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오후 6시 12분.

도서관 열람실의 벽을 보고 있었다. 그 낡은 자국. 3년 동안 매일 지나가며 본 그 자국.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손가락을 들어 자국에 닿았다. 표면이 울퉁불퉁했다. 누군가가 벽에 부딪혔을 때의 흔적이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손을 내렸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벽의 자국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1층 열람실 남쪽 벽에서 시작된 그 자국은 계단 입구까지 이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계단 방향으로 밀려났던 흔적처럼. 또는 누군가가 계단으로 떨어지기 전에 벽을 붙잡으려고 했던 흔적처럼.

"유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은희였다. 사서복을 입은 그녀가 한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

'어머니를 밀었을 때'

제목이 검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유진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도서관 다른 쪽으로 도망치려는 순간,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읽지 마."

이은희가 말했다. 하지만 유진의 손은 이미 책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마치 다른 누군가의 손처럼.

책을 집었다.

"이은희, 내가—"

"당신이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걸 알아."

이은희가 한 발 물러섰다. 그 얼굴에는 깊은 죄책감이 묻어났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어. 당신의 손이 이미..."

유진은 이은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책을 펼쳤다.

첫 번째 페이지.

*그날 오후, 나현이 도서관에 왔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나는 사무실 문을 닫았다. 당신과 나 사이에 벽을 세우는 것처럼.*

손가락이 떨렸다. 계속 읽었다.

*어머니가 나타났다. 어머니는 나현에게 다가갔다. 나는 어머니를 막았다. 아니, 나는 어머니를 밀었다.*

호흡이 가빨라졌다.

*"엄마, 내 일에 간섭하지 마."*

*그 말을 한 직후였다.*

열람실이 기울었다. 아니, 회전하기 시작했다. 유진은 책을 떨어뜨리려 했다. 하지만 손에서 책이 떨어지지 않았다. 손가락이 책 표지에 접착된 것처럼.

벽이 울음을 냈다.

아주 작은 울음. 마치 누군가가 벽 너머에서 신음하는 것처럼. 그 울음은 벽의 자국에서 나오고 있었다. 자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내려오는 발소리. 한 사람이 여러 번 떨어지는 소리. 쿵, 쿵, 쿵.

그리고 비명.

나현의 비명이 아니었다. 더 깊은 목소리였다.

"엄마."

유진이 속삭였다.

책의 페이지가 자동으로 넘어갔다.

*계단 아래에서 나현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 옆에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팔에는 나현의 피가 묻어있었다. 나는 위에서 내려다봤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엄마, 엄마!"*

*나현이 부르고 있었다.*

*나는 경찰을 부르지 않았다. 119를 부르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한 말을 들었다.*

*"이건 사고야. 우리는 아무것도 본 게 없어."*

*그리고 나는 기억을 지웠다.*

책이 타올랐다. 페이지가 검게 변했다. 마치 책 자체가 거부하는 것처럼.

"안 돼. 안 돼."

유진이 책을 떨어뜨리려고 했다. 손가락을 펼쳤다. 손가락을 구부렸다. 손목을 꺾었다. 하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책에 녹아 붙은 것처럼.

팔에 힘을 주었다. 다른 손으로 책을 잡은 손을 붙잡았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뜯어내려고 했다. 손가락이 저항했다. 자신의 손가락이 자신에게 저항했다.

열람실의 벽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작은 금이 들어가더니 점점 커졌다. 그 금 사이로 어둠이 보였다. 기억의 어둠. 3년 전 그날 밤의 어둠.

그 어둠 속에서 손이 나왔다.

여자의 손이었다. 창백하고 차가운 손. 손가락 끝이 자주색으로 멍들어 있었다. 그 손이 벽의 자국을 따라 움직였다.

"어머니?"

유진이 손을 뻗었다.

손이 닿았다.

온도가 내려갔다. 손가락 끝이 얼었다. 그 손은 죽음처럼 차가웠다.

"내가 미안해. 내가..."

손이 유진의 팔을 잡았다. 팔을 위로 끌어올렸다. 벽 쪽으로. 자국 쪽으로.

"제발, 제발 놔."

유진이 저항했다. 팔을 안으로 당겼다. 몸을 뒤로 돌렸다. 하지만 손은 계속 끌어올렸다. 유진의 팔을 벽에 댔다.

벽의 자국이 울음을 냈다.

그 울음은 나현의 울음이었다. 계단에서 나는 울음. 피를 흘리면서 엄마를 부르는 울음.

그리고 또 다른 울음. 더 깊은 울음. 뼈가 부러지는 소리.

유진의 팔이 벽에 닿은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손이 사라졌다.

열람실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벽의 금도 사라졌다. 책도 사라졌다. 이은희도 사라졌다.

유진은 혼자였다.

팔을 내려봤다. 팔 위에 손가락 자국이 남아있었다. 다섯 개의 손가락 자국. 자주색으로 멍든 손가락 자국. 자신의 손 모양과 달랐다.

더 작았다. 또는 더 길었다. 또는 더 오래되었다.

시계를 봤다. 오후 6시 43분.

31분이 지났다.

유진은 천천히 계단으로 향했다. 1층 열람실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그 계단 아래를 봤다.

어두웠다. 아주 어두웠다.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울고 있었다. 아주 작은 울음. 아주 오래된 울음. 3년 동안 계속되고 있던 울음.

유진은 계단을 내려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각 발걸음마다 시간이 뒤로 흘렀다. 오후 6시 43분에서 6시 42분으로. 계단을 내려갈 때만 시간이 역행했다. 이 도서관의 규칙이었다. 내려가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 올라가는 것만이 미래로 나아가는 것.

지하 1층에 도달했을 때, 시계는 오후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안녕, 유진."

누군가가 말했다.

뒤를 돌아봤다. 나현이 서 있었다. 아니, 나현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서 있었다. 그것의 눈은 깜박이지 않았다. 그것의 입은 너무 크게 웃고 있었다.

"당신은 이제 누가 되는가?"

그것이 물었다.

유진의 입에서 대답이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유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모르겠어."

"그래. 넌 이제 알 수 없어. 넌 이미 그 길에 들어섰거든."

나현 형태의 것이 웃었다. 그 웃음은 계단 어딘가에서 나는 울음과 겹쳤다.

유진은 계단을 계속 내려갔다.

지하 2층. 지하 3층. 지하 4층.

각 층마다 벽이 있었다. 모든 벽에 자국이 있었다. 같은 자국. 누군가가 벽에 부딪혔을 때의 자국.

그리고 지하 5층.

유진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었다. 그 앞에는 거대한 금속문이 있었다. 문의 표면에는 손가락 자국이 무수히 많이 남아있었다.

모두 같은 손가락 자국이었다.

모두 자신의 손가락 자국이었다.

문 앞에 책이 놓여있었다. 제목은 없었다.

첫 페이지에는 한 문장만 적혀있었다.

*당신이 선택해야 할 순간이 왔다.*

유진이 책을 집었다.

손이 떨렸다.

책을 펼쳤다.

시간이 역행하기 시작했다. 오후 6시 5분. 오후 6시. 오후 5시. 오후 4시.

3년 전.

도서관 밖의 세상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그 울림이 도서관 벽을 뚫고 들어왔다.

발신자: 어머니

유진의 손가락이 화면에 닿으려고 했다.

하지만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손 전체가 투명해졌다.

팔이 투명해졌다.

가슴이 투명해졌다.

유진은 자신이 사라지는 것을 봤다. 아니, 자신이 책 속으로 흡수되는 것을 봤다.

책 속의 글씨들이 유진의 형태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문장이 새로 추가되었다.

*이제 당신은 선택할 수 없다.*

*당신은 이미 선택했다.*

*3년 전에.*

밤 11시 59분.

도서관의 모든 불이 꺼졌다.

지하 5층의 금속문이 천천히 열렸다.

유진은 책을 손에 들린 채 어둠 속으로 한 발을 내밀었다.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의 것인지, 자신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숨소리가 섞여 있었다.

"읽지 마."

뒤에서 목소리가 났다. 박철수였다. 그의 손이 유진의 어깨를 잡았다.

"지금 그 책을 읽으면 돌아올 수 없어."

박철수는 도서관의 기억 수호자였다. 그의 역할은 기억이 완성되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 하지만 그 순간이 오기 직전까지만. 일단 선택이 이루어지면, 그는 개입할 수 없었다. 규칙이었다. 기억 수호자도 거역할 수 없는 규칙.

유진은 몸을 돌리지 않았다. 책은 여전히 손 안에 있었고, 페이지는 계속 넘어가고 있었다. 아무도 넘기지 않았는데.

"이미 늦었습니다."

유진이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로.

그 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박철수의 손이 떨어졌다. 유진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침묵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유진은 책에서 손을 떼려고 애썼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투명함이 손가락부터 시작되어 팔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진이 말을 채우려 했다.

"불구하고 뭐?"

책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여러 목소리가 겹쳐 있었다. 나현의 목소리, 어머니의 목소리,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

"살고 싶다고? 반복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넌 이미 반복 속에 있어. 매일 밤 11시마다 이 순간으로 돌아오잖아."

"넌 죽음을 선택했어. 아니면 더 정확히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기억을 죽였어."

유진의 가슴이 투명해졌다. 심장이 보였다. 그것도 투명했다.

투명함이 목까지 올라왔다.

"다음 반복이 마지막이 될 거야."

책이 말했다.

"다음 반복에서는 넌 어머니를 만날 거야. 그리고 넌 선택해야 할 거야. 진실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이 밤에 머물 것인가."

책이 닫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유진의 손가락이 마지막으로 책 표지를 스쳤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사라졌다. 책도, 박철수도, 지하 5층도.

오직 하얀 벽만 남았다.

그 벽에는 손가락 자국이 있었다. 그것도 수백 개. 수천 개.

모두 다른 손가락 자국이었다.

유진은 벽에 손을 대었다. 자신의 손가락 자국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 것이 자신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기억이 완성되었다.

3년 전 10월 14일 밤 11시 23분.

나현이 도움을 청했다. 지하에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나타났다. 나현이를 데려오려고 했다.

유진이 어머니를 밀었다.

"엄마, 내 일에 간섭하지 마."

그 순간 모든 것이 일어났다.

어머니가 넘어졌다.

나현이도 함께 넘어졌다.

계단에서.

지하 계단에서.

그리고 유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벽이 흔들렸다.

아니, 시간이 흔들리고 있었다.

시계가 나타났다. 공중에 떠 있는 시계.

밤 11시 55분.

시간은 계속 흘렀다.

11시 56분.

11시 57분.

11시 58분.

유진은 더 이상 투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문제였다. 자신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인간인지, 기억인지, 책인지.

11시 59분.

오후 6시 1분.

아니다. 시간이 다시 역행하기 시작했다.

오후 6시.

오후 5시.

오후 4시.

시간이 계속 뒤로 흘렀다.

그리고 유진은 깨달았다.

다음 반복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벽에 있는 손가락 자국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손가락 자국이 사라지는 순간, 밤은 완전한 검은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어떤 목소리가 속삭였다.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제 당신은 준비가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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