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입학식의 단상 위에서 교장이 장황한 축사를 늘어놓을 때였다.

도연의 시야가 회전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를 집어 비틀어놓은 것 같은 느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동시에 기억이 쏟아졌다.

아카데미의 복도. 검술장의 목재 냄새. 누군가의 웃음소리. 그리고 자신은 항상 배경이었다. 누군가의 곁에만 있었고, 누군가의 조언자였고, 결국 누군가의 이야기가 끝난 후에야 지워졌다.

도연의 눈이 다시 초점을 맞췄다.

시야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단상 위의 교장이 두 개로 보였다가 하나로 수렴했다. 주변 학생들의 윤곽이 흐릿해졌다가 선명해졌다.

도연의 손가락이 무릎을 꿇고 있던 자신의 다리를 집었다. 손톱이 교복에 박혔다.

그 순간,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단상 위의 교장. 그의 몸에서 흐릿한 금색 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변 학생들을 훑어보니 몇몇이 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좌측 앞줄의 금발 소년—검술 재능이 극도로 강화된 상태. 우측 뒷줄의 검은 머리 여학생—마법 감응 능력이 개화 중. 그 옆의 안경 쓴 남학생—관찰력과 기억력이 비정상적으로 상승 중.

도연의 머리에서 무언가가 울렸다. 귀가 아니라 뇌 깊숙한 곳에서.

**[BUFF DETECTED — 7/7]**

**[Subject 1: 검술 강화 — LV.5]**

**[Subject 2: 마법 감응 — LV.4]**

**[Subject 3: 귀족 혈통 각성 — LV.5]**

**[Subject 4: 분석 강화 — LV.3]**

**[Subject 5: ~]**

**[Subject 6: ~]**

**[Subject 7: ~]**

도연의 몸이 경직되었다. 손가락이 더 깊숙이 박혔다. 손이 떨렸다. 떨림이 팔로 전해졌다. 팔이 다리로 전해졌다.

교장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아니, 도연의 귀가 닫혔다. 세상의 모든 음성이 차단되고, 오직 자신의 심장 소리만 들렸다.

도연은 자신의 감각에 집중했다. 버프라고 불렀던 그것들—누군가가 '선택받은' 학생들에게 자동으로 적용되는 능력 강화, 운명의 만남, 숨겨진 혈통의 각성. 모든 게 동시에 인식되고 있었다.

척추를 타고 차가운 것이 내려갔다.

아, 이건 게임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더 깊은 공포가 뒤따랐다.

자신은 이 게임의 엑스트라다.

---

입학식 후 기숙사로 향하는 복도. 도연은 다른 신입생들과 섞여 걸어갔다.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넌 누구야?"

도연이 고개를 들자, 검술장에서 감지했던 금색 버프의 주인이 서 있었다. 선 굵은 얼굴에 자신감 넘치는 눈. 김준호라고 소개했던 남학생이었다.

"아, 나는 이도연이라고..."

"도연? 좋아, 우리 같은 기숙사 배치인가 봐. 자, 짐 좀 들어."

그렇게 말하며 김준호는 자신의 짐을 도연에게 건넸다. 도연이 손을 내밀기도 전에 이미 짐은 도연의 팔에 있었다.

도연은 짐의 무게를 느꼈다. 그리고 거절하려고 입을 열었다.

"아, 그게..."

"뭐, 뭐라고 했어?"

김준호의 눈이 차갑게 굳었다. 아직 만난 지 10초도 안 됐는데, 그의 표정은 이미 도연을 '당연히 돕는 존재'로 규정하고 있었다. 거절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도연의 입술이 닫혔다. 하지만 입술 안쪽에서 거절의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아니, 내가 왜. 내가 왜 이걸.

"고마워. 이 정도면 충분해. 나는 검술 재능이 좀 있어서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너한테 물어볼 거야. 그때까진 내 짐 들어주고, 숙제 같은 거 봐주면 되겠지?"

김준호는 이미 도연을 자신의 궤도 안에 집어넣었다. 도연은 그 궤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느꼈다.

"아, 그게..."

다시 거절을 시도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나왔지만 너무 작았다. 너무 약했다.

"뭐, 뭐라고 했어?"

김준호의 눈이 더 차갑게 굳었다. 이번엔 단순한 냉대가 아니었다. 위협이었다. 넌 내 말을 거절할 수 없다는 위협.

도연은 그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자신이 이미 졌음을 깨달았다.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도연은 입을 다물었다. 짐은 여전히 자신의 팔에 있었다.

전생과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신을 당연히 돕는 존재로 본다. 누군가는 자신의 조언을 구하려 한다. 누군가는 자신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왜 거절할 수 없을까.

도연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

기숙사 방 배치는 4인실이었다. 김준호, 도연, 그리고 두 명의 다른 신입생. 그 중 한 명이 흰 피부에 검은 머리를 한 여학생이었다.

서혜진. 마법 감응 버프의 주인.

"안녕하세요. 저 서혜진입니다."

서혜진이 도연에게 인사할 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예의였다. 도연은 그 미소 뒤에 뭔가 외로운 것이 있음을 느꼈다.

"저는 이도연입니다."

"도연이는 좋은 이름이네요. 우리 친구가 되어줄래요?"

서혜진이 손을 내밀었다. 따뜻한 손. 그 손에는 미약한 마법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다.

도연은 서혜진의 손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손을 잡으면 또 다른 관계가 시작될 거라고. 또 다른 역할이 주어질 거라고. 또 다른 조연 역할로 묶일 거라고.

도연은 손을 잡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저는 좀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요."

서혜진의 손이 공중에서 내려갔다. 그 순간 도연은 서혜진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봤다. 손을 떨어뜨린 것처럼. 그 떨림이 서혜진의 얼굴 전체로 퍼져나갔다.

"아, 그렇군요."

서혜진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미소는 여전했지만, 그것은 이제 방어막이었다.

"괜찮습니다."

서혜진은 더 이상 도연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어색했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한 후의 움직임.

도연은 서혜진의 뒷모습을 봤다. 그리고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었다. 조연으로 남으려면 관계를 끊어야 한다. 그것이 도연의 전략이었다.

네 번째 방 배치 학생은 안경을 쓴 남학생이었다. 박세진이라고 소개했을 때, 도연은 그의 눈이 자신을 정확히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도연. 흥미롭네."

박세진이 도연을 유심히 관찰했다.

"뭐가요?"

"아니, 뭐라고 할까... 뭔가 이상한데."

박세진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도연은 알았다. 이 학생은 자신을 계속 관찰할 거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자신의 비밀을 알아낼 거라는 것을.

---

저녁 시간. 기숙사의 대식당에서 도연은 밥을 먹고 있었다. 혼자.

김준호는 검술장의 다른 학생들과 앉아 있었고, 서혜진은 몇몇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박세진은 어딘가의 구석에 앉아 무언가를 기록 중이었다.

도연의 눈에 대식당의 전체 구도가 보였다. 중심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최준영. 검은 교복 위에 귀족의 상징인 금 장식을 달고 있는 학생. 그의 주변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었고, 그의 말에는 항상 웃음이 따랐다.

그리고 도연이 감지한 7명의 버프 중 가장 강한 것은 그의 것이었다.

**[BUFF DETECTED — Subject 3: 귀족 혈통 각성 — LV.MAX]**

최준영은 자신이 중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비공식 계급 구조 맨 위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것이 비공식이라는 사실조차 무시하고 있었다.

도연은 음식에 집중했다. 눈에 띄지 말 것. 목소리를 내지 말 것.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복도로 나가는 길. 최준영이 도연을 지나갔다. 정확히는, 도연을 지나치려고 했다.

하지만 최준영의 발이 멈췄다.

"넌 뭐하는 놈이지?"

도연의 머리에서 뭔가 울렸다.

그 질문 속에 있는 의도는 단순했다. 넌 누구냐가 아니라, 넌 뭐냐는 것이었다. 도연이라는 '누군가'가 아니라, 도연이라는 '무언가'를 묻고 있었다.

도연은 고개를 들었다.

최준영의 눈과 만났다.

그 순간, 최준영이 받는 버프가 도연의 감각을 압도했다. 7명 중 가장 강한 것이 아니라, 도연이 감지한 모든 버프를 합친 것보다도 강한 무언가가 최준영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절대적 주인공의 버프.

도연의 입이 마르기 시작했다. 손이 떨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 뭐라고요?"

"아무것도 아닌 거 같은데. 그냥 지나가."

최준영이 도연을 지나쳤다. 하지만 그의 말과 달리, 그 눈에는 뭔가 남아 있었다. 의심. 호기심. 그리고 위협.

도연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가슴이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다.

자신이 이 아카데미에서 무엇인지 깨달으면서도, 동시에 깨닫지 못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자신은 조연이고 싶었다. 배경이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관찰당하고 있었다. 김준호에게는 이용당하고 있었고, 서혜진에게는 거절당하고 있었고, 박세진에게는 의심당하고 있었고, 최준영에게는 위협을 받고 있었다.

도연의 가슴이 철렁했다.

이 생에서도,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인가.

복도의 조명이 희미해졌다. 도연은 최준영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 남학생의 어깨가 얼마나 넓은지, 그의 걸음걸이가 얼마나 자신감으로 가득 찼는지. 모든 것이 '나는 주인공이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도연의 손이 주머니 속에서 떨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것은 두려움이었다.

"이도연."

누군가가 도연의 이름을 불렀다. 낮고 침착한 목소리였다.

도연이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류현우였다. 검술과 2학년인 그는 도연과 같은 기숙사 복도에 있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인사를 나눈 적이 없었다.

"네?"

류현우는 도연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움직임은 정밀했다. 한 발, 한 발이 모두 계산된 것 같았다.

"최준영을 피해야 해."

"... 뭐라고요?"

"넌 그의 시선에 들어왔다. 그건 좋은 게 아니야."

류현우의 눈이 도연을 관통했다. 도연은 본능적으로 물러섰다.

"전 그냥... 지나간 거예요. 특별한 건 없어요."

"거짓말하지 마."

류현우가 한 발 더 다가왔다. 복도의 어둠 속에서 그의 실루엣만 보였다.

"넌 최준영과 다르다. 내가 알 수 있어. 왜냐하면 난 이미 그 차이를 느껴본 적이 있으니까."

"차이... 라고요?"

"넌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척하고 있어. 하지만 넌 안다. 넌 분명히 안다. 이 학교가 뭔지. 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뭔지."

도연의 숨이 멎었다. 이 학생이 자신을 아는 건가? 아니면 그냥 의심하는 건가?

"전... 모르는데요."

"알아. 넌 피하려고 하고 있는 거야.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넌 이미 너무 깊이 빠져 있어."

류현우가 도연의 옆을 지나갔다. 그가 지나갈 때, 도연은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무언가'를 감지했다. 최준영의 버프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특별한 것. 어둠 속에서 칼날이 빛나는 것처럼.

류현우는 멈추지 않았다. 복도를 걸어가며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넌 이미 선택됐어."

그 말이 사라졌다. 복도에는 도연 혼자 남겨졌다.

도연은 벽에 기댔다. 손을 가슴에 얹었다. 심장이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다.

'선택됐다'는 말이 자꾸만 반복됐다.

도연은 자신의 손을 들어올렸다. 손가락 끝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이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이것은 뭔가 훨씬 더 복잡한 감정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정.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받아들임.

---

기숙사 방으로 돌아가는 길. 도연은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 지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후였다. 복도는 조용했고, 계단도 텅 비어 있었다.

도연이 1층에 도달했을 때, 누군가 2층에서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 도연이?"

이한나였다. 도연과 다른 반이지만, 기숙사에서 마주친 적이 몇 번 있는 학생. 1학년 중에서도 가장 순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네."

도연이 인사했다.

"혹시 밤 산책? 아니면 뭔가 필요한 거?"

이한나가 계단을 내려오면서 물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순수한 호기심만 있었다. 의심도, 위협도, 압박도 없었다.

도연은 그 얼굴을 보면서 뭔가 가슴이 철렁했다. 이 학생도 자신의 '버프 감지 능력'의 대상이었다. 7명 중 한 명. 이한나는 특별한 능력을 받지 않은 학생이었지만, 도연이 감지한 버프의 목록에는 있었다. 정확히는, 이한나는 '주인공들의 곁에 있는 자'라는 역할의 버프를 받고 있었다.

"산책을 다녀왔어요."

도연이 대답했다.

"그래? 그럼 나도 함께할까?"

이한나가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도연은 거절하려고 했다. 거절해야 했다. 관계를 끊어야만 조연으로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그것이 아니었다.

"... 네."

---

두 사람은 기숙사를 빠져나갔다. 밤의 라이젤 아카데미는 낮과 완전히 달랐다. 조용했고, 어두웠고, 거대한 미로처럼 느껴졌다.

"도연이는 항상 혼자인 것 같아."

이한나가 말했다.

"그런가요?"

"응. 누구와도 가깝지 않아. 하지만 누구나 널 필요로 하는 것 같아."

도연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 뭔가 도연이는 혼자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이한나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가득 찼다. 도연은 알았다. 이 학생은 자신을 진정으로 도우려고 하는 거라고. 하지만 그것이 더욱 도연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도연이 버프를 또 사용하게 되면, 이한나의 기억도 흐릿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순간의 따뜻함도, 이한나의 진심도, 모두가 사라질 것이었다.

도연은 이한나의 옆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괜찮습니다. 혼자가 편해요."

이한나가 멈췄다. 도연도 멈췄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벌어졌다.

"... 그렇구나."

이한나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녀는 도연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도연의 명확한 거절 앞에서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물러섰다. 한 발, 또 한 발.

도연은 그 모습을 봤다. 이한나의 얼굴이 흐릿해졌다. 상처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상처는 도연이 만든 것이었다.

도연의 가슴이 철렁했다.

두 사람은 아카데미의 정원을 지나갔다. 밤하늘이 그들의 위에 펼쳐져 있었고, 별들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의 침묵은 별빛보다 더 컸다.

도연은 자신의 손을 펼쳤다. 손금이 보였다. 손가락 끝이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 손으로 버프를 또 사용하게 될 것인가.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자신이라는 존재가 계속 지워질 것인가.

도연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전생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없었다. 그저 사라졌을 뿐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모두.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도연은 깨달았다.

어쩌면 이번 생도 같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

이한나가 도연의 표정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도연은 그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마주치면 더 상처를 줄 것 같았다.

대신 도연은 기숙사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가자."

이한나는 도연의 옆을 걸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기숙사 계단을 올라가며, 도연은 자신의 방 번호를 생각했다. 217호.

그곳에는 김준호, 서혜진, 박세진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혹은 자신을 의심하고 있었다. 혹은 자신을 이용하려고 했다.

도연이 217호 앞에 도달했을 때, 문이 열렸다. 김준호가 나와 있었다.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산책을 다녀왔어요."

"혼자?"

"네."

김준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마치 도연이 무언가 잘못된 행동을 한 것처럼.

"너는 항상 혼자만 다녀. 왜 우리를 불러주지 않아?"

도연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답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도연은 혼자이고 싶었다. 혼자여야만 했다. 혼자여야만 조연으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도연은 알았다.

혼자가 되는 것도, 함께가 되는 것도 모두 불가능하다는 것을.

"미안해요."

도연이 중얼거렸다.

"뭐가 미안해? 그냥... 다음부터는 우리를 좀 신경 써 줄 수 있을까?"

김준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거의 명령에 가까운 것이 있었다.

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방으로 돌아갔다. 서혜진은 이미 침대에 누워 있었고, 박세진은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도연은 자신의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버프를 한 번 더 사용하면, 자신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주인공이 될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누군가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도연'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도연은 자신의 손을 다시 들어올렸다. 손가락 끝이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내일은 첫 번째 수업이었다. 내일은 첫 번째 실전 시험이 있을 것이었다. 내일은 자신이 버프를 사용해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자신은 한 발 더 주인공에 가까워질 것이었다.

도연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밤 3시. 도연의 눈이 떠졌다. 옆 침대의 서혜진이 자고 있었고, 박세진도 숨을 고르고 있었다.

하지만 도연의 귀에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도연이 여기 있었나?"

"어디?"

"모르지. 방금까지 여기 있던 것 같은데..."

그 목소리는 꿈인가, 기억인가. 도연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군가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현재의 자신이 아닌, 과거의 자신을. 이도연이라는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렸던 자신을.

도연은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곳에는 버프를 복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아직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능력.

손가락 끝이 떨렸다.

이 손으로 버프를 복사하는 순간, 자신은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을 것이었다.

도연은 천장을 바라봤다.

밤은 여전히 깊었고, 내일은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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