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50분, 옥상의 난간.
박세진이 노트를 들고 나타났다.
"넌 정말 뭐야?"
도연은 몸을 굳혔다. 손가락이 투명해지는 감각은 이미 사라졌지만, 박세진의 눈빛은 예리했다. 도연이 천천히 돌아섰다.
"뭐긴 뭐예요. 그냥 학생이죠."
"그렇지 않아."
박세진은 한 발 다가섰다. 노트의 페이지를 넘겼다. 그 안에는 도연의 이름이 여러 번 적혀 있었다. 옆에는 날짜와 시간, 그리고 짧은 메모들.
*'도연 - 2월 15일 입시 시험 당일. 검술 심사에서 갑자기 움직임 변화. 정확도 +40%. 이전 기록과 모순.'*
*'도연 - 2월 16일 아침. 손가락 움직임 부자연스러움.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도연 - 현재 기억 능력 저하? 아니면 의도적 거리두기?'*
박세진의 눈이 도연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뭔가 이상해. 넌 계속 변해. 아니, 정확하게는 사라지는 중이야."
도연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얼굴은 평온했다.
"박세진, 난 그냥 적응 중이야. 아카데미가 처음이니까."
"거짓말이야."
박세진은 노트를 닫지 않았다.
"넌 2월 13일에 이 학교 도서관에서 본 적 있어? 그때 넌 정말로 존재했어. 서혜진한테 검술 기본기를 물었고, 이한나랑 웃었고, 심지어 내 앞에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어. 근데 지금 넌... 다르다."
박세진은 노트에 손가락을 대며 계속했다.
"입시 이후로 넌 마치 누군가를 흉내 내는 사람처럼 움직여. 아니, 정확하게는 누군가를 연기하는 것처럼."
도연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박세진이 한 발 더 다가섰다.
"그리고 이게 제일 이상한데—" 박세진이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를 폈다. "아카데미의 다른 학생들도 넌 점점 잊어가고 있어. 1학년 A반 학생 중에 '도연이가 누구지?'라고 물어본 애가 3명이야. 2월 15일 이전에는 아무도 그런 말 안 했어."
침묵이 흘렀다. 밤바람이 옥상을 스쳐 지나갔다.
도연은 박세진의 눈을 바라봤다. 그 안에는 호기심이 있었지만, 동시에 진심이 있었다. 박세진도 이 아카데미의 비정상을 느끼고 있었다.
도연은 난간에 기대었다.
"박세진, 넌 그런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이상한 일들을 기록하고 있어. 왜?"
박세진은 노트를 내려놨다.
"이 학교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어. 모두가 눈감고 있지만, 분명히 뭔가. 그리고 넌 그 중심에 있어. 난 그걸 알고 싶어."
도연은 입을 열었다. 거짓말이 나올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박세진의 눈을 마주치는 순간, 다른 선택을 했다.
"알고 싶으면 알게 될 거야. 하지만 그땐 넌 후회할 거야."
"정말?"
"정말이야."
도연은 박세진에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입시 이후로 나도 변했어. 넌 맞게 봤어. 하지만 그건 내가 선택한 변화가 아니야. 누군가 나를 지우고 있는데, 내가 그걸 막을 수 없어."
박세진의 표정이 굳었다.
"뭐... 뭐라고?"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서 사라지고 있어. 그리고 가장 무서운 건—" 도연이 손가락을 들었다. 반투명한 손가락이 밤빛에 흔들렸다. "내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더 빨리 사라진다는 거야."
박세진은 도연의 손을 봤다. 그리고 노트에 뭔가를 빠르게 적었다.
"그럼 지금 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도연은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마저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모르겠어. 이게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내가 뭔지도 모르는데."
박세진은 노트를 닫았다.
"혹시... 넌 혹시 다른 버전의 주인공은 아니야?"
박세진의 질문이 도연을 관통했다. 도연의 손가락이 더 투명해졌다.
도연은 그 순간을 느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 질문 자체가 자신을 지우는 칼이라는 것을. 박세진의 호기심이 도연을 더 희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도연은 박세진에게 한 발 다가섰다. 박세진이 놀라 뒤로 물러섰다.
"만약 내가 주인공처럼 행동한다면? 만약 내가 버프 없이도 주인공 같은 짓을 한다면?"
도연의 목소리가 변했다. 더 단호했다. 더 강했다.
"그럼 내가 주인공인 거야? 아니면 주인공을 흉내 내는 조연인 거야?"
박세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도연은 박세진의 어깨를 잡았다. 손가락이 반투명했지만, 힘은 실제였다.
"다시 묻지 마. 내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이 나를 지워. 알겠어?"
박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움이 그의 눈에 가득했다.
도연은 손을 놓았다. 그리고 옥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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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전 10시, 강의실.
입시 결과 발표가 있었다. 교무실 게시판에 합격자 명단이 붙었다. 도연의 이름은 맨 아래에 있었다. 합격.
"도연! 축하해!"
이한나가 도연에게 달려왔다. 서혜진도 옆에 있었다. 서혜진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었지만, 눈은 도연을 향해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리던 누군가를 본 것처럼.
"감사합니다."
도연이 대답했다. 이한나는 도연의 팔을 잡았다.
"우리 셋 다 합격했어! 이제 같은 반이야!"
도연은 이한나의 손을 느꼈다. 따뜻했다. 하지만 그 온기가 도연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검술 시험이 끝난 지 정확히 24시간이 지났다. 도연의 몸에서 버프가 빠져나갔다. 어제의 검술 강화는 완전히 사라졌고, 도연은 다시 평범한 신체로 돌아왔다. 하지만 뭔가 더 잃어버린 것이 있었다.
도연의 어린 시절 기억이 흐릿했다.
초등학교 때 학교 가는 길에 있던 편의점의 모양. 아버지의 목소리. 어머니가 도연을 안고 있던 그 감각. 모두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기억을 보는 것처럼 멀고 흐렸다.
"도연, 넌 뭘 생각해?"
서혜진의 목소리가 도연을 깨웠다. 도연은 서혜진을 봤다. 서혜진의 눈은 도연을 온전히 보고 있었다. 도연이 아닌 누군가가 아니라, 정말로 이도연을 보고 있었다.
"아, 뭐 특별한 건 아니고..."
"도연, 나랑 좀 가자."
서혜진이 도연의 손을 잡았다. 도연은 거부할 시간도 없이 끌려갔다. 강의실을 나가 복도를 따라 이동했다. 다른 학생들이 지나가면서 서혜진과 도연을 봤다. 속삭임이 시작되었다.
서혜진은 도연을 아카데미 정원 구석, 작은 분수대 옆으로 이끌었다. 여기는 거의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었다.
"나를 봐줄 사람이 필요해."
서혜진이 갑자기 말했다. 도연은 서혜진을 바라봤다.
"뭐라고요?"
"마법사가 아닌 사람으로서 말이야."
서혜진의 목소리는 작지만 명확했다.
"이 학교에서 모두가 날 봐줄 때, 내 마법 능력만 본단 말이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안 봐. 근데 넌... 달라."
도연은 입을 다물었다. 서혜진이 계속했다.
"넌 내 마법이 얼마나 강한지, 내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신경 안 써. 넌 그냥 나 자체를 봐줘. 그런 사람이 필요해."
서혜진은 도연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도연은 서혜진을 봤다. 서혜진의 눈에는 간절함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인정받고 싶은 마음. 도연은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으니까.
하지만 도연은 서혜진의 손을 놓았다.
"서혜진, 미안해."
"왜?"
도연은 천천히 말했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난 누구도 온전히 봐줄 수 없어. 난 스스로도 나를 제대로 못 보고 있거든."
그 말을 하는 순간, 도연은 깨달았다.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절반의 진실, 절반의 거짓. 그 모호함 속에서 도연은 자신이 한 발 더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난 이 학교가 안 맞는 것 같아. 다른 학교 갈 생각도 했어. 정말로."
도연이 덧붙였다. 이번엔 완전한 거짓말이었다. 도연은 다른 학교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거짓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너무나 설득력 있게 나왔다. 마치 도연이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거짓말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도연은 자신이 한 발 더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가 도연의 뒷모습을 지우개로 지워내는 듯한 감각. 말을 하는 도연의 목소리도, 생각을 하는 도연의 마음도 점점 남의 것처럼 느껴졌다.
'이건 내 거짓말이 맞나?'
도연이 자문했다.
서혜진의 눈이 흔들렸다. 눈물이 맺혔다.
"그럼... 넌 날 떠날 거야?"
도연은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도연은 선택을 했다. 계속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연은 다른 길을 택했다.
"아니야."
도연이 서혜진의 손을 다시 잡았다.
"난 떠나지 않을 거야. 난 여기 있을 거야. 너 곁에."
서혜진의 눈이 커졌다.
"근데 넌 아까..."
"아까는 거짓말이었어. 내가 거짓말을 통해 나를 지우려고 했어. 하지만 이건 다야. 이건 진실이야."
도연의 손가락이 다시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이유였다. 도연이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짓으로 자신을 조작하는 게 아니라, 진실로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서혜진은 도연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넌 뭐야?"
"모르겠어. 하지만 난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
도연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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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50분, 기숙사 복도.
박세진이 복도에서 도연과 마주쳤다. 박세진의 손에는 노트가 들려 있었다.
"도연. 괜찮아?"
박세진이 물었다. 박세진의 눈은 도연을 제대로 보고 있었다.
"네, 괜찮습니다."
도연이 대답했다.
박세진은 노트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뭔가 말하고 싶은데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박세진, 뭔데?"
도연이 먼저 물었다.
박세진은 한숨을 쉬었다.
"아카데미에서 비정상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넌 그걸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도연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박세진이 노트를 펼쳤다. 거기에는 도연, 김준호, 서혜진, 류현우, 최준영의 이름과 그들의 변화 과정이 기록되어 있었다. 날짜, 시간, 변화의 내용. 모두 정확했다.
"넌 정말 뭐야?"
박세진이 도연을 바라봤다. 이번엔 정확히. 도연의 눈을 직시했다.
도연의 마음이 철렁했다. 박세진이 자신을 본다. 진짜로 본다. 도연은 그 순간, 자신이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연은 박세진을 똑바로 봤다.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마. 그 질문이 나를 지워."
"뭐라고?"
"내가 누구인지 확인하려는 시도 자체가 나를 사라지게 해. 그래서 난 스스로를 정의하지 않기로 했어."
도연이 말했다.
박세진은 노트에 뭔가를 적으려다 멈췄다.
"그럼 넌 뭐가 되고 싶어?"
박세진이 물었다.
도연은 생각했다. 정말로 생각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난 누군가의 곁에 있고 싶어. 서혜진 곁에. 이한나 곁에. 그리고 박세진 넌 계속 날 기록하고 있지만, 난 그것도 괜찮아."
박세진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그렇구나."
박세진이 노트를 닫았다.
"조심해. 이 아카데미는 생각보다 복잡해."
박세진이 돌아섰다. 하지만 발걸음이 멈췄다. 박세진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혹시 넌...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은 건 아닐까?"
박세진이 빠르게 사라졌다.
도연은 혼자 남겨졌다. 복도의 조명 아래서. 자신의 손가락을 봤다. 이제 손가락의 절반이 투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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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30분, 기숙사 217호.
도연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천장을 봤다. 천장의 균열을 세고 있었다. 1번, 2번, 3번...
하지만 도연은 자신이 왜 균열을 세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도 도연이 원하는 행동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도연의 몸을 조종하고 있는 듯한 느낌.
도연이 손가락을 들었다. 손가락의 3분의 2가 투명했다.
버프 2회 사용. 남은 기회는 1회.
도연은 세 번째 버프를 사용할지 말지 고민했다. 세 번째 버프를 사용하면 도연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도연은 무엇이 될까? 주인공이 될까? 아니면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까?
'이제 그만하자. 조연으로 남자. 아무것도 하지 말고.'
도연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도연의 목소리는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톡톡톡.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도연은 눈을 떴다. 이미 밤 7시였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갔나? 도연은 어떤 시간대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연이 일어나 문을 열었다.
이한나가 서 있었다.
"도연!"
이한나의 얼굴에는 걱정이 만연했다. 마치 도연이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것처럼.
"뭐... 뭐예요?"
도연이 물었다.
이한나는 도연의 팔을 잡았다.
"서혜진이가 울었어. 그리고 박세진이가 계속 뭔가를 쓰고 있어. 넌 뭔가... 이상해."
이한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도연은 이한나를 봤다. 이한나의 눈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결연함도 있었다.
"이한나, 나한테서 손을 떼."
도연이 말했다.
"뭐라고?"
"내가 누군가에게 붙잡힐 때마다 난 더 빨리 사라져. 그래서 손을 떼."
도연이 이한나의 손을 내려놨다.
이한나는 도연을 봤다. 그리고 다시 도연의 손을 잡았다.
"싫어. 난 놓지 않을 거야."
이한나가 말했다.
"이한나—"
"넌 혼자가 아니야."
이한나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도연은 이한나의 손을 느꼈다. 따뜻했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서혜진의 손처럼. 하지만 더 강했다.
도연의 손이 투명해졌다. 손가락이 거의 사라질 지경이었다.
이한나는 그것을 봤다. 도연의 손가락이 반투명인 것을. 이한나의 눈이 커졌다.
"도연... 넌 뭐야?"
도연은 이한나를 봤다. 그리고 선택을 했다.
도연은 세 번째 버프를 사용할지 말지를 두고 갈등했다. 세 번째 버프를 사용하면 도연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도연은 계속 이렇게 투명해져 갈 것이다. 둘 다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한나, 난 선택을 해야 해."
도연이 말했다.
"뭔 선택?"
"내가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될 것인가."
도연이 이한나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만약 내가 버프를 사용하면 난 완전히 사라져. 하지만 그 순간, 난 뭔가가 될 거야.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더 깊은 어둠이 될 수도 있고."
이한나는 도연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럼 사용하지 마. 제발."
이한나가 외쳤다.
"하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난 이대로 사라져.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게."
도연이 말했다.
도연의 손가락이 완전히 투명해졌다. 손목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 순간, 기숙사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났다. 빠른 발걸음. 누군가가 도연의 방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류현우가 먼저 나타났다. 그는 복도를 뛰어가다가 도연의 방 앞에서 멈췄다. 서혜진이 그 뒤를 따라왔다. 박세진의 기록을 보고 달려온 것이었다. 김준호도 함께였다.
"도연!"
류현우가 외쳤다. 그는 도연의 다른 손을 잡았다.
"뭐... 뭐예요?"
도연이 물었다.
류현우는 도연을 똑바로 봤다.
"서혜진이가 말했어. 넌 뭔가 이상하다고. 그리고 박세진이 노트를 봤어. 넌 사라지고 있는 거지?"
"넌 혼자가 아니야."
류현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김준호도 도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뭐가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여기 있어."
서혜진도 도연의 옆에 섰다. 박세진도 복도에서 나타났다.
모두가 도연을 보고 있었다. 도연을 기억하고 있었다.
도연의 손가락이 더 투명해졌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이유였다.
도연은 깨달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사라짐을 가속시킨다는 것을. 누군가가 자신을 붙잡을수록, 도연은 더 빠르게 투명해진다는 것을. 그것이 버프의 조건이라는 것을.
세 번째 버프의 조건은 '누군가에게 완전히 붙잡혀 있을 때'였다.
도연은 세 번째 버프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사라져도, 넌들이 나를 기억해 줄 거지?"
도연이 물었다.
이한나가 답했다.
"당연하지. 절대로."
도연은 눈을 감았다.
세 번째 버프가 활성화되었다.
도연의 몸이 완전히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손가락부터 팔, 어깨, 가슴. 모든 것이 빛처럼 흩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이한나가 도연을 강하게 붙잡았다.
"절대 사라지지 마!"
이한나가 외쳤다.
도연은 이한나를 봤다. 그리고 그 순간을 깨달았다.
도연은 사라지고 있었다. 몸은 완전히 투명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이한나의 기억 속에서.
서혜진의 기억 속에서.
박세진의 기록 속에서.
류현우의 마음 속에서.
도연은 더 이상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영원히 살아 있었다.
밤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