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의 형광등이 밝았다. 의료윤리위원회 심의실 6층, 오후 2시 정각. 이준호는 증인석에 앉아 있었다. 손을 무릎 위에 놨다. 떨고 있었다.
강신혜가 폴더를 펼쳤다. 그 안에는 수십 장의 의료기록 사본이 들어 있었다.
"센터장님, 박민철 환자의 의료기록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시겠습니까?"
이준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박민철은 2023년 9월 15일 저희 센터에 입원했습니다. 초기 평가를 담당한 건 김윤희 전임의였죠. 그 평가서를 보시겠습니까?"
강신혜는 A4 용지를 내밀었다. 이준호의 눈이 문서 위를 훑었다. 익숙한 필체, 익숙한 평가 내용이었다.
"심장 기능 부전 3단계, NYHA 분류 IV. 약물 치료 반응 미흡. 좌심실 사출 분율 22%. 의료적 판단: 심장이식 적응 가능. 우선순위 상 권장."
강신혜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차분할수록 더 날카로웠다.
"그런데 9월 28일자 재평가에서는요?"
두 번째 문서가 제시됐다. 이번엔 이준호의 필체였다.
"환자의 사회적 적응도, 신체 예비력, 예상 회복 기간 등을 종합 검토한 결과, 현 시점의 이식은 의학적으로 부적절함. 권장하지 않음."
"센터장님, 이 사이 13일 동안 환자의 의료적 상태가 악화되었나요?"
침묵.
"환자의 검사 수치를 보면, 오히려 약물 치료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폐렴 합병증도 없었습니다. 의료적으로는 더 나아진 상태입니다."
강신혜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가락이 두 평가서의 간극을 가리켰다.
"의료적 상태는 호전됐는데, 평가는 악화했습니다. 센터장님, 이 변화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이준호의 목이 움직였다. 마치 물을 삼키려는 것처럼. 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법률자문 김유진이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의 목소리는 강신혜보다 더 냉정했다.
"센터장님이 작성하신 재평가 기록에는 의료적 근거가 기술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 문서 여백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있습니다."
김유진은 확대 사본을 들어올렸다.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였다. 지워진 필기가 희미하게 보였다.
"'조기 퇴직자. 독신. 저소득층 분류.'"
회의실이 얼어붙었다.
"이 항목들이 의료적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까, 센터장님?"
이준호는 입을 열었다. 다시 닫았다.
"의료법 제27조에서는 의료인이 환자 치료 시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환자의 사회적 지위, 경제력, 가족 구성은 의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아닙니다."
김유진의 손가락이 의료기록을 짚었다.
"센터장님의 재평가 이후, 박민철 환자는 3개월 후 사망했습니다. 그 사이 그가 심장이식을 받았다면 생존율은 의료적 지표상 71% 이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식 대기 목록에서 제외되면서 사망 위험은 94%로 상승했습니다."
"이것이 의료적 판단입니까, 아니면 생명에 대한 임의적 차별입니까?"
이준호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입술이 창백해 보였다.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최태호가 들어섰다. 증인으로 소환된 부센터장이었다. 그의 얼굴은 잿빛이었다.
그는 증인석에 앉았다. 손이 떨렸다.
강신혜가 물었다.
"최 교수님, 박민철 환자의 제외 결정 당시 상황을 증언해주시겠습니까?"
최태호의 목이 움직였다. 며칠 밤을 지새운 듯 목소리가 탁했다.
"저는... 그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이준호의 눈이 최태호를 바라봤다. 첫 번째 시선이었다.
"박민철의 의료적 지표는 명확히 이식 우선순위에 해당했습니다. 의료적 근거로는 제외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최태호의 손이 테이블을 꼭 쥐었다.
"그때 센터장님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눈을 들었다. 이준호와 눈이 마주쳤다. 최태호의 눈에는 미안함과 결단이 함께 떠 있었다.
"'최 교수, 센터장이 되고 싶으면 내 판단에 따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회의실의 공기가 멈췄다.
"그 말씀 이후로 저는 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박민철은 사망했습니다. 이것이 제 증언입니다."
최태호가 내려왔다. 이준호와 마주칠 때 그는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강신혜가 다시 폴더를 펼쳤다.
"위원회가 지난 3년간의 의료기록을 분석한 결과, 센터장님이 제외 결정을 내린 환자 8명의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표를 제시했다.
| 환자 | 결정 | 소득 | 가족 | 현황 | |------|------|------|------|------| | 박민철 | 제외 | 저 | 독신 | 사망 | | 이순영 | 제외 | 저 | 독신 | 사망 | | 정현수 | 제외 | 저 | 편부모 | 사망 | | 김미숙 | 제외 | 저 | 독신 | 사망 | | 이현준 | 제외 | 저 | 무직 | 사망 | | 박정희 | 제외 | 중 | 기혼 | 생존 | | 이영수 | 포함 | 고 | 기혼 | 생존 | | 정윤희 | 포함 | 고 | 기혼 | 생존 |
"8명 중 5명이 제외 결정 후 6개월 이내 사망했습니다. 의료적 지표상 이들은 모두 이식 적응 대상이었습니다."
강신혜의 손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한 번, 두 번.
"반면 포함 결정을 받은 환자들은 모두 고소득층 또는 기혼자였습니다. 의료적 지표와 무관하게 사회적 지위가 더 높은 환자들이 우선 대상이 되었습니다."
김유진이 추가 자료를 제시했다.
"위원회는 제외된 환자들의 진정서를 수집했습니다."
그는 몇 장의 손글씨를 펼쳤다. 떨리는 손글씨였다. 절망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왜 나는 살 자격이 없습니까?'
'의료진이 저를 버렸습니다.'"
"이것들이 의료 현장에서 나온 목소리입니다."
이준호는 그 글씨들을 봤다. 그리고 외면했다.
강신혜가 최종 질문을 던졌다.
"센터장님, 당신의 재평가 판단이 의료적 근거에 기반했다면, 그 근거를 제시해주십시오. 의료기록에 기술되지 않은 추가 검사 결과, 임상적 판단의 근거, 무엇이든 좋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30초. 1분. 1분 30초.
이준호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강신혜가 다시 말했다.
"센터장님, 당신의 판단에 의학적 근거가 없다면, 그것은 의료 판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자의적 판단입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없었다. 그저 명백한 사실을 선언하는 음성만 있었다.
"의료윤리위원회는 이를 심각한 윤리 위반으로 판단합니다."
회의는 끝났다.
---
이준호가 병원 로비에 내려왔을 때는 오후 4시 47분이었다. 햇빛이 로비의 유리창을 통해 들어와 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그의 발이 멈췄다.
박준우가 로비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이 남자의 판단 때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아들의 눈. 그 눈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이준호는 박준우의 시선을 피해 걸음을 재개했다.
하지만 발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그는 멈췄다.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멈춰 섰다.
박준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 아버지가 죽은 이유가 질병이 아니었다는 걸, 이제 증명됐습니다."
이준호는 여전히 돌아보지 않았다.
"의료윤리위원회에 제 진정서도 제출했습니다. 아버지 같은 환자들이 앞으로 이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박준우가 일어섰다. 그의 발소리가 로비 타일을 울렸다.
"센터장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준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리고 계단으로 향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하지만 그의 걸음은 의료진으로서의 걸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망치는 걸음이었다.
로비의 형광등이 그의 등을 밝히고 있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병원 밖으로 나가는 자동문이 열렸다.
그리고 닫혔다.
# 증거
의료윤리위원회 회의실. 오후 4시 12분.
최태호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손이 떨렸다. 그는 의자의 등받이를 잡아 균형을 잡았다.
강신혜가 그를 바라봤다. "부센터장님, 증언해주시겠습니까?"
최태호의 목이 건조했다. 3년 동안 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3년 동안 침묵으로 자신을 보호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침묵이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침묵은 이미 누군가를 죽이고 있었다.
"박민철 환자의 제외 결정 당시, 저는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최태호의 목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회의실의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이준호의 얼굴이 변했다. 근육이 경직되었다. 눈동자가 움직였다.
"초기 평가에서 의료적 지표는 분명히 적응 대상이었습니다. 저는 센터장님께 그렇게 보고했고, 센터장님도 그때는 동의하셨습니다."
최태호는 이제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최태호의 얼굴에는 두 가지가 함께 떠올랐다. 미안함과 결단.
"3주 후 재평가에서 환자의 의료적 상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폐부종의 진행 속도도 예측 범위 내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부적응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강신혜가 기록했다. 김유진은 노트북에 뭔가를 타이핑했다.
"저는 센터장님께 근거를 물었습니다."
최태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때 센터장님이 하신 말씀은..."
그는 잠깐 멈췄다. 이 말을 꺼내는 것이 자신의 경력을 끝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민철은 이미 죽었다. 정현수도, 이순영도, 김미숙도 죽었다. 그리고 최태호는 매일 그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새벽에 깬다. 수술실에서도 떠올린다.
"'부센터장이 되고 싶으면 내 판단에 따르라. 그것이 이 센터의 문화다.'"
침묵.
이준호가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저는 그 말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제 직급이 위험했으니까요. 제 가족이 있으니까요."
최태호의 목소리에는 자책이 묻어 있었다.
"그래서 저는 침묵했습니다. 3년 동안. 그리고 그 침묵 동안 다른 환자들도 제외되었습니다."
강신혜가 물었다. "부센터장님은 그 과정에서 의료적 근거가 있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최태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없었습니다. 없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저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의료진으로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센터장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김유진이 추가 질문을 던졌다. "부센터장님, 당시에 다른 의료진도 이 결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까?"
최태호가 대답했다.
"없었습니다. 센터장님의 결정은 절대적입니다. 이 센터에서는."
그 말은 단순한 증언을 넘어섰다. 그것은 시스템의 고발이었다.
강신혜가 이준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센터장님, 반박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이준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손이 테이블 위에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없습니다."
그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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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이 다시 자료를 펼쳤다. 이번에는 다른 환자들의 진정서였다.
"의료윤리위원회는 제외된 환자들로부터 추가 진정서를 수집했습니다."
그는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이순영 환자, 58세, 폐이식 대기 중 제외됨. 6개월 후 사망."
진정서를 읽기 시작했다.
"'왜 저는 살 자격이 없습니까? 의료진이 저를 버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나이가 많아서입니까? 제 직업이 없어서입니까? 누가 살 자격이 있고 누가 없는지를 판단할 권리가 의료진에게 있습니까?'"
강신혜가 기록을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충분했다.
이준호는 더 이상 이 장면을 볼 수 없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 글씨들은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보였다. 절망적인 손글씨. 의료진에게 버림받은 인간의 목소리.
강신혜가 최종 질문을 던졌다.
"센터장님, 당신의 재평가 판단이 의료적 근거에 기반했다면, 그 근거를 지금 이 자리에서 제시해주십시오. 의료기록에 기술되지 않은 추가 임상 검사 결과, 신경학적 재평가, 영상 소견의 변화,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이준호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의료기록을 펼쳤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직관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직관은 증거가 아니었다.
30초가 지났다. 1분이 지났다.
강신혜가 다시 말했다.
"센터장님, 당신의 판단에 의학적 근거가 없다면, 그것은 의료 판단이 아닙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없었다. 그저 명백한 사실을 선언하는 음성만 있었다. 그것이 더 치명적이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자의적 판단입니다. 의료윤리 위반입니다."
이준호가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강신혜가 먼저 말했다.
"회의를 일시 중단합니다. 센터장님은 법률 자문과 함께 추가 자료를 준비해주십시오. 내일 오후 2시에 최종 심문이 있을 예정입니다."
그녀는 의료기록들을 정리했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이준호에게는 판결문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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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가 병원 로비에 내려왔을 때는 오후 4시 47분이었다. 햇빛이 유리창을 통해 들어와 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병원 밖으로 나가는 자동문 앞에서 그의 발이 멈췄다.
박준우가 로비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의 의료기록을 수십 번 읽은 아들. 그 기록 속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왜 죽어야 했는지를 찾으려고 노력한 아들. 그리고 지금, 그 이유를 증명한 아들의 눈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이준호는 박준우의 시선을 피해 걸음을 재개했다.
하지만 발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그는 멈춰 섰다.
박준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 아버지가 죽은 이유가 질병이 아니었다는 걸, 이제 증명됐습니다."
이준호는 여전히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등이 경직되었다.
"의료윤리위원회에서 인정했습니다. 아버지는 의료적 기준으로는 충분히 적응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센터장님의 재평가로 제외되었습니다."
박준우가 일어섰다. 그의 발소리가 로비 타일을 울렸다.
"그리고 그 근거가 없다는 것도 증명됐습니다."
이준호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최태호의 증언, 강신혜의 선언, 박민철의 의료기록. 모든 것이 그를 고발하고 있었다.
"제 아버지를 돌려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박준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그것은 분노의 떨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망의 떨림이었다.
"하지만 센터장님의 판단이 앞으로 다른 사람들을 죽이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
이준호는 계단으로 향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하지만 그의 걸음은 의료진으로서의 걸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망치는 걸음이었다.
로비의 형광등이 그의 등을 밝히고 있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났다.
자동문이 열렸다.
그리고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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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가 병원을 나간 후 10분이 지났을 때, 최태호는 여전히 의료윤리위원회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강신혜가 그를 바라봤다.
"증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최태호는 고개를 저었다.
"감사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3년 동안 침묵했으니까요."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되실 건가요?"
최태호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이준호와의 관계가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센터장과 부센터장의 관계. 그것은 이미 회복될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또한 알고 있었다. 이 증언이 옳은 것이었다는 것을. 박민철이 죽어야 했던 이유가 없었다는 것을.
김유진이 노트북을 닫았다.
"의료윤리위원회는 내일 최종 결정을 내릴 것입니다. 그 결정은 병원장에게 보고될 것이고, 병원장은 이를 검찰에 전달할 것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확신이 있었다.
"이것이 처음입니다. 대학병원의 센터장이 이렇게까지 추궁당한 것이."
강신혜가 추가했다.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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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47분. 이준호는 자신의 자택 거실에 앉아 있었다. 조명은 꺼져 있었다. 창밖의 서울 야경만이 그의 얼굴을 밝히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떨렸다. 의료진으로서 처음 겪는 떨림이었다. 수술실에서는 절대 흔들리지 않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병원장 오세진이었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건가?"
오세진의 목소리에는 절망이 묻어 있었다.
"내일 언론이 터질 것이다. 대학병원 센터장이 환자 차별을 했다는 기사가."
이준호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당신이 해결해야 한다. 당신이 이 문제를 만들었으니."
그리고 통화는 끝났다.
이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그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창밖의 서울은 여전히 밝았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도시에서, 그는 혼자였다. 그의 천재성이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순간이 왔다. 그의 판단이 더 이상 옳지 않다는 것이 증명된 순간이 왔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의사가 아니었다는 것을. 자신이 신(god)처럼 행동해왔다는 것을.
하지만 그 깨달음은 너무 늦었다. 박민철은 이미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