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되자 손가락을 셌다.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 그리고 한 개 더. 일곱 개.
거울 앞에서 양손을 펼쳤을 때 오른손의 소지 옆에 또 다른 손가락이 있었다. 피부색은 같았고, 움직임도 자연스러웠다. 마치 애초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차준호는 손가락을 다시 세었다. 여전히 일곱 개였다. 왼손 다섯 개, 오른손 일곱 개. 불가능이 정상처럼 일어났다. 그의 손이 떨렸다. 이것이 루프 여덟 번째의 신호였다.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낯설었다. "루프 여덟 번째." 목소리가 또 바뀌었다. 더 낮아졌다. 전전 루프의 목소리는 더 높았는데. 손가락이 하나 더 생길 때마다 뭔가가 변했다. 손가락만이 아니라 목소리도, 얼굴도, 신체 전체가.
차준호는 손을 내려놨다. 손가락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이것이 자신의 신체 변화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의도적 개입인가. 루프 메커니즘이 만드는 부작용인가, 아니면 외부에서 자신을 조작하고 있는 증거인가. 차준호는 그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야 했다. 하지만 답을 얻기 전에 경찰이 자신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을 잡아갔다.
강남서 경찰서의 심문실은 회색이었다. 벽도, 탁자도, 의자도 모두 회색. 차준호는 그 회색 의자에 앉아 이준혁 반장의 얼굴을 봤다. 얼굴에 피로가 묻어 있었다. 48시간을 자지 않은 얼굴.
"넌 박민지한테 뭘 했어?"
이준혁이 폴더를 펼쳤다. 그 안에는 박민지의 진술서가 있었다. 차준호는 읽지 않았지만 내용을 알고 있었다. 박민지가 자신의 기억을 조작당했다고 증언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뭘 했는지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억 조작이라는 개념은 경찰이 받아들일 수 없는 영역이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박민지가 자살을 시도했어. 수요일 밤 열 시, 아파트 베란다에서. 다행히 이웃 주민이 비명을 들었어. 지금 중환자실에 있어."
차준호는 박민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베란다의 난간을 붙잡고 있는 손. 흔들리는 몸.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의 표정. 루프 7회차에서 자신이 본 것. 아니, 자신이 만든 것. 오른손의 일곱 번째 손가락이 떨렸다. 그는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감춰야 했다. 그것이 증거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최준환은 이틀 전부터 연락이 안 돼. 휴대폰도 꺼져 있어. 집에도 없어. 경찰청에서 수색 중이야. 넌 그한테 뭘 했어?"
"정말 모릅니다."
거짓이었다. 차준호는 최준환을 만났다. 루프 6회차였나. 루프 7회차였나. 손가락이 늘어나면서 시간 감각이 흐려졌다. 그때 최준환은 "당신이 그날 밤 뭘 했는지 알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다. 그 직후 최준환의 눈빛이 바뀌었다. 공포가 아닌 다른 감정. 차준호는 아직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너는 증인들의 기억을 조작하려고 했어."
이준혁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심문 테이블이 좁았다. 차준호와 이준혁 사이의 거리는 1미터도 안 됐다.
"어떻게?"
"모르겠어요."
"모르겠어? 박민지가 말했어. 넌 자꾸 그날 밤에 대해 물어봤대. 뭘 봤냐고, 뭘 들었냐고. 계속 같은 질문을 반복했대. 처음엔 평범한 손님인 줄 알았는데, 루프가 반복될 때마다 넌 자꾸 그 질문을 했고, 그러다 보니 박민지는 자신이 뭘 봤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대. 자신의 기억이 조작되고 있다고 느껴졌대."
차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준혁의 말이 맞았다. 자신은 증인들을 찾아다녔고, 기억을 조작했고, 그 결과 박민지는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최준환은 사라졌다.
"우리는 CCTV를 봤어. 넌 박민지를 세 번 방문했어. 루프 3회차, 루프 5회차, 루프 7회차. 매번 다른 시간에, 다른 옷차림으로. 그런데 신기한 건…"
이준혁이 노트북을 켰다. 모니터에 CCTV 영상이 떴다. 강남역 근처 카페의 내부 영상이었다. 차준호가 박민지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박민지의 얼굴에 점점 혼란이 스쳐갔다. 영상에는 음성이 없었다. 차준호의 입술만 움직이고 있었다.
"영상에는 뭘 하는지 안 보여. 넌 걍 말하고 있을 뿐이야. 하지만 박민지의 반응은 일관되지 않아. 루프 3회차에는 그냥 친절하게 대답해주더니, 루프 5회차에는 불안해하고, 루프 7회차에는 거의 공포 상태야. 같은 질문을 반복해도, 사람의 반응이 이렇게 달라지지 않아. 뭔가 다른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지."
영상이 멈췄다. 차준호가 박민지의 손을 잡고 있는 프레임이었다. 차준호의 손에는 일반적인 손가락이 있었다. 다섯 개씩. 루프 3회차의 차준호였다. 지금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 순간 차준호의 손가락이 떨렸다. 주머니 속에서. 일곱 개의 손가락이 모두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그 영상 속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을 향해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최준환. 넌 최준환을 만났고, 그 이후로 최준환은 사라졌어. 경찰견까지 투입했는데 흔적이 없어. 이미 죽어 있을 가능성도 있어."
"제가 최준환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알아. 넌 살인죄는 풀려났으니까."
이준혁이 몸을 뒤로 빼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친절해 보였지만 차준호의 등골을 식혔다.
"너한테서 나온 혈액형은 O형이야. 근데 아파트에서 발견된 혈액은 B형이야."
이준혁이 혈액 검사 결과를 펼쳤다. 차준호의 눈이 커졌다. 자신의 기억과 증거가 맞지 않았다. 자신은 분명히 손에 피를 묻혔다. 그 피가 서연의 피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혈액형이 다르다고?
"그리고 혈액량이 이상해. 누군가가 죽기에는 너무 적어. 보통 살인 현장의 혈액량은 이 정도가 아니야."
차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주머니 속의 손가락들이 더욱 심하게 떨렸다. 마치 자신의 신체가 자신의 죄책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여기 있어. 혈액에서 검출된 화학 물질이 있어."
이준혁이 또 다른 서류를 펼쳤다.
"뭔지 모르는 물질이야. 우리가 아는 의약품도 아니고, 마약도 아니고, 독도 아니야. 그냥 뭔지 모르는 물질. 이게 뭔 거야?"
차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의 기억이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기억이 뭐로 대체되어야 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본 것이 정말로 자신이 본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자신의 뇌에 심어놓은 것일까. 이준혁의 말이 계속됐다. 차준호는 그 말을 들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손가락이 떨리는 것만 들렸다. 일곱 개의 손가락이 모두 움직이고 있었다.
"대신 넌 증거 조작죄로 기소될 거야. 증인 협박, 증거 위조, 수사 방해. 적어도 다섯 개 이상의 죄목이 나올 거야. 이게 뭐 하는 거냐는 거야. 넌 무죄인데."
침묵이 깔렸다. 차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넌 무죄인데. 그 말이 자신을 옭아맸다. 왜 자신은 유죄처럼 행동했을까. 왜 자신은 서연을 죽였다고 확신했을까.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 그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 피가 정말 서연의 피일까. 루프가 반복될수록, 기억이 지워질수록, 손가락이 늘어날수록 그 확신은 무너졌다. 차준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목이 메었다. 손이 떨렸다. 주머니 속에서도 그 떨림이 느껴졌다. 자신이 정말로 무죄라면, 무엇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자신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신은희 형사가 찾아오겠어. 법적 조언을 해줄 거야. 이제 넌 변호사 없이는 한 마디도 하면 안 돼. 알겠지?"
차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개를 끄덕이는 동작이 어색했다. 자신의 목의 길이가 전전 루프와 다른 것 같았다. 루프가 반복될 때마다 자신의 신체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늘어나고, 얼굴이 변하고, 목소리가 달라지고. 그것이 정상일 리 없었다. 그것이 누군가의 의도적 개입이라면? 그렇다면 자신의 기억도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강남서 경찰서를 나가는 길은 길었다. 신은희 형사는 차준호에게 손목에 전자 팔찌를 채워줬다. 그 팔찌는 차준호가 강남 지역을 벗어나면 경찰에 신호를 보낼 것이었다. 루프가 반복되는 동안 차준호는 이 지역에 갇혀 있었다. 아파트와 경찰서, 카페와 편의점 사이를 오갈 뿐이었다.
"기소 절차가 시작될 거고, 법정에 나가게 될 거야. 그 전까지는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증인들을 만나지 마."
신은희의 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그녀는 동정하지 않았고, 설득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규칙을 전달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야. 최준환도, 박민지도, 그 누구도 널 도와주지 않을 거야. 그들은 피해자 입장이거든. 넌 그들의 기억을 조작한 사람이야. 법은 그들의 편이야."
차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은희는 돌아서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갔다.
거리는 회색이었다. 강남의 회색 건물들 사이를 차준호는 걸었다. 전자 팔찌가 발목을 조였다. 손의 일곱 번째 손가락이 떨렸다. 자신이 무죄라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자신이 유죄라면, 왜 경찰은 자신을 풀어줬을까.
오후 3시 22분, 강남역 근처 편의점에서 차준호는 신문을 집어 들었다. 헤드라인이 눈에 띄었다.
「라이온스 마크 아파트 살인 사건, 미해결 상태 지속」
「서연 양의 시신, 여전히 발견되지 않음」
「혈액 흔적 외 물리적 증거 부족… 경찰, 수사 재개」
차준호는 신문을 읽었다. 기사는 자신의 기억과 맞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기사가 자신의 기억을 부정했다. 시신이 없다고 했다. 물리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떻게 살인자가 되는가.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 그것은 분명했다. 자정마다 손에 피가 묻어 있었고, 자신은 그것이 서연의 피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확신이 증거는 아니었다. 경찰의 검사 결과에 따르면, 그 피는 B형이었고, 자신의 혈액형은 O형이었다. 그렇다면 그 피는 누구의 피일까.
차준호는 신문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갔다. 계산을 하려다 멈췄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이상했다. 왼쪽 눈이 오른쪽 눈보다 더 컸다. 코가 약간 휜 것 같기도 했다. 루프 7회차의 자신과는 다른 얼굴이었다. 자신의 신체가 루프마다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늘어나고, 얼굴이 변하고, 목소리가 달라지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다.
편의점을 나가며 신문을 다시 읽었다. 마지막 문단에 작은 글씨가 있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이상한 현상들이 감지되었으며,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닐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상한 현상들. 차준호는 그 표현에 머물렀다. 경찰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감지한 이상함이 자신의 기억 조작 능력일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이상함일까. 혹은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일까.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루프가 초기화되기까지 몇 시간이 남았을 것이다. 밤 11시 59분 59초가 되면 자신은 다시 자정이 될 것이고, 손에는 다시 피가 묻어 있을 것이고, 손가락은 또 다른 개수가 될 것이고, 얼굴은 또 다시 변할 것이다.
차준호는 강남역 근처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멈췄다.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골목의 그림자 속에서. 차준호는 고개를 돌렸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역광 때문이었나,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이었나.
"너 누구야?"
차준호가 물었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서 있을 뿐이었다. 차준호는 한 발 다가갔다. 남자의 얼굴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모자도 깊게 눌러써 있었다. 차준호는 그 남자의 눈을 보려고 했다. 그 순간 남자가 움직였다. 골목 더 깊숙한 곳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차준호는 따라가려다 멈췄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추적자인지 피해자인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누군가인지. 그 불확실성 속에서 누군가를 따라가는 것은 위험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자신을 피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차준호는 받았다.
"차준호?"
목소리는 낯설었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여성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누구세요?"
"당신은 누군가의 죄를 뒤집어쓰고 있을 수 있어. 당신의 기억이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봤어? 당신이 본 것, 당신이 기억하는 그날 밤. 그것이 정말 당신의 기억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당신의 뇌에 심어놓은 거 아닐까?"
목소리가 계속됐다. 차준호는 그 말을 들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전화기를 잡은 손이 떨렸다. 이 여성은 누구인가. 어떻게 자신의 번호를 알았는가. 그리고 자신의 신체 변화를 어떻게 알고 있는가.
"당신은 루프 안에 갇혀 있어. 그리고 루프가 반복될 때마다 당신은 변하고 있어. 손가락이 늘어나고, 얼굴이 바뀌고, 목소리가 달라지고. 그게 정상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당신을 실험하고 있는 거 아닐까?"
차준호의 호흡이 빨라졌다. 이 여성이 골목의 검은 옷 남자와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그 남자와 연결된 누군가일까. 그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뜻인가.
"누구세요? 어떻게 제 번호를…"
"당신의 기억을 믿지 마. 당신이 본 것을 믿지 마. 당신이 느낀 것만 믿어. 손에 묻은 피의 온기. 그것만이 진실이야."
"잠깐, 당신이 그날 밤에 있었던 사람입니까? 최준환을 어디로 데려갔어요? 박민지는?"
차준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전화가 끊어졌다.
차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가락이 일곱 개인 것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죄를 뒤집어쓰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서연을 죽인 사람은 자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자신의 손에 묻은 피는 뭐일까. 자신이 기억하는 그날 밤은 뭐일까. 혹은 그 기억 자체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전화의 목소리는 누구였을까. 그 목소리는 자신을 경고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을 협박하려는 것일까. 골목의 검은 옷 남자는 그 여성과 같은 사람인가. 아니면 자신을 쫓는 다른 누군가인가. 자신의 신체 변화가 루프 메커니즘의 부작용이라면, 왜 그 여성은 그것을 알고 있는가. 그것이 누군가의 의도적 개입이라면, 그 누군가는 누구인가.
시간이 자정에 가까워졌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100%가 되어 있었다. 루프가 초기화되기 직전의 신호였다. 차준호는 강남역 근처의 카페로 들어갔다. 같은 자리에 앉았다. 박민지가 일하는 카페. 하지만 박민지는 거기에 없었다. 대신 다른 직원이 자신을 서빙했다. 그 직원의 표정에는 동정이 있었다. 아마도 뉴스를 봤을 것이다. 살인 혐의로 기소된 남자. 증인 협박죄로 구속될 남자.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차준호가 주문했다. 다른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일곱 번째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그 손가락이 증거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메시지일까.
자정까지 3분이 남았다.
자신이 정말로 무죄일까. 그렇다면 자신은 뭐가 되는가. 살인자가 아닌 차준호는 누구인가. 기억 조작 능력을 가진 사람. 증인들을 협박한 사람. 증거를 조작한 사람.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조작당한 사람. 자신의 신체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 증거인가. 자신의 기억이 조작되었다는 증거인가. 아니면 자신이 진짜 살인자라는 증거인가.
자신이 정말로 유죄일까. 그렇다면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시신은 어디에 있는가. 경찰이 발견하지 못한 증거가 정말로 존재할까. 아니면 그 증거도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은 아닐까. 혈액형이 다르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가. 혈액에 섞인 미지의 화학물질은 뭘까. 그것이 자신의 신체 변화와 연결되어 있을까.
자정까지 1분이 남았다.
차준호는 손을 펼쳤다.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 그리고 한 개 더. 일곱 개. 손가락들이 모두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가락들 위에 핏자국이 있었다. 어디서 묻은 것인지 알 수 없는 피. 누구의 피인지 알 수 없는 피. 경찰의 검사 결과에 따르면 B형이었다. 자신의 혈액형은 O형이었다. 그렇다면 이 피는 누구의 것인가.
자정까지 10초가 남았다.
차준호는 카페의 창밖을 봤다. 골목 어딘가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혹은 자신을 쫓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남자가 전화를 건 여성과 연결되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조작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기억을 지우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의 신체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본 그날 밤은 정말로 자신이 본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낸 환상일까. 자신이 서연을 죽였다는 기억은 정말로 자신의 기억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심어놓은 거짓일까. 그렇다면 진짜 살인자는 누구인가.
자정까지 5초가 남았다.
차준호는 자신의 손가락을 다시 셌다. 일곱 개. 루프 아홉 번째가 되면 몇 개가 될까. 루프 열 번째는. 루프 백 번째는. 자신의 신체가 계속 변한다면, 언제까지 자신은 자신일 수 있을까.
그리고 시간이 자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