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4화

강북 스튜디오의 모니터에서 나오는 음악을 지호는 이미 수십 번 들었다. 박준호의 신곡 '파도 위의 음표'였다. 차트 2위. 발표 3일 만에.

손가락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 멜로디. 그 진행. 그 브릿지의 음정 변화까지.

모두 자신의 것이었다.

정확히는 자신이 일주일 전 강남 스튜디오 근처에서 휴대폰 보이스 메모에 남겨둔 것이었다. 당시엔 기획사 방문 전 아이디어를 정리하려던 것이었다. 멜로디 구간구간을 음성으로 녹음해두고, 나중에 악보로 옮기려던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녹음을 누군가 들었다. 아니, 들을 수 있었다.

박준호다.

이수현을 찾는 데 3시간이 걸렸다. 강남의 중견 기획사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홍대 카페에서 만났다. 지호는 휴대폰 스피커를 이수현의 귀에 댔다. 자신의 보이스 메모. 그다음 박준호의 신곡. 같은 구간을 반복해서 틀었다.

이수현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이건..." 이수현이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박준호가?"

"강남 스튜디오 근처에서 봤다. 내가 휴대폰으로 멜로디를 녹음하고 있을 때. 그날 오후에 그 곡을 올렸어."

카페의 아메리카노가 식어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노트북 키음만이 방음 처리되지 않은 공간에 울렸다.

"이건 도용이다. 명백한 표절이야."

이수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 움직임 자체가 답변이었다.

"뭐야?"

"지호, 이건 음악계에서는... 흔한 일이야."

지호의 손이 멈췄다.

"넌 알겠지? 감의 영역에서는 우연의 일치가 자주 일어나. 비슷한 구조, 비슷한 진행... 수천 곡이 나오는데 우연히 겹칠 수도 있는 거야. 특히 박준호는 천재니까. 넌 생각하는 방향과 그가 생각하는 방향이 같았을 수도..."

"같은 음정이야. 같은 타이밍이야. 같은 브릿지 구조야. 우연이 아니라는 게 오디오 자체로 증명되어 있다."

"알아. 난 듣는 귀가 없지만 넌 분명 들었을 거고, 난 믿어. 근데 이것도... 법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알아?"

지호가 대답하지 않았다.

"음악은 저작권법이 다른 장르보다 훨씬 까다로워. 유사성만으로는 부족해. 실질적 유사성과 접근성 모두를 증명해야 하는데, 이 경우엔 접근성 증명이 문제야. 넌 휴대폰에 녹음했어. 그게 박준호에게 어떻게 전해졌는지 증명할 수 없잖아. 우연히 들었다고 주장하면 추적할 방법이 없어."

"강남 스튜디오 보안 영상이 있을 거야. 그 날..."

"그걸 확보할 수 있어? 기획사가 신인 프로듀서의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자사 보안 영상을 공개할까? 더군다나 박준호는 그들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야. 차트 2위니까."

카페의 음악이 바뀌었다.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에서 흘러나온 트로트였다.

"더 있어."

이수현이 휴대폰을 꺼냈다. 뮤직 프라임 공식 계정의 스트림이 떴다.

"박준호 신곡 '파도 위의 음표'에 대한 평론들이 벌써 올라왔어. 봐봐. '감의 화신의 신비로운 직관력', '계산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정점', '음악적 천재성의 증명'. 댓글도 봐. '이런 걸 어떻게 만들지?', '천재는 다르다', '박준호 미쳤다'."

"그런데..."

"이건 이미 거대한 내러티브가 됐어. '박준호'라는 프레임 안에서 이 곡은 이제 '천재의 작품'이야. 만약 넌 지금 표절 주장을 하면, 넌 뭘로 보일까? '자신의 아이디어가 도용됐다고 우는 신인', 아니면 '박준호의 성공을 질투하는 하위 기획사 프로듀서'. 누가 더 설득력 있을까?"

지호의 손이 주먹이 되었다.

"이건 부정이야. 이건 사기야."

"알아. 난 알아. 그런데 이게 음악계의 규칙이야. 감이 우선이고, 결과가 증명이고, 누가 먼저 발표했느냐가 전부야. 법이 아니라 관행이 지배하는 세계야."

지호는 일어났다. 카페를 나갔다. 이수현은 따라오지 않았다.

강북 스튜디오는 밤 11시였다. 모니터 하나만 켜져 있었다. DAW 프로그램. 아무것도 열려 있지 않았다.

지호는 헤드폰을 썼다. 박준호의 곡을 다시 틀었다.

처음 5초. 자신이 녹음한 멜로디의 정확한 전개다. 음정도, 리듬도, 음정 변화의 폭도 모두 같다. 하지만 박준호의 손을 거쳤을 때 뭔가 달랐다. 신시사이저의 음색이 더 투명했다. 드럼의 비트가 더 정밀했다. 전체 믹스의 배치가 더 세련되었다.

자신의 아이디어는 맞았다.

다만.

손가락이 멈췄다.

자신의 실행 능력이 부족했을 뿐이었다.

박준호는 아이디어를 훔쳤다. 그게 맞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는 뭘 할 수 없다. 법도 아니고, 증거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이 세계에서는.

그렇다면.

지호는 헤드폰을 벗었다. 키보드 앞에 손을 올렸다. 마우스로 새 프로젝트를 열었다.

제목을 입력하려다 손가락이 떨렸다.

'박준호에게' 라고 입력했다가 지웠다.

'도용자에게' 라고 입력했다가 지웠다.

그다음 화면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었다. 스튜디오의 형광등이 찬 빛을 흘리고 있었다. 밖의 서울 밤하늘은 주황색이었다.

마우스를 들었다.

'진실'

한 글자씩 입력했다.

그 제목 아래 첫 번째 노드를 만들었다. 건반의 C키를 눌렀다. 신호음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하나의 점. 시작.

"이번엔 훔쳐갈 수 없는 곡을 만들겠다."

독백은 아무도 듣지 않았다. 스튜디오에는 지호 혼자였다.

새벽 2시였다. 강남의 고층 빌딩들은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고, 홍대의 허름한 건물은 여전히 누군가의 형광등을 켜고 있었다.

지호는 첫 번째 음표를 입력했다.

그다음 것도. 그다음 것도.

손가락이 움직였다. 뇌가 작동했다. 10년간 축적된 이론이 흘러내렸다.

곡의 주요 섹션이 형태를 갖춰갈 때, 지호는 음악적 선택의 순간들을 의식했다. 첫 번째 구간의 코드 진행—C에서 Am으로 내려가는 대신, C에서 Cmaj7로 상승시켜 긴장감을 유지했다. 그리고 드럼은 신스 비트 대신 아날로그 킥으로 따뜻함을 더했다. 이런 선택들이 쌓여 형태를 만들었다.

새벽 4시를 지났을 때, 곡의 주요 섹션이 완성되었다. 첫 번째 구간. 두 번째 구간. 브릿지.

지호는 손을 멈추고 무언가를 깨달았다.

음악이 너를 행복하게 해준 적이 있니?

어머니의 질문이 떠올랐다. 그때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손가락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이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가?

지호는 다시 건반을 터치했다. 멜로디가 더 깊어졌다. 더 진정해졌다.

새벽 5시. 클라이맥스 섹션이 형태를 드러냈다.

지호는 헤드폰을 벗었다. 스피커를 켰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완성된 곡이 스튜디오 안에 울렸다.

자신도 처음 듣는 것이었다. 완성된 형태로.

첫 번째 음표가 나왔을 때, 지호의 눈가가 젖었다.

이건 자신의 곡이었다. 자신의 것만의 곡이었다.

박준호도, 김태성도, 누구도 훔칠 수 없는.

음악이 계속 흘렀다.

지호는 손을 쥐었다가 폈다. 반복했다.

그 다음.

노트북 창을 닫았다. 파일 탐색기를 열었다. 자신의 폴더를 찾았다. 그 안에는 여러 개의 파일이 있었다.

'1월 프로젝트', '2월 프로젝트', '3월 프로젝트'...

그리고 가장 최신의 것.

'진실'.

지호는 그 파일을 오른쪽 클릭했다.

속성을 봤다. 생성 시간: 오늘 오전 2시 47분.

파일 크기: 47.3 MB.

지호는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 파일을 선택한 채로, 다음 폴더로 옮겼다. '발표 대기 중' 폴더로.

이 곡을 언제 올릴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준비는 됐다.

이번엔 다르다.

지호는 헤드폰을 다시 썼다. '진실'을 다시 틀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번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대신 다짐했다.

음악으로 이기겠다.

법이 아니라.

감정도 아니라.

오직 음악으로.

---

강남 카페는 아침 햇살로 가득했다. 테헤란로 43층 빌딩의 지하 1층, 뮤직 프라임 건물 바로 옆. 박준호는 여기서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았다. 창가 테이블. 커피는 마시지 않고, 노트북만 켜 있었다.

정유진이 옆자리에 앉으며 에스프레소 잔을 내려놨다.

"박준호의 신곡이 또 차트 5위네."

박준호는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음악 스트리밍 차트였다. 자신의 곡 '파도 위의 음표'가 당당히 5위에 올라 있었다.

"빨리 올라올 거야. 일주일 안에 1위."

정유진은 커피를 마셨다. 정유진은 대형 기획사 '뮤직 프라임'의 A&R 담당자였다. 박준호와는 공식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박준호의 모든 곡을 먼저 듣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한지호의 '파도'는?"

박준호의 얼굴이 약간 굳었다. 정유진이 웃음을 멈췄다.

"뭐야. 신경 쓰이나?"

"아니지."

박준호는 노트북을 닫았다.

"그냥 궁금해서."

정유진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뭔가 날카로운 것이 있었다. 그녀는 음악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불공정'이라는 것을.

"한지호의 곡은 차트 18위에서 내려오고 있어. 너의 곡은 올라가고 있고."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유진은 커피 잔을 들었다 놨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있어. 한지호의 '파도'와 너의 '파도 위의 음표'의 메인 모티프가..."

정유진은 말을 멈췄다. 박준호의 눈이 그녀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뭐?"

"아무것도 아니야."

정유진은 일어섰다.

"그럼 새로운 프로젝트는? 다음 곡 언제 올려?"

"2월 15일."

박준호는 다시 노트북을 켰다.

정유진은 카페를 나갔다. 그 뒤로 남겨진 것은 박준호와 그의 노트북뿐이었다. 화면에는 여전히 차트가 떴다. 자신의 곡이 5위에 있었다. 그리고 한지호의 곡은 18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박준호는 마우스를 움직여 다른 창을 열었다.

폴더 탐색기. 그 안에는 수십 개의 MP3 파일이 있었다. 모두 자신이 만든 곡들이었다.

그는 '파도 위의 음표'를 선택했다. 재생했다.

음악이 흘렀다. 정확히 3분 42초. 아름다운 멜로디. 정교한 구성. 완벽한 편곡.

이것은 자신의 곡이었다. 자신이 만든 것이었다.

박준호는 화면을 닫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한지호의 멜로디는 정말 훌륭했다. 하지만 자신의 손을 거친 후에는 더 훌륭해졌다. 그것이 바로 재능이라는 것이다.

박준호는 다시 노트북을 켜 새로운 파일을 열었다.

파일명: '다음 곡 구상 중'.

화면은 비어 있었다.

박준호는 손가락을 건반 위에 올렸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 나와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오지 않았다.

박준호는 손을 내려놨다. 창밖을 봤다.

강남의 빌딩들이 햇살에 반짝였다. 그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성공했다. 아니면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박준호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뭔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오전 9시.

지호의 어머니는 핸드폰을 들었다.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 점심 먹을래?"

어머니는 대답했다.

"그래. 몇 시에?"

"12시에 강남역 2번 출구에서 만날까?"

어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떴다.

하지만 그 미소는 금방 사라졌다.

강남역.

지호가 강남으로 간다는 것은 이상했다.

항상 강북에만 있던 아들이.

어머니는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지호의 마지막 음성 메시지를 다시 들었다.

"엄마, 내일 밥 먹자. 그리고... 음악이 날 행복하게 해준 적이 있냐고 물었잖아. 내가 아직 답을 못 했는데, 곧 답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음성 메시지는 일주일 전 것이었다.

아직도 회신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창밖을 봤다.

아침 햇살이 강북의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

정오 12시 정각.

강남역 2번 출구에서 지호는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은 모두 강남의 사람들이었다. 비싼 옷, 비싼 신발, 비싼 가방.

지호도 그 무리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공간에 속해 있지 않다고 느꼈다.

여전히 강북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나타났다.

그녀는 아들을 보자마자 웃음을 지었다.

"야,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지호는 어머니를 안았다.

"곡을 만들었어."

"응?"

"새로운 곡. 아주 좋은 곡."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봤다.

그의 눈은 여전히 피곤해 보였지만, 뭔가 다른 빛이 있었다.

"그래? 그럼 들려줄래?"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엄마, 너는 날 믿어?"

"당연하지. 왜 그런 질문을..."

"그럼 괜찮아. 곧 이 곡이 세상에 나올 거야. 그리고..."

지호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

"음악이 날 행복하게 해줄 것 같아."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

같은 시각, 강남 카페.

박준호는 여전히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정유진의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한지호가 새 곡을 준비 중인 것 같아. 아직 올리지는 않았는데, 정보에 따르면 상당히 다른 스타일이야."

박준호는 화면을 닫았다.

그리고 자신의 폴더를 다시 열었다.

'다음 곡 구상 중'이라는 폴더가 있었다.

그 안에는 빈 문서 파일이 하나 있었다.

파일명: '?'.

박준호는 그 파일을 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빈 화면만 있었다.

박준호는 그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손가락을 건반 위에 올렸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무언가 나와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오지 않았다.

박준호는 손을 내려놨다.

창밖을 봤다.

강남의 빌딩들이 햇살에 반짝였다.

그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다.

박준호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길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두려웠다.

자신의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모르는 것이.

혹시 자신의 재능이 모방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박준호는 그 생각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밀어낼 수 없었다.

---

오후 3시.

지호는 강북으로 돌아왔다.

스튜디오에 들어가지 않고, 홍대 거리를 걸었다.

낡은 건물들. 작은 카페들. 젊은 아티스트들.

이 거리가 자신의 거리라고 생각했다.

강남이 아닌, 강북.

거물이 아닌, 신인.

감이 아닌, 과학.

지호는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노트북을 켰다.

'진실' 파일을 다시 들었다.

음악이 흘렀다.

그리고 그 순간, 지호는 깨달았다.

이 곡이 올라갈 때, 무언가가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박준호와의 진정한 대결이.

음악계의 진정한 변화가.

그 모든 것의 시작이.

지호는 파일을 저장했다.

그리고 발표 날짜를 정했다.

2월 15일.

박준호의 새 곡 발표 예정일과 정확히 같은 날.

둘이 동시에 곡을 발표하는 것이다.

이번엔 누가 더 먼저 올리는지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누가 더 좋은 곡을 만드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지호는 헤드폰을 벗었다.

그리고 새로운 문서를 열었다.

파일명: '박준호 분석 - 최종'.

지호는 타이핑을 시작했다.

"넌 누구로부터 왔는가?

그건 이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나는 누가에게서 왔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디로 가는가다.

그리고 그 길은 음악이다."

지호는 문서를 저장했다.

그리고 다시 '진실'을 틀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새벽이 올 때까지.

---

밤 11시.

박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 김태성.

박준호는 전화를 받았다.

"다음 곡 준비됐어?"

"네, 2월 15일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좋아. 근데 한지호 녀석이..."

김태성이 말을 멈췄다.

"뭔가 이상해. 요즘 들어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

박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혹시 그 녀석이 새로운 걸 준비하는 건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박준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어쨌든, 너는 계속 너의 길을 가. 그게 최고야."

김태성은 전화를 끊었다.

박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그리고 노트북을 켰다.

빈 문서 파일을 다시 열었다.

아직도 빈 화면이었다.

박준호는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한지호.

그 녀석은 뭐가 다른가?

박준호는 손가락을 건반 위에 올렸다.

이번엔 무언가가 나와야 했다.

2월 15일까지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박준호는 건반을 눌렀다.

첫 번째 음.

두 번째 음.

세 번째 음.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이 음악은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을 따라 하는 것 같았다.

박준호는 손을 멈췄다.

화면을 보니, 자신이 만들고 있는 멜로디가 지호의 곡과 비슷한 구조였다.

하지만 지호의 새 곡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박준호는 그 곡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럼 왜?

박준호는 손가락을 들었다.

그것은 자신의 손가락이 맞았다.

하지만 그 손가락에서 나오는 음악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박준호는 다시 건반을 눌렀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멜로디가 나왔다.

더 단순한. 더 직관적인.

하지만 그것도 뭔가 부족했다.

박준호는 계속했다.

새벽이 올 때까지.

하지만 완성된 곡은 나오지 않았다.

---

2월 15일 자정.

정확히 같은 시간에, 두 곡이 스트리밍 서비스에 올라갔다.

지호의 '진실'.

박준호의 '시작'.

---

1주일 후.

지호의 '진실'은 차트를 타고 올라갔다. 평론가들의 평가도 달라졌다.

"초반에는 차갑게 느껴지지만, 반복해서 들을수록 깊이가 드러난다."

"계산된 구조 속에 감정이 숨어 있다."

SNS에서도 반응이 쌓여갔다.

─ 한지호 '진실' 진짜 미쳤다. 처음엔 이해 못 했는데 자꾸 듣게 돼

─ 박준호 신곡보다 이게 낫네. 이게 진짜 음악이다

─ 뭔가 박준호 곡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진정성이 있음

반면 박준호의 '시작'은 초기 상승세를 유지하지 못했다.

평론가들의 평가도 엇갈렸다.

"신선하지만 깊이가 부족하다."

"감의 영역에서는 좋지만, 반복 청취에는 약하다."

대중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 박준호 이번 곡 별로네

─ 한지호 곡이 훨씬 낫다

─ 박준호도 이제 끝인가?

2주일 후.

지호의 '진실'은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박준호의 '시작'은 차트에서 사라졌다.

뮤직 커뮤니티에는 분석글들이 올라왔다.

─ 한지호 '진실' 음악 이론 분석

코드 진행: C→Cmaj7→Am7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긴장과 이완을 만든다. 특히 브릿지 섹션에서 예상을 벗어난 Fmaj7 코드로 청자의 귀를 사로잡는다.

악기 배치: 신스 비트 대신 아날로그 킥을 사용해 따뜻함을 더했고, 보컬 위에 스트링 패드를 겹쳐 감정을 심화시킨다.

─ 박준호 '시작' 왜 실패했나?

멜로디는 좋지만 구조가 단순하다. 초반 임팩트는 강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지루해진다. 마치 아이디어만 있고 완성도가 부족한 느낌.

─ 혹시 박준호가 한지호 곡을 참고한 건 아닐까? 아니면 반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

강남 스튜디오.

박준호는 자신의 곡들을 모두 다시 들었다.

'파도 위의 음표'. '시작'. 'Neon Night'.

모두가 자신의 곡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을 따라 한 것 같은 느낌.

박준호는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창밖을 봤다.

강남의 빌딩들이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 빌딩들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쫓고 있었다.

박준호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준호는 손을 들었다.

그것은 자신의 손이었다.

하지만 그 손이 누구의 손인가 하는 의문이 자꾸만 떠올랐다.

지호의 손일 수도 있고,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일 수도 있다.

이 손가락이 만들어낸 음악이 정말 자신의 음악인가?

박준호는 손을 내려놨다.

그리고 창밖을 계속 봤다.

---

강북 스튜디오.

지호는 자신의 곡 '진실'이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이수현으로부터 들었다.

이수현은 울고 있었다.

"됐어. 정말 됐어!"

지호는 이수현을 안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했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지호는 노트북으로 돌아갔다.

다음 곡을 준비해야 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회귀 1년 중, 이미 8개월이 지나 있었다.

남은 시간은 4개월.

그 4개월 안에, 지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기로 결심했다.

음악 하나로.

박준호를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 그 자체로 자신을 증명하는 것으로.

하지만 지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 승리가 정말 승리인지를.

음악 이론으로 만든 곡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진정한 음악인지.

그것을 알기 위해, 지호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호는 다시 건반 앞에 앉았다.

그리고 새로운 멜로디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음 곡.

다음 도전.

그리고 남은 4개월 안에 박준호는 더 이상 지호를 모방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박준호 자신이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무서운 승리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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