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을 잃어가다
새벽 5시 47분. 준호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상태창을 켜는 순간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능력 목록이 너무 길었다. 스크롤을 내렸다. 또 내렸다. 끝이 없었다. 검술 S급, 염동력 A급, 치유 마법 B급, 강화 신체, 초감각, 시간 인지, 마법 방어막, 폭발 주문, 정신 강화, 데이터 해석, 무기술 C급...
손가락이 멈췄다.
'원래 능력'이라는 항목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상태창에는 남의 것들만 가득했다. 자신의 것을 찾을 수 없었다.
거울을 들었다. 얼굴이 낯설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그랬다. 눈빛이 누구의 것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문을 열고 나왔다. 거실 소파에 정수진이 앉아 있었다. 밤새 기다렸다는 게 눈에 띄었다.
"준호."
"응."
"넌 지쳐 보여. 좀 쉬어."
준호는 대답 없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음식이 있었지만 손이 가지 않았다.
"넌 밥을 먹지 않고 있어. 닷새 동안."
정수진이 뒤에서 말했다.
"괜찮아."
"괜찮지 않아. 너는 좀 이상해. 며칠 전의 넌 아니야."
준호가 돌아섰다.
"정수진, 너한테 부탁할 게 있어."
"뭔데?"
"너의 치유 마법을 복제하고 싶어."
정수진의 얼굴이 굳었다.
"아니야."
"왜?"
"왜냐고? 준호, 너한테 뭐가 문제야?"
준호가 한 발 다가섰다.
"문제가 없어. 난 지금 완벽해.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있어. 너의 것도 필요해."
"너는 뭔가 이상해."
정수진이 뒤로 물러났다.
"너 자신이 아니야. 며칠 전에 만났던 그 준호는 어디 가? 그 친구는 내 말을 들었어. 내 눈을 봤어. 지금 넌..."
"지금 난 강해."
준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게 다야?"
"난 모든 걸 할 수 있어."
"그래서 날 복제하고 싶어? 내 능력이 필요해?"
준호가 정수진의 손목을 잡았다.
순간, 준호의 손이 떨렸다. 이 손이 누구의 손인가? 강민준의 손인가? 박준혁의 손인가? 아니면 자신의 손인가?
손가락을 펼쳤다 오므렸다. 손목을 비틀었다. 하지만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남의 팔을 움직이는 것처럼.
정수진의 눈빛이 변했다. 두려움이 아니었다. 절망이었다.
"놓아."
"정수진..."
"난 말했어! 너는 너가 아니야!"
정수진이 팔을 빼쳤다. 그 순간, 준호의 몸 안에서 뭔가 터져나갔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공포. 이 손도, 이 목소리도, 이 눈도 모두 남의 것일 수 있다는 공포. 그것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준호의 손이 떨렸다. 상태창을 다시 켰다. 남은 수명: 12시간 3분.
휴대폰이 울렸다. 김태오였다.
"세종대로 지하. 30분 안에 와."
"뭐가..."
"모든 플레이어에게 메시지가 갔어. 마지막 던전 위치가 공개됐어."
전화가 끝났다. 정수진은 이미 방을 나가고 있었다.
---
오전 8시 42분. 세종대로 지하.
대로 아래의 광활한 공간에는 이미 수백 명의 플레이어가 모여 있었다. 그 중심에는 거대한 석문이 서 있었다. 표면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관찰자의 시험'
준호가 주변을 둘러봤다. 박준혁의 S급 플레이어 연합이 석문 바로 앞을 차지하고 있었다. 준호를 보자 박준혁이 천천히 일어섰다.
"이준호."
"박준혁."
"미안해. 넌 들어갈 수 없어."
박준혁이 검을 뽑았다. 그의 주변 연합원들도 무기를 들었다.
"마지막 던전은 자신의 능력으로 클리어할 수 있는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어. 넌 남의 능력으로 가득 찬 거지?"
준호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려고 손을 들었다.
그 순간, 멈췄다.
자신의 원래 능력이 무엇인지 몰랐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떤 능력을 발동해야 하는지, 어떤 움직임이 자신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뭐 해? 빨리 싸워."
박준혁의 검이 빠르게 날아왔다. 준호는 반사적으로 염동력으로 막았다. 돌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강민준의 능력이었다.
박준혁이 다시 공격했다. 이번엔 검술 S급으로 막아야 했다. 준호의 몸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도 누군가의 움직임이었다.
정수진이 나타났다.
"준호!"
박준혁이 검을 그들 앞에 내렸다.
"가."
"뭐라고?"
"가, 정수진. 이 친구는 이제 넌 아니야. 넌 날 따라와."
"싫어!"
정수진이 준호를 붙잡으려 했다. 그 순간 김태오가 나타나 정수진의 팔을 잡았다.
"우린 나중에 만나. 지금 넌 혼자 선택해야 해."
"아니야! 준호!"
정수진이 끌려가며 절규했다. 준호는 그것을 보면서도 움직이지 못했다.
박준혁의 검이 준호의 얼굴 옆을 스쳤다.
"자, 이제 너는 혼자야. 넌 뭐야? 말해봐."
준호가 대답할 수 없었다.
박준혁과 그의 연합은 석문 앞에 섰다. 그들의 손이 동시에 올라갔다. 석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안은 절대적인 어둠이었다.
연합원 하나, 둘, 셋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박준혁이 돌아섰다.
"넌 여기서 기다려. 우린 관찰자가 되고 올 테니까."
석문이 닫혔다.
준호만 남겨졌다.
---
밤 9시 12분.
준호는 세종대로 지하의 어둠 속에서 혼자 남겨진 채 남은 8개 던전을 돌았다. 강남역 던전. 검이 손에서 떨어졌다. 서울숲 던전. 돌들이 공중에서 떨어졌다. 삼성역 던전. 마법 방어막이 풀렸다.
능력이 작동하지 않았다.
마치 빌린 옷이 자꾸만 벗겨지는 것처럼.
상태창을 켰다.
미션 진행률: 24/24.
모든 던전이 클리어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의미가 없었다. 마지막 던전이 남아 있었고, 그곳은 닫혀 있었다.
---
**D-36시간**
밤 11시 47분. 준호는 다시 세종대로 지하로 돌아왔다.
석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그 표면에는 여전히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관찰자의 시험'
준호의 손이 석문을 만졌다. 그 순간, 새로운 메시지가 상태창에 나타났다.
'당신의 진정한 능력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es / No
준호의 손가락이 Yes를 향해 움직였다.
그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준호."
준호가 돌아섰다.
강민준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이상했다. 마치 준호 자신을 보는 것처럼.
"넌 누구야?"
강민준이 다시 묻었다. 이번엔 도발이 아니었다. 진정한 질문이었다.
준호가 대답하려던 순간, 강민준의 몸이 흐릿해졌다. 마치 환각처럼.
그리고 준호는 깨달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
손가락이 Yes 위에 멈췄다.
---
**D-34시간 12분**
아침 7시 23분. 준호는 강남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깼다.
어제밤 기억이 명확하지 않았다. 강민준을 봤던가? 아니면 꿈이었던가? 상태창을 켰다.
남은 수명: 35시간 47분.
손가락을 아래로 스크롤했다. 능력 목록이 나타났다. 그리고 계속 나타났다.
강민준의 염동력. 박준혁의 검술. 마도사 A의 화염마법. 초능력자 B의 순간이동. 격투가 C의 육체강화. 궁사 D의 정확도. 마법사 E의 방어막. 무술가 F의 신경 반응. 암살자 G의 기습. 검객 H의 기 조종.
10개. 20개. 30개.
스크롤은 끝나지 않았다.
손가락을 멈췄다. 목록의 맨 아래. 그곳에는 비어 있었다.
'원래 능력: [데이터 손상]'
준호가 상태창을 닫았다.
거울로 접근했다. 얼굴이 낯설었다. 눈의 색깔이 며칠 전과 다른 것 같았다. 아니, 눈 자체가 다른 것 같았다. 왼쪽은 차가운 파란색, 오른쪽은 뜨거운 붉은색. 하나는 강민준의 것이고, 하나는 박준혁의 것이었다.
"내 얼굴이 어디 갔어?"
준호가 중얼거렸다. 목소리도 낯설었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정수진이었다. 화면을 켜고 닫았다. 다시 켜고 닫았다. 세 번째, 받았다.
"준호! 넌 어디야? 괜찮아?"
정수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응. 여기."
"여기가 어디야? 박준혁 그 새끼들이 날 못 들어가게 했고, 너는 사라졌잖아. 뭐 한 거야?"
준호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뭘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정수진."
"응?"
"내가 누구야?"
전화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긴 침묵.
"뭐라고 했어?"
"내가 누구냐고."
"넌... 준호지. 이준호."
"그게 뭐야? 이름은 뭐야?"
정수진이 숨을 쉬었다. 준호는 그 숨소리가 울음인지 한숨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준호야. 제발 잠깐만 있어. 난 지금 가는 중이야.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래?"
준호가 휴대폰을 내렸다. 전화를 끊고 싶었다. 정수진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준호는 그 말이 자신을 위한 것인지,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휴대폰을 던졌다. 침대 위에 떨어졌다.
---
**D-32시간 47분**
오후 1시 35분. 준호는 고아원으로 갔다.
이혜진 원장이 준호를 보자 입을 벌렸다.
"준호? 넌..."
"이혜진 원장."
준호의 목소리가 차갑게 나왔다. 강민준의 말투였다.
"뭐하고 있어?"
"뭐... 뭐하고 있다니?"
"넌 뭐하고 있어? 아이들을 왜 여기 놔두고 있어?"
이혜진이 물러섰다. 준호의 눈빛을 본 것 같았다.
"준호, 뭐가 문제야? 넌 아프니?"
준호가 고아원 복도를 걸었다. 아이들이 보였다. 작은 아이들. 게임화 전에 준호가 자신의 동생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낯설었다. 마치 처음 본 것처럼.
"준호!"
수진이가 뛰어왔다. 8살 짜리 여자아이였다.
"오빠! 오빠!"
수진이가 준호의 다리를 안았다. 준호의 손이 수진이의 머리를 터치했다. 그 순간, 뭔가가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수진이의 감정이 준호에게로 흐르고 있었다.
두려움. 불안감. 그리고... 사랑.
준호가 손을 떼었다.
"오빠? 뭐해?"
수진이가 준호를 봤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오빠가 아니야! 오빠가 아니야!"
준호가 물러섰다. 이혜진이 수진이를 안았다.
"준호, 밖으로 나가. 지금 넌..."
"뭐가 문제야?"
"넌 자신이 아니야."
이혜진의 말이 정수진의 말과 같았다.
준호가 고아원을 나갔다. 밖의 햇빛이 너무 밝았다. 눈을 감았다. 왼쪽 눈은 더 밝게 느껴졌고, 오른쪽 눈은 더 어둡게 느껴졌다.
"제대로 된 눈도 없어."
준호가 중얼거렸다.
---
**D-32시간 15분**
밤 10시 22분. 준호는 지하철 역 계단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누구도 준호를 쳐다보지 않았다. 아니, 쳐다봤지만 눈을 돌렸다. 마치 준호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휴대폰이 울렸다. 김태오였다.
"이준호."
"응."
"넌 지금 어디야?"
"모르겠어."
김태오가 잠시 침묵했다.
"세종대로 지하에 와. 빨리."
전화가 끊겼다.
준호는 일어섰다. 몸이 무거웠다. 마치 누군가의 몸을 입고 있는 것처럼.
---
**D-32시간 15분**
밤 10시 54분. 세종대로 지하의 석문 앞.
김태오가 서 있었다. 그의 옆에는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관찰자의 목소리를 낸 인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목소리였고, 이건 육체였다.
"관찰자는 존재하지 않아. 관찰자는 관찰 대상이야."
김태오가 말했다.
"뭐?"
"넌 처음부터 관찰 대상이었어. 모든 게."
준호가 상태창을 켰다. 그 안에 새로운 메시지가 있었다.
'관찰자 자격 인증: 진행 중'
"뭐야 이게?"
"넌 이미 모든 던전을 클리어했어. 24개."
"마지막 던전은?"
"마지막 던전은 넌 절대 클리어할 수 없어. 그게 시험이야."
"뭐가 시험이야?"
김태오가 준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신을 잃은 자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게 시험이야."
그 순간, 준호의 상태창이 깜빡였다. 그리고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당신의 모든 복제 능력이 봉인됩니다. 남은 능력: 0개'
준호의 몸이 흔들렸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 안에서 빠져나가는 것처럼.
"뭐야! 뭐가 된 거야?"
"넌 이제 아무것도 없어. 복제도, 적응도, 아무것도."
김태오가 준호의 얼굴을 봤다.
"넌 뭐야? 이제."
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석문이 울렸다. 마치 누군가가 안에서 두드리는 것처럼.
콩. 콩. 콩.
규칙적인 소리였다.
"박준혁이 실패했어."
김태오가 말했다.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마지막 던전을 클리어할 수 없었어. 그게 이 시험의 진짜 의미야. 남의 능력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는가. 박준혁은 그걸 못 했어."
"그럼 넌?"
"넌 선택할 수 있어. 이 석문을 열고 들어갈 수도, 아니면 관찰자 자격을 포기할 수도."
"포기하면?"
"넌 살아. 새로운 세계에서 죽지 않고 살아. 하지만 아무도 아닌 채로."
준호의 손이 올라갔다. 석문을 만지려고.
그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준호!"
정수진이었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준호 앞에 섰다.
"넌 왜 내 전화를 받지 않았어?"
"정수진. 여기 오면 안 돼."
"왜? 넌 뭐해? 뭐가 되려고 그래?"
정수진이 준호의 손목을 잡았다. 그 순간, 준호의 손이 떨렸다. 이 손목이 누구의 것인가? 정수진이 잡은 것이 정말 자신의 손목인가?
하지만 정수진의 터치는 확실했다. 따뜻했다.
"나 봐. 나 봐!"
정수진이 준호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 손길이 준호의 뺨을 만날 때, 무언가가 깨어났다. 복제되지 않은 감정이 흘러들었다.
"넌 이준호야. 번지점프를 하다가 처음 상태창을 받은 그 애야. 넌 고아원에서 자란 애고, 수진이의 오빠고, 내 친구야. 넌 뭐든 될 수 있어. 하지만 아무도 아니어도 돼. 그냥... 넌 이준호야."
준호가 정수진을 봤다. 정수진의 눈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진정한 이준호를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준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호흡이 돌아왔다. 손가락이 정수진의 팔을 감싸며 온기를 되찾았다. 차갑던 몸이 따뜻해졌다. 누군가의 손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를 안는 감각.
준호의 상태창이 깜빡였다.
그리고 새로운 능력이 나타났다.
'원래 능력: 적응'
하지만 그 아래에는 더 있었다.
'새로운 능력: 선택'
상태창이 다시 깜빡렸다. 능력 목록이 변했다. 수십 개의 복제 능력 중 일부가 남았다. 그 아래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었다.
'통합된 능력: 적응과 선택의 융합'
선택이란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능력을 취사선택하는 것. 남의 것을 무분별하게 취하는 게 아니라 필요한 것을 선별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준호가 손을 들었다. 하지만 석문을 열지 않았다. 정수진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나 가."
"어디로?"
"모르겠어. 그냥... 밖으로."
김태오가 준호를 봤다. 그의 얼굴에는 예상 밖이라는 표정이 있었다.
"관찰자 자격을 포기하는 거야?"
"응."
준호가 정수진과 함께 걸어갔다. 세종대로 지하의 어둠을 통과했다.
뒤에서 석문이 울렸다.
콩. 콩. 콩.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상태창을 켰다.
'관찰자 자격: 취소됨'
'생존 확률: 0%'
'새로운 선택: 가능'
준호와 정수진이 지하에서 나왔다. 밖의 밤공기가 들어왔다. 새로운 세계의 밤공기.
"이제 뭘 할 거야?"
정수진이 물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넌 옆에 있어?"
"응. 항상."
준호가 정수진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그 순간, 하늘이 깜빡였다.
마치 누군가가 화면을 껐다가 다시 키는 것처럼.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흥미롭군요. 첫 번째 변수가 나타났습니다."
관찰자의 목소리였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생존, 아니면 진실?"
준호가 하늘을 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수진이 준호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뭐가 들려?"
"목소리. 관찰자의."
"뭐라고?"
"선택하라고. 생존이냐 진실이냐."
정수진이 준호의 눈을 봤다.
"그럼 뭘 선택할 거야?"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하늘을 봤다.
상태창이 점진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적응과 선택이 서서히 빛나오더니, 그 아래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었다.
'새로운 능력: 거부'
"둘 다."
준호가 중얼거렸다.
"둘 다? 그게 뭐야?"
"생존도 진실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거야. 선택하라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는 거야. 난 지금 선택할 거야. 내가 선택한 거야."
하늘이 다시 흔들렸다.
마치 게임이 크래시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