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새벽 5시 37분. 강북 스튜디오의 모니터 화면은 여전히 재생 중이었다. '진실'의 파형이 검은 배경 위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지호는 손을 내렸다. 눈물은 이미 말라 있었다. 가슴이 떨리고 있었다.
곡이 끝났다.
스튜디오의 조용함이 돌아왔다. 지호는 모니터의 타임라인을 처음으로 돌렸다. 이번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눈으로만 읽었다. 파형의 형태를. 고저의 변화를.
박준호의 '파도 위의 음표'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였다.
박준호의 곡은 아름다웠다. 직관적이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지호의 '진실'은 다쳤다. 아름다움 아래 뼈대가 있었다. 감정 아래 계산이 있었다. 그것이 이 곡을 다르게 만들었다.
지호는 일어났다. 허리를 펴면서 목이 꺾이는 소리가 났다. 시계를 봤다. 금요일 아침 5시 40분. 오늘부터 '진실'이 스트리밍 서비스에 올라간다. 이수현이 어제 확인해줬다. 모든 플랫폼에. 동시에.
휴대폰을 집었다. 화면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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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정각. 택시가 강남 테헤란로에 진입했다. 고층 빌딩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지호는 창문으로 그것들을 봤다.
휴대폰의 알림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SNS, 음악 커뮤니티, 유튜브 댓글. 모두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대박입니다.'
'이게 신인 프로듀서?'
'박준호 이후로 가장 좋은 곡 같은데?'
지호는 화면을 꺼버렸다.
회사에 도착했을 때 이수현은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이 빨갰다.
"미쳤어! 지금 차트 봤어? 멜론 4위, 지니 3위야! '시간의 언어'는 3일 만에 50위까지 갔는데, 이건 하루 만에!"
이수현은 계속 말했지만 지호는 듣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17층으로 올라갔다. 사무실 문을 열었다.
모두가 돌아봤다. 그리고 손뼉을 쳤다.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지호! 좋은 곡 만들었어. 정말 좋은 곡이야. 이제 진짜 시작이다. 박준호도 좋은 곡 많이 냈지만, 이번 곡은... 뭔가 다르더라. 다르면서도 완벽해."
지호는 그들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가슴에는 뭔가 빈 자리가 있었다. 인정받는 기분이 맞았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인정은 아니었다. 사장의 말에는 여전히 의외성이 담겨 있었다. 마치 길고양이가 예쁜 음악을 낸 것처럼.
이수현이 지호에게 안겼다.
"축하해!"
지호는 웃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축하하는 것인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10년 전, 김태성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재능 부족이야.' 그 한 마디. 그 이후로 지호는 자신이 노력쟁이라는 낙인을 벗을 수 없었다. 차트 1위도 그 낙인을 지우지는 못했다. 아직도 누군가는 이 성공을 '우연'으로 볼 것이다. 계산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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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30분. 강남 뮤직 프라임의 작업실. 박준호는 헤드폰을 끼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음악 파일이 열려 있었다. '진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트랙을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켰다. 각 음역대의 주파수가 분해되었다.
박준호의 눈이 스크린을 쫓았다.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이건 계산이었다. 명확한 계산. 지호의 '시간의 언어'에서 보았던 그 계산과는 다른 방식이었지만, 여전히 계산이었다.
박준호는 노트북의 다른 탭을 켰다. 자신의 최신 곡 '새로운 밤'. 같은 분석 프로그램을 적용했다.
주파수가 분해되었다.
박준호는 두 파형을 나란히 놓고 봤다. '진실'과 '새로운 밤'. 그리고 그 아래 자신의 이전 곡들.
수 초의 침묵이 흘렀다.
박준호의 입이 조금 열렸다. 마우스를 집어 '진실'의 파형을 확대했다. 그리고 자신의 곡의 파형을 비교했다.
같은 구조였다. 기본 틀은 다르지만, 그 아래 깔린 논리는 같았다. 지호가 '시간의 언어'에서 만들었던 그 논리.
박준호는 다시 한 곡을 켰다. '파도 위의 음표'. 지호가 만들다가 자신이 '우연히' 듣고 발표했던 곡. 그것도 같은 논리를 따르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했다.
박준호의 손이 움직였다. 마우스를 놓쳤다. 헤드폰을 집어 던졌다. 화면을 끈다.
검은 모니터. 그 안에 자신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자신의 직관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지호의 계산을 무의식적으로 따라가고 있었다는 것. 그것도 알았다.
박준호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천장을 봤다.
자신의 곡 목록. 지난 3개월간 자신이 발표한 곡들. 모두 지호의 아이디어 근처에 있었다. 아니, 근처가 아니라 정확히 지호의 궤도를 따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천재성은 무엇인가.
박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마우스를 집으려다 놓쳤다. 다시 집었다. 자신의 곡 폴더를 열었다. 최신 곡부터 역순으로. 모두 지호의 구조를 따르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알면서도 발표했다. 아니, 알지 못했다. 무의식적으로 따라갔을 뿐이다.
박준호는 '새로운 밤'을 선택했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곡이 흘러나왔다. 자신이 만든 곡. 하지만 지호의 논리로 만든 곡. 그것을 들으며 박준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곡이 끝났다.
박준호는 휴지통을 켰다. 마우스 커서가 움직였다. '새로운 밤' 파일 위에서 멈췄다. 삭제 버튼을 누르려던 손가락이 멈췄다.
이미 발표된 곡이었다. 차트 6위. 수천 명이 듣고 있는 곡.
박준호는 손을 놓았다. 파일은 남아 있었다.
그는 노트북을 닫았다. 스튜디오의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박준호는 한참을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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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45분. 하위 기획사 '사운드 웨이브'. 사무실의 모니터들이 모두 같은 화면을 띄우고 있었다. 실시간 차트. '진실'이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이수현이 지호의 옆에 서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화면을 바라봤다.
"15위에서 12위로. 5분 전엔 18위였는데."
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었다. 노트북에서. 실시간 차트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었다.
"너 이거 봤어?"
이수현이 휴대폰을 들었다. 음악 평론 커뮤니티. '진실' 관련 게시물들이 폭주하고 있었다.
'한지호의 두 번째 곡. 이번엔 뭔가 다르다.'
'박준호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 흥미롭다.'
'차트 상승 속도가 예상 밖이다.'
이수현이 읽었다. 그리고 웃었다.
"인정받는 거야, 지호. 진짜로."
지호는 여전히 화면을 봤다. 11위. 10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완전한 인정은 아니야."
지호가 말했다. 목소리는 평탄했다.
"뭘 또 그래. 봤어? 이 댓글들. 사람들이 너를 보고 있어. 진짜 보고 있다고."
이수현이 손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하지만 지호는 다른 것을 봤다. 댓글들 사이에 섞여 있는 부정적 평가들.
'계산적이다.'
'감정이 없다.'
'알고리즘 조작 아닌가?'
그런 댓글들. 적긴 했지만 분명히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내 음악을 '우연'으로 본다. 계산이 아니라."
지호가 말했다.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항상 있는 거야."
이수현이 말했다. 하지만 지호는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고 있었다.
"준호가 새 곡을 올렸어."
지호가 갑자기 말했다.
"뭐?"
"어제 자정. '새로운 밤'."
이수현이 휴대폰을 다시 켰다. 박준호의 채널을 찾았다. 정말로 새로운 곡이 올라와 있었다. 이미 차트 6위.
"또 빨라?"
이수현이 중얼거렸다.
지호는 그 곡을 듣고 있었다. 헤드폰을 끼고. 눈을 감고.
곡이 재생되는 동안, 지호의 표정은 변했다. 미세하게.
곡이 끝났다.
"어때?"
이수현이 물었다.
"좋아."
지호가 대답했다.
"진짜로?"
"진짜로."
지호가 헤드폰을 벗었다. 그의 눈빛은 복잡했다. 시기와 경외와 그 사이의 어딘가.
"그런데 이상한 게..."
지호가 말을 이었다.
"이 곡도 내 논리를 따르고 있어. 정확히는 내가 만든 '시간의 언어'의 구조를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어."
"그게 뭔 소리야?"
"박준호가 내 음악을 듣고 배우고 있다는 뜻이야."
지호가 노트북으로 돌아갔다. 두 곡의 파형 분석을 나란히 띄웠다. 박준호의 '새로운 밤'과 자신의 '진실'.
"여기 봐. 이 부분. 저음대의 움직임. 같은 패턴이야. 그리고 여기. 고음역대의 감퇴 속도. 이것도 내가 '시간의 언어'에서 사용한 계산식이야."
이수현이 모니터를 봤다. 하지만 그가 이해하는 것과 지호가 본 것은 달랐다.
"그럼... 좋은 거 아닌가? 라이벌이 자신을 따라한다는 건."
이수현이 말했다. 조심스럽게.
지호는 웃었다. 정말로 웃었다.
"그렇지. 좋은 거야. 매우 좋은 거야."
그의 목소리에는 뭔가 다른 감정이 있었다. 승리감.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천재라고 생각했던 놈이 나를 배우고 있다는 거야. 그것도 자기도 모르게."
지호가 창밖을 봤다. 강남의 거리. 저 어딘가에 박준호의 스튜디오가 있을 것이다.
"그럼 넌?"
이수현이 물었다.
"난 다음을 만들어."
지호가 대답했다.
"박준호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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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47분. 차트는 계속 움직였다.
멜론 8위. 지니 6위. 유튜브 뮤직 5위.
'진실'은 더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사무실의 사람들이 하나둘 지호에게 인사를 했다. 어제는 없던 태도였다.
"한 프로듀서, 축하합니다."
인턴이 지호에게 인사를 했다.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모니터에 있었다. 차트가 아닌 다른 곳에.
음악 평론가 '음향실험실'의 최신 글:
'한지호의 '진실'을 듣고. 감의 정체를 밝히다.'
글을 읽었다. 지호는 읽고 또 읽었다.
'기존의 음악 업계는 '감'이라는 추상적 기준으로 작품을 평가해왔다. 하지만 한지호의 곡들은 그 '감'의 정체가 실은 수학적, 과학적 원리에 기반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시간의 언어'에서 보인 주파수 구조의 정교함, '거울 속의 악수'에서의 멜로디 진행의 계산된 감정 조율, 그리고 '진실'에서의 완벽한 정서적 발화. 이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이는 음악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이해다.'
글을 내렸다.
'이제 음악계는 선택해야 한다. 여전히 추상적 '감'에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과학적 접근법을 수용할 것인가. 한지호는 그 선택을 음악으로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차트가 이미 답을 내렸다.'
지호는 그 글을 읽고 웃었다. 진짜 웃음이었다.
마침내. 마침내 누군가가 이해했다. 자신이 10년간 증명하려던 것을. 10년 전 김태성에게 받은 '재능 부족'이라는 낙인을 벗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이것이었다. 과학적 증명. 차트의 증명.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번호는 낯선 번호였다. 하지만 지호는 알았다. 누구인지.
지호는 통화를 받았다. 말을 기다렸다.
음성이 흘러나왔다.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아래 무언가 긴장한 뭔가가 있었다. 말의 끝이 떨리고 있었다.
"한지호?"
"네, 안녕하세요."
지호는 대답했다.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너 곡 좋던데. '진실'이 그거지?"
"감사합니다, 선생님."
지호의 목소리는 공손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차갑게 빛났다.
"한 번 만나볼까?"
김태성의 목소리에는 서두름이 있었다. 마치 지호가 거절할까봐 두려운 듯.
"내일 오후 3시. 강남 테헤란로 34번지. 알겠지?"
지호는 정확히 그 주소를 알고 있었다. 그곳은 김태성이 운영하는 프로덕션의 본사였다. 10년 전, 자신이 마지막으로 발을 들인 그곳. 그곳에서 자신은 '재능 부족'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좋아. 내일 봐."
통화가 끝났다. 하지만 지호는 휴대폰을 내려놓지 않았다. 화면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김태성의 목소리. 그 아래 흐르던 불안감. 마치 자신을 두려워하는 듯한 뉘앙스. 10년 전 그 자신감 넘치던 목소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것은 승리감이 아니었다. 다른 무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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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15분. 강남 뮤직 프라임의 작업실. 박준호는 여전히 어둠 속에 서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김태성'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박준호는 한참을 그 화면을 봤다. 그리고 받았다.
"준호. 한지호 곡 들었어?"
"네, 들었습니다."
박준호의 목소리는 무기력했다.
"좋지? 정말 좋은 곡이야."
"네."
"근데 말이야. 너도 새 곡을 냈던데, 그것도 좋더라. 정말 좋은 곡."
김태성의 목소리에는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칭찬하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다른 의도가 숨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근데 좀 이상한 게... 두 곡이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더라. 너도 느껴지지?"
침묵이 흘렀다.
"느껴진다는 건 넌 알고 있다는 뜻이지? 지호의 음악을 따라가고 있다는 걸."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준호. 이건 위험한 길이야. 천재는 한 번만 나온다. 두 명이 같은 길을 가면... 둘 다 망한다."
"알겠습니다."
박준호의 목소리는 더 작아졌다.
"내일 지호를 만날 거야. 그 전에 넌 뭔가 준비해. 새로운 방향. 지호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 알겠지?"
"네."
"좋아. 화이팅."
통화가 끝났다.
박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스튜디오의 어둠은 더 짙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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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34분. 차트.
멜론 4위. 지니 3위. 유튜브 뮤직 2위.
'진실'은 더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박준호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그 차트를 보고 있었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은 채.
그의 손가락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자신의 곡 폴더를 열었다. '새로운 밤'. 그리고 그 아래 지호의 곡들.
음악이 흘러나왔다. 지호의 '진실'.
박준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들었다.
음악이 말하고 있는 것을. 그 아래 깔린 계산이. 그 계산을 넘어선 감정이.
곡이 끝났다.
박준호의 눈이 떠졌다. 그의 손이 떨렸다.
자신이 천재라고 믿었던 것. 그것의 정체가 뭔지, 박준호는 이제 알았다.
그것은 직관이 아니라 도용이었다.
그것은 타고남이 아니라 빌려온 것이었다.
박준호는 노트북을 켰다. 자신의 곡 목록을 다시 열었다. 최신 곡부터 역순으로. 모두 지호의 구조를 따르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알면서도 발표했다. 아니, 알지 못했다. 무의식적으로 따라갔을 뿐이다.
박준호는 '새로운 밤'을 선택했다. 휴지통으로 드래그했다. 삭제 버튼을 눌렀다.
파일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도 이미 늦었다. 차트 6위. 수천 명이 들었다. 차트에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박준호는 노트북을 닫았다. 스튜디오의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박준호는 한참을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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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15분. 지호의 자취방.
그는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새로운 곡의 스케치를 시작하고 있었다.
제목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그 아래 깔린 논리는 이미 명확했다.
박준호가 따라올 수 없는 것. 김태성이 '감'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지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움직였다. 음악 파일을 만들었다. 첫 번째 트랙을 녹음했다.
그리고 그 순간, 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어머니'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지호는 한참을 그 화면을 봤다. 그리고 받았다.
"지호. 차트 봤어?"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자랑스러움이 있었다.
"응, 엄마."
"1위 된대? 내일?"
지호는 어머니의 질문을 듣고 있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1위가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엄마, 기억해? 그 질문."
지호가 물었다.
"뭔 질문?"
"음악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 적이 있냐는 질문."
침묵이 흘렀다. 전화 너머에서.
"그때 난 대답을 못 했어. 하지만 이제... 이제 알 것 같아, 엄마."
지호가 말했다. 목소리는 평탄했지만, 그 아래 뭔가 다른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음악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 건 아니야. 하지만 음악이 내 존재를 증명해줬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어머니가 물었다.
"응."
지호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그럼 내일도 충분히 잘할 거야. 우리 지호는."
어머니가 말했다.
통화가 끝났다.
지호는 다시 노트북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곡의 스케치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서울의 밤은 여전히 밝았다. 강남의 고층 빌딩들은 불을 밝히고 있었고, 강북의 낡은 건물들은 어두웠다.
그 경계선 어딘가에서, 지호는 자신의 다음 곡을 만들고 있었다.
내일 오후 3시를 위해.
그리고 그 다음을 위해.
차트는 계속 움직였다. 새벽 1시를 지나면서.
멜론 1위. 지니 1위. 유튜브 뮤직 1위.
'진실'은 정점에 도달했다.
하지만 지호는 이미 다음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