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알람이었다.
——6개월 남음. 회귀 종료까지 180일.
밤 11시 23분, 강북 스튜디오. 지호는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2024년 7월 15일. 정확히 6개월이 지났다. 회귀한 지 꼭 6개월. 한 바퀴 반을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남은 기한은 정확히 180일.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스튜디오 벽에 붙인 악보들을 바라봤다. 지난 6개월간 발표한 곡들. '진실', '시간의 증명', 그리고 그 사이에 묻혀버린 수십 개의 미발표곡들. 모두 차트에 올랐다. 모두 평론가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히트곡'은 하나도 없었다.
지호는 노트북을 켜 지난 6개월간의 차트 1위곡들을 재검토했다. 자신의 곡들도 있었고, 다른 아티스트의 곡들도 있었다. 각 곡의 구조를 분석했다. 화음 진행, 리듬 패턴, 멜로디 곡선. 모두 완벽했다. 모두 계산되어 있었다.
그런데 뭔가 빠져 있었다.
'시간의 증명'을 다시 들었다. 황금비 1.618을 적용한 구간, 청취자 뇌파 반응이 최고조가 되는 지점, 감정 곡선의 상승 구간. 모든 것이 과학이었다. 모든 것이 공식이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회귀 직후 깨달았던 저주의 조건—'1년 내에 진정한 히트곡을 만들지 못하면 시간이 영구 동결된다'—는 단순한 차트 1위를 의미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미 여러 번 달성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이라는 단어가 자꾸만 걸렸다. 모든 것이 공식인데 뭔가 죽어 있었다. 차트는 올랐지만 음악은 울지 않았다.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박준호였다. 메시지였다.
——진정한 음악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넌 자신의 음악을 믿지 않으니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제 안다. 함께 만들자. 진정한 음악을. 차트 1위 대신, 음악 자체를 위한 곡을. (밤 11시 15분)
지호는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다. 박준호가 자신의 남은 기한을 아는 건 분명했다. 어떻게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박준호가 무엇을 제안하고 있는가였다.
차트 1위 대신 음악 자체를 위한 곡. 그것이 박준호의 제안이었다.
지호는 메시지를 닫고 화면을 스크롤했다. 어머니의 연락처에 도달했을 때, 그는 이미 결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결정이 맞는 것인지, 박준호를 믿어야 하는 것인지는 여전히 불명확했다.
박준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미 여러 번 발표했다. 지호가 지난 6개월간 구상했던 음악적 개념들 중 몇 개가 박준호의 곡에서 먼저 나왔다.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핵심은 같았다. 그것이 우연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박준호가 자신의 생각을 훔쳤다는 뜻은 아닐까.
지호는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박준호의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함께 만들자.'
그 말이 함정일 수도 있었다. 박준호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완전히 빼앗기 위한 함정. 아니면 자신을 약화시키기 위한 전략. 6개월 남은 상황에서 박준호와 협력하면, 지호는 자신의 음악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박준호는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박준호가 정말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가능성.
지호는 통화를 결정했다. 어머니에게 먼저 연락하기로 했다.
통화는 오전 4시 47분에 연결되었다.
"엄마."
침묵이 흘렀다. 어머니는 항상 이 시간에 자고 있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았다는 것은 이미 깨어있었다는 뜻이었다.
"지호야. 뭐 하니?"
"음악 작업 중이야."
어머니의 한숨이 들렸다. 그것은 책망이 아니었다. 더 깊은 것이었다. 10년 전부터 같은 한숨이었다.
"엄마, 이제 알 것 같아. 내가 뭘 놓치고 있는지."
"뭔데."
"음악이 나한테 뭘 줄 수 있는지가 아니라, 내가 음악에 뭘 줄 수 있는지. 그걸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혼자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지호야, 누군가와 함께하는 건가?"
"응. 지금부터."
통화가 끝났을 때, 지호는 스튜디오의 모든 악보를 내려놨다. 그리고 새 파일을 만들었다.
파일 이름은 '우리의 마지막 곡'.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박준호였다. 실시간 통화였다.
"받을 거야?"
지호는 수신 버튼을 눌렀다.
"응."
"좋아. 그럼 약속하자. 이번 곡은 차트를 위한 곡이 아니라, 순수하게 음악 자체를 위한 곡이어야 한다. 차트가 올라가면 좋겠지만, 만약 떨어진다 해도 상관없는 곡."
박준호가 말했다. 지호는 그 말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박준호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빼앗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박준호가 제안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함께 뭔가를 만드는 것.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 지호는 10년 동안 그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뭔데."
"강북 스튜디오에서 만들자. 넌 강남의 모든 것을 벗고 와야 한다."
통화 너머에서 박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다."
밤 11시 58분, 강북 스튜디오의 문이 열렸다.
박준호는 검은색 옷을 입고 들어섰다. 강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장이 아니었다. 단순한 면 티셔츠와 청바지. 거의 10년 전 자신의 모습과 같았다. 그 옷을 입고 강북에 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박준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선언.
"처음이야?"
"응. 강북이 이렇게 낡은 줄 몰랐어."
박준호는 스튜디오의 벽을 만졌다.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다. 방음재가 곳곳에 손상되어 있었다. 그것은 강남의 고급 스튜디오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천장 모서리에 곰팡이 자국이 보였다. 에어컨은 낡은 실외기를 통해 간신히 냉기를 내뿜었다. 박준호는 그 모든 것을 바라봤다. 그리고 느꼈다. 이곳이 자신을 만들었던 곳이라는 것을. 절박함이 있던 곳이라는 것을.
"여긴 감이 아니라 절박함으로 만드는 곳이야."
지호가 말했다. 박준호는 건반 앞에 앉았다. 의자는 한쪽 바퀴가 빠져 있었다. 지호는 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낡은 믹싱 테이블이 있었다. 그 위에는 지호가 지난 6개월간 만든 모든 곡의 악보가 펼쳐져 있었다.
박준호가 그것들을 훑어봤다. 손글씨로 쓰인 음표, 옆에 붙은 주석들. '감정 곡선 상승 구간 30초', '황금비 1.618 적용', '청취자 뇌파 반응 최고조 지점'. 그의 표정이 묘했다. 놀라움도 있었고, 뭔가 다른 감정도 있었다.
"정말로 이렇게 만드는 거네."
"그래."
"음악이 아니라 공식이야."
지호가 대답하지 않았다. 박준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지호를 가장 깊이 괴롭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박준호가 이 공식을 이해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자신과 함께 부수려고 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 공식들이 내가 찾던 거였어. 하지만 뭔가 빠졌어. 계속 빠진 거야."
"뭐가."
"모르겠어. 너와 함께 만들 때까지는."
그들은 동시에 키를 눌렀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서로 다른 리듬, 서로 다른 감정. 박준호의 손은 즉흥적이었고, 지호의 손은 계산적이었다. 그들의 멜로디는 충돌했다. 아니, 충돌이라기보다 간섭했다. 전파처럼. 박준호가 A 키를 누르면 지호는 C# 키를 눌렀다. 이론적으로는 불협화음이었다.
하지만 그 불협화음 속에는 뭔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박준호의 A와 지호의 C#이 만나, 완전 5도 음정을 이루며, 그 순간 두 사람의 호흡이 일치했다.
화음이 생겼다.
두 사람은 동시에 멈췄다. 그 순간이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불협화음이 아니었다. 뭔가 완전한 것이 태어났다.
"들었어?"
"응."
그들은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박준호가 먼저 멜로디를 깔았다. 그것은 강남 스튜디오에서 나올 법한 매끄러운 라인이 아니었다. 거칠고, 불완전하고, 뭔가 부족해 보였다. 지호는 그 위에 음을 얹었다. 수학적 정확성이 아니라, 그 불완전한 멜로디를 보완할 수 있는 음들.
대화였다. 박준호의 직관과 지호의 이론이 만났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충돌이 아니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태어났다. 그것은 차트를 위한 음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순수하게 음악 자체였다.
5분이 지났다. 10분이 지났다.
그들은 여전히 건반을 벗지 않았다. 박준호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밤 11시 59분 59초.
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알람이었다. 정확히 180일 전에 설정한 알람.
——6개월 남음. 회귀 종료까지 180일.
박준호가 건반에서 손을 떼었다. "뭐야?"
"시간."
"뭐가?"
"남은 시간."
박준호는 지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뭔가가 있었다. 공포가 아니었다. 결의였다. 하지만 동시에 뭔가 더 깊은 것도 있었다. 절망과 희망이 섞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우리는 180일 안에 이 곡을 완성해야 한다."
"그래."
"그리고 그 곡이 차트 1위가 되든 떨어지든, 상관없어야 한다."
박준호가 지호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이 서서히 변했다. 이해하는 표정으로.
"왜냐하면 그것이 진정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박준호가 다시 건반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느렸다. 신중했다. 마치 무언가를 깨닫고 있는 것처럼.
"그럼 시작하자."
그들의 손이 다시 만났을 때, 강북 스튜디오의 벽은 낡은 페인트 아래에서 무언가를 울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음악이었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두 사람이 마침내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자정을 넘어 새벽 1시, 2시, 3시.
이수현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그들은 여전히 건반 앞에 있었다. 이수현은 말을 걸지 않았다. 그냥 그들의 손을 바라봤다. 그 손들이 만드는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깨달았다. 지호가 지난 6개월간 만들려고 했던 것이 이것이었나 하는 깨달음.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깨달음. 이수현은 조용히 믹싱 콘솔 앞에 앉았다. 지호와 박준호의 음악을 기록하기 위해.
"좋은데."
이수현이 중얼거렸다.
박준호가 손을 멈추고 돌아봤다. "뭐가?"
"음악이. 진짜 좋은데."
지호는 여전히 건반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뭔가가 흐르고 있었다. 눈물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박준호가 다시 건반을 쳤다. 지호도 따라했다.
새벽 4시, 박준호가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이거, 우리 둘 다 미쳤나?"
"뭐가."
"이 곡. 이 방식. 강북에서. 너와 나."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계속 움직였다.
"내 생각엔 미쳤어. 진짜 미쳤어. 강남에서 나한테 주던 모든 것을 버리고 여기 와서, 너와 함께 이 낡은 건반을 두드리고 있어."
박준호의 목소리에는 뭔가가 있었다. 후회? 아니었다. 해방감이었다.
"하지만 좋아. 이게 맞는 것 같아. 처음으로."
지호가 손을 멈추고 박준호를 바라봤다.
"우리 이 곡 완성하면 어떻게 돼?"
"모르지."
"차트 1위?"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
"그럼 뭐가 다른데?"
지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엔 우리가 음악을 만드는 거야. 차트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리고 이 곡은 우리 둘의 것이야. 너의 직관과 내 이론이 만나서 만들어진.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증명이야."
박준호가 다시 건반에 손을 올렸다.
"그래. 이번엔 그래."
새벽 5시, 강북의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김태성의 사무실에서.
거물 프로듀서 김태성은 여전히 깨어 있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지호와 박준호의 모든 곡이 정렬되어 있었다. 그는 하나하나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들을수록 그의 얼굴은 굳어갔다.
'계산된 음악.' 그렇게 말했던 자신의 평가가 자꾸만 떠올랐다.
하지만 지호의 곡들을 들으면서, 그는 뭔가를 깨달았다.
차트가 올라갔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대중이 변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과학적 음악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
아니, 그것보다 더 깊은 것.
그들이 이제 '감'이 아닌 '진실'을 원하기 시작했다는 것.
김태성은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멈췄다.
전화를 걸 수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창문으로 강남의 야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너머, 강북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뭔가 거대한 것이.
그것이 자신의 세계를 부술 수도 있을 것 같은.
아침 6시 정각, 지호와 박준호는 동시에 손을 멈추었다.
그들 앞의 악보에는 새로운 곡의 스케치가 완성되어 있었다. 제목은 아직 없었다.
"이거야."
박준호가 중얼거렸다.
"이게 우리가 만들어야 할 곡이야."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악보를 바라봤다. 그 악보에는 자신의 이론도 있었고, 박준호의 직관도 있었다. 그 둘이 만난 곳에서 무언가 완전히 새로운 것이 태어났다.
그것은 음악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은 증명이었다.
박준호의 즉흥성과 지호의 계산이 만났을 때, 불협화음은 완전 5도가 되었다. 그 화음 구조 속에는 두 사람의 재능과 노력이 모두 담겨 있었다. 개별적으로는 불완전했던 것들이 함께했을 때 완전해졌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음악이 무엇인지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박준호가 지호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이 보였다. 10년 전과는 다른 얼굴. 절망이 아닌 결의가 담긴 얼굴.
"우리 180일 만에 이 곡을 완성하자.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게 하자."
"응."
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강북 스튜디오의 벽은 낡은 페인트 아래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울어냈다.
그것은 음악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을 감지한 것은 지호와 박준호만이 아니었다.
강남의 어딘가에서.
정유진 A&R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최민준의 이름이 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정유진. 지호를 봤어?"
"아니요."
정유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본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최민준은 그것을 다르게 해석했다.
"박준호와 함께 강북 스튜디오에 들어갔어. 밤 11시 59분에."
정유진의 얼굴이 굳었다. 11시 59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정확할 리 없었다. 그것은 의도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가 알아야 할 정보가 있다."
"뭔데요."
최민준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지호의 남은 시간은 180일이야. 정확히."
정유진은 전화를 내려놨다. 손가락이 떨렸다. 180일.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6개월. 정확히 6개월이면 2024년 12월 31일.
그 날짜가 왜 중요한지, 정유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 날짜에 뭔가 끝난다는 것을. 뭔가가 시작된다는 것을.
그녀는 창문을 열었다. 서울의 야경이 보였다. 강남의 불빛과 강북의 어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음악이 울어나오고 있었다. 정유진은 그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강북 스튜디오의 밤은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