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개 대결, 감 vs 이론
강남 테헤란로 34번지, 김태성 프로덕션 본사 앞에서 지호는 신발을 벗었다 신었다를 반복했다. 10년 전 이 건물의 지하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경력이 끝났다. 그날따라 비가 내렸고, 자신은 '재능 부족'이라는 네 글자를 등에 지고 나갔다. 이제 다시 들어간다. 같은 건물, 다른 사람이 되어서.
엘리베이터가 35층에 멈췄다. 회의실 문이 열려있었고, 그 안에는 이미 두 사람이 앉아있었다. 하나는 김태성. 은발을 단정하게 넘긴, 음악계의 신처럼 여겨지는 남자. 다른 하나는 박준호. 자신의 라이벌. 그 옆에는 빈 의자가 있었다.
"지호군, 왔네."
김태성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낮고, 부드럽지만 거절할 수 없는 톤. 지호는 의자에 앉았다. 박준호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있었다. 우월감의 미소였다.
"두 곡을 들어봤네. 둘 다 흥미로운 접근이야."
김태성이 손을 모았다. 테이블 위에는 노트북 두 대가 놓여있었다.
"'시간의 언어'와 '거울 속의 악수'는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특히 지호군의 곡들은 매달 꾸준히 올라오고 있고, 준호는 여전히 상위권을 장악하고 있다. 흥미로운 경쟁이다."
지호는 입을 다물었다. 이것이 단순한 칭찬이 아님을 알았다. 김태성은 절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궁금해. 이 둘의 차이가 정확히 뭐냐는 거지. 준호는 직관이라고 말하고, 지호군은 이론이라고 말한다. 음악은 어느 쪽으로 만들어질까?"
침묵이 흘렀다. 박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거물이 이런 철학적 질문을 하시다니. 좋은데요?"
"대답해보게."
박준호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의 손이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음악은 감정이에요. 감정은 과학이 아니라 직관의 영역이죠. 청중들이 '좋다'고 느끼는 순간, 그게 바로 음악입니다. 이론은 그 다음이고."
그는 지호를 바라봤다. 눈이 반짝였다.
"넌 이론으로 음악을 만들지만, 난 영혼으로 만들어."
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 문장이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박준호는 영혼으로 만들지 않는다. 박준호는 지호의 이론을 배우고 있다. 4화에서 심은 것. 박준호의 최근 세 곡은 모두 지호의 '감정의 과학적 원리'를 따르고 있었다. 박준호 자신도 모를 정도로.
지호가 입을 열었다.
"감정도 구조가 있습니다."
음성이 낮고 차분했다.
"청중이 '좋다'고 느끼는 순간, 그 순간 뇌에서는 이미 수백 개의 신경 신호가 오갔어요. 음고, 음가, 화성 진행, 타이밍—모든 게 계산되어있다. 직관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계산의 결과를 빠르게 인식하는 것일 뿐입니다. 거물 프로듀서들은 오랜 경험으로 그 패턴을 몸에 익혔을 뿐, 다른 건 없어요."
박준호의 미소가 사라졌다. 김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로운데. 그럼 증명할 수 있나?"
"이미 했습니다. 차트가 증명했어요."
지호는 노트북을 열었다. 김태성과 박준호 앞에 자신의 곡들의 차트 그래프가 띄워졌다. 직선이 아닌 곡선. 특정한 패턴을 따르는 상승. 마치 미리 계산된 궤도처럼.
"이 곡들은 모두 같은 구조를 따릅니다. 초반 30초 안에 청중의 주의를 끌고, 중간에 예상 가능하지만 약간의 반전이 있으며, 마지막 20초는 중독성 있는 후크로 끝난다. 이것을 따르는 모든 곡은 차트 상위권에 올라갑니다. 감이 아니라 과학이에요."
박준호가 노트북을 들었다. 자신의 곡들을 재분석한 지호의 파일을 켜본 것이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신의 곡들이 모두 같은 패턴을 따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지호의 패턴을 따르고 있었다.
"준호 곡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호가 말했다.
"최근 세 곡 모두 같은 구조를 따르고 있어요. 당신은 모를 수도 있지만, 당신의 직관은 이미 이 패턴을 학습했다."
침묵이 방을 채웠다. 박준호의 손이 노트북 가장자리를 움켜잡았다. 손가락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이건..."
"준호. 대답해보게."
김태성이 말을 끊었다.
"저 분석이 맞나?"
박준호는 입을 다물었다. 수십 초가 흘렀다. 그의 턱이 경직되었고, 눈빛이 흔들렸다. 마침내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김태성이 일어섰다.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의자를 밀어낸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그렇다면 이런 제안을 하지. 두 분 다 같은 주제로 곡을 한 곡씩 만들어보게. 주제는 '시간'이야. 어느 쪽이 더 좋은지 대중이 판단하게 하자. 어떤가?"
박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이전의 우월감 어린 웃음이 아니었다. 도전적인 웃음이었다.
"좋습니다. 해보죠."
지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1주일. 일주일 뒤 이 자리에서 두 곡을 들어보자. 어느 쪽이 대중의 마음을 더 움직이는지 봐야지."
김태성은 의자에 기대앉았다. 그의 눈빛이 이상했다. 마치 자신이 무언가를 조종하고 있다는 듯. 무언가를 정확히 계획하고 있다는 듯.
"그런데 말이야. 이 경쟁이 알려지면 음악계가 떠들 거야. 감 vs 이론. 이것은 단순한 두 프로듀서의 대결이 아니라, K-팝 프로듀싱 전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대결이 될 거야."
김태성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SNS 앱을 켰다.
"내가 이 소식을 지금 바로 업로드할 생각이야. '음악계 최고의 두 천재가 같은 주제로 대결한다. 감 vs 이론. 1주일 뒤 공개.'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괜찮나?"
지호의 목이 말렸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건 다른 문제였다. SNS에 올라가는 순간, 음악계 전체가 움직일 것이다.
"괜찮습니다."
박준호도 대답했다.
"당연하죠."
김태성이 화면을 터치했다. 게시물이 올라갔다. 수초 뒤, 댓글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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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을 나오는 길, 박준호가 지호의 팔을 잡았다. 복도는 비어있었다. 음악 스튜디오에서 나오는 희미한 드럼 사운드만 들렸다.
"넌 이론으로 음악을 만들지만, 난 영혼으로 만들어. 기억해."
박준호의 목소리가 낮았다.
"하지만 이제 알았어. 내 영혼이 네 이론을 따르고 있다는 걸. 그게 뭐냐는 거지. 그게 뭔지 알아?"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이미 졌다는 뜻이야. 내가 네 이론을 따르고 있다면, 난 더 이상 천재가 아닌 거야. 난 그냥 네 복사기일 뿐이야."
박준호의 눈이 빨개져있었다. 눈물이 맺혔다.
"일주일. 그 일주일 동안 난 새로운 접근을 할 거야. 넌 이론만 가지고 있지만, 난 그 이론을 깨뜨릴 거야. 넌 봐. 내가 어떻게 하는지."
박준호는 지호의 팔을 놨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이 작아졌다.
지호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자신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자신의 이론이 박준호의 직관을 이기고 있다는 사실. 하지만 동시에 박준호도 변하고 있다는 사실. 그가 이제 진짜 위협이 되고 있다는 사실.
손가락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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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로 돌아온 지호는 새로운 파일을 만들었다. 파일명은 '시간'.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 뭐가 시간인가. 1년 전 자신은 죽으려고 했다.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10년이 너무 길었다. 그런데 지금 시간은 너무 짧다. 6개월이 남았다. 정확히는 5개월 27일이 남았다.
첫 음표가 울렸다. 낮고 깊은 음. 마치 시계의 태엽이 돌아가는 소리처럼.
두 번째 음표. 세 번째. 네 번째.
화음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아름답지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그저 흘러갔다. 물이 흐르듯이. 시간이 흐르듯이.
이수현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
"어? 뭐 하고 있어?"
지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새 곡. 주제는 시간이야."
"시간? 왜?"
"대결이 생겼어."
이수현이 노트북을 들었다. 화면에는 이미 SNS 게시물이 떠올랐다. 댓글은 수천 개를 넘어섰다.
"박준호와?"
"그리고 김태성."
이수현이 휘파람을 불었다.
"완전 미쳤네. 넌 지금 음악계 최고의 두 남자와 싸우고 있는 거야."
"아니야. 난 음악으로 싸우고 있는 거고, 그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어. 다르지."
지호의 손가락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음표들이 쏟아져 나왔다.
"1주일 안에 곡을 완성해야 해."
"1주일? 뭐 하는 거야?"
"음악계의 미래를 결정하는 곡을 만드는 거지. 감 vs 이론. 이게 음악에서 뭐가 이기는지 증명하는 곡."
이수현은 의자에 앉았다. 지호의 손가락이 계속 움직였다.
현관 옆 시계에서 초침이 똑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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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지호의 어머니가 전화를 걸었다.
"아들아, 밥은 먹었니?"
"네. 나중에 먹어요."
"뭐 하고 있어?"
"곡 만들고 있어요."
"또 곡? 요즘 매일 곡 만들고 있네. 음악이 너를 행복하게 해준 적이 있니?"
침묵이 흘렀다. 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중에 얘기해요, 엄마."
"그래.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엄마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해."
전화가 끊겼다.
지호는 다시 건반으로 돌아갔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음표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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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강남 고급 스튜디오에서 박준호는 자신의 곡을 버렸다. 지호의 이론이 자신의 직관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다르게. 이론을 깨뜨리는 방식으로.
노트북 앞에는 지호의 곡 분석 파일이 떠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지호를 분석하고 있었을까? 처음엔 그저 '이 남자가 대체 뭐 하는 놈인가' 싶어서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도 모르게 지호의 패턴을 따라가고 있었다.
박준호는 새로운 폴더를 만들었다. 이름은 '한지호 분석_최종'. 그 안에 모든 자료를 집어넣었다. 지호의 곡 구조, 차트 패턴, 가사의 의미. 모든 것.
강남 테헤란로의 야경이 보였다. 고층 건물들이 만드는 밝은 빛. 그곳과 강북은 다른 세상이었다.
박준호가 중얼거렸다.
"이번엔 다르게 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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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로 돌아온 지호는 이수현을 만났다.
"1주일 안에?"
이수현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지호는 노트북을 닫고 모니터를 껐다. 화면이 어두워지며 자신의 얼굴이 반사되었다. 눈 아래 짙은 그림자가 보였다.
"김태성이 뭐라고 했어? 정확히."
"'두 사람이 같은 주제로 곡을 만들고, 대중이 판단하게 하자'고. 주제는 시간이야."
"그리고?"
"음악계가 떠들 거래. 감 vs 이론. 이게 음악 전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대결이 될 거라고."
이수현이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라 한숨이었다.
"공정? 김태성이? 그 남자가 공정이라는 단어를 안 지 언제인데."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에는 박준호의 SNS가 떠올랐다. 방금 업로드된 게시물이 있었다. 사진은 강남 테헤란로의 야경이었고, 글귀는 짧았다.
'새로운 시작.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 날이 온다.'
댓글은 이미 수천 개였다. 추측과 기대로 가득했다.
지호는 화면을 끄고 핸드폰을 내려놨다.
"박준호는 뭐라고?"
"'영혼으로 음악을 만든다'고 했어. 미팅이 끝나고 엘리베이터에서."
"직접?"
"응."
이수현이 일어섰다. 사무실을 한 바퀴 돌았다. 강북의 낡은 건물 안에서, 스튜디오의 방음재가 벗겨진 벽에 붙어있었다. 조명은 깜박거렸다.
"너는?"
"뭐?"
"박준호가 영혼으로 음악을 만든다고 했을 때, 넌 뭐라고 말했어?"
지호는 생각했다. 엘리베이터 안의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박준호의 얼굴. 그의 미소. 그리고 그 미소 아래의 불안감.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냥 봤어."
"왜?"
"이미 내가 이겼으니까."
이수현이 돌아섰다. 지호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눈빛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박준호가 넌 이론으로 음악을 만든다고 말한 거야. 그건 뭐야?"
"변명이지."
"변명?"
"자기 음악이 내 이론을 따라가고 있다는 걸 아는데,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 거야. 그래서 '그건 영혼의 문제'라고 말하는 거지. 측정할 수 없는 것으로 도망치는 거야."
이수현이 다시 앉았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그럼 이번 대결은?"
"내가 이론으로 만든 곡이, 그의 영혼이라는 곡을 꺾는 순간, 음악계 전체가 변할 거야."
"차트 1위?"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사람들이 '이론이 감을 이겼다'고 인정해야 해. 그 다음에 내가 이긴 거야."
지호가 일어섰다. 창문으로 나갔다. 강북의 야경이 보였다. 낡은 건물들, 좁은 골목들. 멀리는 강남의 불이 보였다.
"그런데 말이야, 지호."
이수현이 조용히 말했다.
"내가 봤을 때, 박준호가 넌 이론으로 음악을 만든다고 한 게... 변명만은 아닌 것 같아. 너도 알잖아. 자기 곡들을 들었을 때, 너무 깔끔해. 계산되어 있어. 반면 박준호 곡들은... 좀 달라. 뭔가 미묘한 감정이 있어."
"그건 내 이론을 더 잘 따라가는 거야. 그뿐이야."
"그럼 왜 박준호의 음악이 사람들 가슴에 더 먹혀?"
침묵이 흘렀다. 지호는 창문에 이마를 기댔다. 유리가 차가웠다.
"...모르겠어."
"모른다고? 음악 이론가가?"
"내 이론이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어. 아직은."
이수현이 웃었다. 이번엔 진짜 웃음이었다.
"그래. 그래서 넌 이 대결에서 이길 거고, 또 동시에 질 거야. 넌 그걸 모르겠지? 아직은."
"뭐 하는 소리야?"
"넌 박준호와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너 자신과 싸우고 있어. 그 싸움은 음악이 끝나도 끝나지 않을 거야."
지호는 돌아섰다. 이수현을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심각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왜냐면... 너는 음악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증명하고 싶어 하거든."
그 말이 지호의 가슴을 관통했다. 하지만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건반 앞으로 돌아갔다.
"1주일 안에 곡을 완성해야 해."
"그래, 알겠어."
이수현이 일어났다. 사무실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멈췄다.
"지호."
"응?"
"박준호가 너한테 뭐라고 했는지는 내가 알아. 그게 뭔지도 알아. 그런데 넌 박준호가 정말 '영혼으로' 음악을 만드는 건지, 아니면 넌 '이론으로' 음악을 만드는데 그걸 '영혼'이라고 부르는 건지... 생각해봤어?"
문이 닫혔다.
지호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건반 앞에 앉았다. 손가락을 올렸다. 건반에 닿지 않은 채로.
이수현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너는 음악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증명하고 싶어 하거든.'
손가락이 떨렸다. 건반을 눌렀다. 음이 울렸다. C 음. 평범한 음.
그 음에 다른 음들을 더했다. E. G. 메이저 화음.
지호가 중얼거렸다.
"주제는 시간이야."
자신에게 말했다.
"시간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변화는..."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미끄러졌다. 불협화음이 울렸다.
"...뭐를 남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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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시. 강북 스튜디오의 불은 계속 켜져 있었다.
같은 시간, 강남의 고급 스튜디오에서도 불이 켜져 있었다.
박준호는 자신의 곡을 다시 들었다. 제목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그 곡 속에는 뭔가 달랐다. 지호의 논리를 깨뜨리려는 노력. 하지만 그 노력 자체가 이미 지호의 틀 안에 있었다.
박준호는 헤드폰을 벗었다. 노트북 앞에는 지호의 곡 분석 파일이 떠있었다. 마우스 커서가 화면 위에서 맴돌았다. 지우려고 했지만 결국 지우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폴더를 만들었다. 이름은 '한지호 분석_최종'. 그 안에 모든 자료를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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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지호의 곡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섹션은 비트. 단순한 드럼 사운드. 시간이 흐르는 소리. 똑딱거리는 시계 소리를 샘플링해서 만든 리듬.
두 번째 섹션은 멜로디. 상승하는 음들. 마치 시간이 앞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하지만 중간에 끊긴다. 마치 누군가의 시간이 멈추는 것처럼.
세 번째 섹션은 화음. 불안정한 음들의 조합. 마치 미래가 불확실한 것처럼. 하지만 그 불안정함 속에서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지호는 한 음을 반복했다. 그 음은 마치 심장박동처럼 들렸다. 규칙적이지만 불안정한. 살아있지만 죽어가는 것 같은.
그 음에 멜로디를 얹었다. 멜로디는 위로 올라갔다가 갑자기 떨어졌다. 마치 누군가가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처럼. 하지만 바닥에 닿기 전에 다시 올라갔다. 마치 누군가가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지호의 눈이 감겼다. 음악이 나올 때 그는 항상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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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지호는 첫 번째 버전을 완성했다.
재생 시간: 3분 58초.
그는 음악을 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감은 채로.
음악이 끝났을 때, 지호의 몸이 경직되었다.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멈춘 채 미세하게 떨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가 다시 올라왔다. 호흡이 가빠졌다.
'이게 내 음악일까? 아니면 박준호를 이기기 위한 무기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지호는 알고 있었다. 1주일 안에 이 곡을 또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더 완벽하게. 더 강력하게.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엄마'라고 뜬 글자가 있었다. 새벽 4시. 엄마가 왜 이 시간에 전화를 했을까?
지호가 받았다.
"네, 엄마?"
통화 음성이 떨려있었다.
"아들아... 깨웠니? 미안해. 그냥... 뭐 하고 있나 궁금해서."
"곡 만들고 있어요."
"또 곡? 아들, 너 정말 괜찮아? 요즘 자꾸자꾸 마음이 불안해서..."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음악이 너를 행복하게 해준 적이 있니?"
그 질문. 지호는 이미 들었다. 오후에. 같은 질문을 받고도 답하지 못했다.
이번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침묵 속에서 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다시 시도했다. 목이 메었다.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건반 위에서처럼, 공중에서.
"...네. 해줬어요, 엄마."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지호의 손가락은 멈춰 있었다. 공중에서.
"정말?"
"네."
전화 너머로 엄마의 안도의 숨소리가 들렸다.
"그럼 괜찮아. 그럼 계속해. 아들. 엄마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해. 하지만 넌 할 수 있어. 알지?"
"네, 엄마."
전화가 끊겼다.
지호는 다시 건반 앞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번엔 손가락이 건반을 치지 않았다. 그냥 앉아만 있었다. 손가락이 가볍게 떨렸다.
'음악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 적이 있니?'
그 질문의 답을 찾아야 했다. 1주일 안에. 그 답이 담긴 곡을 만들어야 했다.
화면에 시간이 표시되었다.
'남은 시간: 5개월 26일 20시간 15분'
6개월. 회귀가 시작된 지 6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남은 건 6개월.
정확히 절반을 지났다.
지호가 중얼거렸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건반 위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더 느리게. 더 신중하게.
강남의 스튜디오에서도 박준호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었다. 두 개의 음악이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한 곡은 이론으로, 한 곡은 직관으로. 또는 그 반대로.
1주일.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할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이미 대결에 대한 추측이 가득했다. SNS는 폭발했다. 음악계 전체가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팬들은 자신의 진영을 정했고, 업계인들은 이 대결이 음악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계산했다. 언론은 '감 vs 이론'이라는 구도를 부각시켰다.
'누가 이길까?'
그 질문의 답은 1주일 뒤에 나올 것이다.
하지만 지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대결이 단순한 음악 경쟁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은 자신이 자신과 싸우는 전쟁이라는 것을.
건반 위의 손가락이 멈췄다. 지호는 눈을 떴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새벽 5시. 해가 뜨기까지 1시간이 남았다.
그 1시간 동안 지호는 건반 앞에 앉아 있었다. 손가락을 올렸다가 내렸다. 올렸다가 내렸다.
음악을 만들지도 않았고, 쉬지도 않았다. 그저 앉아만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호의 얼굴에는 공포와 결의가 동시에 떠올랐다. 공포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에서. 결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야 한다는 것에서.
'남은 시간: 5개월 26일 19시간 15분'
초침이 계속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