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의 도서관 4화
손가락이 펼쳐졌다 오므렸다를 반복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가락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처럼.
유진은 손을 내려놨다. 손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이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그 감각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신경이 끊어진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 같았다. 뇌가 명령하지만 몸이 따르지 않는, 그런 느낌. 아니다. 몸은 명령을 따르고 있다. 다만 그 명령이 자신의 것이 아닐 뿐이다.
책상 위의 책을 다시 바라봤다. 표지는 없었다. 제목만 있었다. 검은 글씨로, 손떨리는 필체로, 거의 읽을 수 없는 상태로 적혀있었다.
'내가 아닌 것들'
유진이 책을 집어 들었다. 종이가 낡았다. 손가락 끝에 먼지가 묻었다. 책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절반의 페이지만 채워져 있고, 나머지는 공백이었다. 마치 누군가 쓰다가 포기한 것처럼. 혹은 쓸 수 없게 된 것처럼.
첫 장을 펼쳤다.
*'나는 유진이다. 아니,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유진이 맞나? 거울에 비친 얼굴이 낯설다. 눈의 색이 다르다. 아니다. 눈의 색은 같다. 하지만 눈빛이 다르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눈빛이 내 눈에 숨어있다. 그 눈은 나를 본다. 내 안에서 나를 본다.'*
유진이 책을 내려놨다. 호흡이 빨라졌다. 가슴이 철렁했다.
이 문장들을 누가 썼는가? 자신의 필체다. 자신의 글이다. 하지만 자신이 쓴 것이 아니다. 누군가 자신의 손을 빌려 쓴 것이다. 아니다. 자신의 손이 아니라 이미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손을 조종하고 있다는 뜻인가?
유진은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손이 떨렸다. 글씨가 떨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일치했다. 손의 떨림이 글씨의 떨림과 정확히 일치했다.
두 번째 장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나현을 밀었다. 계단에서. 아니다. 그게 아니다. 내가 밀었나? 누군가가 내 손을 사용해 나현을 밀었나?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현이 떨어졌다. 피를 흘렸다. 그 피가 계단에 흩어졌다. 나는 그 피를 봤다. 나는 무엇을 느꼈는가. 죄책감? 아니다. 그게 아니다. 나는...'*
문장이 끝나지 않았다. 페이지 끝에서 문장이 끝나지 않은 채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데, 그곳도 공백이었다. 마치 누군가 쓰던 펜을 놨다가 다시 들지 않은 것처럼.
유진은 책을 닫았다. 손이 더 심하게 떨렸다. 책이 책상에 떨어졌다.
자신이 나현을 밀었다. 그건 기억인가? 아니면 책 속의 이야기인가? 기억과 이야기의 경계가 흐릿했다. 책을 읽으면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이건 기억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의 기억을 읽고 있는 것 같다. 그 누군가가 자신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
사무실의 벽시계가 오후 6시 2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유진은 일어섰다.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 있던 사진을 꺼냈다. 3년 전 촬영한 사진. 지하 서고 입구 앞에서 찍은 사진. 자신의 옆에 누군가가 서있었고, 그 인물이 검은 펜으로 지워져 있던 사진.
이제 유진은 알고 있었다. 그 지워진 인물이 나현이라는 것을. 자신의 손으로 사진에서 지워버린 것이라는 것을. 그 손이 자신의 손이 아니었다는 것을.
사진을 들었을 때, 유진의 손가락이 떨렸다. 손가락의 길이를 재어보려 했다. 어제의 손가락보다 길어진 것 같았다. 손 위에 손이 겹쳐있는 느낌.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이 자신의 손 위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유진은 사진을 놓았다. 손을 뒤로 물렸다. 손을 보지 않으려 했다.
대신 거울을 봤다. 사무실 벽에 붙어있는 작은 거울. 화장실 가기 전에 얼굴을 확인하려고 붙여놓은 거울. 유진이 그 거울을 정면으로 봤다.
얼굴이 낯설었다. 코의 형태가 이전과 다르게 보였다. 입술의 색이 다르게 보였다. 아니다. 얼굴은 같다. 하지만 표정이 다르다. 눈썹이 더 진해 보인다. 눈동자가 더 검어 보인다. 그 표정이 자신의 것이 아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표정이 자신의 얼굴에 앉아있다.
유진이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숨을 고르려 했다. 가슴을 안으려 했다. 손이 자신의 가슴을 안았다. 하지만 그 손의 감각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이 자신의 가슴을 안고 있는 느낌. 손가락의 길이를 다시 확인했다. 어제보다 확실히 길어져 있었다.
창밖을 봤다. 도시의 불빛들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밤이 오고 있었다. 11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유진은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내가 아닌 것들'. 그 책을 다시 펼쳤다. 첫 장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번엔 천천히. 이번엔 의도적으로.
*'나는 유진이다. 아니,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문장을 읽으면서, 유진은 자신의 음성으로 그 문장을 뱉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음성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목소리의 음정이 낮아졌다. 마치 누군가 더 나이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자신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책을 내려놨다. 손이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내려놓으려 했는데, 손이 그대로 책을 들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시도했다. 이번엔 손이 내려갔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의도였다.
유진은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2층으로 올라갔다. 서고의 어둠 속으로. 책장 사이를 헤쳐 다니며 다른 책들을 찾기 시작했다.
책장의 모퉁이에서, 유진은 또 다른 책을 발견했다. 이 책도 필체가 이전과 달랐다. 더 난해했다. 더 불안정했다. 글씨가 중복되어 있었다. 같은 단어가 여러 번 반복되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손을 떨면서 쓴 것처럼.
제목은 '나현의 눈동자'였다.
유진이 책을 펼쳤다. 첫 장에 적혀있던 것은:
*'그녀의 눈이 내 눈과 같았다. 아니다. 다르다. 그녀의 눈은 나를 본다. 나의 눈은 그녀를 본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더 이상 본다. 그녀의 눈은 닫혀있다. 영원히. 내가 그렇게 만들었나? 내가? 아니면 내가 아닌 누군가가?'*
책을 펼친 순간, 유진의 목에 통증이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손가락으로 목을 누르는 것처럼. 실제로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 감각은 분명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이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 같았다. 손가락의 위치, 압력의 강도—모두 나현이 죽을 때의 그것과 같았다.
유진이 책을 내려놨다. 손이 저절로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의도였다. 손이 내려가면서 책장을 쓸어내렸다. 책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여러 권의 책들이. 모두 자신의 필체로 쓰여있던 책들이. 그 중 일부는 '나현의 눈동자'와 같은 제목이었다. 반복되는 제목. 반복되는 죽음.
유진은 계단을 내려왔다. 1층으로. 열람실로. 조용한 공간으로. 아무도 없는 공간으로. 밤이 되자 도서관은 텅 비어있었다. 직원들은 모두 퇴근했다. 청소 담당자 박철수도 보이지 않았다. 사서 이은희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유진만 있었다. 아니다. 유진과, 유진이 아닌 누군가.
유진이 열람실의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창밖의 밤하늘이 자신의 얼굴 위로 겹쳐있었다. 얼굴이 반투명했다. 마치 유령처럼. 마치 실체가 없는 것처럼. 눈썹이 더 굵어 보였다. 턱선이 더 각져 보였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이 점점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 얼굴은 분명 누군가였다. 유진이 알고 있는 누군가. 하지만 이름을 떠올릴 수 없었다.
유진은 창을 두드렸다. 손가락이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힘이 빠져있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손을 약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손가락이 창을 두드릴 때마다 통증이 흘렀다. 마치 손가락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서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유진은 지하로 향했다. 이미 정해진 운명인 것처럼. 반복되는 밤처럼.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자신의 발소리가 달라졌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마치 자신의 몸무게가 줄어드는 것처럼. 마치 자신이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발이 계단을 밟을 때마다 걸음걸이가 변했다. 처음엔 자신의 걸음걸이였지만, 내려갈수록 누군가 다른 사람의 걸음걸이가 되어갔다. 마치 자신의 몸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몸으로 변해가는 것처럼.
지하 1층에 도달했을 때, 누군가 유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서진우였다. 지난 반복에서 만났던 그 남자. 유진을 막으려 했던 그 남자. 하지만 이번엔 그의 모습이 달랐다. 얼굴이 창백했다. 눈이 흐릿했다. 마치 이미 죽어있는 것처럼. 목에는 손가락 자국이 선명했다. 나현처럼. 그것도 같은 방식으로.
"다시 왔네."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지하 공간에서 울렸다. 여러 번 반복되며 울렸다. 하지만 목소리가 약했다. 마치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처럼.
"당신이 계속 기억하려 하면, 당신은 사라진다고 했잖아. 왜 여기 왔어?"
유진이 입을 열었다. 자신의 목소리로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나온 것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자신의 입에서, 자신의 성대에서, 나왔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목소리의 톤이 완전히 달랐다. 더 깊었고, 더 거칠었고, 더 절망적이었다.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유진의 입이 말했다.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당신으로 채워지는 거야."
서진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공포와 분노가 뒤섞인 표정. 그는 손을 들었다. 유진을 막으려 했다. 유진을 밀어내려 했다.
유진의 손이 움직였다.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손을 움직였다. 서진우를 밀어냈다. 강하게. 계단을 향해.
서진우가 계단으로 굴러떨어졌다. 비명을 지르지 않고. 조용하게. 마치 예정된 일처럼. 그의 몸이 계단을 구르면서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 소리가 멈췄다. 마치 그가 이미 죽어있었던 것처럼.
유진은 그를 보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을 봤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자신의 손이 아니었다. 손가락의 길이가 자신의 손가락보다 길어 보였다. 손가락 사이의 간격이 다르게 보였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이 자신의 손 위에 겹쳐있는 것처럼.
서진우는 왜 지하에 있었는가? 왜 자신을 막으려 했는가? 유진은 기억하려 했다. 하지만 기억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의 기억이 떠올랐다. 서진우와 자신이 함께 있던 어떤 장면. 서진우가 자신을 밀어내려던 장면. 그리고 자신이 서진우를 밀어낸 장면. 그 모든 것이 반복되고 있었다.
유진은 지하를 나갔다. 1층으로 올라갔다. 호흡이 거칠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호흡이 아니었다. 자신의 심장이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호흡이 자신의 가슴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책 자판기 근처에 도달했을 때, 조명이 떨어졌다. 다시. 같은 방식으로. 전구가 터졌다. 불꽃이 튀었다. 감전이 일어났다.
유진의 몸이 경직되었다.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심장이 멈췄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몸이 경직되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심장이 멈췄다.
그리고―
오후 6시 5분. 사무실. 책상 위. 유진이 눈을 떴다.
손에는 또 다른 책이 들려있었다. 이 책의 필체는 거의 읽을 수 없었다. 글씨가 너무 흐릿했다. 마치 누군가 눈을 감고 쓴 것처럼. 마치 누군가 이미 사라져가면서 쓴 것처럼.
제목은 '나는 누가 되는가'였다.
유진이 책을 집어 들었다. 무게가 가벼웠다. 마치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책처럼. 마치 유령 같은 책처럼. 책이 손에서 미끄러질 듯이 가벼웠다.
첫 장을 펼쳤다. 한 문장만 있었다. 그것도 거의 읽을 수 없는 상태로.
*'나는 유진이 아니다.'*
그다음 페이지는 공백이었다. 그다음도. 그다음도. 모두 공백이었다. 마치 누군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가 중간에 멈춘 것처럼. 혹은 쓸 수 없게 된 것처럼.
유진은 책을 놓았다. 손이 떨렸다. 다리가 떨렸다. 목이 떨렸다.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얼굴이 이제 완전히 낯설었다. 눈의 색깔도 다르고, 코의 형태도 다르고, 입의 모양도 다르다. 아니다. 얼굴은 같다. 하지만 그 안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앉아있다. 자신을 보고 있다. 자신을 채우고 있다. 자신을 먹어치우고 있다. 그 누군가의 눈빛이 자신의 눈 안에서 빛나고 있다. 그것은 분명 누군가의 눈이었다. 유진이 알고 있는 누군가. 하지만 이름을 떠올릴 수 없었다. 오직 감각만 남아있었다. 어머니의 감각. 어머니의 눈빛.
유진은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창밖을 봤다. 도시의 불빛들이 다시 켜지고 있었다. 밤이 오고 있었다. 반복이 계속되고 있었다.
사무실 책상 위에 또 다른 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권. 그 책에서 낡은 종이 냄새가 났다. 또 한 권. 이번엔 곰팡이 냄새가 났다. 또 한 권. 이번엔 피 냄새가 났다. 모두 자신의 필체로 쓰여있었다. 모두 낡아있었다. 모두 불완전했다. 모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았다.
유진은 그 책들을 바라봤다. 자신이 쓴 책들.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쓴 책들. 그 책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기억이 책으로 변환되는 것처럼. 자신의 정체성이 글자로 분해되는 것처럼.
밤 11시까지 4시간이 넘게 남아있었다.
유진은 손을 들어올렸다. 그 손이 자신의 손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손의 모양이 이전과 달랐다. 손가락이 길어진 것처럼 보였다. 혹은 손가락의 관절이 많아진 것처럼. 혹은 손 자체가 다른 누군가의 손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처럼. 손가락 끝이 날카로워 보였다. 손가락 사이의 간격이 벌어져 보였다.
유진은 그 손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나는 누가 되는가'. 그 책을 다시 펼쳤다.
첫 장의 문장을 다시 읽었다.
*'나는 유진이 아니다.'*
이번엔 다르게 들렸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 문장을 읽고 있는 것처럼.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자신을 통해 그 문장을 읽고 있는 것처럼. 그 목소리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었다.
유진은 책을 내려놨다. 손이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의도가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의도였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손을 내려놓고 있었다.
창밖의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밤이 오고 있었다. 반복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유진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로 채워지고 있었다.
책상 위의 책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엔 더 많이. 더 빨리. 모두 낡았다. 모두 불완전했다. 모두 거의 읽을 수 없는 필체로 쓰여있었다. 책 위에 책이 쌓였다. 책 옆에 책이 놓였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기억을 모두 책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책들 사이에서, 유진은 자신이 누구인지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기억이 책으로 변환되고, 책 속의 누군가가 자신을 채우고, 자신이 그 누군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자신의 손이 사라지고, 자신의 얼굴이 사라지고 있었다.
밤 11시까지 4시간이 남아있었다.
유진은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것이 아닌 누군가의 고개를 들었다.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얼굴이 더 이상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어머니의 얼굴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