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최준영의 적대

밤 1시 30분, 도서관을 나온 도연의 몸은 쇄골까지 투명했다.

복도의 형광등이 도연의 반투명한 팔을 비추고 지나갔다. 한나가 뒤에서 손을 뻗었지만, 도연은 그것을 피했다. 손이 닿으면 더 빨리 사라진다. 그렇게 배웠다.

"도연아, 기다려."

한나의 목소리가 뒤쪽에서 울렸다. 도연은 걷는 속도를 높였다. 기숙사 로비까지 도착하면 괜찮을 거야. 로비는 사람이 많으니까. 주인공들도 공개적으로 뭔가를 할 수 없을 거야.

그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지는 곧 알게 되었다.

"이도연."

로비 계단 중간에서 최준영이 나타났다. 검은 교복을 입은 그 남자는 계단을 내려오지 않고, 그냥 서 있었다. 마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의 자세로.

도연의 발걸음이 멈췄다.

"뭐 하는 거야?"

최준영의 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그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로비의 다른 학생들이 고개를 들었다. 최준영이 누군가를 호명하는 일은 드물었다.

"넌 뭐하는 놈이 돼서 주인공들한테 자꾸 접근하는 거야?"

도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돌아서서 다른 길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계단 아래쪽에서 김준호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서혜진이 있었다.

통로가 막혔다.

"거기 서."

최준영이 계단을 내려왔다. 한 계단씩. 마치 시간을 천천히 만드는 자처럼. 도연은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난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했어. 입시 때 갑자기 검술이 늘고, 보물고 사건 이후로는 마법까지 쓰더니. 넌 뭐야? 진짜."

도연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말하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말을 하면 더 많은 질문이 따라올 테니까.

"말을 안 하네?"

최준영이 도연 앞에 섰다. 그의 눈이 도연을 훑어내렸다.

"보물고 사건 때 서혜진의 마법이 튀어나왔잖아. 그런데 도연이가 갑자기 마법을 쓰더니 다 진정시켰다고? 우리 학년에 마법을 배운 게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도연의 목이 말라왔다.

"서혜진이 버프를 받은 거야. 마법 감응 버프."

최준영이 서혜진을 바라봤다. 서혜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그 버프를 넌 복사했어. 맞지?"

침묵. 도연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미 들켰다. 이미 모든 게 끝났다.

"최준영, 지금 뭐 하는 거야?"

류현우가 나타났다. 로비 한쪽 구석에서.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던 것처럼. 그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사실을 말하는 거야. 이 아카데미에 뭔가 이상한 게 있다고 생각 안 했어? 우리가 자꾸 강해지고, 우리 주변에서 일이 자꾸 우리한테 유리하게 돌아가고."

최준영이 도연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 놈이 자꾸 우리 옆에 있는 거. 박세진이는 벌써 데이터를 다 모았어. 도연이의 성장 곡선, 도연이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들, 그리고..."

최준영이 잠시 멈췄다.

"도연이의 존재감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걸."

박세진이 나타났다. 손에는 여전히 노트를 들고 있었다. 그 노트에는 도연에 관한 모든 기록이 남아 있었다.

"모든 데이터가 여기 있어. 도연이가 입시 이후로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지. 그리고 도연이의 주변에서 사건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는지."

박세진이 노트를 펼쳤다. 페이지마다 도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날짜와 함께. 시간과 함께.

"내 기억에도 도연이가 점점..."

박세진이 문장을 끝마치지 못했다. 도연을 바라보고 있던 모든 눈이 흔들렸다.

도연의 몸이 더 투명해졌다.

"뭐... 뭐야?"

한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도연을 보려고 했지만, 도연의 팔이 빛을 통과시키고 있었다. 정말로 빛을 통과시키고 있었다.

"이도연. 넌 뭐야?"

최준영의 목소리에 공포가 섞여 들어갔다.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도연은 그것을 느꼈다. 절대적 주인공이라고 믿던 그 남자의 목소리에서 공포가 새어 나왔다.

그 순간, 도연은 최준영의 버프를 감지했다.

다른 버프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김준호의 검술 강화는 따뜻한 금색으로 느껴졌고, 서혜진의 마법 감응은 시원한 청색이었으며, 박세진의 분석력은 투명한 은색이었다. 하지만 최준영의 버프는...

검은색이었다.

아니, 검은색이 아니었다. 모든 색깔이 한 점으로 수렴하는 것 같은 느낌. 도연의 귀가 울렸다. 마치 고음역대의 음파가 고막을 때리는 듯한. 호흡이 곤란해졌다. 폐가 압박당하는 감각. 시야가 왜곡됐다. 최준영의 형상이 물결처럼 흔들렸다. 그것이 최준영의 버프였다.

'절대적 주인공의 운명.'

도연의 입에서 그 단어가 나왔다.

"뭐라고 했어?"

최준영이 물었다.

"절대적... 주인공의 운명. 그게 너의 버프야. 다른 버프들과는 다르게 모든 걸 흡수해. 넌 주인공 중의 주인공이야."

도연이 그 말을 하는 순간, 최준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동시에 모든 주인공들의 시선이 도연에게 모아졌다.

김준호의 눈. 서혜진의 눈. 박세진의 눈. 류현우의 눈. 그리고 한나의 눈.

모든 눈이 도연을 보고 있었다.

도연은 그 시선의 무게를 느꼈다. 조연이 느껴서는 안 되는 무게. 배경이 받아서는 안 되는 시선의 집중. 그것이 도연을 관통했다.

"넌 뭐야, 진짜."

최준영이 다시 물었다. 이번엔 공포가 아니라 분노였다. 하지만 그 분노 아래에는 다른 감정이 있었다. 도연이 자신의 정체를 폭로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도연이 자신의 버프를 감지했기 때문일까? 최준영은 도연을 향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분노로 변했다.

"넌 우리를 감지할 수 있어? 우리의... 버프를?"

도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해."

최준영이 도연의 팔을 잡았다. 그 손이 도연의 투명한 팔을 통과했다. 아니, 통과한 게 아니었다. 닿지 않은 것이었다. 이미 도연의 팔은 그 정도의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최준영의 손이 도연의 팔을 꽉 잡으려고 했지만, 손가락이 텅 빈 공간을 헤맸다.

"너... 사라지고 있어?"

한나의 목소리가 울음으로 변했다.

"도연아!"

한나가 도연을 붙잡으려고 했다. 도연은 몸을 굴려서 피했다. 닿으면 안 된다. 누군가가 도연을 기억할수록, 도연은 더 빨리 사라진다. 그게 이 능력의 대가였다.

"기다려. 기다려, 도연아. 뭐가 일어나는 거야?"

한나가 도연의 뒤를 따라왔다. 도연은 로비를 빠져나갔다. 복도로. 그리고 계단으로.

"도연!"

한나가 계단을 내려왔다. 도연은 한 층을 뛰어내렸다. 그 다음 층도. 그 다음 층도.

기숙사 1층 로비에 도착했을 때, 도연의 목까지 투명해졌다.

거울에 비친 도연은 괴물 같았다. 투명한 팔. 투명한 목. 그리고 여전히 검은색으로 남아 있는 눈.

"도연아."

한나가 계단을 내려왔다. 도연은 기숙사 밖으로 나갔다. 밤 1시 40분의 아카데미 마당. 아무도 없는 곳.

"왜 피해? 난 너를 도와주고 싶어. 난 정말..."

한나가 도연의 팔을 잡았다. 손이 도연의 투명한 피부를 통과했다. 아니, 통과하지 못했다. 한나의 손가락이 도연의 팔에 닿는 순간,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도연의 피부가 다시 생겨났다.

아주 천천히. 마치 사진이 현상되듯이. 한나의 손가락이 닿은 부분부터, 도연의 팔이 다시 실체를 가지기 시작했다.

"어? 어?"

한나의 눈이 커졌다.

"뭐가... 일어나는 거야?"

도연도 자신의 팔을 봤다. 투명한 부분에 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한나의 손이 닿은 부분부터.

'기억.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것.'

도연은 그것을 깨달았다. 한나가 자신을 만지고 있으니까. 한나가 자신을 보고 있으니까. 한나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도연이 다시 생겨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공포였다.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것.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 누군가와 연결되는 것. 그것은 도연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도연이 기억되면, 도연이 필요해지면, 도연과 누군가가 연결되면...

도연은 타인의 서사에 종속되어버릴 테니까.

조연이 아닌 누군가의 주인공이 되어버릴 테니까.

"도연아. 왜 그렇게 무서워해?"

한나의 목소리가 귀에 가까워졌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난 너를 잃고 싶지 않아."

그 눈물이 도연의 뺨에 떨어졌다.

도연의 가슴이 다시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야."

도연이 중얼거렸다.

"안 돼. 누군가에게 기억되면 안 돼. 누군가의 주인공이 되면 안 돼."

도연은 한나의 손을 떨쳐냈다. 죄책감이 가슴을 찢었다. 한나의 비명이 귀를 때렸다.

"도연!"

하지만 도연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당을 빠져나갔다. 연습장 방향으로. 아무도 없는 곳으로. 누구도 자신을 기억하지 않는 곳으로.

하지만 연습장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최준영이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뒤에는 김준호와 박세진, 류현우가 서 있었다. 그리고 한나도 뒤쪽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도연. 이제 끝이야."

최준영이 말했다.

"넌 이미 우리 모두한테 들켰어. 넌 이미 우리 모두의 시선을 받았어. 넌 이제 조연이 아니야. 넌 이제 주인공이 돼버렸어."

도연의 심장이 멈췄다.

"넌 도망칠 수 없어. 이미 넌 주인공이 돼버렸거든."

최준영이 도연의 팔을 잡았다. 이번엔 손이 도연의 투명한 팔을 제대로 잡았다. 왜냐하면 도연의 팔이 다시 실체를 가지기 시작했으니까.

모두가 도연을 보고 있었다. 모두가 도연을 기억하고 있었다.

도연은 그 순간을 느꼈다. 자신이 누군가의 주인공이 되는 그 순간을.

그 순간, 도연 안에서 뭔가가 깨어났다.

최준영의 버프. 절대적 주인공의 운명이 도연을 집어삼키려 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중력처럼. 도연은 저항했다. 손가락을 움켜쥐고. 이를 깨물고. 마음 한구석에 자신을 남겨두려고.

'아니야. 아니야. 난 도연이야.'

도연의 의식이 자신을 붙잡으려 했다. 절대적 주인공의 운명이라는 검은 파도가 밀려오는데, 도연은 그것을 거슬렀다. 손톱이 부러지도록 저항했다. 자신의 이름을 반복했다. 자신의 기억을 붙들었다. 입시 때의 자신. 아카데미에 온 자신. 조연이 되고 싶었던 자신.

'난 도연이야. 난 도연이야. 난 도연이야.'

하지만 그 버프는 너무 강했다. 도연의 의지는 점점 작아졌다. 마치 파도에 잠기는 돌처럼. 마치 검은색 물감이 물에 풀리듯이.

그 순간, 도연의 본능이 깨어났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한나의 눈물이 떨어졌던 공포.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던 절망. 그것으로부터 도연을 지키기 위해.

도연은 그 버프를 복사했다.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라, 생존 본능처럼. 마치 물에 빠진 자가 본능적으로 손을 휘젓는 것처럼.

도연의 눈이 검은색으로 변했다.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검은색으로. 마치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검은색으로.

도연의 목소리가 변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그 목소리는 도연의 것이 아니었다. 아니, 도연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거기엔 다른 것도 있었다. 음성대역이 낮아졌다. 마치 여러 톤이 동시에 울려 나오는 것처럼. 호흡음이 이상했다. 한 사람의 숨이 아니라, 여럿의 숨이 겹쳐 있는 것 같았다. 제스처도 어색했다. 도연의 팔이 움직이는 방식이, 도연의 고개가 기울어지는 방식이 더 이상 도연의 것이 아니었다.

최준영의 손이 도연의 팔에서 떨어졌다.

"뭐... 뭐야?"

최준영의 얼굴에 공포가 드러났다.

"이건... 뭐야?"

도연은 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도연의 웃음이 아니었다. 도연의 웃음 위에 뭔가 다른 것이 겹쳐 있었다. 더 깊고, 더 크고, 더 절대적인 무언가가.

"이제 넌 알겠지? 우리가 뭔지? 우리가 왜 강한지? 우리가 왜 선택받은 자인지?"

도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도연의 말이 아니었다. 도연의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연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어딘가에. 깊은 곳에서. 작아진 목소리로.

'이제 끝이다. 이제 정말로 끝이다.'

도연의 마지막 생각이 사라지기 전에, 도연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조연이 되고 싶었던 자신의 모든 노력이 무의미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것을.

도연은 조연이 될 수 없었다. 아카데미라는 이 세계에서 도연은 절대로 배경이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도연 자신이 모든 주인공의 버프를 감지할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도연 자신이 주인공들 중의 주인공이 되기로 정해져 있었으니까.

도연은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생각했다.

'류현우. 그 놈이 경고했는데...'

류현우는 처음부터 도연을 다르게 봤다.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이. 마치 도연의 끝을 이미 본 듯이. 그의 평탄한 목소리에는 항상 경고가 담겨 있었다. 들었어야 했나?

하지만 그 생각도 사라졌다.

도연 안에 절대적 주인공의 운명이 완전히 채워졌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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