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강남역 지하 입구. 준호의 손이 떨렸다.

상태창이 열렸다. 입구 주변의 플레이어들 정보가 일렬로 떠올랐다. 스캔 능력이 자동으로 작동했다. 플레이어 이태석, 염동력 B급. 플레이어 최민지, 화염마법 C급. 플레이어 강호진, 신체강화 D급. 준호는 목록을 읽어내려갔다. 그 순간, 이태석에게 손을 뻗었다.

복제를 시작했다.

세상이 뒤틀렸다. 누군가의 기억이 준호의 의식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엄마의 손. 그 손이 자신—아니, 이태석을—때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부러질 때의 통증. 손가락 하나로 물체를 집어올릴 때의 쾌감. 그리고 그 쾌감 뒤에 오는 죄책감. 왜 자신이 이 죄책감을 느끼는가. 이건 자신의 기억이 아니다. 그런데 왜.

준호는 비명을 질렀다.

"어?"

이태석이 돌아봤다. 준호의 손이 이태석의 팔에서 떨어졌다. 상태창에 메시지가 떴다.

【이태석의 능력을 복제했습니다】 【남은 수명: 70시간】

70시간. 계산이 맞았다. 1시간이 깎였다. 하지만 준호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이태석의 기억이 계속 자신의 의식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엄마의 손. 손가락이 부러지는 감각.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자신이 경험한 것처럼 생생했다.

"괜찮아?" 이태석이 물었다.

"응... 응."

준호는 입구로 향했다. 다리가 불안정했다. 뒤에서 이태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친구, 게임 처음인가?"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던전 입구의 검은 문을 통과했다. 순간 세상이 뒤틀렸다. 강남역 지하 미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강남역 지하 던전 진입】 【제한 시간: 3시간】 【클리어 조건: 중앙 광장 도달】

미로는 끝없이 얽혀 있었다. 벽에는 눈이 그려져 있었다. 준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벽의 눈이 따라왔다. 환각이었다. 게임화 공지에서 본 영상에 따르면 강남역 던전은 육체적 장애보다 정신적 장애가 주요 공격 수단이라고 했다. 하지만 준호는 복제한 능력을 사용했다.

손가락을 펼쳤다. 이태석의 염동력이 깨어났다.

벽이 움직였다. 거대한 벽돌 블록들이 공중에 떠올랐다. 준호의 정신력이 그것들을 움직였다. 블록 하나가 앞길을 막고 있는 거대한 장벽으로 날아갔다. 벽이 부서졌다. 타인의 능력을 손에 넣었을 때의 쾌감이 흘러내렸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된 쾌감.

그 순간, 다시 기억이 침입했다. 이태석의 기억. 손가락이 부러진 손으로 물건을 집어올릴 때의 죄책감. 그 죄책감이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껴졌다.

준호는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갔다. 미로의 다음 구간. 바닥에 함정이 그려져 있었다. 발을 디디면 떨어지는 함정이다. 준호는 다시 염동력을 사용했다. 함정 위의 바닥을 공중으로 띄웠다. 그 위를 걸어갔다. 1시간 30분이 지났을 때, 준호는 중앙 광장에 도달했다.

【강남역 지하 던전 클리어】 【소요 시간: 1시간 30분】 【클리어 보상: 경험치 + 10】

상태창이 업데이트되었다.

【미션 진행률: 1/24】

24. 숫자가 머릿속에 박혔다. 24개의 던전. 남은 시간 69시간 30분. 평균 2시간 54분씩 클리어해야 한다. 지금까지 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다른 던전들은 더 어려울 것이다. 계산이 맞지 않았다.

던전 출구에서 정수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 진짜 미쳤어? A급에 혼자?"

정수진은 준호의 옷깃을 잡았다. 작은 체구였지만, 손의 힘은 강했다.

"괜찮아. 클리어했잖아."

"클리어? 1시간 30분 만에? 혼자?"

정수진의 얼굴이 창백했다. 그녀는 준호를 놓지 않았다.

"고아원 애들이 너한테 뭔가 기대하고 있다는 거 알아? 혜진 언니도 너 믿고 있어. 근데 넌 혼자 이런 짓을..."

"정수진, 진정해."

"진정? 넌 24개를 3시간씩 클리어할 수 있냐고? 72시간 안에?"

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수진의 질문이 정확했다. 24개 × 3시간 = 72시간. 이동 시간을 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다른 던전들을 더 빠르게 클리어해야 한다. 어떻게.

정수진이 손을 펼쳤다. 낡은 사진이 들어있었다.

"이거 봐."

사진 속에는 번지점프 타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준호가 있었다. 번지점프 직전. 하지만 배경이 이상했다. 타워 뒤쪽에 기하학적인 기호들이 약하게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숨겨놓은 것처럼.

"너 게임화될 때 거기서 떨어지고 있었잖아. 그리고 그때 상태창을 얻었다고."

"응."

"이 기호들 봤어? 넌 이걸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준호는 사진을 자세히 봤다. 기호들이 점점 선명해 보였다. 마치 자신이 이미 본 것처럼. 하지만 기억이 없었다.

"모르겠어. 처음 봐."

정수진이 한숨을 쉬었다.

"그럼 넌 뭘 할 거야?"

"뭐?"

"다른 사람 능력만 쓸 거야? 고아원 12명을 살리려고 하는 건 아니냐고."

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수진의 질문이 또 정확했다. 준호의 계획은 단순했다. 모든 던전을 클리어한다. 관찰자가 된다. 살아남는다. 하지만 고아원의 12명은. 그들도 각각 모든 던전을 클리어해야 한다. 그건 불가능하다. 정수진의 능력은 B급 치유 마법이다. 던전 클리어에 충분하지 않다.

"나도 함께 할 거야."

정수진이 말했다.

"뭐?"

"내가 관찰자가 될 수 있다면, 혜진 언니도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함께 고아원 애들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준호는 정수진을 바라봤다. 정수진의 눈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진지했다. 그 순간, 준호의 머릿속에 생각이 떠올랐다.

정수진의 B급 치유 마법을 복제하면 어떨까.

그 생각이 들었을 때, 준호는 불편해졌다. 타인의 능력을 복제하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정수진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뭔가 잘못되었다. 정수진의 손을 잡는 것과 정수진의 능력을 복제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그런데 준호는 그 차이를 잊고 있었다. 이태석의 기억이 자꾸만 흔들렸다. 부러진 손가락의 통증. 죄책감.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닌데도 자신의 것처럼 느껴졌다.

"고마워. 하지만..."

"하지만 뭐?"

준호는 정수진의 손을 보았다. 따뜻한 손이었다. 복제할 수 있는 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해야 돼."

정수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왜?"

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왜 혼자여야 하는지. 왜 정수진의 능력을 복제하지 않는지. 왜 타인의 능력에만 의존하면서도 자신의 능력은 사용하지 않는지. 이태석의 죄책감이 자신의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두려웠다.

정수진이 손을 뻗었다. 준호의 팔을 잡았다.

"정말로?"

"응."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수진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준호를 놓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손을 내렸다.

"그럼... 조심해."

서울 거리는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72시간이 시작된 지 몇 시간이 지났다. 정확히는 25시간이 지났다. 남은 시간 47시간. 남은 던전 23개. 그리고 고아원의 12명.

준호의 상태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주의: 복제 능력 사용 횟수 1/3】 【경고: 복제 능력 3회 제한. 초과 사용 시 능력이 봉인됩니다】

두 번 더만 복제할 수 있다. 그 후에는 자신의 능력만으로 14개의 던전을 클리어해야 한다. 자신의 원래 능력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준호."

정수진이 다시 말했다.

"넌 정말 뭘 할 거야? 너만의 능력 말이야."

준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대답이 없었다.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복제만 할 줄 알 뿐.

그때 준호의 상태창에 새로운 알림이 떴다.

【다음 던전 위치: 서울숲 (B급)】 【추천 클리어 시간: 4시간】 【경고: 야생 몬스터 다수. 염동력 능력 권장】

준호의 눈이 떨렸다. 서울숲. 그곳에는 강민준이 있을 수도 있다. 강민준의 염동력은 A급이었다. 준호가 복제한 것은 B급이었다. 차이가 있었다. 만약 강민준과 마주친다면.

"어디 가?"

정수진이 물었다.

"서울숲."

"지금? 밤인데?"

"시간이 없어."

준호는 정수진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결의가 있었다. 정수진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준호는 돌아섰다. 뒤에서 정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호! 잠깐!"

하지만 준호는 멈추지 않았다. 서울숲으로 향했다. 밤의 거리는 고요했고, 상태창의 숫자들만 계속 내려가고 있었다.

【남은 수명: 69시간 30분】 【남은 던전: 23개】 【미션 진행률: 1/24】

그리고 상태창의 한 구석에, 뭔가 이상한 메시지가 떠 있었다. 준호는 그것을 읽으려고 했지만, 순간 시야가 흐려졌다. 이태석의 기억이 다시 침입했다. 엄마의 손. 손가락이 부러질 때의 통증. 그리고 그 손으로 물건을 들어올릴 때의 죄책감. 누군가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준호는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구의 죄책감이야..."

준호가 중얼거렸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오직 시간만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

서울숲 입구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밤 11시, 공원 전체가 어두운 숲으로 변해 있었다. 준호는 입구의 던전 게이트 앞에 섰다. 진홍색 빛이 공중에 떠 있었고, 그 너머는 검은 안개로 가득했다.

상태창이 떠올랐다.

【서울숲 던전 (B급) - 야생동물 형태 몬스터】 【진입 가능 플레이어: 모두】 【클리어 제한 시간: 4시간】 【권장 능력: 신체 강화, 염동력, 마법】

준호는 심호흡을 했다. 복제한 염동력은 여전히 상태창에 남아 있었다. B급이었지만, 서울숲 던전은 B급이다. 충분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게이트 옆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혼자 들어갈 거야?"

여성의 목소리였다. 준호가 돌아봤다. 검은 방한복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얼굴은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지만, 눈은 또렷했다. 상태창을 스캔했다.

【이름: 박지은 (여, 27세)】 【능력: 야생동물 조종 B급】 【경험치: 78%】

"같이 갈래? 이 던전은 혼자 가면 위험해. 야생동물들이 집단으로 움직여. 내가 그들을 조종할 수 있으니까."

준호는 잠깐 생각했다. 정수진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박지은의 능력을 복제하면 수명이 1시간 더 줄어든다는 계산이 떠올랐다. 마지막 복제 기회를 아껴야 한다.

"혼자 가겠습니다."

"그래? 그럼 조심해."

박지은은 웃음을 흘렸다. 뭔가 알고 있는 듯한 웃음이었다. 준호는 그녀를 더 이상 보지 않았다. 게이트 속으로 뛰어들었다.

---

서울숲 던전의 내부는 예상 이상으로 넓었다. 실제 숲과 다를 바 없는 나무들, 그리고 그 위에서 움직이는 거대한 그림자들. 준호는 복제한 염동력으로 감지했다. 움직이는 것들이 수십 개는 있었다.

【염동력 감지 범위: 50m】 【감지된 몬스터: 34개】

34개. 너무 많았다. 준호는 숨을 고르려 했지만, 그때 첫 몬스터가 나타났다.

거대한 늑대. 아니, 늑대 같은 것. 크기는 소의 2배는 되어 보였다. 눈이 빨갛게 빛났다.

"오!"

준호가 손을 펼쳤다. 염동력을 방출했다. 공기가 진동했다. 늑대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으아악!"

나무에 충돌한 늑대는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바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달려왔다. 준호는 또 손을 펼쳤다. 이번엔 더 강하게.

늑대의 몸이 휘었다. 척추뼈가 꺾이는 소리가 들렸다.

【몬스터 처치: 1/34】

상태창이 업데이트됐다.

준호는 빠르게 움직였다. 염동력으로 나무를 부수고, 함정을 피하고, 몬스터를 격퇴했다. 1시간이 지났을 때 이미 18개를 처치했다. 복제한 B급 염동력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아니, 생각보다 자신이 능숙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준호의 시야가 갑자기 변했다. 숲이 아니라 도시가 보였다. 어딘가의 아파트. 그리고 누군가의 손. 그 손이 흔들리고 있었다. 두려움에 차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를 애원하는 목소리였다.

"누구 기억이야..."

준호가 중얼거렸다. 이태석의 기억이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의 기억이었다. 자신의 기억일까. 아니, 이것도 복제된 누군가의 것인가. 준호는 혼란스러웠다.

그 순간, 또 다른 거대한 몬스터가 나타났다. 호랑이. 검은 호랑이였다.

【보스급 몬스터: 검은 호랑이】 【난이도: B+ (예상)】

호랑이가 달려왔다. 준호는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염동력을 최대로 방출했다.

공기가 폭발했다. 호랑이의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준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더 강하게 밀었다. 호랑이가 나무에 박혔다.

"헉... 헉..."

준호가 숨을 고르고 있을 때, 호랑이가 다시 일어났다. 눈이 더 빨갛게 빛났다.

준호는 발을 내디뎠다. 뒤로 물러났다. 염동력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강민준의 A급 염동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들었을 때, 준호의 상태창에 경고가 떴다.

【복제 가능 대상 감지: 강민준 (A+)】 【거리: 200m 이내】

그리고 동시에 다른 메시지가 떴다.

『플레이어 이준호. 당신은 계획을 벗어난 변수다.』

차갑고 절대적인 목소리였다. 관찰자의 목소리였다. 준호의 눈이 크게 떠졌다.

호랑이가 다시 달려왔다. 준호는 재빨리 몸을 굴렸다. 발톱이 지나갔다. 옷이 찢어졌다.

준호가 손을 펼쳤다. 복제한 염동력으로 호랑이를 밀어냈다. 호랑이는 한 번, 두 번, 세 번 날아갔다. 하지만 계속 일어났다.

그때, 옆에서 또 다른 염동력이 작동했다.

호랑이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강민준의 염동력이었다. 준호보다 훨씬 강력했다. 호랑이는 한 순간에 산산조각났다.

【보스급 몬스터 처치】

준호는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폈다. 검은 그림자가 나무 위에서 내려왔다.

"이준호."

강민준이었다. 얼굴에는 피가 묻어 있었고, 눈빛이 날카로웠다.

"또 봤네."

"뭐 하는 거야?"

준호가 물었다.

"뭐 하는 것처럼 보여? 던전을 클리어하는 거지."

강민준이 웃음을 흘렸다. "근데 넌 왜 여기 있어? 혼자? 너 B급 능력 가지고 보스 몬스터 상대하려고?"

"상관없잖아."

"상관없다고? 넌 혼자 죽을 뻔했는데?"

강민준이 다가왔다. 준호는 뒤로 물러났다. 그의 눈을 보니 뭔가 이상했다. 분노가 아니라 호기심이었다.

"넌 뭐야?"

강민준이 물었다. "진짜 뭐야? 어제는 내 능력을 복제했고, 지금은 혼자 던전을 클리어하고... 너 진짜 뭐냐고?"

"몰라."

준호가 대답했다.

강민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몰라? 진짜 몰라?"

"응."

"그럼 뭘로 살아갈 거야? 다른 사람 능력만 복제해서? 그게 너의 능력이냐고?"

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이 날카로웠다. 자신도 모르는 답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강민준이 손을 들었다. 염동력이 모였다. 준호는 본능적으로 손을 펼쳤다. 자신의 염동력을 방출했다.

두 힘이 충돌했다. 공기가 진동했다. 나무들이 흔들렸다. 준호는 밀렸다. 강민준의 A급 염동력이 B급 염동력을 압도했다.

"왜 싸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지은이었다. 그녀가 나무 위에서 내려왔다. 손가락을 튕겼다. 주변의 야생동물들이 나타났다. 사자, 표범, 곰...

"싸우지 마. 이미 보스는 죽었잖아."

박지은이 말했다. "시간 아까워."

강민준과 준호는 동시에 손을 내렸다. 염동력이 사라졌다.

"다음엔 조심해."

강민준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준호를 깊이 바라봤다. 마치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이.

"넌 자신의 능력을 찾아야 해. 복제만으로는 끝까지 못 간다. 너는 다르거든."

강민준은 그 말을 남기고 숲 속으로 사라졌다.

준호는 그의 말을 되씹었다. 자신의 능력을 찾아야 한다. 복제만으로는 못 간다. 그런데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박지은이 준호에게 다가왔다. 야생동물들은 자동으로 길을 비켜줬다.

"고마워요."

"괜찮아. 대신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뭐요?"

"너 왜 혼자 하려고 해? 다른 사람들 능력을 복제할 수 있으면서?"

준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 질문도 날카로웠다. 모두가 같은 질문을 했다. 정수진도, 강민준도, 그리고 지금 박지은도.

"몰라."

박지은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마치 뭔가 확인한 듯이. 그녀는 손을 들었다. 야생동물들이 준호를 향해 걸어왔다.

"가. 던전 출구는 저쪽이야."

준호는 박지은을 지나쳐 뛰어갔다. 야생동물들은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단순히 길을 비켜줄 뿐이었다.

---

던전 출구에 도착했을 때, 상태창이 업데이트됐다.

【서울숲 던전 클리어 - 1시간 47분】 【미션 진행률: 2/24】 【남은 수명: 68시간 30분】

준호는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밤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여전히 밤이었다. 시간은 2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정수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괜찮아?"

"응."

"진짜?"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로 계속 달려가고 있었다. 강민준의 질문이 자꾸 떠올랐다. *'넌 뭐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강민준은 마지막에 뭔가 더 말했다. *'넌 다르거든.'*

무엇이 다른가.

"다음 던전은?"

정수진이 물었다.

준호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 순간, 뭔가 이상했다. 상태창이 깜빡였다. 그리고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주의: 복제 능력 사용 횟수 2/3】 【경고: 마지막 복제 기회 1회 남음】

마지막 복제. 그 후에는 자신의 능력만으로 14개의 던전을 클리어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준호? 넌 뭘 생각해?"

정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호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남성의 목소리였다. 차갑고, 절대적인 목소리였다.

『플레이어 이준호. 당신은 계획을 벗어난 변수다.』

준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관찰자의 목소리였다.

『당신의 행동은 예측 범위를 벗어났다. 마지막 복제 기회를 사용하기 전에, 한 가지를 알려주겠다.』

정수진도 그 목소리를 들었는지 주변을 둘러봤다.

『당신의 진정한 능력은 복제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부작용일 뿐이다.』

목소리가 끝났다. 하지만 그 말은 준호의 뇌에 박혔다. 복제가 부작용이라고? 그렇다면 자신의 진정한 능력은 무엇인가.

『당신이 복제할 때마다, 당신은 그들의 기억을 받는다. 그리고 당신은 그 기억들을 견디고 있다.』

목소리가 계속됐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이미 죽었다. 당신만 남았다. 왜냐하면 당신은 다르기 때문이다.』

정수진이 준호의 팔을 잡았다.

"준호? 뭐 하는 거야?"

준호는 정수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정수진도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정수진도 던전을 클리어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정수진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마지막 복제 기회를 현명하게 사용하라. 당신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당신이 찾는 답은 당신 자신 안에 있다.』

목소리가 사라졌다.

준호의 상태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경고: 던전 배치 이상 감지】 【경고: 다른 플레이어의 추적 감지】 【경고: 시간 제한 단축 - 남은 수명: 68시간 30분 → 60시간】

8시간이 사라졌다. 준호는 상태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아래에 또 다른 메시지가 있었다.

【당신의 진정한 능력이 무엇인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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