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첫 번째 복사

아카데미 입시 시험은 오전 9시에 시작됐다.

도연은 검술장 대기실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어제 밤 악몽 이후로 계속 떨렸다. 옆에 앉은 남학생이 도연을 한 번 보더니 몸을 옮겼다. 도연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배경 같은 존재니까.

"이도연."

호출이 울렸다. 도연은 벌떡 일어났다 다시 앉았다. 검술은 최악이었다. 도연은 검술 경험이 거의 없었다. 전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단순히 약해서 떨어졌고, 이번엔 어떨까. 버프 없이는 불가능했다.

검술장에 들어서자마자 도연은 그것을 느꼈다.

김준호다.

심사위원 옆의 관람석에 앉아 있는 김준호에게서 나오는 그 독특한 울림. 마치 공기가 떨리는 것 같은, 버프의 신호. 도연은 전날 밤 느꼈던 그 불편한 감각을 다시 경험했다. 버프가 도연을 선택한 것처럼 느껴지는 그 기묘한 끌림.

'검술 강화. 제1의 버프다.'

김준호의 신체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도연은 명확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잘함'의 상태가 아니었다. 마치 세상의 법칙이 그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그의 움직임에 운명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의 손에 검이 닿으면 그 검은 자동으로 최적의 각도를 찾아갔다. 그의 발이 움직이면 그 발은 가장 효율적인 위치에 닿았다.

도연은 목검을 들었다.

심사위원이 시합 시작을 알렸다. 대련 상대는 전년도 합격자였다. 이미 경험이 풍부한 학생이었다. 도연은 그의 첫 공격에 밀렸다. 목검의 충격이 팔뚝에 울렸다. 도연은 한 발 물러섰다.

그 순간이었다.

복사.

도연은 그것을 명확하게 인식했다. 자신이 김준호의 버프를 복사하는 순간. 마치 누군가의 옷을 입는 것처럼, 도연의 신체가 변했다. 근육이 재배열되었다. 신경이 재조정되었다. 시간이 느려졌다.

도연의 손이 움직였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마치 다른 누군가가 도연의 몸을 조종하는 것처럼. 목검이 허공을 그었다. 상대방의 공격을 읽고, 회피하고, 반격했다. 도연은 자신의 몸이 하는 일을 마치 영화 화면처럼 관찰했다.

연속 검격.

도연의 목검이 상대방의 방어를 뚫고 가슴팍을 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상대방은 도연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시간."

심사위원이 외쳤다.

도연이 이겼다.

검술장은 정적으로 가득했다. 심사위원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관람석의 학생들이 도연을 바라봤다. 김준호의 얼굴이 굳었다.

도연은 숨을 고르고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 마치 자신의 일부가 신체에서 떠나가는 것처럼. 도연은 손을 떨었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움직인다. 움직이긴 하는데... 그게 자신의 손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다음."

심사위원의 목소리가 멀게 들렸다. 도연은 검술장을 나갔다.

점심시간, 기숙사 식당.

도연은 밥을 떠먹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 남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검술 시험 결과를 놓고 얘기하고 있었다.

"야, 도연이 검술 시험 봤냐?"

"어? 도연이가 뭐하는 애지? 조연이 검술 시험을 봐?"

"아, 그 조용한 애. 근데 이번엔 뭔가 있었대. 김준호 다음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진짜? 그 조용한 애가? 우와."

도연은 숟가락을 놨다. 그들의 대화가 자신에 관한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 '조용한 애'. 그것이 도연인가. 도연은 자신이 어떤 아이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오후 2시 15분, 마법 연습장 앞.

서혜진이 도연을 봤다. 그녀의 표정이 변했다.

"도연?"

"응."

"뭔가... 이상한데."

"뭐가?"

"모르겠어. 그냥... 너 어제랑 달라졌어."

도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혜진은 계속 도연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혼란이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억하려 애쓰는 것처럼.

"우리... 어제 뭐 했더라?"

서혜진이 갑자기 물었다.

"산책했잖아."

"맞다, 산책. 근데 뭘 얘기했는지는... 잘 안 나네."

서혜진은 눈을 찌푸렸다. 마치 안개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표정이었다.

"도연, 너 괜찮아?"

"응. 괜찮아."

"진짜? 뭔가 달라 보이는데."

도연은 입을 열었다 다시 다물었다. 자신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의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마법 시험장에서 서혜진이 나왔다.

그녀의 주변 공기가 떨렸다. 마법 감응 능력. 제2의 버프다. 도연은 그것을 명확하게 감지했다. 서혜진이 주문을 외우자, 그녀의 주변의 모든 마법 에너지가 그녀의 손가락 끝으로 모여들었다. 마치 자석이 쇠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서혜진이 손을 펼쳤다. 마법이 피었다. 그것은 정말 아름다웠다. 심사위원들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순간, 도연은 무언가를 느꼈다.

서혜진의 버프가 도연을 부르고 있었다. 복사하라고. 사용하라고. 도연의 신체가 반응했다. 마치 배고픈 짐승처럼, 그 버프를 갈망했다.

하지만 도연은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그 끌림을 누르려 했다. 아직은 아니었다. 류현우의 경고가 떠올랐다.

'3회는 못 쓴다.'

도연은 서혜진의 버프를 보면서도 손을 내리지 않았다.

오후 3시 45분, 도서관 3층.

박세진이 책 사이에 숨어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노트북이 아니라 실제 노트. 손으로 직접 글씨를 쓰고 있었다.

박세진은 도연이 도서관에 들어오는 것을 봤다. 펜을 멈추고 노트에 메모를 남겼다. 도연의 이름. 그 옆에 물음표. 그리고 그 아래에 '검술 시험 급상승', '마법 시험 관전', '기억 변화 추적 필요'라는 메모들.

도연은 박세진의 시선을 느꼈지만 무시했다. 책장 깊숙이 들어가 앉았다. 박세진의 눈이 도연을 따라갔다. 그녀는 다시 노트를 펼쳤다.

오후 4시 30분, 기숙사 복도.

도연은 자신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봤다. 반응이 있었다. 하지만 명령을 내린 것이 자신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손가락을 펼쳤다 오므렸다를 반복했다. 손이 존재한다.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왜 남의 손처럼 느껴질까.

도연은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어제 저녁에 뭘 했지? 기억이 희미했다. 이한나와 산책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는? 공백이었다.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도 생각이 안 난다.

도연은 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이 천장 불빛에 비쳤다. 투명해 보였다. 아니다. 그것은 투명한 게 아니라 흐릿했다.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색이 바래가고 있었다.

오후 5시, 기숙사 복도.

김준호는 도연을 찾아왔다. 그의 얼굴에는 명백한 불안감이 드러나 있었다.

"검술 시험, 잘했네."

김준호의 목소리는 밝았지만, 그 아래에는 무언가 딱딱한 것이 있었다.

"운이 좋았어."

도연이 말했다.

"운? 아니, 넌 정말 잘했어. 나도 놀랐고."

김준호는 도연의 옆에 가까워졌다. 그의 어깨가 도연과 닿았다. 도연은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근데 말이야."

김준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넌 항상 내 뒤에만 있어야 돼. 알지?"

도연의 등이 차가워졌다.

"이 학교에서 내가 최고라는 걸 알지? 그래야 너도 안전해. 다들 최고의 친구니까 너한테도 친절할 거고."

김준호의 눈이 도연을 바라봤다. 그것은 친절한 눈이었다. 동시에 매우 위협적인 눈이었다. 그의 손이 도연의 어깨에 닿았다.

"그래."

도연이 말했다.

"좋아. 넌 똑똑한 친구야."

김준호가 도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손이 도연에게 닿는 순간, 도연은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김준호의 그림자가 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밤 10시, 도연의 방.

폰이 울렸다. 류현우의 메시지였다.

"너 뭐 하고 있어?"

도연은 답장하지 않았다.

"답해. 난 알아. 넌 뭘 했어. 넌 이미 1회 썼어."

도연의 손이 떨렸다. 류현우는 도연이 버프를 복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3회는 못 쓴다. 내일 정오에 옥상에서 봐. 혼자."

도연은 폰을 집어 들었다. 타이핑을 시작했다가 멈췄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손이 아닌 것처럼.

도연은 메시지를 보냈다.

"알겠어."

그리고 거울 앞으로 돌아갔다.

밤 11시, 기숙사 화장실.

도연은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얼굴을 봤다.

정확히 24시간 전의 자신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았다. 어제 아침에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어제 저녁에 자신이 뭘 했는지.

도연은 입을 열었다.

"이도연."

거울 속의 입술이 움직였다.

"이도연이 여기 있나?"

거울 속의 도연이 대답하지 않았다.

도연은 손을 펼쳤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아니다. 그것은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라짐이었다. 손가락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확실하게, 도연이 사라지고 있었다.

세 번째 버프는 반드시 복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연은 주인공들의 음모에 휘말린다. 도연은 그것을 안다. 하지만 세 번째 복사는 도연을 완전히 지워버릴 것이다. 그러면 도연은 정말로 '없는 사람'이 된다.

도연은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손을 움직여 봤다. 반응이 있었다. 하지만 명령을 내린 것이 자신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밤 11시 50분, 기숙사 옥상.

도연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내일 정오에 류현우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손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옥상의 난간 위에 서서, 도연은 손을 펼쳤다. 손가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것은 실제로 흔들리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는 것인가.

"내일 뭘 하지?"

도연이 중얼거렸다.

세 번째 버프를 복사하는가. 그러면 도연은 완전히 없어진다.

세 번째 버프를 복사하지 않는가. 그러면 도연은 주인공들의 음모에 휘말린다.

둘 다 끔찍했다.

그 순간, 옥상의 문이 열렸다.

"뭐 하는 거야?"

박세진이 나타났다. 손에 노트를 들고 있었다. 그 노트에는 도연의 이름과 함께 여러 기록이 적혀 있었다. 검술 시험 결과. 마법 시험장 출입 시간. 거울 앞에서 중얼거리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도연의 이름 옆에 큰 물음표가 그려져 있었다.

박세진의 눈은 차갑고 명확했다.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증거를 수집한 자의 확신.

"버프를 복사하는 거지? 넌 누군가의 버프를 복사했어. 그리고 그것 때문에 넌 사라지고 있어."

도연은 입을 열었다. 말을 하려다 멈췄다.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의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넌... 정말 뭐야?"

박세진이 다시 물었다.

도연의 손이 움직였다. 손가락이 펼쳐졌다. 그 손에서 희미한 빛이 피어올랐다. 세 번째 버프를 복사하려는 신호였다. 아니, 이미 세 번째를 복사하고 있었다.

도연의 입술이 움직였다. 자신의 정체를 말하려는 순간, 손가락이 완전히 투명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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