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의 경련은 멈추지 않았다.
루이제는 검은 문 안의 어둠 속에서 아모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리움. 절망. 분노. 모든 감정이 한데 섞여 지하 깊숙한 곳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카이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고, 벨린다와 레오는 양옆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루시안은 한 발 물러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모르에게 물어보세요. 저주의 이유를."
루시안의 목소리는 희미했다. 마치 물속에서 들리는 말처럼.
루이제가 입을 열려던 순간, 위에서 발소리가 내려왔다. 빠르고, 날카롭고, 절박한 발소리.
"루이제!"
에스테르의 목소리였다. 지금까지 들어본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음성이었다. 정중함은 사라졌고, 오직 광기만 남았다.
에스테르는 계단을 내려오며 검은 문 앞에서 멈췄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흔들리고 있었다. 손에는 작은 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검은 액체가 들어 있는 병.
"물러서."
에스테르가 카이를 향해 외쳤다.
"이것은 너희 문제가 아니다."
카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팔은 더욱 루이제를 가까이 당겼다.
"루이제가 뭘 했는지 아느냐?" 에스테르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가 깨워낸 것이 뭔지 알려주마. 그것은 우리 가문의 저주다. 3대 전 가주의 죄의 구현이다. 그리고 지금 그 괴물이 깨어나고 있다!"
루이제는 에스테르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순간, 그녀의 손가락이 격렬하게 경련했다.
골든핑거가 반응했다. 에스테르의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두려움. 절박함. 그리고 그 아래 숨겨진 더 깊은 감정들. 권력을 잃을 수 없다는 절박함. 가문의 비밀이 드러날 수 없다는 광기. 루이제 때문에 자신의 모든 계획이 무너지고 있다는 분노.
그런데 그 모든 것의 바닥에는...
외로움이 있었다.
루이제는 숨을 멎었다. 에스테르의 외로움이 너무 진했다. 오랫동안 혼자였던 감정. 누군가에게 필요한 적이 없었던 감정. 감정 억압의 법칙만이 진리인 이 가문에서, 그조차도 따뜻함을 원했던 감정.
"루이제, 물러서!"
에스테르가 병을 들어올렸다.
"이 약이 뭔지 아느냐? 너의 능력을 영구적으로 봉인하는 독이다. 고대부터 마수 사회에서 금지된 약. 하지만 나는 이것을 만들었다. 너 때문에 이 가문이 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에스테르가 병을 깨뜨리려 했다.
루이제의 손가락 경련이 극도로 심해졌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에스테르의 감정이 너무 강했다. 그 속에서 루이제는 자신의 감정을 잃어가고 있었다. 에스테르의 절박함이 자신의 절박함이 되고, 그의 두려움이 자신의 두려움이 되어가고 있었다.
벨린다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에스테르. 멈춰라."
벨린다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호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벨린다는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저주의 원인을. 감정 억압이 저주를 만들었다는 것을.
"당신은 저주를 지속시키려 하고 있다."
벨린다가 말했다.
"우리 가문은 감정을 억압해왔다. 그것이 저주를 만들었다. 아모르의 절망이, 분노가 저주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감정을 억압했다. 저주를 풀 방법이 감정을 마주하는 것인데, 당신은 그것을 막으려 한다."
에스테르의 손이 떨렸다.
"그렇지 않으면 가문이 무너진다!"
"무너져야 한다."
벨린다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슬픔이 있었다.
"우리 가문은 이미 죽었다. 감정 없이는 살 수 없다. 나도 알고 있었다. 루시안도 알고 있었다. 루이제가 나타나기 전까지, 우리는 그저 죽은 것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레오가 움직였다. 그는 천천히 에스테르에게 다가갔다.
"형. 내려놔."
레오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형이 뭘 두려워하는지 나도 안다. 가문에서 버림받는 것. 필요 없는 존재가 되는 것. 하지만 나 봐. 나는 가문을 떠났는데도 죽지 않았어. 오히려 살기 시작했어."
에스테르는 여전히 병을 들고 있었다.
루이제는 여전히 경련하는 손가락으로 에스테르의 감정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의 두려움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곧 그는 절대 돌아올 수 없는 선택을 할 것이었다. 루이제의 능력을 빼앗거나, 아니면 자신의 모든 계획을 포기하거나.
루이제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녀는 선택했다.
능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골든핑거를 끄겠다는 의지가 몸 전체를 관통했다. 손가락 끝에서 심장까지 이어진 능력의 경로를 역으로 막아야 했다. 의식을 극도로 집중시켜 그 길을 꾹 눌러야 했다.
그 과정은 마치 자신의 몸을 거스르는 것과 같았다.
능력은 흐르고 싶어 하고, 몸은 그 흐름을 따르고 싶어 하는데, 정신만으로 모든 것을 제어해야 했다. 손가락 끝에서 뜨거운 열이 치솟았다. 그것이 심장 방향으로 향하려 할 때마다 루이제는 이를 악물고 그 흐름을 역으로 눌러 내렸다. 마치 끓어오르는 것을 억누르는 것처럼. 찢어질 듯한 고통이 팔 전체를 훑고 지나갔다.
손가락의 빛이 서서히 꺼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극도의 피로가 밀려들어왔다.
"에스테르."
루이제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능력 없이, 오직 따뜻한 목소리만으로 에스테르에게 말했다.
"당신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에스테르의 손이 멈췄다. 그의 호흡이 가빠졌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당신이 가문을 지키려 한 것도, 비밀을 숨기려 한 것도... 모두 누군가에게 필요하고 싶었기 때문 아닐까요?"
루이제가 천천히 다가갔다.
"저주는 감정을 억압할 때 깊어집니다. 하지만 감정을 마주할 때 녹아갑니다. 당신도 그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무서운 거죠. 감정을 마주하면, 당신도 변할 거니까."
에스테르의 손이 흔들렸다. 병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가 나왔다.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에스테르가 낸 적 없는 음성. 마치 벽 안에 갇혀 있던 누군가가 처음 외치는 것처럼.
"나는... 나는..."
말이 끝나지 않았다. 그의 어깨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당신을 꺾기 위해 능력을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당신도 이 가족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루이제의 손이 에스테르에게 향했다. 그 손은 경련하지 않았고, 능력도 담지 않았다. 그저 따뜻한 손이었다.
에스테르는 루이제의 손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수십 년을 감정 없이 살아온 마수가 처음으로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떨렸다. 목구멍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려 했다. 억압되어 있던 모든 것이.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병이 손에서 떨어졌다. 검은 액체가 지하의 차가운 바닥에 흘렀다. 에스테르의 어깨가 크게 흔들렸다. 그는 울고 있었다. 처음으로. 진정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루이제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루이제의 몸이 흔들렸다.
극도의 피로가 온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마치 모든 힘이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 루이제는 골든핑거를 5화 이후로 가장 강하게 사용했다. 에스테르의 모든 감정을 감지하고 마주했다. 그리고 능력을 끄기 위해 모든 의식을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신력이 완전히 소진되고 있었다.
"루이제!"
카이가 그녀를 받아냈다.
루이제의 눈이 점점 흐려졌다. 세상이 회전하고 있었다. 지하실의 어둠이 더욱 짙어졌다.
그녀의 의식 속에는 모든 것이 섞여 있었다. 전생의 기억도, 현생의 기억도, 에스테르의 감정도. 그 속에서 루이제는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가고 있었다.
카이의 팔이 더욱 단단해졌다.
"넌 루이제야."
카이가 속삭였다.
"루이제. 넌 루이제다. 내 아내. 우리 가족의 루이제야."
하지만 루이제는 이미 의식을 잃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느낀 것은 지하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아모르의 울음소리였다.
그리움.
절망.
그리고...
루이제를 부르는 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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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제의 침실에는 카이만 남았다. 그는 창문 옆에 서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봄 정원은 밤의 어둠 속에 침잠해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초록 싹들이 자라고 있었다.
루이제는 침대 위에서 얕은 숨을 쉬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경련하고 있었다.
카이는 그 손을 잡았다.
"곧 깨어날 거야."
카이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넌 누구인지 다시 기억할 거야."
하지만 카이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루시안이 말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루이제의 능력이 너무 강해지면, 그녀는 자신과 남의 감정을 구분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정체성이 붕괴될 수도 있다고.
창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봄 정원의 초록 싹들이 흔들렸다.
그리고 지하 깊숙한 곳에서...
아모르의 울음이 더욱 커졌다.
---
아침이 왔을 때, 루이제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벨린다가 침실에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카이와 달리 벨린다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저주 때문이 아니었다. 딸의 위기 때문이었다.
"상태가 어떻게 되나?"
벨린다가 물었다.
"같다."
카이가 짧게 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묻어났다. 밤새 루이제의 손을 놓지 않은 손가락들이 굳어 있었다.
벨린다는 루이제의 얼굴을 들었다. 그 얼굴은 마치 백지 위에 무언가를 계속 지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표정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 고요했다.
"루시안은?"
"도서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루이제를 깨울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다."
카이가 대답했다. 그는 창문을 통해 밖을 봤다. 정원의 초록 싹들이 어제보다도 더 무성해져 있었다. 마치 루이제의 의식이 빨아당기는 것처럼.
벨린다의 눈이 그 방향으로 움직였다.
"저것을 봤나?"
"봤다."
카이는 루이제의 손을 더 단단히 쥐었다.
"가주님."
셀레나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그녀의 눈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밤새 울었던 흔적이 선명했다.
"루시안님이 루이제님을 봐야 한다고 하십니다."
셀레나가 말했다.
"그리고... 에스테르님이 깨어나셨습니다."
침실이 순간 정적으로 가득 찼다.
"어디에?"
카이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지하실 입구입니다. 혼자서 나오셨대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셀레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카이와 벨린다가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에스테르가 스스로 나왔다는 것은. 그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였다.
---
지하실 입구는 이상했다.
검은 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그 앞에 에스테르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마치 백지처럼 보였다.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있었다.
"에스테르."
카이가 다가갔다.
에스테르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있었다. 이전의 계산적인 빛이 사라져 있었다. 그 자리에는 텅 빈 공허함이 남아 있었다.
"나는..."
에스테르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처음 말을 배우는 사람처럼 어색했다.
"나는 무엇인가?"
카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벨린다가 물었다.
"밤새 무엇을 했나?"
"모르겠습니다."
에스테르가 대답했다.
"루이제를 원했고... 그 다음은 기억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떨렸다. 마치 루이제의 손처럼.
"지하실에서는?"
벨린다가 다시 물었다.
에스테르의 눈이 흔들렸다. 마치 그 기억을 더듬으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것처럼.
"그곳에서... 루이제가 저를 안았습니다."
에스테르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입술도 함께 떨리고 있었다.
"능력 없이. 그냥... 따뜻하게."
그의 목소리에는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없습니다. 눈을 뜨니 여기였습니다."
에스테르의 손가락이 더욱 심하게 경련했다. 마치 루이제와 같은 상태로 빠져들고 있는 것처럼.
벨린다와 카이는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의 눈빛에는 같은 생각이 담겨 있었다. 에스테르가 루이제와 같은 상태에 빠졌다는 것. 감정이 너무 깊게 각성되어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것.
"루시안을 불러오라."
카이가 명령했다.
셀레나가 달려 나갔다.
---
도서실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루시안은 책들 사이를 오가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그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굳어 있었다. 밤새 루이제를 깨울 방법을 찾아 헤맸던 흔적이 선명했다. 책장 옆에는 그가 뒤적거린 수십 권의 책들이 쌓여 있었다.
셀레나가 들어오자 루시안은 고개를 들었다.
"루이제는?"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에스테르님이..."
셀레나가 상황을 설명했다. 루시안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그렇군요."
루시안이 중얼거렸다.
"이미 시작되었군요."
"무엇이?"
셀레나가 물었다.
루시안은 한 권의 책을 들었다. 그 책의 표지는 낡고 해진 것이었다. 그 위에는 고대의 문자로 무언가 쓰여 있었다.
"루이제의 능력은 감정을 깨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능력은 양날의 검이에요. 그녀가 너무 많은 감정을 깨울 때, 그 감정들이 역으로 흘러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죠."
루시안이 설명했다.
"에스테르가 깨어난 것은... 루이제가 그의 감정을 완전히 깨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루이제 자신도 그 감정에 잠식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그리고 지하에서 일어난 일은..."
루시안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루이제의 능력을 끄는 과정에서 에스테르와 루이제 사이에 감정의 역류가 발생했을 겁니다. 루이제가 능력을 끄기 위해 의식을 극도로 집중시키는 순간, 그 집중력이 에스테르의 감정을 더욱 강하게 자극했을 거예요. 그 결과 에스테르는 자신의 감정에 완전히 압도되어 기억을 잃은 것이고..."
"루이제님은?"
셀레나가 소리쳤다.
"루이제님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루시안은 책을 펼쳤다. 그의 손가락이 한 구절을 가리켰다. 그의 눈빛이 변했다. 설명이 아닌, 감정의 흐름을 감지하는 듯한 표정으로.
"'감정의 괴물이 깨어나면, 신부는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의 흐름 속에서 영원히 길을 잃을 것이다.'"
루시안의 목소리가 떨렸다.
"우리는 루이제를 깨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기억하게 해야 해요. 자신이 누구인지. 그렇지 않으면 루이제는 이 저택 속에 갇힌 채 영원히 자신을 찾지 못할 거예요."
---
침실로 돌아온 루시안은 루이제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여전히 경련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두 가지 리듬이 섞여 있었다. 루이제의 경련과 아모르의 부름이.
"루이제."
루시안이 속삭였다.
"들리나요? 난 루시안입니다. 당신을 기억하세요. 루이제. 당신의 이름은 루이제입니다."
루이제의 눈이 흔들렸다. 그녀가 꿈 속에서 무언가를 듣고 있다는 신호였다.
"당신은 웹소설을 읽다 이곳에 왔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죠. 하지만 당신은 계속 나아갔어요. 차가운 저택을 녹이려고. 상처 입은 가족들을 안으려고."
루시안의 목소리가 더욱 또렷해졌다.
"당신은 루이제예요. 쇠약한 신부가 아니라. 강한 신부예요. 자신의 온기로 모든 것을 녹이는."
루이제의 입술이 움직였다.
카이가 침대 위에 앉았다. 그는 루이제의 얼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말했다.
"넌 루이제야. 내 아내야. 벨린다의 며느리야. 레오의 형수야. 이 저택의 신부야."
카이의 목소리는 결연했다.
"그리고 넌 내가 필요한 사람이야."
그 순간, 루이제의 눈이 떠졌다.
하지만 그 눈은 공허했다. 마치 깊은 우물 같은 눈이었다.
지하 깊숙한 곳에서 아모르의 울음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더 이상 그리움만의 울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루이제를 부르는 울음이었다.
마치 루이제를 자신 속으로 끌어당기려는 울음이었다.
루이제의 손가락이 침대 위의 직물을 할퀴기 시작했다.
"루이제!"
카이가 그녀를 안아 올렸다.
"깨어나! 넌 루이제야! 루이제!"
하지만 루이제는 이미 두 개의 세계 사이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전생의 기억도, 현생의 기억도, 에스테르의 감정도, 아모르의 울음도 모두 섞여 있는 그곳에서.
그 순간, 침실의 창문이 열렸다.
봄 정원의 바람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바람에 실려 들어온 것은 초록 싹의 향기였다.
그것은 생명의 향기였다.
루이제의 콧등이 경련했다. 그녀는 그 향기를 맡았다.
정원이 아모르와 연결된 공간이라는 것을 기억했다. 벨린다가 정원을 가꿀 때마다 아모르의 울음이 잠잠해졌다. 생명을 심을 때마다 저주의 절망이 한 박자 멈추었다. 정원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이 저택의 심장이었고, 아모르의 감정이 흐르는 통로였다.
그 깨달음이 루이제를 깨웠다.
정원을 가꾸던 벨린다의 손.
함께 흙을 파던 카이의 침묵.
웃음을 되찾아가던 레오의 얼굴.
그 모든 것이 섞여 있는 따뜻함.
"나는..."
루이제가 입을 열었다.
"나는 루이제예요."
그녀의 눈이 천천히 초점을 되찾기 시작했다.
"나는 이 가족의 신부예요."
카이가 그녀를 더욱 단단히 안았다.
"그리고 나는..."
루이제가 카이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피로가 가득했지만, 더 이상 공허함은 없었다.
"나는 당신의 아내예요."
그 말을 하는 순간, 루이제의 손 경련이 멈췄다.
지하 깊숙한 곳의 아모르의 울음도 한 박자 멈추었다.
마치 그것도 루이제의 말을 듣고 있는 것처럼.
루시안이 책을 내려놨다.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요. 그것이 바로 길이었어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 자신이 누구인지 선택하는 것."
루시안이 중얼거렸다.
"루이제는 이제 길을 잃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책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 책에는 아직도 많은 글귀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감정의 괴물이 깨어나면, 신부의 선택만으로는 부족하다. 괴물 자신도 자신을 기억해야 한다.'"
루시안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그리고 아모르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침실의 창밖에서 봄 정원의 초록 싹들이 흔들렸다. 마치 아래에서 밀어올리는 것처럼.
저 아래에서.
검은 흙 속에서.
아모르가 계속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