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음협곡에서 나흘을 더 보낸 한설의 손가락은 이제 시신의 손가락 같았다.
창백함을 넘어 반투명에 가까워진 그것을 들었을 때, 냉월의 영혼이 다시 말했다.
"매번 깎인다. 그것이 계약의 값이다."
한설은 대답하지 않았다. 협곡의 석벽을 따라 칼을 긋고, 다시 긋고, 또 긋는다. 손가락이 떨렸다.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 존재 자체가 희박해지는 느낌. 마치 자신이 서서히 투명해지고 있는 것처럼.
"당신의 시간은 많지 않다. 더 빨리 배워야 한다."
영혼의 목소리가 더 강해졌다. 처음 협곡에서 들었을 때는 바람 소리처럼 희미했건만, 이제는 귀를 때리는 현실감이 있었다. 마치 영혼이 한설의 몸 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오고 있는 것처럼.
한설은 검을 들었다.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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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 본부의 무술대회장. 관중의 함성이 울렸다.
두 번째 라운드는 아침해가 중천에 떴을 때 시작됐다. 한설의 상대는 정파 청운파의 제자, 오장진이었다. 나이는 서른을 넘겼고, 정파 내에서도 제법 이름난 검객이었다.
"한설, 청운파 명월검파 제자." "오장진, 청운파 제자."
심판의 목소리가 울렸다.
한설이 일어섰다. 냉월을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검은 무거웠다. 이틀 전과는 다른 무게감이었다.
오장진이 웃음을 흘렸다. "사파 출신이 정파 복장을 입다니. 우습군."
한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검이 맞섰다.
오장진의 공격은 강했다. 정파 정통 무공인 청운검법의 기본기는 견고했고, 십 년 이상 다진 내공이 뒷받침됐다. 한설의 방어는 명월검파의 흐르는 움직임을 따랐다. 명월이 가르쳐준 그대로.
다섯 번의 교차 이후, 한설의 시력이 흐려졌다. 마치 물속에 잠긴 것처럼 세상이 뿌옇게 보였다.
영혼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이제 써라."
한설이 냉월을 들어올렸다. 천 년을 기다린 검객의 기법이 손가락 끝으로 전해졌다. 검이 가볍게 회전했다. 공중에서 뒤틀리는 궤적. 정파의 검술에서는 본 적 없는 움직임이었다.
오장진의 검이 부서졌다.
칼날이 아니라 검 자체가 중간에서 두 동강이 났다. 부러진 게 아니라 깨져나간 것처럼. 관중이 숨을 삼켰다.
한설의 손에서 피가 흘렀다. 손가락 사이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진홍색이 아니라 검은색. 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 자체가 흘러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옥순 장로가 일어났다. 정파의 관계자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강산의 얼굴은 표정이 없었지만, 눈빛은 변했다. 계산하는 눈이었다. 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설의 승리."
심판이 외쳤다. 관중의 박수가 터졌다. 그러나 그 박수는 응원보다는 경악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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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나고 한 시간 뒤, 명월이 대회장 뒤의 조용한 복도에 나타났다.
한설이 기대고 있던 석벽에서 일어났다. 손가락을 움켜잡았다. 피가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더 쓸 거야?"
명월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필요한 만큼."
"그것이 당신의 목숨을 깎는다는 걸 알면서?"
한설이 명월을 바라봤다. 명월의 얼굴이 가까웠다. 너무 가까워서, 한설은 그의 눈 안의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다른 방법이 없다."
"있다. 냉월을 버리면 된다."
"절대 안 된다."
명월이 한설의 손목을 잡았다. "당신은 이미 죽어가고 있어. 손가락을 봐. 발가락은 어떨까? 가슴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어?"
"충분히."
"충분히?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 나도 있고, 서운도 있다."
명월이 한설의 손을 꼭 잡았다. "내 스승이 남긴 기록에 냉월의 부작용을 완화하는 비법이 있어. 당신이 죽기 전에 충분히 시간이 있다면 배울 수 있다. 내가 너를 가르쳐줄 수 있어."
한설이 명월을 바라봤다.
"그리고 내 검술도 있다. 명월검파의 검술은 당신의 냉월과 다를 수 있어. 냉월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정말 혼자가 아니야."
명월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당신은 혼자여야 한다."
한설이 손목을 빼냈다. 명월의 손이 떨어졌다.
"당신은 정말..."
명월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가 멈췄다. 마침내 그는 말했다.
"당신은 정말 죽음을 택했구나."
그 말이 돌처럼 떨어졌다.
한설은 대답하지 않았다. 명월이 돌아섰다. 복도의 어두운 곳으로 사라졌다. 그의 등이 작아졌다. 한설은 그 등을 바라봤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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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내렸다.
서운이 나타난 것은 정파 본부의 뒷골목이었다. 한설이 기다리고 있던 자리였다.
"너는 미쳤다."
서운의 첫 말이 그것이었다.
"무슨 말인가."
"오장진의 검을 부러뜨렸어. 정파 전체가 떠들고 있다. 냉월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사파 이단아가 정파의 가보를 훔쳤는지, 너를 제거해야 한다는 말까지."
한설이 침묵했다.
"그리고 임호와 유진이 손을 잡았다."
"어떤 의미인가."
"문자 그대로다. 두 파벌이 너를 제거하기로 합의했다는 뜻이야. 임호는 정파의 질서를 지키자며 공격하고, 유진은 선거전의 정당성을 지키자며 겉으로는 너를 지지하는 척하면서 명분을 붙이고 있다."
한설이 서운을 바라봤다.
"강산이 이 둘을 연결한 거야. 임호는 공격하고, 유진은 방어의 명분을 만들고, 강산은 상황을 관찰한다. 정파 내 원로들에게는 '공정한 선거'로 보일 거야."
서운이 한설의 어깨를 잡았다. "포기해라. 아직 늦지 않았다."
"포기할 수 없다."
"왜?"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를 잊었나."
서운의 손이 떨어졌다. "그렇다면 죽어라. 그게 네 길이라면."
서운이 돌아섰다. 그의 뒷모습도 작아졌다.
한설은 그 길을 따라가지 않았다. 대신 하늘을 봤다. 달이 떠 있었다. 명월검파의 검, 명월이 그 이름 아래 수련한 그 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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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더 깊어졌을 때, 한설은 정파 본부의 뒤뜰로 갔다. 정파 원로들의 회의실 근처였다.
문이 열려 있었고, 강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임호는 언제쯤 움직일 예정인가."
"이틀 뒤 삼 라운드 직전에 한설을 찾아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좋다. 그렇게 되면 정파 내 여론은 자동으로 갈릴 것이고, 원로들은 '사파 이단아로 인한 혼란'이라 판단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정당한 이유로 그를 제거할 수 있다."
한설이 회의실 입구에 나타났다.
강산과 그의 측근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한설이 왔군."
강산이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놀람이 없었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냉월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측근이 물었다.
"냉월은 한설과 함께 회수할 것이다. 그 후 다시 봉인하거나 파괴한다. 금지된 유물이 현재의 질서를 흔들 이유는 없다."
강산이 한설을 바라봤다. "정파의 기초는 질서다. 한설, 당신은 그 기초를 흔들려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죄다."
한설이 입을 열었다.
"임호와 유진이 나를 제거하기로 합의했다고?"
"그렇다."
강산이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리듬감 있는 태핑. 그 소리는 시계의 초침처럼 규칙적이었다. 강산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마치 사냥감을 바라보는 포식자의 눈.
"그럼 나는 그들을 만나겠다."
한설이 돌아섰다. 강산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내일 경기 후에는 당신이 없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계획이다."
한설은 대답하지 않았다. 회의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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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냉월의 영혼이 다시 말했다.
"넌 감지했다. 그들의 음모를."
"예."
"그래도 계속할 건가."
"예."
"왜?"
한설이 검을 들었다.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냉월의 영혼이 웃음을 흘렸다. 천 년을 기다린 존재의 웃음이었다.
"좋다. 그렇다면 더 강해져야 한다."
기법이 전해졌다. 천음협곡에서 배우지 못한 새로운 기법. 냉월의 영혼이 이제까지 아껴뒀던 비급. 한설의 몸이 경련했다. 가슴에서 피가 올라왔다. 호흡이 곤란해졌다. 마치 폐가 찢어지는 것처럼.
"이 기법을 쓰면 임호도, 유진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한설이 검을 휘둘렀다. 공중에 상처가 났다. 현실 자체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상처. 한설의 눈빛이 변했다. 더 이상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새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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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라운드 전날 오후, 한설은 대회장의 관중석에 앉아 있었다. 다른 후보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유진이 상대와 검을 맞추고 있었다. 정파 정통 무공 청운검법의 최고 경지. 그것은 아름다웠고, 완벽했다.
그러나 한설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보인 것은 유진의 검 속의 틈이었다. 그 틈으로 냉월의 기법이 들어갈 수 있는 곳들.
임호가 옆에 나타났다.
한설은 고개를 돌렸다.
"사파 이단아가 정파의 최고 자리를 노린다니. 무림의 질서를 흔드는 것 아닌가."
임호의 목소리는 도발적이었다. 그의 뒤에는 유진이 서 있었다. 유진은 한설을 보고 있었다. 마치 이미 죽어 있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삼 라운드가 기대되는군. 넌 그 자리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재미있는 쇼가 될 것 같다."
임호가 돌아섰다. 유진도 따라갔다.
한설은 그들의 뒷모습을 봤다. 그리고 손가락을 펼쳤다.
손가락은 이제 거의 투명했다. 냉월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일이다."
한설이 손을 쥐었다. 손가락 끝에서 검은 혈관이 떠올랐다. 마치 낙엽이 시들어가는 것처럼, 생명력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 힘이 들어갔다.
"기다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은 정해졌다. 넌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
영혼의 목소리는 차갑고 명확했다. 마치 법칙을 선포하는 것처럼. 한설은 그 목소리를 부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거짓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매 검격마다 가슴에서 올라오는 것이 피였고, 손가락이 희어지는 것이 수명이었다.
"내가 죽기 전에 이겨야 한다."
한설은 일어섰다. 관중석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누도 한설이 사라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정파 본부의 뒷문으로 나갔을 때도, 밤하늘 아래 홀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을 때도.
검이 울었다.
공기가 갈라졌다. 냉월의 새로운 기법은 이전의 것과 달랐다. 천음협곡에서 배운 것들은 모두 '검을 쓰는 방식'이었다면, 이것은 '검이 되는 방법'이었다. 한설의 몸 전체가 검으로 변해가는 느낌. 팔이 검이 되고, 정신이 검이 되고, 영혼이 검이 되는 경험.
그 과정에서 한설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멈춰."
명월의 목소리였다.
한설은 검을 내렸다. 명월이 뒷문 너머로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손에 들린 것은 약이었다.
"밤새 뭔 짓을 한 거야."
"수련했다."
"이것 봐라."
명월이 한설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이제 살이 아니라 뼈 같았다. 투명하고, 차갑고, 죽어가고 있었다. 명월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렇게 되면 내일 경기를 할 수 없어.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을 거야."
"움직인다."
"한설."
"움직인다."
명월이 한설의 눈을 봤다. 그 눈은 이미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냉월의 영혼과 한설의 의지가 겹쳐진, 무언가 다른 존재의 눈. 명월은 그것을 봤을 때 처음으로 깊은 두려움을 느꼈다.
명월은 한설의 손을 더 강하게 잡았다.
"내 스승이 남긴 기록에 냉월의 부작용을 완화하는 비법이 있어. 당신이 죽기 전에 배울 수 있다. 내가 너를 가르쳐주겠다."
명월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마치 마지막 구원의 손길을 건네는 것처럼.
"그리고 내 검술도 배워. 명월검파의 검술은 냉월과 다를 수 있어. 냉월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
한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걷어올렸다. 팔 전체가 투명해지고 있었다.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이미 살이 아니라 반투명한 형상이었다. 마치 유령이 되어가는 것처럼.
"내일 이기고 나면 멈춘다."
"거짓말하지 마."
"멈춘다."
한설이 명월에게서 손을 빼냈다. 명월은 그 손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 한설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명월의 손이 자연스럽게 한설의 손가락을 스쳐갔다. 그 터치는 이미 차가운 죽음을 만지는 것 같았다.
"당신이 죽으면 어떻게 하냐고."
명월이 뒤에서 말했다. 목소리가 부러져 있었다.
한설은 정파 본부의 뒷문으로 사라져갔다. 명월은 혼자 남겨졌다. 손에는 약이 들려 있었고, 손가락은 한설의 손가락이 남긴 차가움을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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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라운드 당일 아침.
정파 대회장은 북적거렸다. 선거전의 중반전이자, 결정적인 라운드였다. 이 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하면 최종 투표에 진출할 수 없었다.
한설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그의 손은 여전히 투명했다. 하지만 다를 것이 하나 있었다. 냉월이 그의 손에 완전히 동화되어 있었다. 마치 손 자체가 검이 되어버린 것처럼. 그 손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파의 제자들은 본능적으로 등을 굽혔다.
임호가 한설을 봤다. 그의 얼굴에 잠깐 동안 놀람이 떠올랐다.
"이미 변해버렸군."
임호가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조롱의 웃음이었다.
"사람이 아닌 뭔가로."
"상관없다."
한설이 대답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마치 깊은 우물에서 올라오는 목소리처럼.
"오늘이다."
경기 준비가 시작되었다. 한설의 상대는 이상준이라는 정파 제자였다. 정파 정통 무공 '호렬도법'의 수련자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강했다. 정파 제자들 중에서는 중상위권의 실력자였다.
경기장에 나갔을 때, 정파의 원로들이 모두 눈을 들었다.
강산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는 임호가, 그 너머에는 유진이 있었다. 세 사람이 한 줄로 앉아 있는 그 모습 자체가 이미 연합을 의미하고 있었다.
명월은 다른 자리에 있었다. 그녀의 눈은 한설을 따라갔다. 손에는 약이 들려 있었다. 이미 소용없는 것을 알면서도.
경기가 시작되었다.
이상준이 먼저 공격했다. 정파 정통의 도법—거대한 힘을 실은 수평 베기. 그것은 나무를 자르는 것처럼 강했다. 많은 관중들이 그 기법의 위력에 감탄했다.
한설이 검을 들었다.
냉월과 한설의 손이 이제는 구분되지 않는 상태로 움직였다. 검이 아니라 팔 자체가 검인 그 상태로. 두 무기가 만났을 때, 소리가 났다.
금속음이 아니라, 공기가 터지는 소리.
이상준의 도가 한설의 검에 부딪혔을 때, 도의 궤적이 꺾였다. 마치 물길이 바위에 막혀 돌아가는 것처럼. 이상준은 그 충격에 한 발 물러섰다.
"다시."
임호가 일어섰다. 강산이 손을 들어 임호를 제지했다. 아직이라는 신호였다.
경기가 계속되었다. 이상준이 다시 공격했고, 한설이 응했다. 매 충돌마다 정파의 제자들이 숨을 쉬지 못했다. 왜냐하면 한설의 검이 이상준의 도를 점점 더 깊게 파고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섯 번째 충돌에서 일이 일어났다.
이상준의 도가 부러졌다.
무기가 두 동강 나는 소리. 그것은 명확했고, 돌이킬 수 없었다. 정파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봤다. 냉월이 이상준의 도를 부수는 장면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설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피.
관중석이 숨을 멈췄다. 옥순 장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명월의 손에서 약병이 떨어졌다. 그것이 바닥에 부서지며 약이 흩어졌다.
"경기는 한설의 승리다."
강산이 일어서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평온했고, 모든 것을 예상했다는 듯 차분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명확한 것을 봤다. 정파의 금지된 유물이 정파의 질서를 흔들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자가 정파의 제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정파의 원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호가 한설에게 다가왔다. 대회장의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사파 이단아가 정파의 최고 자리를 노린다니. 무림의 질서를 흔드는 것 아닌가."
임호의 목소리는 크고 명확했다. 이것은 도발이 아니라 선전포고였다.
"넌 그 자리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쇼가 될 것 같다."
유진이 그 옆에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정중했지만, 눈은 차가웠다.
"삼 라운드 최종 경기는 내일 진행된다. 한설 선수와 임호 선수의 경기가 될 것 같다."
강산이 선포했다. 정파의 원로들이 박수를 쳤다.
한설은 대회장의 중앙에 혼자 서 있었다. 손에서는 여전히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명월은 관중석에서 일어서려고 했지만, 누군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서운이었다. 서운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늦었다는 신호.
냉월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한설의 귀에만.
"내일, 최후다."
한설이 검을 들었다. 검이 울었다.
정파의 모든 사람이 그 울음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뭔가 끝나가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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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한설의 내면에서 냉월의 목소리와 한설 자신의 의지가 충돌했다.
'내가 죽으면 냉월도 죽는가?'
차갑고 명확한 질문. 아니면 냉월이 다음 후계자를 찾을 것인가? 천 년을 기다린 영혼이 또 다시 천 년을 기다릴 것인가?
냉월의 목소리가 울렸다.
"상관없다. 우리는 이미 하나다."
한설은 그 말을 받아들였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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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의 눈빛이 변했다. 계산이 끝났다는 신호. 그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다시 두드렸다. 리듬감 있는 태핑. 마치 시계가 최후의 시간을 세고 있는 것처럼.
"좋다. 내일이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임호와 유진이 한설에게서 돌아섰다. 그들의 뒷모습은 이미 승자의 걸음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강산의 계산에 미묘한 균열이 생겼다. 서운의 눈이 한 점으로 모였고, 명월의 손에 들린 약병이 다시 움켜졌기 때문이었다.
한설의 눈에는 그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보인 것은 내일의 검이었다. 내일의 끝이었다.
명월은 관중석에서 한설을 봤다. 서운도 봤다. 그들은 모두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
한설이 이제 거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명월은 그것이 자신의 실패라는 것을 알았다. 손에 들린 약은 무거웠고, 그 무게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서운은 다른 것을 깨달았다. 한설이 선택한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내일,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끝이 강산이 계획한 대로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