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두 번째 복사

마법 수업 시간. 도연은 강의실 뒤쪽 창가 자리에서 신경 써야 할 것을 신경 썼다. 서혜진이다.

강사가 "마법 감응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동안, 도연의 감각은 오직 서혜진 쪽에만 향해 있었다. 서혜진의 손가락이 떨렸다. 아주 미세하게. 강의실의 온도가 갑자기 떨어졌다는 것을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도연은 느꼈다.

서혜진의 몸 주변에 은은한 빛이 맺혔다. 주변 마법 에너지들이 모여드는 현상. 도연은 전에 본 적이 있었다. 김준호의 검술 버프 때처럼, 서혜진도 운명의 선택을 받고 있었다. 버프.

'두 번째다.'

도연의 호흡이 얕아졌다. 손가락이 이미 반투명했는데, 또 다른 버프를 복사하면 어떻게 될까. 세 번째 복사 후에는 자신이 완전히 사라질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두 번째는?

도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혜진의 버프를 복사할 것인가, 말 것인가. 손을 떨며 고민했다. 하지만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발걸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복도를 지나 도서관 지하 마법 보물고에 도달하는 데에는 5분이 걸렸다. 이 자리는 금지 구역이었지만, 도연이 중요한 것 따위는 남은 게 없었다. 보물고의 문이 열려 있었다. 누군가 이미 들어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도연은 들어갔다.

보물고 내부는 은은한 마법 에너지로 가득했다. 수백 개의 아이템들이 진열장 속에 있었고, 그것들이 방출하는 힘들이 서로 얽혀 있었다. 도연이 한 발 더 들어가자마자, 그 모든 힘들이 한 점으로 수렴했다.

도연을 향해.

폭발이 일어났다. 아니, 정확히는 폭발 직전이었다. 보물고의 모든 마법 에너지가 도연을 중심으로 격렬하게 소용돌이쳤다. 진열장의 유리가 깨졌다. 공중에 떠 있던 수정 구슬들이 방향을 잃고 흩어졌다. 어떤 아이템은 검게 빛났고, 어떤 아이템은 황금색으로 타올랐다.

도연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서혜진의 버프가 작동했다.

도연의 손가락에서 마법이 터져 나왔다. 검술과는 달랐다. 검술 강화는 신체의 연장이었다면, 마법 감응은 세상 전체와의 연결이었다. 주변의 모든 에너지가 도연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도연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마법이 움직였다.

깨진 유리 조각들이 공중에서 멈췄다. 흩어진 수정 구슬들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황금색으로 타오르던 아이템은 부드럽게 진열장으로 들어갔고, 검게 빛나던 아이템은 안전한 위치로 이동했다.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순간의 감각은 중독적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의 손 위에서 춤을 춘다는 느낌. 완전한 통제. 완전한 힘.

도연은 마법을 멈췄다.

손가락이 반투명해졌다. 그 아찔함이 뒤따랐다. 방금의 쾌감은 대가였다. 자신의 존재를 깎아내는 대가.

보물고의 문이 열렸다.

"뭐 하는 거야?"

서혜진이 서 있었다. 그 뒤로 담당 교사가 보였다. 도연은 서혜진의 마법 감응 버프가 아직도 작동 중이라는 것을 느꼈다. 24시간 유지된다고 했다.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었다.

"죄송합니다."

도연이 말했다. 그 목소리가 자신의 목소리인지 의심했다.

서혜진은 도연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눈 초점이 도연의 팔에 맞혀 있었다. 서혜진이 뭔가를 깨달으려는 표정이었지만, 담당 교사가 도연의 팔을 잡아당겼다.

"기숙사로 가. 훈계는 내일."

도연은 끌려 나왔다.

기숙사 217호. 도연은 침대에 누웠다. 시간은 오후 4시 47분.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완전히 투명했다. 손가락 뼈까지 보였다. 팔뚝까지 올라오는 투명함. 도연은 천천히 팔을 올렸다. 어깨까지 투명했다.

침대 옆 거울에 비친 자신을 봤다. 왼쪽 팔이 없었다. 정확히는 투명해서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 팔은 아직 어느 정도 형체가 있었다. 얼굴은? 도연의 눈이 거울 속 자신의 얼굴에 맞혀 있었다. 어제의 얼굴과 달랐다. 더 희미해 보였다.

밤 11시 50분, 기숙사 옥상. 도연은 난간에 기대고 있었다. 한나와 박세진이 아침에 자신을 봤을 때의 표정을 떠올렸다.

"어? 너 원래 마법 수업 시간에 나가?"

한나가 물었다. 도연은 어제 마법 수업을 빼지 않았는데, 한나는 자신이 마법 수업을 자주 빼는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전에 도연이 좋아하던 음식이 뭐였더라?"

박세진이 식탁에서 물었다. 도연이 "저 아무거나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했을 때, 박세진의 눈썹이 살짝 내려갔다. 그리고 노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너 성격이 좀 이상한데?"

한나가 다시 물었다.

도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의 성격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뭐 하고 있어?"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도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류현우가 서 있었다. 정확히는 난간 반대편에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류현우의 얼굴은 반쯤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내가 물어봐. 넌 뭐 하고 있어?"

"그냥."

도연이 말했다.

"그냥? 뭐가 그냥이야. 넌 알고 있어."

류현우가 한 발 더 다가왔다. 그의 시선이 도연의 팔에 맞혀 있었다. 투명한 팔. 류현우는 그것을 보고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대신 깊게 숨을 쉬었다.

"넌 나처럼 도망치고 싶은 거지?"

도연의 호흡이 멈췄다.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은 거지? 그런데 자꾸 그렇게 되어 가는 거지? 그 기분 알아. 난 알아."

류현우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어떤 동정도 없었다. 대신 절망이 있었다. 도연과 같은 절망.

"세 번째 버프를 쓰지 마. 그러면 넌 완전히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그럼 죽는 건가?"

도연이 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류현우는 웃지 않았다.

"더 나쁜 거야. 셀 수 없게 된다는 거야. 세상의 모든 사람이 너를 잊는다는 게 아니라, 너 자신이 너를 잊는다는 거야. 그게 진짜 사라지는 거야."

도연이 류현우를 바라봤다. 그의 말이 위로인지 절망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도연이 물었다.

류현우는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 같았다.

"내일 정오에 남쪽 숲에서 만나. 나랑 얘기할 게 있어."

"왜?"

"넌 나의 거울이니까. 그리고 거울은 진실을 비춘다."

류현우가 돌아갔다. 옥상에는 도연만 남았다.

도연은 류현우의 말을 되짚었다. '거울은 진실을 비춘다.' 그렇다면 자신이 비춰내는 진실은 무엇인가? 자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 아니면 누군가는 자신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

도연은 자신의 팔을 봤다. 이제 팔뚝 위까지 투명했다. 그리고 기억했다. 아침에 한나가 자신의 손을 잡았을 때 느껴지는 감각. 한나의 손은 분명 도연의 손을 잡고 있었지만, 마치 공기를 쥐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도연은 복도의 거울을 지나갔다. 거울 속의 자신은 흐릿했다.

기숙사 217호에 들어선 도연은 침대에 누웠다가 벌떡 일어났다. 손가락을 펼쳐 봤다. 어제보다 더 투명했다. 손목까지 비쳐 보였다. 손이 떨렸다. 호흡이 가빠졌다. 그 아래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공포가 밀려왔다.

휴대폰을 들었다. 카톡 목록이 뜨자 이한나의 마지막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도연아, 내일 아침 마법 수업 같이 가자!"

그런데 자신은 아침에 이한나를 만났고, 한나는 "어? 너 원래 마법 수업 시간에 나가?"라고 물었다. 한나는 자신이 마법 수업을 자주 빼는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연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르겠다는 게 더 정확했다.

자신의 일정을 열어 봤다. 2주 전의 기록을 찾았다. 그날 자신은 뭘 했지? 화면을 스크롤했다. 기억이 안 났다. 1개월 전은? 3개월 전은? 손가락이 경련했다. 화면을 끄고 베개에 던졌다.

밤 11시 30분. 도연은 여전히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천장을 바라봤다. 류현우의 말이 계속 반복됐다.

'넌 나처럼 도망치고 싶은 거지?'

도연은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처음부터 조용히만 있고 싶었다. 그런데 자꾸 강해지고, 자꾸 주목받고, 자꾸 사라지고 있었다.

아침이 왔다.

도연은 기숙사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옆자리에 박세진이 앉았다. 박세진은 평소처럼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도연을 힐끗 봤다.

"너 어제 뭐 했어?"

"그냥."

"그냥이 뭐야. 자세히."

박세진의 펜이 멈췄다. 도연을 정면으로 봤다. 그 눈빛에는 의심의 날이 서 있었다.

"난 이상해. 너 진짜 이상해. 한 달 전의 너랑 지금의 너가 다르다니까. 성격도 다르고, 말투도 다르고, 눈빛도 다르고, 심지어 너 손까지 이상한데?"

박세진이 도연의 팔을 봤다. 도연은 서둘러 팔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럴 리 없죠."

"있어. 분명히 있다니까. 난 기록하고 있어."

박세진이 노트를 펼쳤다. 거기에는 도연과 관련된 모든 변화가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었다.

'2월 15일: 입시 이후 도연의 검술 실력 급상승. 이전과 다른 움직임.'

'2월 22일: 도연이 마법 수업에 참여. 이전에는 마법 수업 불참. 왜?'

'2월 25일: 도연의 팔이 반투명해 보임. 조명 때문인가? 아니다. 명확한 투명성.'

'2월 28일: 도연의 친구들이 도연을 기억하지 못함. 한나가 "너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라고 물음. 도연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있음.'

도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넌 뭐야? 정말 뭐야?"

박세진이 다시 물었다. 이번엔 의심이 아니라 진짜 궁금해하는 목소리였다.

도연은 박세진의 눈을 피했다. 그 눈빛 속에 자신의 변화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무서웠다. 누군가는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저는... 조연입니다."

도연이 말했다. 그 말이 자신의 입에서 나왔는데도 자신의 말 같지 않았다.

박세진의 눈이 커졌다. 입이 떨렸다. 펜을 떨어뜨렸다.

"조연? 넌 왜 그런 말을...? 도연, 뭐가 문제야? 이게 뭐야?"

박세진이 도연의 팔을 잡으려 했다. 도연은 일어섰다. 밥을 남긴 채로.

"박세진, 기록하지 마."

도연이 말했다. 박세진의 눈을 마주쳤다.

"뭐... 뭐라고?"

"나를 기억하려고 하지 마. 그럼 넌 나처럼 될 수도 있어."

도연이 돌아섰다. 박세진의 추궁을 뒤로하고 식당을 빠져나갔다.

마법 수업은 정오에 시작됐다. 도연은 교실 뒤에 앉았다. 서혜진이 앞에 있었다. 교사는 마법 기초 이론을 설명하고 있었다. 도연은 그 말을 들었지만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이제 실습 시간입니다. 각자 자신의 마법 계열을 선택하세요."

교사가 말했다. 학생들이 일어났다. 도연도 일어나려고 했다.

그 순간 아카데미 내 스피커에서 방송이 흘렀다.

"긴급 상황. 아카데미 마법 보물고에서 금지된 아이템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모든 학생은 교실에 머물러 주세요."

교실이 술렁거렸다. 도연의 눈이 반짝였다. 그 순간 자신의 뇌에 정보가 떠올랐다.

'마법 보물고. 서혜진의 버프. 마법 감응 능력.'

누군가 아이템을 활성화했다. 서혜진의 버프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

도연은 자리를 벗어났다.

"도연? 너 어디 가?"

교사가 불렀지만 도연은 이미 교실을 빠져나갔다.

마법 보물고는 아카데미 지하 3층에 있었다. 도연이 계단을 내려가자 마법의 파동이 느껴졌다. 보물고의 문이 열려 있었다. 안에서 빛이 터져나왔다.

도연이 들어섰다.

보물고 안은 혼란스러웠다. 진열된 아이템들이 제멋대로 떠 다니고 있었다. 마법 원석들이 공중에서 폭발했다. 위험한 수준의 마법력이 난무하고 있었다. 도연이 한 발 더 들어가자 떠 있던 칼이 자신을 향해 날아왔다.

도연의 몸이 움찔했다. 피할 수 없었다.

'버프.'

도연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자신의 몸이 변했다. 손끝에서 마법력이 터져나왔다. 서혜진의 마법 감응 버프. 도연은 주변의 모든 마법을 감지했다. 그리고 그것을 조종했다.

날아오던 칼이 멈췄다.

떠 다니던 원석들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도연의 손이 빛났다.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의 마법이 그의 손가락에서 소용돌이쳤다.

도연은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은 여전히 투명했다. 하지만 마법은 명확하게 보였다. 마법은 도연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혜진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도연이 사용하고 있었다.

보물고의 모든 마법이 도연의 손 위에서 소용돌이쳤다. 도연은 그것을 진정시켰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5분 후, 보물고는 조용해졌다.

도연은 손을 내렸다. 마법이 흩어졌다.

그 순간 도연의 몸이 흔들렸다. 호흡이 끊겼다. 시야가 흐려졌다.

도연은 생각했다. 자신의 손을 봤다. 더 투명해져 있었다. 팔뚝까지, 어깨까지, 목까지. 도연의 몸의 절반이 투명했다.

보물고에서 나온 도연은 복도를 따라 기숙사로 돌아갔다. 아무도 자신을 봤다고 하지 않았다. 마치 공기처럼. 아니, 공기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기숙사 217호에 들어선 도연은 거울을 봤다.

왼쪽 팔이 없었다. 정확히는 투명해서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 팔은 아직 어느 정도 형체가 있었다. 얼굴은? 도연의 눈이 거울 속 자신의 얼굴에 맞혀 있었다. 어제의 얼굴과 달랐다. 더 희미해 보였다.

도연이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이한나였다.

"도연아! 너 괜찮아? 마법 수업에서 갑자기 나가고... 보물고에서 뭐가 있었대?"

한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연? 넌 지금 뭐 해?"

"... 기숙사."

"혼자?"

도연은 다시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 갈게. 넌 혼자 있으면 안 돼."

한나가 말했다.

"한나."

도연이 입을 열었다.

"뭐?"

"넌 나를 기억해?"

한나의 대답이 조금 늦었다.

"당연하지... 왜?"

"내 이름이 뭐야?"

"이... 이도연?"

한나의 목소리가 불확실했다. 도연은 알았다. 한나는 자신을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안개 속을 보는 것처럼, 흐릿한 기억 속에서만 도연을 보고 있었다.

도연은 전화를 끊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다시 봤다. 이제 절반이 투명했다. 세 번째 버프를 사용하면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도연은 그것을 알았다.

기숙사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도연은 거울을 등지고 침대에 누웠다. 문이 열렸다.

김준호였다.

"도연. 내일 검술 시험 준비 좀 해줄래?"

김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명령이 담겨 있었다.

"... 알겠습니다."

도연이 대답했다. 그 대답도 자신의 것 같지 않았다.

"너 정말 이상한데. 뭐 됐어?"

김준호가 도연을 봤다. 도연의 투명한 팔을 봤다. 하지만 김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정상인 것처럼.

아니면, 김준호의 눈에도 도연이 투명하게 보이고 있는 걸까?

김준호가 나갔다.

도연은 다시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자신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밤 11시 50분, 기숙사 옥상. 도연은 난간에 기대고 있었다. 아래로는 아카데미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도연과 무관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도연은 세상의 일부가 아니었다. 도연은 점점 더 배경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건, 도연 자신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투명해지는 감각에 점점 익숙해지고, 기억되지 않는 것에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자신이 자신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박세진은 기록하고 있었다. 기억하려고 했다. 도연의 변화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내일 정오, 남쪽 숲. 류현우와의 약속이 남아 있었다. 도연은 그곳에 갈 것이다. 거울이 비춰낸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방법을 찾기 위해.

하지만 그 방법이 무엇인지, 도연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세 번째 버프를 쓸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그것을 쓰는 순간, 도연은 자신마저 자신을 잊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내일은 또 다른 날이었다.

내일은 또 다른 위기가 올 것이었다. 그리고 도연은 또 버프를 사용해야 할 것이었다. 왜냐하면 주인공들은 멈추지 않기 때문이었다. 계속 강해지고, 계속 도연을 자신들의 중심으로 끌어당기고, 계속 도연의 존재를 위협했다.

도연의 손가락이 떨렸다. 이미 절반이 투명한 손가락.

세 번째는 절대 안 된다.

하지만 세 번째는 반드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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