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평범한 천재

아침 햇빛이 복도를 가로지르는 시간, 린은 책 더미를 안고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뎠다.

누군가가 떨어뜨린 교과서에 걸렸다. 몸이 앞으로 쏠렸고,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 손이 잡은 것은 공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팔이었다.

피부가 접촉하는 순간, 세상이 끝났다.

*—엄마, 제발 날 그렇게 보지 마.*

*—넌 언제 진짜 노력할 거니?*

*—죄송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거짓말.*

여학생의 기억이 린의 뇌에 직접 쏟아져 내렸다. 아침 거실. 어머니의 얼굴. 그 얼굴의 실망감이 이 세상 모든 것을 압축한 것처럼 보였다. 목소리는 칼날처럼 예리했다. 감정은 생생했다.

그런데 그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마주치는 얼굴이었다. 자신의 얼굴이었다.

공포가 밀려왔다.

린의 손이 떨어졌다. 모든 기억이 끊겼다.

머리가 무거워졌다. 면도칼로 뇌를 살짝 긁어낸 듯한 느낌. 지난 몇 시간이 흐릿했다. 아침에 뭘 먹었더라? 샤워는 했나? 그런 것들이 안개 뒤에 가려 있었다.

"미안해요!"

여학생이 소리쳤다. 계단에서 넘어진 건 자기였고, 손을 잡아준 건 린이었다.

"괜찮아요?"

린은 입을 벌렸다. 목이 말랐다. 손가락이 떨렸다.

"네, 괜찮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여학생은 미안해하며 달려갔다. 린은 그대로 계단에 앉았다.

뭐야. 뭐야, 이게.

손을 들어올려 봤다. 떨리고 있었다. 피부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뇌에는 여학생의 엄마 얼굴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얼굴과 겹쳐 있었다.

수업에 늦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

"린, 들어와."

담임 선생님 미스터 K가 복도에서 린을 붙잡았다. 오후 3시. 수업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교실 옆 상담실로 끌려 가듯 들어갔다.

미스터 K의 눈이 린의 얼굴을 훑었다. 그 눈빛이 이상했다. 마치 린을 보는 게 아니라 린 너머의 뭔가를 보는 것 같았다.

"어제 보건실에 다녀왔다며."

"네, 두통이 있어서."

거짓이면서 거짓이 아니었다. 머리가 계속 아팠다. 여학생의 기억 이후로.

"그 이상은 없나?"

미스터 K의 질문이 단순해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가 린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고, 린이 자신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네, 괜찮습니다."

"그렇군."

미스터 K가 돌아섰다. 창밖을 봤다. 상층부 쪽이었다. 기억 보관소가 있는 그곳. 그곳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그리고 그 엘리베이터 앞을 배회하는 드론.

"기억 복원팀이 신입을 모집한다고 했다. 넌 관심 없나?"

"저요?"

"넌 다른 학생들과 달라서."

그 말이 끝났을 때 미스터 K의 표정이 무언가로 흔들렸다. 후회? 아니면 안타까움? 다시 창밖을 보고 있었다.

"관심 없으면 됩니다."

미스터 K가 중얼거렸다. 그건 린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가도 좋아."

---

기숙사는 한적했다. 오후 4시. 대부분의 학생들은 여전히 특별 수업 중이었다. 린의 방은 1인실이었다. 아카데미는 기숙사 배정을 까다롭게 했는데, 린이 1인실을 받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이유가 자신의 평범함 때문은 아니라는 것만 확실했다.

거울 앞에 섰다.

평범한 얼굴이었다. 검은 머리. 검은 눈. 특징이 없는 코. 얼굴이 작은 편이었다. 하지만 턱선이 예리했다. 뭔가 그 얼굴이 다른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게 나야?"

중얼거렸다. 거울 속 입술이 움직였다. 그 입술이 웃고 있었다. 자신이 웃은 게 아니었다.

침대에 누웠다.

손가락을 펼쳤다. 여학생의 기억이 손가락 끝에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의 얼굴. 그 얼굴이 자신의 얼굴이었다. 왜? 왜 그 표정이 자신의 표정처럼 느껴졌을까?

자신의 기억을 읽어보자.

손을 이마에 갖다 댔다. 자신의 피부에 닿는 자신의 손. 기억을 읽으려고 했다.

순간, 뇌가 거부했다.

*아니.*

그 거부감이 신체적이었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뜨거움이 올라왔다. 마치 누군가 손가락을 불에 댄 것처럼. 더 깊은 곳에서 뜨거움이 시작되었다. 두뇌 중앙에서. 거기서부터 전기가 튀는 듯한 고통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손을 놨다.

고통이 멈췄다.

가슴이 철렁했다. 뭐가 일어나는 거야? 자신의 기억을 읽는데 왜 거부감이?

다시 시도했다.

이번엔 다른 각도로.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댔다.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뜨거움. 전기. 고통. 뇌가 자신을 거부했다.

린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뭔가가 거기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것.

기억이 없었다. 자신이 누구였는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했는지. 모두 없었다. 그리고 그 없음이 너무나 편했다.

그 편함이 가장 두려웠다.

왜 자신의 뇌가 자신을 거부하는가. 왜 자신의 기억은 자신의 손을 밀어내는가. 그것은 단순한 저주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 저주였다.

---

밤 8시.

기숙사 복도를 걸어가다 목소리를 들었다.

"넌 돌아오면 안 돼."

복도 모퉁이에서. 목소리가 낮고 위협적이었다.

린은 발걸음을 멈췄다.

"돌아오면 안 돼. 이대로가 낫다. 넌 이대로 평범한 게 낫다."

재윤이었다. 아카데미의 최상위 학생. 마법 시험에서 항상 1등. 능력 레벨이 A급. 그런데 왜 그가 여기 있었고, 왜 혼잣말을 하고 있었을까?

"넌 깨어나면 안 돼."

재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은 경고가 아니었다. 필사적인 청원이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있으면서도 린에게 애원하는 것처럼.

린의 심장이 멈췄다.

재윤이 나타났다. 복도 모퉁이에서. 그는 린을 발견하자 표정이 변했다. 놀람. 그 다음은 무언가였다. 분노? 두려움?

"...린?"

"네."

"뭐 하는 거야?"

"그냥 지나가던 중이었습니다."

재윤이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린을 봤다. 그 눈빛이 미스터 K와 같았다. 마치 린 너머의 뭔가를 보는 것처럼.

"...조심해."

재윤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사라졌다. 빠르게. 도망치듯.

린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복도에는 한 가지만 남았다.

전단지였다.

**[기억 복원팀 신입 모집]**

**"당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세요. 우리가 도와드립니다."**

**"면접: 오늘 밤 10시, 지하 3층"**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8시 15분. 1시간 45분이 남았다.

린의 손가락이 떨렸다. 여학생의 기억을 읽었을 때보다 더 심하게.

뭔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무언가가 자신의 내부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자신이 억누르고 있던 뭔가.

그것을 보고 싶었다.

그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

지하 3층은 어두웠다.

아카데미의 지하는 학생들에게 금지 구역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오래된 시설"이라고 불렸다. 비공식적으로는 "금지된 실험실"이라고 불렸다.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계단으로만 내려갈 수 있었다. 낡은 철제 계단. 녹이 슨 손잡이. 불이 들어오지 않는 조명.

린은 휴대폰의 손전등을 켰다.

계단을 내려갔다. 1층. 2층. 3층.

복도가 나타났다. 길고 좁은 복도. 양쪽으로 철문이 있었다. 모두 닫혀 있었다. 하지만 한 문만 약간 열려 있었다.

가장 끝의 문.

린은 그쪽으로 걸어갔다. 한 발 한 발. 마치 이 길을 전에 걸어본 것처럼.

문 앞에 섰다.

노크했다.

문이 열렸다.

카인이었다. 아카데미의 기억 복원팀 소속. 차가운 눈을 한 학생.

"들어와."

카인이 말했다.

"시간이 정확하군."

---

방은 생각보다 넓었다. 지하인데도 천장이 높았다. 벽은 모두 철제였고, 벽면에는 수십 개의 모니터가 붙어 있었다. 그 모니터들에는 뇌파 그래프가 흐르고 있었다.

"기억 복원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책상 너머에서.

시온이었다. 아카데미의 모범생. 친절한 미소를 가진 학생. 그 미소가 이번엔 다르게 보였다. 미소 뒤에 칼이 숨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저주 피해자들을 돕습니다."

시온이 말했다.

"당신도 그 중 한 명이죠?"

"네."

린이 대답했다. 목이 말랐다.

"기억 저주로 모든 것을 잃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리고 혹시... 새로운 능력이 깨어났거나 하지는 않으셨나요?"

린의 손가락이 떨렸다.

시온이 웃었다.

"괜찮습니다. 이곳에서는 비밀이 없으니까요."

모니터가 밝아졌다. 그 위에는 뇌파가 그려지고 있었다. 린의 뇌파. 현재 실시간으로.

"당신의 뇌에서 비정상적인 패턴이 감지되었습니다."

시온이 계속했다.

"기억 저주의 흔적... 그리고 그것을 깨우려는 또 다른 능력의 흔적."

"제가..."

"기억을 읽을 수 있나요?"

시온이 물었다. 미소가 더 깊어졌다.

"타인의 기억을 읽고... 조작할 수 있나요?"

린의 심장이 멈췄다.

시온이 일어났다. 책상을 돌아 린 쪽으로 다가왔다. 그 발걸음이 포식자의 발걸음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당신은 매우 위험한 존재입니다."

시온이 말했다.

"아카데미에서 가장 위험한."

손을 뻗었다. 린의 손을 잡으려고.

린은 본능적으로 손을 뒤로 빼었다.

그 순간 카인이 움직였다. 시온의 손을 막으며.

"아직 동의하지 않았다."

카인이 차갑게 말했다.

"절차를 따르자."

시온의 눈빛이 변했다. 미소는 유지되었지만, 그 아래 무언가 예리한 것이 흘러내렸다. 카인과 시온 사이에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이미 알려진 갈등. 이미 계획된 대립.

"물론입니다."

시온이 말했다.

"절차를 따르죠."

모니터의 뇌파가 더 빠르게 움직였다.

"당신이 읽은 기억은 몇 개입니까?"

시온이 물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이 당신에게 무엇을 보여주었습니까?"

린이 대답하지 않았다.

시온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

"혹시... 당신이 읽은 기억 중에 자신의 기억이 있었나요?"

침묵.

"흥미로운군요."

시온이 중얼거렸다.

"당신은 자신의 기억을 읽을 수 없다. 왜냐하면..."

시온이 린의 눈을 봤다.

"당신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으니까요."

시온의 손가락이 모니터의 조종간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거부감을 풀 수 있습니다."

모니터가 깜빡였다.

뇌파 그래프가 급격하게 변했다. 정상 범위를 벗어나 극도로 상승했다.

"뭐가..."

린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뭐가 일어나는 거예요?"

"당신의 기억을 보는 겁니다."

시온이 말했다.

"우리가 당신의 뇌에 접근할 수 있는 순간이 이 정도뿐이니까요."

모니터에 영상이 나타났다.

검은색 화면. 그 속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인물. 손가락이 움직였다. 마법 원이 그려졌다.

그 마법 원이 누군가를 향했다.

그것이 누구인지 린은 알았다.

자신이었다.

"아, 그리고..."

시온이 말했다.

"한 가지 더."

모니터가 다시 변했다. 다른 영상. 다른 장면.

거울이었다.

거울 속에는 자신의 얼굴이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이 달랐다. 그것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 입이 움직였다.

"미안해."

그 입이 말했다.

"날 잊어 줄래?"

린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부터 시작된 떨림이 팔 전체로 퍼져나갔다. 호흡이 가빠졌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뭔가가 뇌 깊숙한 곳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자신을 저주했다.

모니터의 영상이 더 빨라졌다. 거울 속의 얼굴이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이 자신의 웃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당신은 기억 저주의 대상이 아닙니다."

시온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당신은 기억 저주의 시행자입니다."

린의 시야가 흔들렸다. 모니터가 회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자신의 눈이 감기고 있었다.

그 사이로 움직임이 있었다. 카인의 목소리. 시온과의 대립. 싸움.

카인이 시온을 밀어냈다. 왜? 무엇이 목적인가? 린은 알 수 없었다.

"아직이야."

카인이 소리쳤다.

"아직 깨어나면 안 돼."

그 말이 재윤의 말과 다른 의미였다. 재윤은 깨어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카인은 아직이라고 했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뜻. 아직 때가 아니라는 뜻.

시온의 웃음이 들렸다. 그것은 패배의 웃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 같은 웃음이었다.

"미안해. 날 잊어 줄래?"

거울 속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것은 모니터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린 자신의 입에서.

린의 눈이 완전히 감겼다.

카인의 팔이 린의 몸을 잡아당겼다. 지하실을 빠져나가려는 것처럼. 하지만 린의 몸은 무거웠다. 마치 누군가 린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처럼.

"아직 아니다."

카인이 다시 말했다.

"아직 깨어나면 안 돼. 아직..."

하지만 그 목소리도 멀어지고 있었다. 린의 의식이 가라앉고 있었다. 깊은 곳으로. 자신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곳으로.

그곳에서 또 다른 자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해."

그 자신이 웃으며 말했다.

"날 잊어 줄래?"

그리고 린은 대답했다. 자신의 목소리로.

"아니."

그 한 마디가 모든 것을 흔들었다. 거울이 깨졌다. 모니터가 폭발했다. 지하 3층 전체가 울렸다.

카인이 린을 더 강하게 끌어당겼다.

"깨어나지 마. 제발."

그것은 명령이 아니었다. 간청이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린은 이미 깨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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