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밤 1시 40분, 연습장.

도연의 눈이 변했다.

검은색이 아니었다. 투명했다. 유리구슬처럼 빛을 반사하는 투명한 검은색. 그것은 눈이라기보다 공허였다.

최준영이 손을 뻗었다. 도연의 목깃을 움켜잡으려던 순간, 도연의 몸이 사라졌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연기처럼 소멸했다.

"뭐야, 뭐야!"

최준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습장의 조명이 깜빡였다.

도연은 달렸다. 자신이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의 다리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무언가 빠져 있었다. 의지. 방향. 자기 자신.

---

# 밤 1시 47분, 기숙사 217호.

도연은 거울 앞에 섰다. 손이 떨렸다.

거울 속에는 도연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도연이 아니었다.

얼굴이 낯설었다. 이 얼굴이 도연의 얼굴인가? 맞다, 도연이다. 도연이다. 하지만 이 얼굴은 누구인가.

도연은 거울 속 자신의 눈을 응시했다. 투명했다. 공허했다. 그 안에는 무언가가 있었고, 또 무언가가 없었다.

"도연."

입으로 중얼거렸다. 도연. 도연. 도연.

단어가 의미를 잃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소리일 뿐이었다. 도연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제는 어땠지?

기억을 더듬었다. 어제 저녁, 무엇을 했나. 도서관에 있었다. 맞다. 그리고... 누가 있었나. 박세진이? 이한나? 서혜진?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았지만, 그들과 도연의 관계가 무엇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친구? 맞다, 친구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이 명확하지 않았다. 어제의 일이 왜 이렇게 흐릿한가.

침대에 앉았다.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뭔가를 기억해야 한다. 뭔가 중요한 것.

어린 시절. 엄마. 엄마의 얼굴은? 검은 머리? 흰 얼굴? 아니다. 뭔가 더 있었다. 눈빛이 있었다. 따뜻한 눈빛. 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겠다.

좋아하던 음식이 뭐였지? 떡볶이? 아니다. 국수? 맞는 것 같은데 아닌 것 같고. 그것도 도연이 좋아하는 음식인가? 도연은 누구인가.

도연은 누구인가.

손가락이 멈췄다. 이 질문을 이미 수십 번 반복하고 있었다. 매번 답을 찾지 못했다.

거울을 다시 봤다. 그 얼굴은 여전히 낯설었다. 그 얼굴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

# 밤 1시 52분, 기숙사 복도.

발소리가 들렸다. 빠르고 불규칙한 발걸음. 여러 명이었다.

도연은 문을 열었다.

계단 위에서 서혜진이 나타났다. 혼자였다. 다른 누군가와 달리 서혜진은 천천히 내려왔다. 마치 도연을 찾고 있다는 듯이.

"도연?"

서혜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목소리에는 뭔가가 있었다. 도연을 향한 무언가. 하지만 도연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안녕."

도연이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도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것이 도연의 입에서 나왔다.

서혜진이 멈췄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도연을 응시했다. 아니, 도연을 통과해서 누군가 다른 것을 봤다.

"너... 넌 누구야?"

서혜진이 물었다.

도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도연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혜진이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입이 움직였다.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도연의 귀에만 침묵이 흘렀다.

곧 계단에서 발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러 명. 빠르게. 모두가 달려왔다.

---

# 밤 2시 17분, 아카데미 중앙 광장.

도연은 걸어 나왔다. 자신이 어떻게 여기 왔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발은 이 장소를 알고 있었다.

광장의 중심에 섰다.

주인공들이 모두 나타났다.

김준호. 류현우. 박세진. 서혜진. 이한나. 그리고 최준영. 그의 얼굴에는 도연을 향한 경계와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일곱 명. 모두가 도연을 봤다. 정확히 말하면, 도연을 통해서 뭔가 다른 것을 봤다.

이한나가 제일 먼저 도연을 붙잡았다. 그녀의 팔이 도연의 어깨를 감쌌다.

"도연! 도연, 넌 나의 친구야. 기억해. 우리는 친구야."

이한나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다. 도연은 이 여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이한나. 맞다. 이한나. 하지만 친구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도 모를 채로.

도연은 이한나의 팔을 밀어냈다.

"놔 줘."

도연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 속에는 여러 겹의 톤이 있었다. 마치 여러 개의 음성이 겹쳐진 것처럼. 낮은 음, 높은 음, 그리고 아예 다른 무언가.

"놔 줘. 너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거야."

도연이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누구의 말인지는 도연도 몰랐다.

이한나가 손을 놨다. 그녀의 얼굴에 상처가 새겨졌다. 눈물이 흘렀다.

그 순간, 이한나의 눈이 흔들렸다. 도연의 얼굴이 자꾸만 흐려졌다. 마치 누군가가 사진을 천천히 지워내고 있는 것처럼. 도연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 도연의 웃음, 도연의 목소리.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도연... 도연..."

이한나는 도연의 이름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 이름을 불러도 도연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그 이름이 이제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이 되어버린 것처럼.

박세진이 나타났다. 그녀의 손에는 노트북이 들려 있었다. 도연을 보며 뭔가를 기록했다. 그 행동은 매우 자동적이었다. 마치 이것이 그녀의 본능인 것처럼.

"정체성 붕괴. 언어 사용 가능하나 자기 인식 상실. 성격 변화 감지. 다중 음성..."

박세진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도연을 보는 방식이 달라졌다. 이제 도연은 사람이 아니라 현상이었다.

김준호가 나타났다. 그의 얼굴에는 경쟁심이 타올랐다. 도연이 자신과 같은 반열에 올라왔다. 아니, 올라왔다는 것보다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그것이 그를 흥분시켰고, 동시에 불안하게 만들었다.

"도연, 넌 뭔가 이상해. 뭔가 한 거지?"

김준호가 다가섰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적대가 아니라 호기심이 더 컸다. 도연이 자신과 같은 주인공이 되었다는 생각에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도연은 뒤로 물러났다.

류현우가 나타났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달랐다. 그의 눈에는 도연을 향한 동정이 아니라 일종의 이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해 속에는 두려움도 함께 있었다. 마치 같은 것을 경험했으면서도, 그것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이.

"이제 됐어. 이제 넌 우리와 같은 주인공이야."

류현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뭔가 복잡한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주인공. 그 단어가 도연의 귀에 들렸다. 주인공. 도연이 가장 피하고 싶던 단어. 하지만 이제 도연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최준영이 앞으로 나왔다. 그의 눈빛이 예리했다. 하지만 그 예리함 속에는 뭔가가 변했다. 처음의 적대는 사라지고, 대신 일종의 인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넌 뭐야? 도연이 아니지?"

최준영이 도연에게 다가섰다. 그의 손에서 강화 마법의 불빛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위협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도연은 최준영을 바라봤다. 그 얼굴에 무언가가 비쳤다. 기억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고, 단순한 인식. 최준영은 도연이 복사한 마지막 버프의 원본. 절대적 주인공.

서혜진이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도연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이 되었는지 정확히 이해했다.

"도연... 넌 뭐야?"

물음이 아니라 진술에 가까웠다.

---

도연은 광장 가장자리의 유리 벽으로 걸어갔다. 아카데미 도서관의 투명한 벽이었다. 주인공들이 뒤따랐다.

도연은 유리에 비친 자신을 봤다.

그 얼굴은 도연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도연이 아니었다.

눈의 색깔이 변했다. 한쪽은 투명하고, 한쪽은 검은색이었다. 피부의 일부가 반투명하게 빛났다. 마치 누군가가 도연의 몸을 여러 겹의 투명한 종이로 감싼 것처럼.

도연은 자신의 얼굴에 손을 대봤다. 손가락이 뺨을 스쳤다. 그 감각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손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 이름이... 나야?"

도연이 다시 물었다.

"맞아."

류현우가 대답했다.

"근데 난 그 이름을 알 수 없어."

도연의 목소리가 울렸다. 광장의 밤공기가 진동했다.

박세진이 노트북의 화면을 도연에게 보였다. 그 화면에는 도연의 사진들이 있었다. 입시 시험 때의 도연. 마법 수업 때의 도연. 도서관에서의 도연. 모두 다른 표정, 모두 다른 행동이지만,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쓰여 있었다.

"정체성 완전 붕괴. 자기 인식 완전 상실. 새로운 의식 형성 중..."

박세진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이미 도연을 사람이 아니라 현상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비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외였다.

김준호가 호흡을 고르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는 경쟁심이 아니라 불안감만 남아 있었다. 도연이 자신과 같은 반열에 올라왔다. 아니, 올라왔다는 것보다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그것이 그를 두렵게 만들었다.

최준영이 손을 내렸다. 그의 강화 마법이 사라졌다. 도연은 더 이상 적대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도연 안에서 뭔가 친숙한 것을 느꼈다. 자신과 같은 무언가. 절대적 주인공의 본질.

도연은 주인공들을 바라봤다. 일곱 명의 얼굴. 모두가 도연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도연을 인식하고 있었다.

도연이 피하고 싶던 것.

도연이 가장 두려워하던 것.

결국 도연이 되어버린 것.

도연의 투명한 눈과 검은 눈이 동시에 빛났다.

광장의 조명이 모두 꺼졌다.

어둠 속에서 도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그 목소리는 도연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도연의 입에서 나왔다.

그 목소리 속에는 누군가의 말투가 섞여 있었다. 류현우의 낮고 차분한 톤. 최준영의 예리한 억양. 그리고 도연의 흔적. 아주 희미한 흔적.

마치 여러 개의 버프가 하나의 의식으로 융합되고 있는 것처럼.

새로운 의식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것이 도연인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무언가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뭔가를 원하고 있었다.

류현우의 손이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새로운 의식은 그 손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팔을 들어올렸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