러면 회복 속도는 오히려 둔화됩니다."

"심리사 강이 의료 판단까지 하는 건가?"

지선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강은비는 입을 다물었다. 이 대화는 처음이 아니었다. 첫날부터 반복되어온 충돌. 그리고 매번 지선이 이겼다.

최현준 의사가 재활실 입구에 나타났다. 손에는 초음파 검사 이미지가 들려 있었다. 그의 표정은 침울했다.

"센터장님. 잠깐."

의료실로 나간 지선이 돌아온 것은 15분 후였다. 얼굴색이 달라져 있었다. 초음파 이미지 속 신경 주변의 염증, 신경 압박의 신호. 그것이 지선의 입을 막고 있었다.

지선은 의료실 복도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손이 떨렸다. 초음파 이미지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신경 염증. 그것은 훈련 강행의 결과였다. 자신의 판단의 결과였다.

지선은 재활실로 돌아갔다.

"이준호. 오늘 훈련 중단."

이준호의 눈이 떠졌다.

"내일도?"

"내일은... 최현준이 추가 검사를 하고 난 후에 결정하자."

지선은 자신의 말이 얼마나 약해 들리는지 알고 있었다. 이준호의 얼굴에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희망. 그리고 그 희망이 즉시 절망으로 변했다. 왜냐하면 절망이 더 익숙했기 때문이다.

"센터장님."

이준호가 일어섰다.

"저 여기 나가도 되나요?"

침묵이 떨어졌다. 강은비가 숨을 들었다. 지선의 손이 이준호의 팔을 잡았다.

"3주만 더. 지금 포기하면 지금까지의 회복이 다 무너진다."

"포기가 아니라... 그냥 나가고 싶습니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라면 내일쯤 좋아질 텐데, 왜 검사를 다시 하는 거죠? 왜 훈련을 중단하는 거죠?"

지선은 대답할 수 없었다.

"이준호."

지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신체 회복은 비선형이야. 때로는 뒤로 나갔다가 다시 앞으로 나간다. 지금이 그 과정일 뿐이야."

이준호가 지선의 손을 비틀어 빠져나갔다. 그 손의 움직임은 조심스러웠지만, 결정적이었다. 마치 불에 닿은 듯이.

지선의 손이 허공을 헤맸다. 손가락들이 계속 움직이려고 했지만, 닿을 것이 없었다. 이준호의 손은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이건 회복이 아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재활실 전체가 멈췄다.

"당신이 날 다시 부러뜨렸어요."

지선의 얼굴에 혈색이 빠져나갔다. 강은비가 심리 평가 차트를 내려놨다. 최현준은 문간에 서 있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 손이 아니에요."

이준호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이건 내 손이 아니라... 당신이 움직이는 손이에요. 내 신체는 이미 죽었어. 당신은 그 죽은 것을 자꾸 움직이려고만 해요."

"이준호, 진정해."

강은비가 다가갔다.

"당신의 신체는 죽지 않았어요. 신경이 재구성되는 중이고—"

"재구성?"

이준호가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비명에 가까웠다.

"제 신경이 재구성되는 게 맞나요? 아니면 제 뇌가 제 신체를 계속 거부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강은비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것은 강은비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질문이었다. 그리고 지선이 외면하고 있던 진실이었다.

"3주 더만."

지선이 다시 말했다. 목소리는 부서지고 있었다.

"제발. 3주만 더 버텨."

이준호는 지선을 바라봤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재활의 신이라 불리는 사람. 그 사람의 눈 속에 절망이 있는 것을 이준호는 봤다. 자신의 절망이 아니라, 그 사람의 절망. 그 순간, 이준호는 깨달았다.

"당신은 나를 치료하려는 게 아니라..."

이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당신의 은퇴를 위로받으려는 거 아니야?"

지선의 몸이 굳었다. 마치 신경이 끊긴 신체처럼. 그 말이 정확했다. 너무나 정확했다.

이준호는 센터를 나갔다. 발걸음이 흔들렸지만, 그는 계속 나갔다.

재활실에 남은 것은 지선뿐이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았다. 강은비가 무엇을 말할지 생각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최현준이 검사 이미지를 들고 있었다. 그 이미지 속 신경의 염증은 이미 경고하고 있었다.

침묵이 10초.

20초.

지선의 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은메달을 받던 순간이 떠올랐다. 무릎을 꿇고 목에 메달을 걸어주는 그 순간. 그리고 그 다음, 은퇴 선언을 하던 날 아침. 손이 이렇게 떨렸었다. 마치 신경이 끊긴 것처럼.

재활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박수연이었다. 그녀는 지선과 강은비의 얼굴을 봤다. 이준호가 나가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알았다.

박수연은 지선을 바라봤다. 센터장의 얼굴은 회색이었다. 그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박수연은 알 수 있었다. 이곳이 더 이상 회복의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여기서 나가야 할 것 같아요."

박수연의 목소리가 작았다.

지선이 박수연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 눈에는 박수연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자신의 은메달뿐이었다. 그 은메달이 손가락 사이에서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박수연이 재활실을 나갔다. 지선은 그 뒷모습을 따라갔다. 박수연의 발걸음이 흔들렸다. 무릎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데도. 그 흔들리는 발걸음이 지선의 가슴을 찔렀다.

최현준이 의료실로 돌아가면서 의료 기록 폴더를 열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타이핑해야 할 문장들이 떠올랐다. '과도한 훈련 강행으로 인한 신경 염증 악화'. '재부상 위험 증가'. '센터장의 의료 판단 오류로 인한 선수 피해'. 그 문장들을 적으면, 그것은 증거가 된다. 법적 증거.

최현준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타이핑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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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지선은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올림픽 은메달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서민준이었다.

"센터장님. 지금 시간 있으세요?"

지선은 대답하지 않았다.

"방금 대한체육청 관계자와 통화했는데, 신경 손상 선수 지원 정책이 확대될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러려면 성공 사례가 필요하죠. 센터의 데이터가 있으면 충분히 정책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 겁니다."

지선의 손이 은메달을 더 세게 쥐었다.

"그리고... 최현준 의사가 의료 기록에 뭔가 적을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센터의 책임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죠."

지선의 호흡이 얕아졌다.

"만약 센터를 정부에 인수시킨다면, 그런 법적 문제도 국가가 담당할 텐데요. 생각해 보세요, 센터장님. 당신은 이미 충분히 했어요. 이제는 조직의 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인수 조건은 유리할 겁니다. 당신의 지분도 보장되고, 센터 운영에서 물러날 수 있고..."

지선은 통화를 끊었다.

화면이 어두워졌다. 사무실 불빛만 남았다. 그 불빛 아래서 지선은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이준호의 손처럼. 신경이 신호를 거부하는 그런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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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15분. 강은비는 재활실에 있었다.

그녀는 이준호가 앉아있던 매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매트 위에는 이준호의 땀이 남아 있었다. 강은비는 그 자리를 손으로 쓸었다.

최현준이 의료실에서 나왔다. 손에는 여전히 초음파 이미지가 들려 있었다.

"끝났어요?"

강은비가 물었다.

"기록에 다 적었어. 신경 염증 악화, 센터의 과도한 훈련 강행, 재부상 위험... 전부."

강은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기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지선을 고발할 거야?"

최현준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의료 기록은 사실만 담아야 해. 고발은... 그건 선수들이 결정하는 거야."

강은비가 깊게 숨을 쉬었다.

"그들은 할 말도 없을 거예요. 그냥 이 센터에서 나가고 싶을 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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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40분. 박수연은 기숙사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배구팀 감독이었다.

"박수연. 이준호 선수가 센터를 나갔다고 들었는데, 넌 어떨 거야? 아직 복귀 가능성이 있지?"

박수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넌 우리 팀의 핵심이야. 너만 돌아오면 전국 대회 우승도 가능해. 다시 생각해 봐."

박수연의 무릎이 욱신거렸다. 그 욱신거림은 신경 신호였다. 뇌가 '이건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신호였다. 하지만 감독의 목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우리가 너를 기다리고 있어, 박수연. 너밖에 없어."

박수연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눈물이 뭘 의미하는지 박수연도 알 수 없었다. 희망인지, 절망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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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50분. 지선은 사무실에 있었다.

그녀는 의료 기록을 들고 있었다. 최현준이 적은 기록. 그 기록 위에는 자신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었다. 책임. 과실. 그리고 법적 증거.

지선의 손이 떨렸다. 은메달이 책상 위에서 굴렀다.

그 순간, 사무실 문이 열렸다.

강은비였다.

"뭐 하세요?"

지선은 의료 기록을 빨리 내려놨다. 너무 늦었다.

강은비는 그것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당신은 그들을 치료하려고 한 게 아니에요."

침묵이 떨어졌다.

"이준호의 심리 평가를 보셨어요? 훈련 초반에는 불안감 지수가 15였어요. 어제는 32였습니다. 박수연은 어떻고요. 센터 입소 당시 억지로 웃고 있던 박수연이가 지난주부터는 웃음이 사라졌어요. 그 웃음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강은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당신은 그들의 신체를 회복시키려고 했던 게 아니라, 당신 자신을 위로받으려고 했어요. 당신의 은퇴를 정당화하려고. 그들의 성공을 통해서."

지선이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말할 말이 없었다. 강은비의 말이 정확했다. 너무나 정확했다.

"왜 그러셨어요?"

강은비가 물었다. 하지만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지선은 대답할 수 없었다.

강은비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돌아서 나갔다. 사무실 문이 닫혔다.

지선은 혼자 남았다.

은메달은 책상 아래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지선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한 번 들었다 놨다. 다시 들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금속이 차갑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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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58분. 지선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준호의 어머니였다.

"센터장님. 저... 제 아들이..."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지금 병원에 있어요. 응급실에. 손목을... 손목을..."

통화가 끊겼다.

지선의 손에서 휴대폰이 떨어졌다. 화면이 깨졌다. 거미줄 같은 금이 들어갔다.

지선은 일어섰다. 그리고 넘어졌다. 자신의 다리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신경이 살아 있으면서도 신호를 받지 않는 그런 느낌.

지선은 바닥에 앉았다. 사무실의 불이 희미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희미해지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시야가 좁혀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린 것은 자신의 목소리였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이야."

그것이 질문이었는지, 절망이었는지, 지선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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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재활 센터 '스테판'은 조용했다. 거울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매트는 깨끗했다. 기계들은 멈춰 있었다.

사무실의 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지선은 은메달을 다시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그것을 감싸고 있었다. 금속의 차가운 감촉이 피부에 전해졌다. 올림픽 은메달. 그것이 모든 것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지선은 그 메달을 바라봤다. 메달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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