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아카데미의 망각한 천재는 정체를 숨기고 싶다 - 2화

전단지를 손에 쥔 순간부터 손가락이 떨렸다.

'지하 3층. 기억 복원팀 모집.'

어제 강제 노출된 기억 영상 속 거울. 거울 속 다른 눈빛을 한 자신이 "날 잊어 줄래?"라고 속삭였던 목소리. 그것이 뭐든 간에, 내 기억을 되찾으려면 저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계단을 내려가며 심호흡을 했다. 들킬까? 능력이 드러나면? 기억 조작은 아카데미에서 가장 치명적인 범죄였다. 추방은 기본이고, 심각하면 자신의 기억을 완전히 소거당한다. 이미 하나 잃었는데, 또 하나를 잃고 싶진 않았다.

지하 복도는 생각보다 깊었다. 1층, 2층을 지나 3층에 도달했을 때, 문제가 생겼다. 카드 리더기가 있었다. 아카데미 학생증을 태워야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나는 기억 복원팀에 아직 공식 등록되지 않은 신입이었다. 학생증을 태우면 기록이 남는다.

옆 벽의 환기구를 봤다. 그것도 아니다. 너무 명백하다.

"혼자 뭐 하는 거야?"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났다. 나는 학생증을 재빨리 주머니에 넣었다. 돌아보니 갈색 긴 머리의 여학생이 서 있었다. 얼굴은 낯설지 않았다. 기억 복원팀 면접에서 본 그 여학생. 노아였다.

"어제 면접 본 사람이네?" 노아가 웃으며 다가왔다. 그 웃음은 진짜였다. 거짓이 섞여 있지 않았다. "넌 뭐 하는 거야?"

나는 전단지를 보였다.

"기억 복원팀이 뭐 하는 곳인지 궁금했어."

노아의 눈빛이 반짝였다.

"정말? 우리도 저주 피해자들을 돕고 있거든. 기억을 잃은 사람들... 너처럼."

'너처럼.' 그 말이 정확했다. 나는 기억을 잃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 물론 정말 원하는 건 기억을 잃은 '이유'였지만, 그건 말할 수 없었다.

"들어가 봐도 돼?"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노아가 학생증을 카드 리더기에 태웠다. 문이 열렸다. 복도의 벽은 회색이었고, 벽에는 수십 개의 모니터가 붙어 있었다. 누군가의 기억 활동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것 같았다.

"여기가 비공식 조직이야." 노아가 설명했다. "공식적으로는 기억 저주 피해자 상담실이지만, 실제로는 저주의 원인을 추적하고 있어. 저주 패턴, 시술자의 마법 흔적... 모든 걸 기록해."

그러니까 저들은 단순히 도움만 주는 게 아니었다. 저주 피해자들의 기억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조직이었다.

"시온이 좀 진지하긴 한데, 마음이 좋아." 노아가 계속했다. "너도 우리랑 함께할래?"

내가 대답하기 전에, 칠판에 뭔가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글씨는 시온의 것 같았다.

'피해자: 기억 저주로 능력과 정체성 소실. 저주자: 외부인 또는 피해자 본인?'

본인. 자기 저주.

시온은 이미 의심하고 있었다.

"너 괜찮아? 얼굴이 좀 창백한데." 노아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다시 일어났다. 노아의 기억이 흐르기 시작했다.

* * *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웃고 있었다. 손에는 딸기 케이크를 들고 있었고, "생일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 목소리는 따뜻했다. 아버지도 있었다. 셋이 함께 앉아 있었고, 케이크를 나눴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머니의 얼굴이 흐릿해졌다. 아버지의 얼굴도 희미해졌다. 마치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노아는 손을 뻗었다. 붙잡으려고 했지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그것은 물이 아니었다. 빛이었다. 부모의 형상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남은 것은 끝없는 검은색 공허함이었다.

그리고 울음소리.

* * *

나는 눈을 떴다.

노아가 울고 있었다. 손을 잡은 채로.

세상이 두 겹으로 보였다. 노아의 어머니와 내 얼굴이 겹쳤다. 내 시야 속에 노아의 기억이 투명하게 중첩되었다. 청각이 간섭받았다. 노아의 울음소리와 내 울음소리가 겹쳐졌다. 누가 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손가락이 누구의 손가락인지 몰랐다.

"미안해." 나는 떨리는 손을 놨다. "손이 미끄러웠어."

거짓이었다. 기억 읽기를 하면서 노아의 감정까지 들어왔다. 부모를 잃은 공허함. 그것을 자신의 몸으로 느껴야 했다.

노아가 눈물을 닦았다. "왜 울어? 넌 울지 않았잖아."

손을 내려다봤다. 뺨이 젖어 있었다.

나는 노아를 안아줬다. 말이 없었다. 말할 수 없었다.

"고마워." 노아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깨달았다. 이 능력으로, 나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너의 부모를 찾을 수 있어." 나는 속삭였다. "약속할게."

노아가 떨어져 나왔다. 눈이 반짝였다.

"정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이 능력으로... 내 기억도 찾을 수 있겠네."

그 말을 한 순간, 세상이 흔들렸다.

두개골 안쪽이 압박감으로 팽팽해졌다. 현재형 기억들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흘러내렸다. 노아와 방금 나눈 대화가 흐릿해졌다. 아니, 모든 것이. 며칠 전 학식당에서 뭘 먹었는지. 어제 수업 내용이. 1시간 전 무엇을 했는지.

내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능력을 쓸 때마다.

"뭐... 뭐지?"

몸이 흔들렸다. 시야가 맴돌았다. 바닥이 가까워졌다.

누군가 내 팔을 잡았다.

"너 괜찮아?"

검은 머리. 차가운 눈. 카인이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낯설었다. 그 얼굴도.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그런데 동시에 극도로 익숙했다. 내 신체가 자동으로 반응했다. 심장이 빨라졌다. 호흡이 얕아졌다.

내 입에서 말이 나왔다.

"넌... 누구야?"

그 순간, 카인의 눈동자가 수축했다. 호흡이 가빠졌다.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졌다.

"날 잊었어?"

그 질문이 내 뇌를 찔렀다. 낯설면서도 너무나 익숙한 이 사람. 검은 머리, 차가운 눈, 그런데 지금 그 눈 속에는 뭔가 흔들리는 것이 있었다.

나는 카인의 팔을 떠밀었다. 어지러움이 심했고,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억이 흐릿해지는 건 능력 사용 후의 피로가 아니었다. 더 깊은 무언가였다. 그리고 이 남자. 그가 그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 혼자 있고 싶어."

내 목소리가 낯설었다. 정중한 거절이 아니라 거의 혐오에 가까운 톤이었다. 마치 내가 아닌 누군가의 목소리처럼.

카인이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눈동자가 수축했다. 호흡이 변했다. 얼굴의 근육이 경직되었다. 상처라기보다는 이미 예상한 것을 확인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 카인이 돌아섰다. "나중에 얘기하자."

그가 방을 나가자, 노아가 내 팔을 잡았다.

"린, 괜찮아?"

나는 노아의 손을 떨어냈다. 너무 세게. 노아가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미안해. 나 잠깐 밖에 나갈게."

나는 방을 빠져나왔다. 기억 복원팀 사무실의 복도는 어두웠다. 형광등만 깜빡였다. 그 깜빡임이 내 현기증을 더 심하게 만들었다.

벽에 손을 짚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자신의 현재 기억이 흐릿해진다고 시온이 말했던가. 그렇다면 이건 정상이다. 하지만 이건 대가의 범위를 넘어섰다. 1시간 전의 기억이 완전히 없었다. 어떻게 이 방에 왔는지, 언제 들어왔는지, 무엇을 했는지.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카인. 그 남자는 뭐지?

이름은 알고 있었다. 기억 복원팀의 요원. 냉정한 성격. 감정 표현이 거의 없다. 그런데 왜 내게 그렇게 익숙한 건가. 그의 목소리는 왜 내 뇌 어딘가를 건드렸나.

"날 잊었어?"

그 질문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 공포였다.

나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방향을 정하지 않았다. 지하 3층의 복도는 길었다. 어느 순간, 나는 자신이 이 길을 전에 가본 것처럼 느꼈다. 왼쪽 모서리에 있는 금이 간 벽. 오른쪽에 붙어 있는 낡은 표지판. '금지 구역'이라고 쓰여 있었다. 화살표는 아래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하 4층.

나는 화살표를 따라갔다. 내 발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마치 내 신체가 내 의지보다 먼저 알고 있었던 것처럼.

계단이 있었다. 나선형으로 내려가는 계단. 거기서부터는 형광등이 없었다. 대신 벽에 붙어 있는 발광 석영이 희미한 빛을 냈다.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현기증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대신 다른 것이 생겼다. 공포. 이 길을 간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가본 것처럼 느껴지는 공포.

"뭐 하는 거야?"

목소리가 뒤에서 났다. 나는 몸을 굳혔다.

시온이었다. 그의 표정은 평온했지만 눈은 예리했다.

"기억 복원팀 구역 밖이야." 시온이 한 걸음 다가섰다. "지하 4층은 출입 금지 구역이고."

"알아." 나는 돌아섰다. "실수했어."

"실수?" 시온이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따뜻했지만 뭔가 날카로웠다. "넌 기억이 없으니까 실수가 많겠네. 그런데 이 구역을 어떻게 알았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실제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 다른 누군가가 너한테 알려줬어?"

시온이 다가섰다. 그는 내 팔을 잡았다. 살짝. 위협이 아닌 친절한 터치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 팔은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손을 떨어냈다.

"나 방으로 돌아갈게."

"그래." 시온이 손을 내렸다. "그게 좋아. 넌 아직 준비가 안 됐으니까."

"준비?"

"너 자신의 기억을 마주할 준비."

시온의 말이 내 등을 타고 내려갔다.

나는 계단을 올라갔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내 뒷덜미에 박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기억 복원팀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노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달라져 있었다. 슬픔이 아닌 걱정.

"린, 미안해. 내가 너한테 너무 많이 쏟아낸 거 아니야?"

나는 노아의 머리를 쓸어줬다. 그 순간 조심스러웠다. 기억이 다시 흐를까봐. 하지만 아무것도 흐르지 않았다.

"괜찮아. 넌 잘못 없어."

거짓이었다. 하지만 필요한 거짓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노아를 앉혔다. "너는 지하 4층에 뭐가 있는지 알아?"

노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거기는... 가면 안 되는 곳이야. 에리카 박사가 관리하는 실험실이 있거든."

"실험실?"

"응. 저주에 대한 연구를 하는 곳이야."

나는 노아의 어깨를 누르지 않았다.

"그럼 시온은 뭐야? 좋은 사람인가?"

노아가 한참 생각했다.

"모르겠어. 좋은 사람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나는 창문 없는 방의 벽을 바라봤다. 회색의 콘크리트 벽. 그 벽 너머에 뭐가 있을까.

"린?"

노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넌 정말로 너의 기억을 되찾고 싶어?"

나는 천천히 돌아봤다. 노아의 눈빛이 다르게 보였다. 마치 뭔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응."

"그럼 조심해. 기억은 단순히 되찾는 게 아니야. 기억은 너를 바꿔. 그리고 너를 바꾼 기억은 절대 돌아올 수 없어."

나는 노아의 말을 들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절박했는지 알 수 없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노아의 휴대폰이었다. 그녀가 화면을 보고 얼굴이 굳었다.

"뭐야?"

"에리카 박사가 부른대. 실험실로."

나는 노아의 옆에 앉았다.

"그럼 함께 가자."

"린, 그건 위험해."

"나 원래 위험한 사람이야. 기억이 없는 게 증거지."

나는 일어섰다. 현기증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 뭔가 다른 게 생겼다. 결정력. 아니, 광기. 둘의 차이를 나는 구분할 수 없었다.

노아가 따라왔다. 우리는 다시 계단으로 향했다. 지하 4층으로.

그 길을 가면서,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내가 이 길을 전에 가본 것이 맞다는 것. 그리고 그때 나는 누군가를 만났다는 것. 누군가를 만났고, 뭔가 중요한 것을 선택했다는 것.

계단의 끝에서, 발광 석영이 더욱 밝게 빛났다. 그리고 그 빛이 닿는 곳에 무언가가 있었다. 철문.

코끝에 스쳐오는 냄새. 낯설지 않은 냄새. 마치 내가 이곳에서 무언가를 했던 것처럼.

철문 옆 스피커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것은 녹음된 음성이 아니었다.

마치 내 목소리처럼 들렸다. 아니, 내 목소리였다.

"다시 돌아왔네. 넌 정말 멍청해."

나는 거울을 찾았다. 철문 옆에 붙어 있는 작은 거울. 그 안에 비친 내 얼굴. 하지만 그 눈빛은 내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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