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밤 11시 52분. 화면 속 아이들의 얼굴이 작게 떠올랐다.
"오빠, 관찰자가 되면 우리도 살 수 있어?"
이혜진 언니 뒤에서 여섯 살 다솜이가 물었다. 준호의 손가락이 경직되었다. 휴대폰을 들었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응. 그럼."
거짓이었다. 준호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72시간 안에 관찰자가 되는 것도 불가능한데, 관찰자가 되면 모두가 산다는 약속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하지만 다솜이의 눈빛이 밝아지는 순간, 그 거짓을 부정할 수 없었다.
"정말이야?"
"응."
준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정수진이 그를 바라봤다. 그녀는 카메라 밖에 있었지만, 준호는 그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통화를 끝낸 후, 정수진이 물었다.
"뭐가 문제야?"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내려놨고, 서울숲 던전 출구의 벤치에 몸을 내팽개쳤다. 밤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그 감각마저 누구의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준호는 손가락을 움직여봤다. 움직임이 정교했다. 너무 정교해서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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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6, 오전 2시 15분.
강남역 지하 카페. 김태오가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
"서울의 던전 24개. 난이도별로 배치된 패턴을 봤냐?"
준호와 정수진이 화면을 내려다봤다. 빨간 선과 파란 선이 서울 지도를 엮고 있었다.
"A급 던전 12개는 모두 초능력이 필수다. 염동력, 시간 조작, 심화 마법. 신체 능력론 돌파 불가능한 구조다. B급 던전 8개는 반대. 순수 신체 능력만으로 설계됐다. E~C급은 혼합이지만, 명확한 의도가 보인다."
김태오의 손가락이 각 던전을 짚어갔다.
"각 던전을 보면 알 수 있어. A급들은 모두 초능력 사용자들이 클리어했고, B급들은 신체 능력 중심의 플레이어들이 클리어했어. 마치 누군가가 특정 플레이어들만 모든 던전을 돌파할 수 있도록 짜놓은 것처럼."
"그럼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정수진이 물었다. 그녀의 치유 마법 B급은 어느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았다.
"관찰자 자격이 없다고 판단된 거다."
김태오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럼 준호는?"
"준호는... 변수다. 버그 능력이 이 구조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누군가 준호를 관찰하고 있다."
준호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던전의 위치들이 의도적 패턴을 이루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문제지처럼. 그리고 준호는 그 문제지를 푸는 시험 대상일 뿐이었다.
"마지막 던전은?"
준호가 물었다.
"남산 탑 던전. S급. 클리어 성공률 3%."
김태오가 지도의 중심을 가리켰다.
"그곳에서 뭐가 일어날까?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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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6, 오전 5시 42분.
남산 탑의 밑자락. 준호와 정수진이 던전 입구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내복 차림의 남자. 길게 늘어진 검은 머리. 카리스마가 흘러나왔다. 박준혁이었다.
S급 플레이어 연합의 리더.
"이준호."
박준혁이 준호의 이름을 부르며 한 걸음 나섰다. 정수진이 준호의 팔을 잡았다.
"넌 버그 능력이 있지?"
직설적이었다. 준호는 대답을 피했다.
"우리 연합에 들어와. 함께라면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 약한 플레이어들, 관찰자 자격이 없는 쓰레기 같은 놈들을 정리하고, 우리만의 세상을 만드는 거다."
박준혁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선의의 미소가 아니었다.
"우리 연합에 있는 S급 플레이어들의 능력을 모두 복제하면, 넌 신이 될 수 있어. 생각해봐. 검술, 마법, 염동력, 모든 걸 손에 넣은 너."
준호는 입을 열었다.
"아니야."
"이미 생각한 거지? 혼자선 못 해. 마지막 던전은 혼자선 클리어 불가능해."
박준혁이 다가섰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모든 것을 꿰뚫는 톤으로 들렸다.
"넌 지금까지 뭘 복제했냐? 강민준의 염동력? 몇 개 더? 하지만 마지막 던전은 그런 게 아니야. 그곳엔 초월적인 것들이 있다. 하나의 능력론 부족해."
준호의 손이 주머니 속 휴대폰을 집었다. 상태창을 띄웠다. 화면이 떨렸다.
【남은 수명: 63시간 42분】 【미션 진행률: 16/24】
16개. 8개가 남았다. 남은 시간으로 나누면...
"48시간. 각 던전당 6시간씩."
준호가 중얼거렸다. 불가능했다. 현재까지의 평균 클리어 시간은 3시간이었지만, 던전의 난이도는 올라갈수록 높아진다. 마지막 8개는 모두 A~S급이었다.
"그렇지. 넌 계산할 수 있어. 혼자선 못 한다는 걸."
박준혁이 손을 내밀었다.
"우리와 함께해."
정수진이 준호의 팔을 잡아당겼다.
"저 사람 말 듣지 마. 넌 할 수 있어."
그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톤으로 들렸다.
박준혁이 웃음을 흘렸다.
"넌 뭘 모르는군. 이 게임은 절대로 혼자 이기는 게임이 아니야."
준호와 정수진은 그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박준혁의 말은 준호의 뇌리에 박혔다.
혼자선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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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66,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 47분까지.
17시간 47분.
8개의 던전을 돌파했다.
강남역 카페에서 출발한 후, 준호는 더 이상 정수진을 따라다니지 않았다. 그녀를 남기고 혼자 뛰었다. 마포 던전(A급). 클리어. 수명 1시간 감소. 혹은 새로운 능력 습득? 준호 자신도 헷갈리고 있었다.
강동 던전(B급). 클리어. 여기서 초음파 감지 능력을 복제했다. 어떤 플레이어의 것이었는지 준호는 이미 기억하지 못했다.
강서 던전(A급). 클리어. 시간 조작 D급. 수명 감소.
동대문 던전(B급). 클리어. 초능력 없이도 돌파 가능. 수명은 깎이지 않았다. 하지만 준호는 복제했다. 왜? 자신도 모른다.
준호의 상태창이 터지고 있었다.
【능력 목록】 1. 골든핑거 (원본) 2. 염동력 A급 (강민준) 3. 검술 S급 (박준혁 - 부분 복제) 4. 데이터 해석 (김태오) 5. 무기술 C급 (김태오) 6. 초음파 감지 D급 (이름 모름) 7. 시간 조작 D급 (이름 모름) 8. 방어 마법 C급 9. 재생 능력 D급 10. 강화된 신체 능력...
10개를 넘었다. 상태창이 10개 제한을 초과했다. 그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준호는 걸으며 손을 들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자신의 손가락인가? 다른 누군가의 손가락인가? 움직임이 너무 정교했다. 이것은 강민준의 염동력으로 움직이는 건가, 박준혁의 검술 반사신경인가, 아니면 원래 자신의 손인가?
오후 11시 47분, 편의점에 들어갔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얼굴이 낯설었다.
눈빛이 달랐다. 한 가지 색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의 눈이 겹쳐 있었다. 얼굴의 윤곽까지 변해 보였다. 뺨의 살이 깎여 있었고, 광대뼈가 튀어나왔다. 누군가의 얼굴 구조가 준호의 얼굴에 겹쳐지고 있었다.
손을 들었다. 손등의 혈관이 도드라져 있었다. 이건 자신의 손이 아니었다. 손가락의 길이도 다르고, 손목의 굵기도 다르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목소리를 내어봤다.
"..."
목소리가 떨렸다. 강민준의 저음과 박준혁의 고음이 동시에 섞여 나왔다. 마치 라디오 주파수가 겹친 것처럼.
휴대폰이 울렸다.
강민준의 메시지였다.
【마지막 던전 앞에서 만나자. 우리가 누구인지 확인해보자.】
준호는 거울 속 자신을 봤다. 그리고 그 자신을 인식하지 못했다.
상태창을 다시 띄웠다.
【미션 진행률: 23/24】
1개만 남았다. 남산 탑 던전. S급.
【남은 수명: 48시간 12분】
48시간. 던전 1개를 클리어하는 데 평균 8시간이 걸렸다. 남은 시간으로는 충분했다.
하지만 준호의 손이 떨렸다.
상태창의 능력 목록을 스크롤했다. 10개를 넘는 능력들. 그 중 어느 것이 자신의 원래 능력인가?
상태창에는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았다.
【원본 능력: ???】
물음표였다.
준호는 편의점을 나갔다. 밤거리를 걸었다. 발걸음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움직임이 누군가의 움직임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준호는 남산으로 향했다.
강민준을 만나러.
거울 속의 낯선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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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케이블카 정류소 앞. 오전 3시 42분.
강민준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후드를 입은 채로, 손에는 검을 들고 있었다. 검의 끝이 지면을 향했지만, 그것은 위협의 제스처였다. 준호를 향한 명백한 신호.
"늦었네."
강민준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하지만 그 목소리 안에는 단순한 적대감보다 더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호기심? 두려움? 아니면 절망감?
준호는 멈췄다. 거울 속 낯선 얼굴로 강민준을 마주했다.
강민준의 눈이 좁혀졌다. 그가 준호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검을 들고 있던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다. 염동력의 신호. 주변의 공기가 미세하게 떨렸다.
"넌... 뭐가 됐어?"
그 질문이 던져졌을 때, 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겠어."
목소리가 떨렸다. 여러 목소리가 중첩된 채로.
강민준이 한 발 다가섰다.
"내 능력을 복제했지? 내 기억이 네 안에 있어. 난 느껴. 네가 내가 되어가는 걸."
준호의 숨이 얕아졌다.
"넌 이미 나고, 내 염동력으로 생각하고 있어."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준호는 물러섰다. 강민준이 한 발 더 다가섰다. 검이 들렸다. 이번엔 진심이었다.
"멈춰."
목소리가 들렸다. 뒤에서.
박준혁이었다.
S급 플레이어 연합의 리더는 세 명의 부하를 데리고 나타났다. 모두 고급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박준혁의 검은 반짝였다. 검의 기가 실체화되어 있었다. S급의 진정한 위력.
"강민준. 물러서."
"박준혁..."
"이 아이는 우리가 필요해. 넌 마지막 던전 진입을 포기해. 넓은 마음 가져."
강민준의 검이 내려갔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했다. 준호를 향한, 뭔가를 확인하려는 눈빛.
박준혁이 준호 앞에 섰다. 검을 들지 않았다. 대신 손을 펼쳤다.
"너의 능력이 뭔지 알아. 복제. 완벽한 복제. 다른 플레이어의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 박준혁의 목소리에는 존경과 탐욕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 넌 혼자 마지막 던전을 클리어할 수 없어."
"왜 그래?"
"마지막 던전은 다르거든."
박준혁이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그의 눈빛이 예리해졌다.
"거기선 모든 능력이 무효화된다. 복제된 능력은 작동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원본 능력만이."
준호의 심장이 멈췄다.
"넌 23개 던전을 클리어했지? 하지만 넌 한 번도 자신의 원본 능력을 쓰지 않았어. 타인의 능력만 복제했고, 그것으로 돌파했어."
박준혁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그래서 넌 마지막 던전에서 실패할 거야. 혼자선 불가능해."
준호가 입을 열었다 닫았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박준혁이 손을 내밀었다.
"우리 연합에 들어와. 우리가 함께 그 던전을 돌파하자. 그 대신, 관찰자가 된 후 새로운 세계에서 우리와 함께 통치해. 넌 복제 능력으로 우리를 무한히 강화할 수 있고, 우리는 넌 보호해. 공생의 관계야."
그때 정수진이 나타났다.
"오빠!"
그녀는 숨이 찬 채로 달려왔다. 뒤에 김태오가 따라오고 있었다. 김태오의 손에는 폴더가 들려 있었다.
정수진이 준호 앞에 섰다. 박준혁과 대면했다. 그녀의 키는 박준혁의 절반도 안 됐지만, 눈빛은 지지 않았다.
"이 아이가 뭘 해낼 수 있는지 넌 모르는 거야."
"알아. 그래서 더 위험해. 저 아이가 지금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넌 못 본 거야?"
정수진이 준호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깊은 걱정이 가득했다.
"자신의 원본 능력을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는 거지? 왜냐하면 이미 넌 자신이 뭔지 잊었으니까."
준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김태오가 앞으로 나왔다. 폴더를 펼쳤다. 던전 배치도. 하지만 이번엔 다른 정보가 추가되어 있었다.
"준호. 이걸 봐. 던전 배치가 의도적으로 설계된 게 맞아. 각 던전은 특정 능력을 요구하도록 만들어졌고, 그 능력들은 특정 플레이어들이 가지고 있었어. A급 던전들은 초능력 중심. B급 던전들은 신체 능력 중심."
김태오가 눈을 들었다. 그의 시선이 박준혁을 향했다.
"마치 누군가가 특정 플레이어들이 관찰자가 되도록 유도하려고 한 것 같아."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박준혁이 말했다. "관찰자가 되는 게 중요하지, 방법이 뭐가 중요해?"
"방법이 중요하지."
김태오가 폴더를 다시 넘겼다. 새로운 데이터가 드러났다.
"마지막 던전의 진짜 조건이 여기 있거든."
박준혁의 검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뭐라고?"
"우리가 입수한 정보로는, 마지막 던전이 모든 복제 능력을 무효화한다고 했어. 하지만 그건 절반의 진실일 뿐이야."
"나머지 절반은?"
"마지막 던전은 '복제된' 능력을 무효화한다. 하지만 그 능력을 진정으로 자신의 것으로 '적응'시킨 경우는 다르다는 거야."
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72시간 동안 타인의 능력을 계속 복제하면서, 그걸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능력이 되는 거다. 복제가 아니라, 적응. 모든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
박준혁이 한 발 물러섰다. 그의 얼굴에 동요가 스쳤다.
"그런 건... 불가능해."
"그래서 우리가 확인하러 가는 거야."
김태오가 준호를 바라봤다.
"넌 할 수 있어. 넌 이미 충분히 많은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으니까."
휴대폰이 울렸다.
준호의 휴대폰.
화면에는 알려지지 않은 번호가 떠 있었다. 하지만 준호는 누가 전화하는지 알았다. 그 목소리는 이미 세 번 들었으니까.
'관찰자'의 목소리.
준호가 전화를 받았다.
"음... 준호."
관찰자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뭔가 불안정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넌 지금 선택의 갈림길에 있어."
"..."
"박준혁이 말한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마지막 던전은 정말 모든 복제 능력을 무효화한다. 하지만 그건 '복제된' 능력일 때의 이야기야. 넌 그 능력들을 진정으로 '적응'시켰거든."
"뭐... 뭐라고?"
"넌 72시간 동안 타인의 능력을 복제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어. 그 과정 자체가 넌 고유한 능력이야. 복제가 아니라, 적응. 모든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 그건 복제 능력이 무효화되어도 사라지지 않아."
준호의 손이 떨렸다.
"하지만..."
관찰자의 목소리가 변했다. 마치 미안함이 섞인 것처럼.
"그 능력을 쓰는 데엔 대가가 있어."
목소리 너머로 뭔가 불안정한 것이 울렸다. 신호가 흐트러지는 것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가 계속될 수도 있다는 거야. 모든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수록, 넌 너 자신을 잃어갈 거야."
"뭐... 뭐라고?"
"넌 그 대가를 감당할 수 있을까?"
전화가 끊겼다.
박준혁이 검을 내렸다.
"준호. 마지막 기회야. 우리와 함께 가. 그 대가가 뭔지 알 것 같거든. 그리고... 그걸 혼자 감당하는 건 불가능해."
정수진이 준호의 팔을 잡았다.
"오빠. 난 너와 함께할 거야. 뭐가 나오든."
"안 돼."
준호가 그녀의 손을 풀었다.
정수진의 눈이 흔들렸다.
"왜? 왜 혼자 가려고 해?"
"대가가... 뭔지 알아야 하니까."
"그럼 우리도 함께..."
"아니야."
준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거울 속 낯선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지금 난 내가 뭔지 모르는 상태야. 내 안에 몇 명이 있는지도 모르고, 어디가 내 경계인지도 모르고 있어. 그 상태에서 넌 가까이 있으면... 위험해."
"상관없어. 난..."
정수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남산 탑 던전의 입구가 빛나기 시작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있었다.
【남은 시간: 48시간】
【마지막 던전: 개방 예정】
박준혁이 한 발 물러섰다.
"가. 마지막 던전 안에서 우리는 적이 아니야. 모두가 우리 편이 되거든. 그리고 넌 그 사실을 깨닫게 될 거야."
준호가 던전 입구를 향해 걸었다.
정수진이 손을 잡으려 했다.
"넌 뭘 하든 준호야."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준호의 가슴 속에서 뭔가가 일어났다. 거울 속 낯선 얼굴들이 흐릿해졌다. 겹쳐진 눈빛들이 한 점으로 수렴했다. 그것이 자신의 눈이라는 걸 깨달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도, 자신이 누구가 되어가도, 정수진의 눈에는 자신이 준호였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자신의 원본 능력이 뭔지 몰라도, 그것을 지키려는 마음은 여전히 자신의 것이었다.
하지만 준호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혼자 가야 해. 던전 안에서 뭐가 일어날지 모르니까."
"왜?"
"대가가... 뭔지 알아야 하니까."
준호는 던전 속으로 들어갔다.
뒤에 정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하지만 준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던전 안의 어둠 속으로, 자신의 원본 능력을 찾아가며.
거울 속의 낯선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