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의 무게
궁궐의 서재는 적막했다. 종로 쪽에서 흘러오는 저녁 종소리가 한두 번 울렸고, 이준석은 손에 들린 기술서의 무게를 느꼈다. 종이는 갈색으로 변색되었고, 곳곳에 얼룩이 져 있었다. 넘겨볼 때마다 부스러지는 듯한 느낌이 손가락 끝에 전해졌다. 광해군은 책상 너머에 앉아 있었고, 그의 눈은 기술서의 각 페이지를 따라 움직였다.
"철갑선이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것이군."
왕의 목소리는 감탄과 안도가 섞여 있었다. 광해군의 손가락이 기술서의 한 페이지를 짚었다. 철갑선의 외형을 그린 도면이었다. 목재 위에 철판을 덧대는 방식, 용접 기술, 화약 무기의 배치도까지 모두 그려져 있었다.
"폐하께서 이 기술을 가지신다면, 임진왜란의 치욕을 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준석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그는 기술서를 헌상하기로 결정한 지 사흘 전부터 이 순간을 상상했다. 왕이 기술을 받으면, 자신은 더 이상 그것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기술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위로했다.
"이제 조선은 바뀔 것이다."
광해군이 천천히 말했다. 왕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 있었다. 그것은 통치자의 미소였다. 새로운 힘을 얻은 자의 표정이었다. 이준석은 그 표정을 보며 안도했다. 자신이 한 선택이 옳다고 느껴졌다.
그 순간이었다.
광해군이 기술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그곳에는 글자가 있었다. 이준석이 본 적 없는 글귀였다. 손상으로 인해 흐릿했지만, 분명히 읽을 수 있는 문장이 있었다.
'기술을 헌상한 자는 기술의 비밀을 영원히 잃는다.'
이준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광해군이 그를 바라봤다. 왕의 표정은 이미 변해 있었다. 미소가 사라졌다.
"이 글귀가 무엇인가?"
"모르겠습니다, 폐하."
거짓이었다. 이준석은 알고 있었다. 기술서 곳곳에 적힌 그 저주 같은 문구들. 홍길동을 죽인 저주, 서희영을 죽인 저주. 기술을 배우는 자는 죽고, 기술을 독점하는 자도 죽는다는 무언의 규칙. 그리고 이제, 기술을 헌상하는 자는 그 기술을 영원히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새로운 저주가 드러난 것이다.
"이 글귀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나에게 이 책을 건넸단 말인가?"
광해군의 목소리는 날카로워졌다. 이준석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기술서를 헌상한 순간, 자신은 그 기술에 대한 모든 권리를 잃었다. 이제 그것은 왕의 것이었고, 왕이 어떻게 사용할지는 자신이 알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폐하,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이 기술이 조선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이 저주는?"
"저주는 아닐 겁니다. 단지 경고일 수도..."
"경고? 무엇에 대한 경고인가, 이준석?"
광해군이 기술서를 덮었다. 손가락이 책의 등 부분에 얹혀졌다. 왕의 눈이 차가워졌다. 이준석은 자신이 한 선택이 이미 취소 불가능한 것임을 깨달았다. 기술서는 이미 왕의 손에 있었고, 자신은 더 이상 그것을 돌려받을 수 없었다.
"네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준석."
왕의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다.
"네가 생각한 대로 조선이 철갑선을 타고 동아시아를 호령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인도 동인도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안정을 원한다. 그들의 신분과 권력이 흔들리지 않는 안정을."
"그렇다면 왜 이 책을 받으시는 겁니까?"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무언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광해군이 기술서를 들어올렸다. 책은 얇아 보였다. 손상된 페이지들로 인해 원래보다 훨씬 적은 분량이 남아 있었다.
"내가 이 책을 비밀 창고에 보관하겠다. 아무도 모르게. 나는 이 기술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서인도 동인도, 그리고 일본과 명나라도 이 기술이 조선에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조선은 이미 바뀐 것이다."
이준석은 말을 잃었다. 왕은 기술서를 들고 일어났다.
"네가 심은 것을 거두지 말아라. 넌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말고, 평범한 관료로 살아가거라."
광해군이 서재를 나갔다. 이준석은 남겨진 책상 앞에 서 있었다. 기술서는 왕과 함께 사라졌다. 손상된 페이지들도, 마지막 글귀도,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가 남은 것은 기억뿐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도 점차 희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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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렀다. 10년이 지났다.
이준석은 여전히 한양에 있었다. 한 번 더 강등되었고, 지금은 한강 수로 관리 부서의 평범한 관료였다. 나이는 오십을 넘었다.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고, 등은 굽어 있었다. 그러나 눈은 여전히 예리했다.
이준석은 한강 나루터를 걸으며 조선소들의 변화를 지켜봤다. 노량진 일대의 조선소들은 예전보다 훨씬 크고 조직적이 되어 있었다. 목재를 다루는 기술도 발전했고, 철을 다루는 장인들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공식적으로는 아직도 목선 위주였지만, 곳곳에 철갑선의 흔적들이 보였다. 작은 시범선들, 실험적인 형태의 선박들, 신식 화약 무기를 다루는 기술자들.
그것들이 자신이 심은 씨앗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조선의 기술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주 안강의 폐사찰에서 일어난 일도 있었다. 기술서가 흩어졌다는 소문이 있었다. 민간의 기술자들 사이에서 철갑선의 설계도와 화약 무기의 제조법이 돌아다닌다는 말도 들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신분 질서도 변하고 있었다. 이준석이 일하는 부서에는 천민 출신의 기술자들이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아직도 신분 제도가 존재했지만, 기술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신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목공, 철공, 화약 제조 같은 기술 분야에서는 능력이 신분을 압도하고 있었다.
여름 저녁, 이준석은 한강변에 혼자 앉았다. 강 건너편으로는 서쪽의 산들이 보였다. 해는 지고 있었고, 하늘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강 위로는 작은 배들이 지나갔다. 목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중에는 분명히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것들도 있었다.
이준석이 중얼거렸다.
"내가 기술로 조선을 지키려 했지만, 결국 조선은 자신의 방식으로 천천히 변했다."
강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주름진 얼굴 위에서 바람은 마치 손가락처럼 부드러웠다.
"이것이 역사인가?"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에 대답이 있었다. 기술서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그 글귀들 속에 모든 대답이 있었다. 기술을 배우는 자는 죽고, 기술을 독점하는 자도 죽고, 기술을 헌상하는 자는 기술을 영원히 통제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규칙이었다. 기술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결국 시대의 것이 된다는 규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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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한 달 뒤, 한강 남쪽의 어느 포구에서 일이 터졌다.
민준호는 조선 조정의 비밀 특사로 일하고 있었다. 아버지 이항복은 이미 죽었고, 그는 더 이상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고 있었다. 대신 자신의 신념 아래 움직였다.
그날 민준호가 체포한 것은 조선의 기술서 페이지들을 일본 상인에게 팔려던 자들이었다. 세 명의 기술자와 한 명의 중개상. 그들의 짐에는 철갑선의 설계도, 화약 무기의 제조법, 항해술 관련 문서들이 들어 있었다.
"이 문서들이 어디서 나온 것인가?"
민준호가 중개상의 목깃을 잡았다.
"모르겠습니다, 나으리. 이미 여수와 경주에서 떠도는 것들입니다. 누가 처음 흘린 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민준호는 중개상을 놓고 서 있었다. 저 멀리 한강 건너편에서는 저녁 연기가 피어올랐다. 여수의 조선소에서 나온 기술, 경주의 폐사찰에서 흘러나온 설계도, 그리고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페이지들.
이준석이 심은 것들이 결국 퍼져나갔다.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의 통제를 벗어나 조선 전역으로 흩어졌다. 민준호는 그것이 옳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단지 그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그는 체포된 자들을 병력에게 넘기고 강변을 바라봤다. 한강의 물은 여전히 흘렀고, 배들은 여전히 지나갔다. 조선은 여전히 해양 강국이 아니었지만, 무언가는 분명히 변하고 있었다.
한강변 어딘가에서, 이준석은 그 광경을 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심은 기술은 이미 조선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기술 독점의 꿈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 실패 속에서 조선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변하고 있었다.
임진왜란의 치욕을 씻는 길은 철갑선의 함대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술이 신분의 벽을 넘고, 개인의 꿈이 시대의 변화가 되는 과정 속에 있었다. 이준석이 만들지 못한 강한 조선이 아니라, 조선 자신이 만들어가는 천천한 변화 속에 있었다.
역사는 개인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이 역사의 무게였다.
# 역사의 무게
한강변 어딘가에서, 이준석은 그 광경을 보고 있지 않았다.
궁궐의 서재 안, 어두운 촛불 아래서 그는 기술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들고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종이는 누렇게 변해 있었고, 글씨는 희미했다. 하지만 그 문장은 명확했다.
'기술을 헌상한 자는 기술의 비밀을 영원히 잃는다.'
이준석의 숨이 멎었다.
광해군이 기술서를 받아든 지 이틀 전, 왕은 그에게 말했다. "이제 조선은 바뀔 것이다." 그 말에는 희망이 있었고, 안도감도 있었다. 10년을 숨죽이며 살아온 자에게 왕의 그 한마디는 구원처럼 들렸다. 기술서를 헌상하는 순간, 이준석은 자신의 모든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왕이 기술을 이어받으면, 왕이 조선을 지킬 것이고, 자신은 비로소 자유로워질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이 문장은 무엇인가.
이준석이 페이지를 뒤집었다. 뒷면도 있었다. 손상된 글씨 속에서 단어들이 떠올랐다.
'헌상하는 순간, 그 자는 더 이상 기술을 통제할 수 없다. 기술은 왕실에 속하게 되고, 기술을 누가 어떻게 사용할지는 헌상한 자가 알 수 없다. 이것이 저주이자 해방이다.'
그의 손가락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저주이자 해방.
10년 전 고서상의 노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이 책은 주인이 많이 바뀐 책이오. 누구든 가지면 끝이 좋지 못하다더이다.' 그때는 그 말이 기술자들의 죽음을 의미한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문장을 읽으며 이준석은 깨달았다. 저주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술을 독점하려는 자를 죽이고, 기술을 나누려는 자를 무력하게 만들고, 기술을 헌상하려는 자를 영원한 방관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기술서의 페이지들이 손에서 흘러내렸다. 이준석은 그것들을 주우려 하지 않았다. 촛불이 흔들리며 그림자가 벽 위에서 춤을 췄다.
"다시 돌려받으시겠습니까?"
낮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이준석이 돌아봤다. 궁궐의 시종 중 한 명이 문 옆에 서 있었다.
"왕께서 물으십니다. 기술서의 내용이 예상과 다른 것 같으니, 다시 돌려받으시겠냐고."
이준석의 입술이 움직였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돌려받는다? 그렇게 되면 다시 처음부터다. 다시 숨어야 하고, 다시 두려워해야 하고, 다시 누군가 죽어야 한다. 기술자들의 죽음이 반복될 것이다. 서희영처럼, 홍길동처럼.
"말씀하십시오."
시종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이준석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돌려받지 않겠다고 전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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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은 그날 밤 이준석을 다시 소환했다. 서재가 아닌 왕의 침실이었다. 촛불이 많아서, 방 안은 밝았다. 왕은 침상 위에 앉아 있었고, 기술서는 그의 옆에 놓여 있었다.
"네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왕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비난이나 위로도 없었다. 단순한 진술이었다.
"네가 원했던 것은 조선이 일본을 누르는 해양 강국이 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철갑선의 함대로 임진왜란의 치욕을 씻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준석이 입을 열려 했다. 왕이 손을 들어 막았다.
"끝까지 들어라."
"네, 폐하."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언가가 바뀌었다. 넌 그것을 모를 수도 있다. 나도 완전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무언가는 분명히 바뀌었다."
왕이 기술서를 들었다. 손상된 페이지들이 햇빛처럼 노랗게 빛났다.
"이 책을 나는 비밀 창고에 보관할 것이다.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조선은 여전히 해양 강국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조선소 기술은 천천히 발전할 것이고, 기술자들의 신분은 점점 올라갈 것이고, 신분 질서는 서서히 흔들릴 것이다. 이 모든 변화가 너의 기술서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시대가 이미 그렇게 움직이고 있던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광해군이 기술서를 내려놨다.
"너는 무명 관료로 남을 것이다. 더 이상의 지원도 없고, 더 이상의 위협도 없을 것이다. 단지 평범한 관료로서 조선의 변화를 지켜보아라. 그것이 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이준석의 무릎이 땅에 닿았다. "감사합니다, 폐하."
"감사할 것이 없다. 나는 너를 버렸고, 너는 이제 나도 버렸다.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갈 것이다."
왕이 등을 돌렸다. 대화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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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났다.
이준석은 여전히 무명 관료였다. 한 품계 올랐지만, 그것도 형식적인 것이었다. 그는 도서관 같은 곳에서 옛 기록을 정리하는 일을 했다. 누군가는 그를 잊어버렸고, 누군가는 그를 의심했고, 누군가는 그를 동정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조선은 변했다.
한강변의 조선소들에서는 이전보다 정교한 배들이 나왔다. 화약 무기의 정확도도 높아졌다. 신분에 관계없이 기술자들이 높은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천민 출신의 목공이 양반 집안의 아들과 같은 봉급을 받는 일도 드물지 않게 되었다. 신분 질서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지만,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여름 저녁, 이준석은 한강변에 혼자 앉았다. 강 건너편으로는 서쪽의 산들이 보였다. 해는 지고 있었고, 하늘은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강 위로는 작은 배들이 지나갔다. 목선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중에는 분명히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것들도 있었다.
이준석이 중얼거렸다.
"내가 기술로 조선을 지키려 했지만, 결국 조선은 자신의 방식으로 천천히 변했다."
강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주름진 얼굴 위에서 바람은 마치 손가락처럼 부드러웠다.
"이것이 역사인가?"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에 대답이 있었다. 기술서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그 글귀들 속에 모든 대답이 있었다. 기술을 배우는 자는 죽고, 기술을 독점하는 자도 죽고, 기술을 헌상하는 자는 기술을 영원히 통제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규칙이었다. 기술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결국 시대의 것이 된다는 규칙이었다.
한강의 물은 계속 흘렀다. 배들은 계속 지나갔다. 이준석은 계속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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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한 달 뒤, 한강 남쪽의 어느 포구에서 일이 터졌다.
민준호는 조선 조정의 비밀 특사로 일하고 있었다. 아버지 이항복은 이미 죽었고, 그는 더 이상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고 있었다. 대신 자신의 신념 아래 움직였다.
그날 민준호가 체포한 것은 조선의 기술서 페이지들을 일본 상인에게 팔려던 자들이었다. 세 명의 기술자와 한 명의 중개상. 그들의 짐에는 철갑선의 설계도, 화약 무기의 제조법, 항해술 관련 문서들이 들어 있었다.
"이 문서들이 어디서 나온 것인가?"
민준호가 중개상의 목깃을 잡았다.
"모르겠습니다, 나으리. 이미 여수와 경주에서 떠도는 것들입니다. 누가 처음 흘린 것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민준호의 눈이 차가워졌다. 하지만 그의 손은 중개상을 놓지 않았다. 그는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10년을 기다렸다. 이준석이 죽은 후, 기술이 퍼져나가기를 기다렸다.
"더 이상 팔 수 없게 하겠다."
민준호가 중개상을 병력에게 넘겼다. 그리고 포구의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저 멀리 한강 건너편에서는 저녁 연기가 피어올랐다. 여수의 조선소에서 나온 기술, 경주의 폐사찰에서 흘러나온 설계도, 그리고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페이지들.
이준석이 심은 것들이 결국 퍼져나갔다.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의 통제를 벗어나 조선 전역으로 흩어졌다. 민준호는 그것이 옳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단지 그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강변의 어둠이 짙어졌다. 한강의 물은 여전히 흘렀고, 배들은 여전히 지나갔다. 조선은 여전히 해양 강국이 아니었지만, 무언가는 분명히 변하고 있었다.
민준호는 한강을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이준석을 죽이려던 이유가 정말 기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기술이 만드는 그 변화 때문이었을까. 기술이 신분을 흔들고, 신분이 흔들리면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릴 것이라고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그 두려움은 현실이 되었다. 조선은 흔들리고 있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민준호가 포구를 떠나며 중얼거렸다.
"이준석 형, 당신이 원했던 것이 이것이었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강바람만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