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사찰의 어둠 속에서
서재의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이항복의 자객이 이미 안에 숨어 있었다. 검을 든 자가 이준석을 향해 움직였다.
이준석은 기술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손에 들었다가 민준호의 손에 이끌려 돌계단을 내려갔다. 추격자들의 횃불이 지붕 틈으로 스며들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경주 시내 골목으로 빠져나가던 중 민준호가 갑자기 이준석의 팔을 잡아 멈추게 했다.
"기다려요."
민준호의 목이 메었다. 횃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자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이준석이 고개를 들었을 때 민준호는 그의 양 어깨를 움켜잡았다.
"아버지가 당신을 죽이려 합니다."
말이 나오자마자 민준호는 이준석의 팔을 놓지 못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나도... 그 일을 했습니다."
이준석의 호흡이 멈췄다. 민준호는 이준석의 팔을 더 세게 움켜잡았다.
"홍길동을 죽인 것도, 서희영을 죽인 것도 제 손입니다. 아버지가 시켰습니다."
민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범벅된 얼굴이 횃불빛에 젖어 있었다. 목구멍에서 목이 메인 소리가 났다.
"하지만 당신의 얼굴을 봤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그러지 않았어요. 진짜로 나라를 생각했어요. 아버지는 다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기술을 죽이려 합니다. 신분 질서를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민준호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눈물이 흙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은 정말로 나라를 위했어요."
이준석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모든 움직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버지가 왕에게 기술서의 저주를 고변하려 합니다. 기술서가 사람을 죽인다고 말할 거예요. 왕의 신뢰를 완전히 잃게 될 거예요."
"왜...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이준석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의 기술이 아니라 당신의 꿈이 중요합니다."
민준호가 이준석의 눈을 똑바로 봤다. 그 눈빛은 더 이상 추적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제가 죽인 사람들의 꿈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꿈은 있어요. 조선을 지키고 싶은 꿈이 있어요."
횃불 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민준호가 이준석의 손을 잡았다.
"가세요. 한양으로 가세요. 왕을 만나세요. 아버지보다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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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의 궁궐 서재
광해군은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이준석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왕의 얼굴은 창백했다.
"그대는 내가 보호해 줄 수 없다."
광해군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단호했다.
"이항복이 상소를 올렸다. 그 기술이 사람을 죽인다고. 기술서가 저주받았다고. 조정의 신료들이 들었다. 이제 내가 그대를 감싸면 나 자신이 저주의 동조자가 된다."
이준석이 입을 열었으나 왕이 손을 들어 막았다.
"하지만 나는 그 기술을 포기할 수 없다."
광해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그림자가 이준석 위에 드리워졌다.
"만약 그대가 그 기술을 내게 헌상한다면, 나는 그대를 보호할 수 있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왕에게 충성하는 신료의 행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분 질서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광해군이 이준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기술을 사용하겠다. 조선을 강하게 만들겠다. 하지만 그것은 그대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나의 이름으로다. 그것만이 그대를 살리는 길이다."
이준석이 왕의 손을 잡으려 했을 때, 서재의 문이 열렸다. 유영경이 들어섰다.
"폐하, 한 말씀 듣겠습니까."
광해군이 자리에 돌아앉았다. 유영경은 이준석을 바라봤다.
"기술은 빠르고, 정치는 느립니다."
유영경이 천천히 말했다.
"기술 독점은 빠르게 조선을 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으면, 그 사람이 죽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정치는 느리지만 기술을 영속시킵니다. 기술 없는 정치는 무능하지만, 정치 없는 기술은 단순한 도구일 뿐입니다. 그리고 도구는 주인을 따라갑니다."
"그대가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준석이 물었다.
"선택입니다. 기술 독점으로 조선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기술을 나누어 조선을 정치적으로 개혁할 것인가."
유영경이 이준석의 눈을 봤다.
"기술 독점은 당신을 고독하게 만듭니다. 기술 분산은 당신을 죽게 만듭니다. 하지만 정치적 타협은 당신을 영속시킵니다. 기술을 일부 헌상하고, 일부는 숨기세요. 왕은 강해질 것이고, 신분 질서도 지켜질 것이고, 조선도 천천히 변할 것입니다."
광해군이 다시 일어섰다.
"내가 그대를 완전히 보호할 수 없다면, 그대가 나를 보호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다."
이준석이 고개를 들었다. 창밖으로 한양의 야경이 보였다. 그 도시 어딘가에서 이항복은 자신의 기술 독점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민준호는 아버지에게 등을 돌렸다. 서희영과 홍길동은 죽었다.
이준석은 기술서를 꺼냈다. 남은 페이지들을 펼쳤다. 1년 전만 해도 300페이지가 넘었던 기술서는 이제 76페이지만 남아 있었다. 매월 3~5페이지씩 손상되고 있었다. 계산해 보면 20개월 안에 완전히 소실될 것이다.
"기술서가 손상되고 있습니다."
이준석이 말했다.
"매월 3~5페이지씩 사라지고 있어요. 20개월 안에 모두 없어질 겁니다."
광해군과 유영경이 기술서를 바라봤다.
"그 안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유영경이 물었다.
"철갑선 완성. 신식 화약 무기 제조. 해양 함대 건설. 조선을 해양 강국으로 만들기."
이준석이 대답했다.
"그것들은 모두 이 기술서 안에만 있습니다. 기술서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기술 독점으로 조선을 지킬 수 있을까요? 아니면 기술 분산으로 천천히 개혁할 수 있을까요?"
이준석의 손이 떨렸다.
"결정하셨습니까?"
광해군이 물었다.
이준석은 입을 열려 했다. 그 순간, 기술서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새로운 글씨가 나타났다. 그것은 잉크로 쓰인 글씨가 아니었다. 페이지 뒤에 숨겨진 글씨였다. 빛이 페이지를 투과할 때만 보이는 글씨였다.
이준석이 페이지를 횃불 앞에 들었다.
글씨가 선명해졌다.
"기술은 나누는 순간부터 저주를 잃는다."
그 아래에는 또 다른 글씨가 있었다.
"하지만 나누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
이준석의 손에서 기술서가 떨어졌다.
"무엇이 보이십니까?"
유영경이 물었다.
"글씨입니다."
이준석이 말했다.
"기술을 나누면 저주가 풀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누는 자는 죽는다고 합니다."
서재 안이 조용해졌다. 광해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렇다면 그대는?"
"기술을 나누겠습니다."
이준석이 말했다.
"조선을 살리기 위해."
바로 그 순간, 복도에서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 궁궐 시종들의 외침.
"반란입니다! 이항복의 사람들입니다!"
광해군이 일어섰다. 유영경은 창문으로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준석은 기술서를 들었다. 손가락 끝이 마지막 페이지에 닿았을 때, 그 페이지가 따뜻해졌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그리고 페이지가 천천히 분리되기 시작했다.
한 장씩. 두 장씩. 세 장씩.
기술서의 페이지들이 분리되고 있었다. 이준석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마치 누군가 다른 손이 자신의 손을 움직이는 것처럼.
"이게 뭐야?"
이준석이 외쳤다.
광해군이 이준석의 손을 움켜잡았다. 기술서의 페이지들이 공중에 흩어졌다. 하나하나가 다른 손으로 전달되었다. 유영경이 받았다. 시종들이 받았다. 누군가는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날렸다.
"나누어진다. 기술이 나누어진다."
유영경이 외쳤다.
서재의 문이 부서졌다. 검을 든 자들이 들어섰다. 앞에는 이항복이 있었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기술서!"
이항복이 외쳤다.
하지만 기술서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페이지들이 모두 흩어져 있었다. 누군가의 손에 들려 있었고,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었고, 누군가의 주머니에 들려 있었다.
이준석의 눈이 어두워졌다. 마지막 페이지의 글귀가 현현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누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
그 말이 맞다면, 자신은 이제 죽어야 한다.
하지만 조선은 살아남을 것이다.
이준석은 웃음을 지었다.
"폐하, 이제 기술은..."
검이 이준석의 등을 꿰뚫었다.
검의 끝이 가슴을 뚫고 나왔다. 이준석은 천천히 고개를 내려다봤다. 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 마치 시계 추처럼 규칙적으로.
"이준석!"
광해군이 외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멀리서 들렸다. 마치 물 아래서 듣는 것처럼.
이준석은 무릎을 꿇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기술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움켜쥐려 했지만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신체가 점점 차갑게 식어가는 것 같았다.
"누가 했는가?"
광해군이 검을 든 자에게 외쳤다.
검을 든 자가 투구를 벗었다. 민준호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깊은 절망이 흘러내렸다.
"아버지의 명령이었습니다."
민준호가 검을 떨어뜨렸다. 금속음이 울렸다.
"하지만... 이건 아닙니다."
이준석은 바닥에 쓰러졌다. 광해군의 시종들이 그를 받아냈다. 유영경은 흩어진 기술서의 페이지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의 손과 옷이 이준석의 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폐하, 이미... 페이지들이 흩어졌습니다. 궁궐 밖으로 나간 것도 있습니다."
유영경이 말했다.
이준석의 입술이 움직였다.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목에서는 피만 흘렀다.
"기술... 조선..."
이준석의 눈이 다시 떠졌다. 죽음이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치 저주가 그를 조금 더 붙잡고 있는 것처럼.
"민... 준호."
이준석이 불렀다.
민준호가 무릎을 꿇었다.
"내가 나눈 것은... 기술이 아닙니다."
이준석이 말했다.
"희망입니다."
민준호의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당신의 기술이 아니라 당신의 꿈이 중요합니다. 그 꿈을 나누는 순간... 저주가 풀린다고 했지 않습니까?"
이준석이 손을 들어 민준호의 팔을 잡았다.
"당신은... 아버지가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입니다."
민준호가 손을 꽉 움켜쥐었다.
"저를... 믿으시나요?"
"그렇습니다. 내가 누구를 믿어야 한다면... 당신을 믿겠습니다."
이준석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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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전
광해군은 창문을 통해 한양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밤하늘 아래 도시의 불빛들이 흐릿하게 떨렸다.
"기술서가 흩어졌다고?"
광해군이 물었다. 뒤에 서 있던 시종이 대답했다.
"예, 폐하. 서재 밖으로 나간 페이지들도 많습니다."
"그것들을 어디로 갔는가?"
"알 수 없습니다. 궁궐 밖의 사람들이 받아간 것 같습니다."
광해군이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이제 기술은 더 이상 이준석 혼자의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폐하."
광해군이 눈을 감았다. 오래전 이준석이 자신에게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폐하, 기술은 하나의 손에만 있으면 안 됩니다. 여러 손에 나누어져야 조선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때는 왕이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기술 독점이 왕권 강화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지금은 다르게 보였다.
"이준석의 시신을 거둬라."
광해군이 명했다.
"그리고 기술서의 페이지들을 모두 찾아라. 흩어진 것들을 모아 정리하도록 하여라."
시종이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폐하."
한 시간 후. 광해군은 이항복을 받았다. 이항복의 얼굴은 창백했다.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경들은 이준석을 죽이려 했소."
광해군이 말했다.
"아, 폐하..."
이항복이 절을 했다.
"하지만 이준석은 이미 죽었고, 기술은 이미 퍼져 나갔소. 더 이상 경의 계획은 의미가 없어졌소."
광해군이 일어섰다.
"경은 벌금 1천 냥을 내고, 조정에서 물러나시오. 그리고 다시는 기술 관련 정책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시오."
광해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또한 본왕은 이 순간부터 '기술 독점 금지령'을 선포한다. 조선의 모든 기술은 여러 손에 나누어져야 하며, 한 사람이 독점하는 것을 허하지 않겠노라. 기술은 나라의 것이지, 어떤 개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광해군이 유영경을 바라봤다.
"유영경, 그대는 흩어진 기술서의 페이지들을 수집하여 정리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그 기술들을 조선의 여러 지역에 전파하도록 하시오. 철갑선 건조, 신식 화약 무기 제조, 해양 함대 건설 등 모든 것이 가능해야 한다."
유영경이 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폐하."
광해군은 이항복을 바라봤다. 한때 권력의 정점에 있던 자가 이제는 추락하고 있었다.
"경은 나가시오."
이항복은 절을 하고 나갔다. 뒤에서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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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변의 작은 집
민준호는 아버지 이항복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항복의 얼굴은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넌 날 배신했다."
이항복이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예, 아버지."
민준호가 대답했다.
"이준석을 죽였지만... 너는 이미 날 떠나 있었구나."
"그렇습니다."
"그 남자가 뭔가? 기술자? 관료? 혁명가?"
"그 이상입니다."
민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조선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권력이 아니라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항복이 일어섰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렇다면 나는?"
민준호가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이 모든 대답이었다.
이항복은 창문을 통해 한강을 바라봤다. 밤의 강물이 검게 흘렀다.
"기술서가 흩어졌다고 한다. 여기저기 사람들의 손에 들어갔다고."
이항복이 말했다.
"넌 뭘 한 거냐?"
"조선을 살렸습니다."
민준호가 대답했다.
"이준석은 죽었지만... 그의 꿈은 남았습니다. 그것이 퍼져 나갔습니다."
이항복이 돌아섰다. 그의 얼굴에는 패배의 표정이 있었다.
"가거라. 내 앞에서 사라져라."
"예, 아버지."
민준호는 일어섰다. 그리고 그 집을 나갔다. 뒤에서 이항복의 목놓아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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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의 비밀 조선소
조선 건축을 담당하던 기술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앞에는 기술서의 한 페이지가 놓여 있었다.
"이건... 철갑선의 설계도인가?"
한 기술자가 물었다.
"맞습니다."
또 다른 기술자가 대답했다.
"누가 이걸 가져왔나?"
"어제 밤 누군가 이것을 던지고 갔습니다. 왕의 명으로라고 했습니다."
기술자들이 페이지를 들었다. 손가락으로 설계도를 따라갔다. 마치 종교 경전을 읽는 것처럼 경건했다.
"이준석이 죽었다고 한다."
한 기술자가 중얼거렸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유산입니다."
다른 기술자가 말했다.
"그의 마지막 유산."
기술자들은 밤새 그 페이지를 필사했다. 손가락이 아프도록. 눈이 따갑도록. 마치 자신들이 죽은 자의 유언을 받들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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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의 폐사찰
유영경이 폐사찰 안으로 들어섰다. 손에는 횃불을 들고 있었다.
벽을 두드렸다. 돌에서 울리는 소리. 그리고 벽이 움직였다.
유영경이 기술서의 페이지들을 꺼냈다. 남은 페이지는 12장이었다. 기술서의 절반도 안 되는 양이었다.
그는 각 페이지를 하나씩 들었다.
"기술은 나누는 순간부터 저주를 잃는다."
그 글귀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투명한 잉크로. 마치 그 글귀가 모든 페이지에 숨겨져 있던 것처럼.
유영경이 페이지들을 포개 들었다.
"기술도 결국 사람이 쓰는 것. 그 사람이 도덕적이지 못하면 기술은 독이 된다."
유영경이 중얼거렸다. 자신이 조정에서 말했던 말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 사람이 도덕적이면?"
유영경은 기술서의 페이지들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
"그렇다면 기술은 구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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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변의 모래톱
밤은 계속 깊어갔다.
민준호는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는 기술서의 한 페이지가 들려 있었다.
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기술을 나누는 자는 죽는다. 하지만 그 기술을 받는 자는 산다. 그리고 그것이 저주를 푸는 길이다."
민준호가 페이지를 한강에 날렸다. 페이지는 물 위에 떠다니다가 천천히 흘러갔다.
"당신의 꿈이... 조선에 흘러가길."
민준호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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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한양의 하늘이 붉어지고 있었다.
여수 조선소에서. 경주 폐사찰에서. 한강변에서. 도처에서 사람들이 기술서의 페이지들을 펼쳐 들고 있었다.
마치 종교 경전을 읽는 것처럼. 마치 죽은 자의 유언을 받드는 것처럼.
조선의 기술 혁명은 한 관료의 죽음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