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12분, 사무실 책상 위의 '마지막 기억'이라는 책이 손에서 떨어졌다. 유진은 바닥에 떨어진 책을 보지 않았다. 대신 거울 같은 책장의 유리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응시했다. 눈동자가 제자리에 있었다. 손가락도 열 개 모두 거기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는 확실히 달랐다. 얼굴의 윤곽이 미묘하게 틀어져 있었고, 입술을 움직일 때 입술의 움직임이 0.3초 늦게 따라왔다.
이은희를 찾아야 했다.
복도를 따라 2층 사서실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만났다. 이은희는 이미 내려오고 있었다. 마치 유진이 올 것을 알고 있었던 듯이.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 아래는 검게 멍이 들어있었다.
"서진우가 누구냐고 묻고 싶은 거죠." 이은희가 먼저 말했다. 질문이 아니라 확정이었다.
"그래."
"나현의 오빠예요."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유진의 발이 계단 가장자리에서 한 발 물러났다.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 나현의 오빠. 그렇다면 3년 동안 도서관에 드나든 그 남자는.
"나현이 죽은 후, 서진우는 당신의 기억을 추적하려는 모든 시도를 방해했어요." 이은희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각 단어가 칼처럼 떨어져 내려왔다. "당신이 책을 찾아가도록 방향을 틀고, 당신을 반복 안에서 계속 헤매도록."
"그럼 나현은..." 유진이 물었다. 그 말을 끝낼 수 없었다.
이은희가 한숨을 쉬었다. 그것은 3년을 담은 한숨이었다.
"나현은 죽었어요. 정말 죽었어요. 그런데 당신이 기억을 지우기로 선택한 순간, 도서관은 그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나현의 실제 죽음이 도서관 안으로 투영되었어요. 지금 당신이 만나는 나현, 반복 속에서 당신을 쫓아다니는 그것은 실제 나현이 아니에요. 도서관 안의 기억 속 나현이에요. 당신의 기억 속에서 만들어진 유령이에요."
유진의 호흡이 얕아졌다. 손가락이 계단 난간을 누르는 순간, 손가락의 감각이 1초 정도 늦게 따라왔다.
"도서관은 당신의 선택을 존중했어요." 이은희가 계속했다. "기억을 지우기로 선택했을 때, 도서관은 그것을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나현의 죽음은 도서관 자체의 질서를 어지럽혔어요. 그래서 도서관은 당신을 반복의 밤에 가뒀어요. 반복을 끝내려면, 당신은 모든 기억을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해요.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내려가야 해요. 지하 3층을 넘어서."
유진의 가슴이 철렁했다. 지하 3층의 금속문. 거기를 넘어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4층이 있다고?" 유진이 물었다.
이은희가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낡은 쪽지였다. 그 위에는 자신의 필체로 쓰인 글귀가 있었다.
*'진실 앞에서, 당신은 누가 되는가.'*
유진이 쪽지를 받아들었을 때, 이은희의 눈물이 흘렀다.
"나는 당신을 도와주고 싶었어요. 진짜로.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에요. 이 쪽지와 이 말. 더 이상 당신을 막을 수 없어요. 도서관도, 나도."
사무실로 돌아간 유진은 시계를 봤다. 오후 7시 15분. 밤 11시까지 3시간 45분이 남아있었다.
유진은 책상 서랍을 열었다. 박철수가 준 열쇠가 거기 있었다. 파란 금속으로 만들어진 낡은 것. 열쇠를 손에 들자, 손가락의 감각이 다시 미끄러졌다. 0.5초.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밤 10시 30분, 유진은 지하 1층에 내려갔다. 복도 끝의 금속문. 문 옆에는 자신의 필체로 쓰인 경고가 있었다.
*'돌아오지 말 것.'*
유진이 열쇠를 꽂았다. 금속음이 울렸다. 문이 열렸다.
밤 11시 정각, 도서관 전체가 어두워졌다. 조명이 꺼진 것이 아니라, 빛 자체가 사라진 것 같았다. 유진은 이미 지하 2층에 있었다. 손전등을 들고 내려갔다. 계단이 끝나지 않았다.
1층, 2층, 3층을 지나갔다. 4층.
책장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전의 책장이 아니었다. 이 책장들은 천장이 없었다. 계속 위로 뻗어나갔다. 바닥도 불확실했다. 유진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이 부드러운 종이처럼 꺼져들었다.
책들이 스스로 떨어졌다. 떨어지지 않았다. 날아다녔다. 수천 권의 책이 공중에 떠있었다. 모두 같은 책이었다. 모두 자신의 필체로 쓰여있었다. 제목은 다양했지만, 모두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나현의 죽음* *나현의 죽음* *나현의 죽음*
책들 사이를 헤치고 나아갔다. 한 발씩 떼면, 책장이 회전했다. 공간이 왜곡되었다. 앞에 보이던 것이 갑자기 옆에 있었다. 옆에 있던 것이 뒤에 있었다. 천장이 바닥이 되고, 바닥이 벽이 되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유진."
나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나현이 보이지 않았다.
"유진, 왜 날 놔뒀어?"
목소리가 모든 방향에서 나왔다.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안에서도.
"날 죽게 놔뒀어, 유진."
유진의 손이 떨렸다. 손전등의 빛이 흔들렸다. 그 흔들림 속에서 책 한 권이 떨어졌다. 유진의 손에.
제목: *진실의 문 앞에서*
유진이 책을 펼쳤다. 필체는 여전히 자신의 것이었지만, 글씨가 흔들려있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손이 펜을 잡고 있는 것처럼.
*'지하 4층을 더 내려가면, 5층이 있다. 거기에는 모든 것이 끝나는 곳이 있다. 기억이 시작된 곳. 기억이 지워진 곳. 그곳에서 모든 선택이 다시 시작된다. 거기에는 어머니가 있다. 거기에서 당신은 최종 선택을 하게 된다.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기억할 것인가, 잊을 것인가. 유진일 것인가, 유진이 아닐 것인가.'*
책장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유진, 대답해."
그것은 나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나현의 목소리와 자신의 목소리가 겹쳐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목소리도 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
모두가 하나의 목소리가 되었다.
"거기 내려가."
유진은 발을 떼었다.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 아래로는 빛이 보였다. 하얀 빛. 아니, 파란 빛. 아니, 아무 색도 아닌 빛.
유진이 한 발씩 내려갔다. 손의 감각이 1초씩 늦어졌다. 1초, 2초, 3초. 곧 자신의 손이 아닐 것 같았다. 곧 자신이 아닐 것 같았다.
계단의 끝에 문이 있었다.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반갑다, 유진. 아니, 반갑다고 해야 하나? 넌 이제 누구니?"
어머니였다. 확실히 어머니였다.
오후 6시, 유진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마지막 기억'이라는 책이 들려 있었고, 책 아래에는 낯선 필체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당신은 더 이상 유진이 아닙니다.*
책을 내려놓았다. 손이 떨렸다. 0.3초의 지연. 시간이 계속 누적되고 있었다.
이은희를 찾아야 했다.
2층 서고로 올라갔다. 사서 이은희는 반납 카트를 밀고 있었다. 유진이 나타나자 그녀의 손이 멈췄다. 카트 손잡이를 놓은 손가락들이 창백했다.
"서진우가 누구예요?"
이은희가 천천히 돌아섰다. 그녀의 얼굴은 회색이었다.
"어디서 그 이름을..."
"도서관에서. 책에서. 이은희, 더 이상 숨기지 마세요. 내가 그를 만났거든요. 밤 11시에. 그리고 내가 그를..."
"밀어냈다. 알아." 이은희가 말을 끊었다. "서진우는 나현의 오빠야."
공기가 얼었다.
"나현이 죽은 후에 서진우는 도서관에 와서 자료를 찾았어. 나현이 마지막으로 도서관에서 뭘 했는지, 왜 도움을 청했는지, 그런 것들을 찾으려고. 하지만 도서관은 그 기록들을 다 지워버렸어. 기억의 수호자들이. 그리고 나현도."
이은희가 책장을 붙잡았다. 손가락의 관절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서진우는 분노했어. 자기 여동생이 왜 죽었는지, 왜 기록이 없는지,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지. 그는 도서관의 비밀을 알아냈어. 누군가 그에게 말해줬거든. 그리고 그는 결심했어. 너의 반복을 막으려고. 너의 기억을 찾지 못하게. 너의 기억이 표면으로 올라오지 않게."
"그게 무슨..."
"도서관은 당신의 선택을 존중했어." 이은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당신이 기억을 지우기로 선택했을 때, 도서관은 그걸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현의 죽음은 도서관 자체의 질서를 어지럽혔어. 죽음은 기억되어야 하는데, 당신이 그걸 지워버렸으니까. 그래서 도서관은 당신을 반복의 밤에 가두었어. 반복을 끝내려면, 당신은 모든 기억을 마주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해."
유진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나현은 지금 어디에 있어요?"
이은희가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다시 시도했다.
"나현은... 도서관의 일부가 되었어. 당신이 기억하지 않기로 선택한 순간, 나현의 실제 죽음도 도서관 안으로 투영되었어. 지금 당신이 만나는 나현은 실제 나현이 아니야. 도서관 안의 기억 속 나현이야. 당신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는 나현이야."
"그러면 반복을 끝내면 나현은?"
"모르겠어. 아무도 거기까지 간 사람이 없어. 당신이 처음이야."
이은희가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손가락 사이로 목이 떨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의 기억을 되찾는 것과 나현을 살리는 것은 다른 문제야. 어쩌면 반대일 수도 있어. 당신이 기억할수록, 나현은... 더 죽어갈지도."
유진은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이은희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사서라는 직책 아래 숨겨져 있던 무언가가 표면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죄책감. 무력함. 자책.
오후 7시 42분.
유진은 지하 3층의 금속문 앞에 도달했다. 박철수로부터 받은 열쇠를 들었다. 파란 빛이 손가락 끝에서 떨렸다. 손의 지연이 0.7초까지 늘어나 있었다.
문을 열었다.
안은 어두웠다. 손전등을 켰다. 계단. 계단이 계속 내려갔다.
밤 10시 50분.
유진은 지하 4층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기는 도서관 평면도에 없는 공간이었다. 계단은 계속 내려갔다. 유진은 계속 내려갔다.
밤 10시 58분.
책장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전의 책장이 아니었다. 이 책장들은 천장이 없었다. 계속 위로 뻗어나갔다. 바닥도 불확실했다. 유진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이 부드러운 종이처럼 꺼져들었다. 마치 무한한 책의 바다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책들이 스스로 떨어졌다. 떨어지지 않았다. 날아다녔다. 수천 권, 수만 권의 책이 공중에 떠있었다. 모두 같은 책이었다. 모두 자신의 필체로 쓰여있었다. 제목은 다양했지만, 내용은 반복되었다.
*나현의 죽음* *나현의 죽음* *나현의 죽음*
책들 사이를 헤치고 나아갔다. 한 발씩 떼면, 책장이 회전했다. 공간이 왜곡되었다. 앞에 보이던 것이 갑자기 옆에 있었다. 옆에 있던 것이 뒤에 있었다. 천장이 바닥이 되고, 바닥이 벽이 되었다. 중력이 사라졌다. 방향이 사라졌다. 오직 책들과 자신의 필체만 남았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유진."
나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나현이 보이지 않았다.
"유진, 왜 날 놔뒀어?"
목소리가 모든 방향에서 나왔다.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날 죽게 놔뒀어, 유진. 날 혼자 놔뒀어. 왜?"
유진의 손이 떨렸다. 손전등의 빛이 흔들렸다. 그 흔들림 속에서 책 한 권이 떨어졌다. 유진의 손에.
제목: *진실의 문 앞에서*
필체는 여전히 자신의 것이었지만, 글씨가 매우 흔들려있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손이 펜을 잡고 있는 것처럼. 마치 손 자체가 거부하는 것처럼.
유진이 책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단 한 문장이 있었다.
*'더 내려가. 지하 5층으로. 거기에 모든 것이 있다.'*
다음 페이지.
*'기억이 시작된 곳. 기억이 지워진 곳. 그곳에서 모든 선택이 다시 시작된다.'*
다음 페이지.
*'거기에는 어머니가 있다. 거기에서 당신은 최종 선택을 하게 된다.'*
마지막 페이지.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 기억할 것인가, 잊을 것인가. 유진일 것인가, 유진이 아닐 것인가.'*
책장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유진, 대답해. 대답해줄래?"
그것은 나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나현의 목소리와 자신의 목소리가 겹쳐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목소리도 있었다. 더 낮고, 더 무거운 목소리. 어머니의 목소리.
세 목소리가 하나로 얽혔다.
"내려가. 이제 끝내자. 이제 끝내자. 이제 끝내자."
반복되는 명령. 반복되는 목소리. 반복되는 밤.
유진은 책을 내려놓았다. 손가락의 지연이 1.2초가 되어 있었다. 손가락이 책에서 떨어지는 데 1.2초가 걸렸다. 자신의 손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 끝에 문이 있었다. 그 문은 닫혀 있었지만, 문 사이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희고, 차갑고, 무색의 빛. 또는 모든 색을 동시에 담은 빛.
유진이 한 발씩 내려갔다.
밤 11시 59분.
문 앞에 도달했다.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반갑다, 유진."
그것은 확실히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낯설었다. 마치 처음 듣는 목소리 같았다.
"아니, 반갑다고 해야 하나? 넌 이제 누구니?"
유진의 손이 문 손잡이에 닿았다. 손가락의 지연이 2초가 되었다. 손이 문을 열기까지 2초. 2초 동안, 유진은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할 수 없었다. 2초 동안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