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47분, 수술실 조명이 켜졌다.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메스를 집으려는 순간,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16년의 외과 경력에서 처음이었다. 수술 전 브리핑 중에도 떨렸고, 멸균 장갑을 끼는 과정에서도 떨렸다. 간호사 김지은이 그것을 보았다. 그녀는 10년을 이준호 곁에서 일했다. 그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센터장님, 괜찮으신가요?"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심호흡을 했다. 폐 깊숨으로 산소를 채웠다. 자율신경계를 진정시키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언제나 작동했다.
이번엔 작동하지 않았다.
환자는 54세 여성, 말기 폐섬유화증. 폐이식이 유일한 치료법이었다. 의료기록을 보면서 이준호는 자동으로 판단했다. 소득 수준 중상. 기혼. 두 자녀. 회사원. 모든 기준을 만족했다. 살릴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메스를 들었다. 흉부를 절개했다. 손이 계속 떨렸다. 간호사들은 침묵했다. 센터장의 손 떨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금기였다. 수술실 내 위계질서에서 하위자는 상위자의 결함을 지적할 수 없었다.
이준호 자신이 그 규칙을 만들었다.
폐를 노출시켰다. 섬유화된 조직이 회백색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건강한 폐라면 분홍색이어야 했다. 이것은 거의 돌처럼 변질된 장기였다. 기증자의 폐도 완벽하지 않았다. 가벼운 폐렴 흔적이 있었다. 정상적인 외과의라면 이 조합을 보고 수술을 포기했을 것이다.
이준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능력이었다.
4시간 47분의 수술 끝에 새로운 폐가 환자의 가슴에 연결되었다. 모니터가 산소포화도 98%를 표시했다. 심박수 정상. 혈압 정상. 모든 수치가 녹색이었다.
"완벽합니다."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 확신이 없었다. 과거라면 이 순간, 그는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자신의 직관이 옳았다고. 자신의 기준이 옳았다고.
지금은 달랐다.
환자의 얼굴을 보았다. 호흡기를 통해 산소가 들어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그녀가 깨어나면 살 것이다.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왜? 그녀가 기혼자였기 때문인가? 회사원이었기 때문인가?
박민철은 독신이었다.
이준호는 장갑을 벗었다. 호흡이 가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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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15분, 이준호의 사무실 문이 열렸다.
최태호 부센터장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의료윤리위원회의 증언 이후, 그는 이준호를 마주하지 못했다. 사무실 앞을 지날 때도 발걸음을 빨리 했다. 이제 직접 들어왔다는 것은, 그가 더는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의미였다.
"센터장님."
최태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미안합니다."
이준호는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최태호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마우스를 클릭했다. 박민철의 의료기록이 화면에 떠올랐다. 초기 평가 기록. 김윤희 전임의의 서명. '심장이식 적응 가능. 우선순위: 상'.
그 아래, 이준호의 재평가 기록. '재평가 결과: 부적응'. 의료적 근거는 없었다. 공란이었다.
이준호는 마우스를 내려놨다. 천천히 돌아섰다. 최태호와 눈이 마주쳤다.
"당신은 왜 그 결정에 반대했나?"
"의료적 근거가 없었으니까요."
최태호가 답했다.
"그뿐인가?"
이준호의 목소리가 낮았다.
"박민철이 누구였는지 알았나? 독신. 저소득층. 비정규직. 가족이 없다. 그런 사람은 살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나?"
침묵이 흘렀다. 최태호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준호의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그 기준을 만들었다."
이준호가 일어섰다. 창밖을 보았다.
"당신은 그 기준에 반대했다. 그리고 증언했다."
"센터장님…"
최태호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제가 증언한 것은 당신을 고발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환자를 위함이었습니다."
이준호가 돌아섰다. 최태호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에는 죄책감이 아닌 확신이 있었다.
"알고 있다. 그것이 옳은 일이다."
이준호가 말했다.
"당신은 이미 할 일을 했다."
최태호가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그는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이유였다. 이준호가 자신의 행동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더 무거웠다.
최태호는 돌아섰다.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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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42분, 이준호는 병원장실에 소환되었다.
오세진 병원장은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다. 책상 위에는 신문 기사들이 쌓여 있었다.
"의료 천재의 윤리적 결함" "장기이식센터, 환자 차별 의혹" "'신의 손'도 신이 될 수는 없다"
오세진이 기사를 집어 들었다.
"이 기사들이 나가면서 병원 평판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예상했습니다."
이준호가 답했다.
"예상했다면 대응책이 있었을 겁니다."
오세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언론에 대해 병원의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센터장님의 의료적 판단은 온전히 의료 기준에만 기반했다고."
"거짓입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오세진의 얼굴이 굳었다.
"센터장님?"
"의료기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의료적 근거가 없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평탄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근거로 한 결정입니까?"
오세진이 물었다.
이준호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저소득층이고 독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생산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의료적 기준이 아닌 개인적 판단으로 그 환자를 제외시켰습니다."
오세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센터장님, 그 말은…"
"사실입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오세진이 일어섰다.
"병원의 평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센터장님은 의료 기준에 따른 객관적 판단이었다고 해야 합니다."
"할 수 없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왜입니까?"
오세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것이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이준호는 창을 보았다. 병원에서 보이는 서울의 고층 건물들이 회색으로 떠 있었다.
"센터장님, 환자 개인의 사정까지 의료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신다면, 의료 전문가로서의 신뢰도가 완전히 붕괴됩니다."
오세진이 말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이준호가 답했다.
오세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는 이준호가 자신의 지위를 지킬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재 외과의는 이미 자신의 방어를 포기했다.
"나가십시오."
오세진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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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23분, 의료윤리위원회 중간 보고서가 언론에 배포되었다.
"장기이식센터 센터장의 의료 판단에 의학적 근거 부족 지적"
기사는 빠르게 퍼졌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가 되었다. 병원 로비에는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환자 가족들이 의료진을 의심하는 눈빛으로 보기 시작했다. 신뢰가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이준호는 의료기록실로 내려갔다.
박민철의 전체 파일을 요청했다. 간호사가 두꺼운 폴더를 건넸다. 이준호는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수술 전 검사. 심초음파. 심장 카테터 검사. 흉부 X선.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진단서를 펼쳤다.
"사망 진단: 급성 심부전으로 인한 심정지"
날짜: 2024년 6월 14일. 오전 6시 47분.
이준호는 추적을 계속했다. 박민철이 대기 중이던 기증자 정보를 찾았다. 2024년 6월 13일, 뇌사 판정을 받은 50대 남성. 그 남성의 심장은 존재했다.
이준호는 이식 기록을 확인했다. 그 심장은 다른 환자에게 이식되었다. 기혼 여성. 고소득층. 회사임원.
그 여성은 지금 살아 있다.
박민철은 죽었다.
이준호의 손가락이 기록지 위에서 멈췄다. 호흡이 얕아졌다. 시야가 흔들렸다. 진단서가 손에서 떨어졌다. 바닥에 흩어진 종이들 위에 그의 눈물이 떨어졌다.
그것은 후회의 눈물이 아니었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깨달은 공포였다. 16년간 그는 자신을 의사라고 생각했다. 생명을 구하는 사람. 죽음과 싸우는 사람.
그는 신이 되려고 했다. 누가 살 자격이 있는지 판단하는 신.
그 신은 판단을 잘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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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15분, 이준호는 중환자실 복도를 걸었다.
자신이 제외시킨 환자들을 마주해야 했다.
병실 513호. 이순영, 67세 여성. 신부전으로 신이식 대기 중. 초기 의료 기준상 우선순위 상. 이준호의 재평가 후 제외됨.
이준호가 병실 유리창을 통해 안을 봤다.
이순영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달랐다. 이전의 희망이 사라졌다. 대신 체념이 있었다.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확신.
그녀의 딸이 옆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딸의 얼굴은 창백했다.
이순영이 갑자기 이준호를 봤다.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인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인식 뒤에는 무언의 질문이 있었다.
왜?
이준호는 병실 문을 열었다.
"이순영 환자님."
이준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당신을 제외시킨 결정은 의료적 근거가 없습니다."
딸이 일어섰다.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분노에서 무언가 다른 것으로.
"당신이 지금 뭘 하는 거예요?"
딸이 물었다.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이준호가 답했다.
"늦었지만, 당신의 어머니는 살 자격이 충분합니다. 의료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이순영의 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분노가 여전했다. 그것은 사라지지 않을 분노였다.
"당신의 말이 무슨 의미인가요?"
딸이 물었다.
"제 어머니가 이미 죽어가고 있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이제 살릴 수 있다는 뜻인가요?"
이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병실 521호. 정현수, 55세 남성. 간부전. 간이식 대기. 초기 평가: 우선순위 상. 이준호의 재평가: 제외.
이준호가 병실 문을 열었다.
정현수의 아들이 일어섰다. 이준호를 마주하며 아버지를 보호하듯 몸을 돌렸다.
"뭐하러 왔어요?"
아들이 물었다. 목소리가 차갑다.
"당신의 아버지를 제외시킨 것은 의료적 이유가 없습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나는 그를 살릴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것은 내 판단 오류입니다."
정현수의 아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있었다. 하지만 그 분노는 이준호를 향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확인된 분노였다.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미안한 말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말했다.
"제 아버지는 이미 포기했어요. 당신이 거절했을 때부터."
이준호는 복도에 섰다.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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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8시, 병원 복도는 조용했다.
이준호는 벤치에 앉았다. 호흡이 빨라졌다. 가슴이 철렁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무릎이 떨렸다. 턱이 떨렸다.
메스를 들 때의 그 미세한 진동이 아니었다. 봉합 실패를 두려워하는 떨림도 아니었다. 혈관을 정밀하게 연결할 때의 긴장감도 아니었다.
이것은 다른 떨림이었다. 전신이 흔들렸다.
간호사들이 그를 지나갔다. 그들의 눈빛도 달랐다. 존경이 아닌 의심. 신뢰가 아닌 의문.
그들은 알고 있었다. 센터장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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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32분, 이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강신혜 윤리위원장이었다.
"센터장님, 내일 오전 10시에 최종 심의가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동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판결이었다.
이준호는 전화를 끊었다.
병원 복도는 여전히 조용했다. 그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손을 펼쳤다. 다시 폈다.
호흡이 고르지 않았다. 청각이 예민해졌다. 복도의 형광등이 깜빡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손가락이 하나씩 펼쳐졌다. 주먹이 풀렸다. 메스를 잡았을 때의 그 떨림이 여전했다. 그리고 그 떨림은 이제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이준호는 휴대폰을 들었다.
윤리위원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일 증언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말하겠습니다."
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아침이 올 때까지,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의 손은 더 이상 신의 손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손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손은 책임을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