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후 6시 23분, 도서관 1층 열람실
유진은 박철수를 찾았다. 청소 담당자는 2층 서고 모서리에서 먼지를 털고 있었다. 그의 손은 늘 떨렸다. 유진이 다가가자 그는 빗자루를 내려놓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박철수 님, 저 지하 서고라는 게 있다고요?"
박철수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주름진 피부가 더 깊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다시 벌렸다.
"거기는 개방되지 않는 구역입니다."
"그런데 왜 있는 거죠? 왜 도서관에 폐쇄된 구역이 있어요?"
박철수는 빗자루를 다시 들었다. 손이 더 심하게 떨렸다.
"모르는 게 낫습니다."
"아, 알고 싶어요. 저는 여기서 3년을 일했는데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요?"
그 순간 박철수가 멈췄다. 빗자루 끝이 바닥에 닿았다. 그의 눈이 유진을 향했고, 그 속에는 깊은 두려움과 슬픔이 섞여 있었다.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할 준비를 하는 사람의 눈이었다.
"당신이 정말 알고 싶다면," 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밤 11시 이후에 찾아봐요."
유진의 심장이 한 박자 멈췄다.
"그게 무슨..."
하지만 박철수는 이미 몸을 돌렸다. 그는 서고 끝으로 사라져갔고, 유진은 그 뒷모습만 바라볼 수 있었다. 떨리는 손, 구부러진 등, 무언가를 짊어진 사람의 걸음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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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6시 41분, 유진의 사무실
사무 서랍은 3년 동안 쌓인 서류들로 가득했다. 대출 기록, 반납 독촉장, 도서관 운영 지침서들. 유진은 서랍 깊숙한 곳을 헤쳤다. 문구, 열쇠, 오래된 배지. 그리고 그 아래,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공간.
사진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색이 바랜 인쇄 사진. 촬영 날짜는 3년 전 10월 14일로 적혀 있었다. 배경은 도서관의 지하 입구 앞이었다. 회색 콘크리트 벽, 녹슨 철문, 손전등의 불빛.
사진 속에는 유진이 서 있었다. 웃고 있었다. 그 옆에 누군가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있었는데, 그 부분은 검은 펜으로 완전히 칠해져 있었다. 얼굴을 지운 것이었다. 팔의 일부만 남아 있었고, 그 선은 예리했다. 의도적인 손질이었다. 펜의 선이 울렁거렸다. 누군가 손이 떨리면서 칠한 것처럼 보였다.
유진의 손이 차가워졌다.
자신의 필체였다. 그 펜질. 그 울렁거림. 자신이 이 사진을 지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년 전, 자신이 누군가를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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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7시 12분, 2층 서고
유진은 책장 사이를 헤매고 있었다. 손에 들린 목록은 없었다. 책들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책등에 적힌 제목들이 시선을 끌었다. 대부분은 일반적인 도서관 장서였지만, 가끔씩 이상한 제목들이 섞여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돌아올 수 없는 밤' '물 속의 기억'
유진이 한 권을 집었다. 평범한 하드커버였지만, 제목은 명확했다.
'나현을 기억하지 않으려 한 이유'
책을 펼쳤다. 첫 번째 페이지에는 글이 없었다. 두 번째 페이지에는 사진이 있었다. 나현의 얼굴. 젊은 여자의 얼굴인데, 그 표정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아니, 기다리지 말라는 듯했다. 아니, 자신을 보지 말라는 듯했다.
유진의 뇌가 울렸다.
기억이 물 위로 떠올랐다. 완전하지 않은 기억. 마치 수심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물체처럼 왜곡된 기억. 계단이 있었다. 도서관의 계단이었다. 밤이었다.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유진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손을 맞추지 못했다. 누군가가 떨어졌다. 긴 비명. 그리고 침묵.
유진이 책을 떨어뜨렸다.
책장을 짚고 몸을 굽혔다. 가슴이 철렁했다. 죄책감과 거부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것들이 맞부딪혔다. 유진은 둘 중 무엇이 더 강한지 알 수 없었다.
책을 다시 집었다. 페이지를 넘겼다. 글이 있었다. 자신의 필체로 쓰인 글.
'그날 밤, 나현이가 지하로 내려가지 말라고 했어. 하지만 나는 내려갔어. 그리고 나현이가 뒤를 따라왔어. 계단에서... 아니, 이건 기억이 아니야. 이건 내가 만든 이야기야. 내가 만든 거 아니면... 내가 한 거?'
유진의 손이 떨렸다. 책을 닫았다. 이것은 자신의 기억이 아니다. 누군가 자신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무엇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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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10시 58분, 지하 입구
밤이 깊어질수록 도서관은 다른 공간이 되었다. 1층의 조명이 하나둘 꺼졌다. 유진은 그것을 본 적이 없었다. 누가 끄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되면 그냥 꺼졌다.
지하 입구는 1층 열람실 서쪽 끝에 있었다. 유진이 3년을 일했지만 이 문을 열어본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이 문에는 '개방 금지'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손잡이에는 쇠사슬이 감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 쇠사슬은 풀려 있었다.
누군가 이미 이 문을 열었다는 뜻이었다. 또는 이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는 뜻이었다.
유진은 손잡이를 당겼다. 문이 열렸다. 어둠이 흘러나왔다. 진짜 어둠이었다.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콘크리트와 곰팡이와 시간이 고여 있는 냄새가 났다.
유진은 손전등을 꺼냈다. 1층에서 챙긴 것이었다. 불빛이 계단을 비추었다. 돌 계단. 오래된 돌. 계단의 모서리가 반들반들했다. 누군가 많이 밟았거나, 아니면 물에 잠겼거나.
유진은 내려갔다.
계단 끝. 복도. 천장은 낮았다. 머리가 닿을 것 같았다. 양쪽 벽에는 선반이 있었다. 선반 위에는 책들이 있었다. 일반적인 도서관의 책들이 아니었다. 표지가 없는 책들. 손으로 쓴 제목이 있는 책들. 그리고 그 모든 글씨가 자신의 필체였다.
유진이 한 권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제목은 '그날 밤의 목록'이었다. 페이지를 펼쳤다.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나현' '서진우' '이은희' '김준호' '어머니'
그 아래에는 한 줄이 더 있었다.
'그리고 나는?'
유진이 책을 닫았다. 손전등의 불빛이 앞을 비추었다. 복도는 계속되었다. 더 깊은 곳으로. 더 어두운 곳으로.
유진은 걸었다.
복도의 끝. 거기에는 문이 있었다. 거대한 금속문. 녹이 슬어 있었고, 손잡이는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문 위에는 글씨가 있었다. 손글씨였다. 굵은 검은색 펜으로 쓰인 글씨.
'돌아오지 말 것'
유진의 심장이 강하게 뛰었다. 그 글씨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필체였다. 여성의 필체였다. 하지만 그것도 낯설지 않았다. 마치 예전에 본 글씨처럼. 마치 자신이 지웠던 글씨처럼.
유진이 손을 들었다. 손잡이에 닿으려 했다.
그 순간, 뒤에서 손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유진의 숨이 멎었다.
돌아봤다.
나현이 서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진 속의 나현이 아니었다. 창백한 얼굴. 검은 눈. 그 눈 속에는 증오와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 마치 깊은 물 속 두 가지 색깔이 섞이지 않고 함께 존재하듯이.
"유진, 당신은 왜 자꾸 돌아오려 하는가."
목소리였다. 낮고, 차갑고, 익숙했다.
"나현?"
유진이 한 발 물러났다.
"그건 내 이름이 맞나요?"
나현의 손이 유진의 팔을 잡았다. 차갑고 무거웠다. 살아있는 손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지은 이름이죠. 당신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유진이 또 한 발 물러났다. 나현도 함께 움직였다. 걸음이 일치했다. 마치 거울 속의 상처럼.
"지하로 내려오지 마요. 당신이 내려올 때마다 나는 다시 깨어나요."
유진의 발이 계단의 끝을 찾지 못했다.
없었다. 계단이 없었다. 복도가 끝나고, 그 아래는 공간이었다. 어둠이었다. 바닥이 없는 어둠.
나현의 손이 유진의 팔에서 떨어졌다.
유진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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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6시 정각, 도서관 1층 열람실
유진의 눈이 떠졌다. 사무실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손에는 책이 들려 있었다. 두꺼운 책. 새로운 책.
제목은 '나현의 죽음'이었다.
유진이 책을 펼쳤다. 첫 번째 페이지에는 사진이 있었다. 계단이었다. 도서관의 계단. 그 계단 위에 누군가가 누워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옷은 알아볼 수 있었다. 3년 전 그 여자가 입었던 옷이었다.
두 번째 페이지에는 글이 있었다. 필체가 흔들렸다. 마치 여러 사람이 한 문장씩 이어 쓴 것처럼.
'3년 전 10월 14일 밤 11시 47분. 나현이가 도서관 2층 계단에서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아니, 내가 밀었다. 아니다. 나는 밀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밀었다. 아니다. 아무도 나를 밀지 않았다. 나현이는 자살했다. 아니다. 나현이는...'
다음 페이지는 비어 있었다. 글씨가 써지다가 멈춘 자국만 있었다. 펜이 종이를 관통할 뻔한 흔적들. 절망과 부정과 죄책감이 그려낸 선들.
마지막 페이지에는 한 문장만 있었다. 필체가 다시 명확해졌다. 하지만 누구의 필체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당신이 기억하는 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인가?'
유진의 손이 떨렸다. 책을 떨어뜨렸다. 도서관 어딘가에서 경고가 들렸다. 아니, 그건 경고가 아니라 울음소리였다.
밤 11시 정각, 도서관의 모든 출입문이 동시에 잠겼다.
그리고 2층 서고에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 아직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유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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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11시, 1층 열람실
유진이 책을 주워 들었다. 손이 계속 떨렸다. 책장 사이의 어둠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1층 열람실의 형광등이 깜박거렸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완전히 꺼졌다.
검은 암흑.
유진은 책을 가슴에 안고 책상 밑으로 몸을 구부렸다. 숨을 죽였다. 2층에서 들려오던 발걸음 소리가 계단을 내려왔다. 천천히. 한 계단, 한 계단. 마치 시간을 재며 내려오는 듯했다.
'나현이가... 죽었다?'
유진의 뇌가 정보를 거부했다. 책 속의 문장들이 뒤엉켰다. 자살, 밀었다, 밀지 않았다, 누군가. 진실이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인가. 기억이 아닌가? 거짓인가? 환상인가?
발걸음이 멈췄다.
누군가 1층에 있었다. 유진이 숨어 있는 같은 층에. 호흡음이 들렸다. 가쁜 호흡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천천히 내쉬는 호흡. 마치 사냥꾼이 먹이를 기다리듯이.
"유진."
목소리였다. 여성의 목소리. 낮고 차갑고, 마지막 반복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하지만 지금 이 목소리는 다른 곳에서 나고 있었다. 2층이 아닌 1층에서. 유진의 바로 옆에서.
"책을 다시 읽고 있어? 같은 부분을 자꾸 반복하면서?"
책상 밑에 누군가의 신발이 보였다. 검은색 신발. 여자 신발. 서서히 책상 밑으로 구부러지고 있었다.
유진은 책을 들고 몸을 날렸다. 책상 아래에서 벗어나 열람실 중앙으로 굴렀다. 일어섰다. 어둠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있었지만, 도서관의 구조는 손가락 끝처럼 느껴졌다. 출입문. 1층 출입문은 이미 잠겨 있을 것이다. 계단.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위험하다.
"박철수!"
유진이 외쳤다. 목소리가 도서관 전체에 울렸다. "박철수 아저씨!"
어둠이 흔들렸다. 형광등이 다시 켜졌다. 노래하듯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불빛이 돌아오자 유진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보았다. 참고서 코너. 벽 쪽.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도.
이은희였다.
사서 이은희가 책상 위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3년을 함께 일한 그 여자가 아니었다. 피부가 창백했고, 눈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초상화처럼. 입술이 파란색이었다. 옷에서 물이 흘러내렸다.
"박철수는 올 수 없어요. 그는 지하에 있거든요."
이은희가 말했다. 목소리가 울렸다. 멀리서 오는 목소리처럼. 마치 깊은 우물 밑에서 외치는 목소리처럼.
"당신은 아직도 모르고 있어요. 도서관이 무엇인지. 이 밤이 무엇인지."
유진의 발이 뒤로 물러났다. 책이 손에서 무거워졌다. '나현의 죽음'. 책 속 페이지가 펼쳐졌다. 글씨가 떨렸다. 필체가 변했다. 처음 페이지의 글씨와 마지막 페이지의 글씨가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면 당신은 잊어버려요. 그리고 기억하면 당신은 죽어요. 그리고 죽으면 당신은 다시 읽어요. 반복이에요, 유진. 당신 자신의 반복."
이은희가 책상에서 내려왔다. 발이 바닥에 닿자 축축한 소리가 났다. 물에 젖은 소리. 이은희의 옷에서 물이 흘러내렸다. 도서관 바닥이 젖기 시작했다.
'익사. 또 다른 반복. 도서관이 물에 잠기고 있다.'
유진의 기억이 겹쳤다. 이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이 정확한 장면을.
"저는 도서관에서 3년 동안 당신을 봐왔어요. 매일 밤 11시마다. 당신이 죽고, 일어나고, 다시 죽는 것을. 당신이 기억하고, 잊고, 다시 기억하는 것을."
물이 무릎까지 찼다. 빠르게. 너무 빠르게. 도서관 바닥이 호수가 되고 있었다. 책들이 물 위에 떠다니기 시작했다.
"당신이 우리를 지웠어요, 유진. 우리 모두를. 그래서 우리도 당신을 지우기로 했어요."
이은희가 물을 헤치며 다가왔다. 그 뒤에 또 다른 형상이 보였다. 2층 서고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누군가. 나현이었다. 하지만 나현은 물 위를 걷고 있었다. 물에 빠지지 않고. 얼굴이 검은 그림자로 가려져 있었다.
유진은 책을 들고 뛰었다. 물을 헤치며 참고서 코너에서 벗어났다. 그곳으로는 안 된다. 저쪽도 안 된다. 출입문은 잠겨 있다. 계단도 위험하다.
지하.
뭔가가 유진을 지하로 밀어내고 있었다. 반복할 때마다. 한 층 더 깊이. 한 걸음 더 어둠으로.
유진이 돌아섰다. 책장 사이로 달렸다. 물이 이제 허리까지 찼다. 호흡이 가빠졌다. 책장이 쓰러졌다. 앞을 막았다. 유진은 그것을 밀어냈다. 책들이 물 위로 흩어졌다.
2층 서고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다. 하지만 나현이 그곳에 서 있었다. 물 위에 선 채로. 얼굴이 검은 그림자로 가려져 있었다.
"돌아오지 말 것."
그 목소리가 반복됐다. 벽에서, 책장에서, 물 자체에서. 도서관 전체가 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유진의 손에 든 책이 무거워졌다. 책이 물을 흡수했다. 책장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유진도 물 속으로 빨려내려갔다. 숨을 참았다. 눈을 떴다. 물 속에서.
물 속에는 책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수백 권의 책들. 모두 같은 필체로 쓰인 책들. 모두 유진의 이름이 표지에 적혀 있었다.
'유진의 선택.' '유진의 죄책감.' '유진의 망각.' '유진의 나현.' '유진의 죽음.'
유진의 폐가 터질 듯했다. 물을 들이마셨다. 목이 타들어갔다. 의식이 흔들렸다.
그리고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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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6시 정각
유진의 눈이 떠졌다. 사무실 책상. 다시. 항상 같은 자리에서. 항상 같은 시간에.
손에는 책이 들려 있었다. 새로운 책. 또 다른 책.
제목은 '기억을 잃는 방법'이었다.
유진이 손을 들었다. 손가락이 페이지를 넘겼다. 자동으로.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녀의 손을 움직이는 것처럼. 첫 번째 페이지.
사진이 있었다. 도서관의 벽이었다. 그 벽에 기대어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검은 모자가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옆에 적힌 글씨로 알 수 있었다.
'어머니. 2019년 10월 14일.'
유진의 심장이 멈췄다.
어머니?
기억이 물 위에 떠올랐다. 조각 조각.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선명했다. 어머니의 얼굴. 어머니의 목소리. 어머니가 도서관에 왔던 그 밤.
'당신이 도서관에서 일한다며?'
'엄마, 여기 오면 안 돼.'
'왜? 뭔가 숨기는 건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그냥 뭐?'
유진의 손이 떨렸다. 책장이 떨렸다. 아니, 도서관 전체가 떨리고 있었다.
박철수가 나타났다. 1층 입구에서. 사무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도 검은 그림자였다. 마치 사진이 태워진 것처럼.
"유진 씨. 당신이 원하는 것이 뭔가요?"
박철수가 물었다. 목소리가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또 다른 목소리가 겹쳐졌다. 여성의 목소리. 아이의 목소리. 남성의 목소리. 도서관 전체의 목소리.
"반복을 끝내고 싶어요? 아니면 계속 잃고 싶어요?"
유진이 책을 펼쳤다. 두 번째 페이지. 글이 있었다. 자신의 필체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필체였다.
'내 딸은 나를 몰라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내 잘못이라는 것을 안다.'
세 번째 페이지. 다시 자신의 필체.
'엄마가 계단에서 떨어졌어. 나현이가 손을 잡으려고 했어. 나도 손을 잡으려고 했어. 하지만 우리는 모두 떨어졌어. 누군가 우리를 밀었어. 아니야. 아무도 우리를 밀지 않았어. 엄마가 손을 놓았어. 아니다. 내가 손을 놓았다.'
유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책이 눈물로 젖었다. 글씨가 번졌다.
"당신이 읽을 때마다, 당신은 조금씩 사라져요."
박철수가 말했다. 아니, 그것은 박철수가 아니었다. 박철수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였지만, 박철수가 아니었다. 도서관이 박철수를 입으로 삼아 말하고 있었다.
"당신이 기억할 때마다, 당신은 조금씩 죽어요. 그리고 당신이 죽을 때마다, 새로운 책이 나타나요. 당신이 기억하지 않기를 바라며. 당신이 기억을 포기하기를 바라며. 그래서 당신이 영원히 여기 남기를 바라며."
유진이 책을 던졌다. 책이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책장이 흔들렸다. 책들이 떨어졌다. 그 중 하나가 다시 유진의 발 앞에 떨어졌다.
제목은 '당신은 누구인가'였다.
유진이 책을 집어 들었다.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거울이 있었다. 아니, 사진이었다. 거울처럼 보이는 사진. 그 안에는 유진의 얼굴이 있었다. 하지만 눈이 없었다. 눈이 검은 그림자로 칠해져 있었다.
두 번째 페이지. 글씨가 거의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흐릿했다. 마치 누군가 손으로 문질러 지운 것처럼.
'나는... 나는... 나는...'
그 이상은 없었다. 글씨가 끝났다. 또는 시작되지 않았다.
도서관의 모든 불이 꺼졌다. 한 번에. 동시에.
완전한 어둠.
그 속에서 유진은 자신이 누구인지 묻고 있었다. 유진인가? 나현인가? 어머니인가? 아니면 도서관 자체인가? 그 질문 속에서 기억의 편린들이 떠올랐다. 손을 놓은 순간. 비명. 계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우려던 절박함.
밤 11시가 되자, 모든 출입문이 동시에 잠겼다.
유진의 손에는 여전히 책이 들려 있었다. 또 다른 책. 또 다른 기억. 또 다른 죽음.
제목은 '지하로의 초대'였다.
유진이 책을 열려는 순간, 자신의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이 얼어붙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손이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것처럼.
책장이 무너졌다.
수백 권의 책들이 유진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그 모든 책의 제목에는 유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모든 책의 필체는 유진의 것이었다. 그 모든 책의 내용은 유진의 기억이었다.
아니, 기억이 아니라 기억의 조각이었다.
기억의 파편이었다.
기억의 무덤이었다.
도서관 전체가 천천히 회전했다. 벽이 기울었다. 바닥이 수직이 되었다. 유진은 책 더미 속으로 빨려내려갔다. 아래로. 더 아래로. 지하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린 것은 박철수의 목소리였다. 아니, 박철수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도서관의 목소리였다.
"당신이 기억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당신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