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고본
박준우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고소장 초안을 읽었을 때 손이 떨렸다. 떨림은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담담함이었다.
"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한 환자의 불합리한 제외 결정 및 이에 따른 사망"
글자들이 명확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법적 언어로 환원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개인적 비극이 아니었다. 시스템의 오류였다. 박준우는 고개를 들어 정우진 변호사를 바라봤다.
"언제 제출합니까?"
"내일 서울대학교병원 의료사고 심사위원회에 정식 접수한다. 동시에 언론에 제보하겠습니다."
정우진은 카페인으로 물든 손가락으로 고소장을 가리켰다. "당신 아버지의 의료기록이 가장 강한 증거입니다. 초기 평가에서 적응 판정, 3주 후 부적응 판정. 그 사이에 의료적 변화는 없었다. 의료기록에 기재된 근거도 없습니다. 이것은 명확한 자의적 결정입니다."
박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는 낮았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이것을 알았으면..."
"살아 있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변호사의 말은 차갑지 않았다. 그저 현실적이었다. "의료진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환자는 거의 없습니다. 특히 말기 환자는요. 당신 아버지처럼요."
밤 10시, 박준우는 아파트 창가에 섰다. 강남 너머 한강이 검게 흐르고 있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기사 제목이 떠 있었다.
"'천재 외과의의 주관적 판단이 환자 생명을 좌우한다' — 서울대학교병원 심장이식센터 의료 판단 논란"
정우진이 언론에 제보한 지 2시간 만에 나온 기사였다. 기사는 이준호의 이름을 직접 명시하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가 누구인지 알 것이었다. 국내 장기이식 성공률 1위, 신문에서 '의학의 신'이라고 부르던 그 사람.
박준우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화면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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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는 새벽 5시에 깼다. 휴대폰의 울림이 아니라, 뭔가가 깨어나는 감각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거기서 아침 뉴스를 켰다.
화면 속 앵커는 차분했다.
"...의료 현장에서 의사의 주관적 판단이 환자의 생사를 가르는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의료윤리 전문가들은 이를 구조적 개선이 필요한 사안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기사는 이어졌다. 의료법 24조. 의료윤리위원회. 환자 선별의 객관적 기준 부재. 이준호는 화면을 끄지 않았다. 끝까지 봤다.
"관련 병원은 현재 의료윤리위원회를 소집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휴대폰이 울렸다. 오세진 병원장이었다.
"지금 올라와라."
이준호는 옷을 입고 나갔다. 병원의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조용했다. 12층 병원장실에 들어섰을 때 오세진은 이미 서 있었다. 창밖으로 서울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오세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떨리고 있었다.
"의료적 판단입니다."
"의료적 판단? 언론이 어떻게 보도했는지 봤나? '천재 외과의의 자의적 결정'이래. 자의적이야, 이준호."
"객관적 의료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그럼 의료기록에 그 근거를 명시했나?"
침묵이 들어찼다. 오세진은 책상에 놓인 보도 자료를 집어 들었다.
"의료윤리위원회에서 정식 조사를 시작한다고 했어. 강신혜가 의장이고, 법률자문 김유진이 합류했다. 이들이 뭘 하는 사람들인지 알지?"
"알고 있습니다."
"그럼 준비해라. 너의 판단이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오세진의 눈은 차가웠다. 그것은 이준호를 보호하는 눈이 아니었다. 그것은 계산하는 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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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윤리위원회 회의실은 이전과 달랐다. 형식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녹음기가 놓여 있었고, 의료기록들이 순서대로 정렬되어 있었다. 강신혜는 의장으로서 앉아 있었고, 양옆에는 병원 변호사, 김유진 법률자문, 그리고 외부 의료윤리 전문가가 앉아 있었다.
이준호는 증인석에 앉혔다.
강신혜는 먼저 박민철의 의료기록을 펼쳤다. "센터장님, 김윤희 전임의의 초기 평가에서는 '심장이식 의학적 적응 판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3주 후 당신의 재평가에서는 '의학적 부적응증'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 사이에 환자의 의료적 상태 변화가 있었나요?"
"심혈관 기능의 미세한 악화가 있었습니다."
"구체적 수치를 제시해주십시오."
이준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기록에는 없었다.
"의료기록에 기재되지 않은 판단이면, 그것은 직관입니까?"
강신혜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정확했다. 이준호는 처음으로 그 압박감을 느꼈다. 수술실에서의 압박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망칠 수 없는 압박감이었다.
"임상 경험에 기반한 판단입니다."
"임상 경험은 의료기록에 기재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판단이 재현 가능하고 검증 가능하려면요."
김유진이 개입했다. 그의 손에는 또 다른 의료기록들이 있었다.
"센터장님, 지난 2년간 당신이 제외시킨 환자가 총 14명입니다. 모두 '의학적 부적응증'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 8명의 의료기록에는 그 근거가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8명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김유진은 한 장의 표를 펼쳤다. "모두 저소득층이거나, 사회적 고립 상태에 있거나, 고령이었습니다. 반면 같은 조건의 다른 환자들은 이식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의료적 판단의 결과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 판단의 기준을 명시해주십시오."
이준호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테이블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수술 중에 절대 일어나지 않는 떨림이었다. 수술실에서 그의 손은 완벽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의 손은 신뢰할 수 없는 도구였다.
"센터장님?"
강신혜가 기다리고 있었다.
"...직관입니다."
이 한 마디가 나오는 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바뀌었다. 누군가 한숨을 쉬었다. 외부 의료윤리 전문가가 메모를 했다. 병원 변호사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의료윤리 원칙 중 하나는 '공정성'입니다. 직관은 공정성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특히 환자의 생사가 달린 결정에서는요."
강신혜의 말이 끝났을 때 이준호는 자신의 손을 봤다. 그 손은 수술을 할 때는 신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누군가의 죽음을 결정했다는 것을 인식했다. 의료기록에 적힌 그 항목들—조기 퇴직자, 독신, 저소득층—은 자신이 쓴 글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판단이었다. 의료적 기준이 아닌, 그저 자신의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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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이 끝난 후, 이준호는 회의실을 나왔다. 복도에서 김유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센터장님."
이준호는 멈춰 섰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의료 사고가 아닙니다."
김유진의 목소리는 고소인의 변호사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체계를 이해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이것은 의료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당신 개인의 오만함이 아니라, 당신이 그럴 권력을 가질 수 있게 한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그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박민철처럼 죽을 사람들이 계속 생깁니다."
이준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이 생각해야 할 것은 법적 책임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왜 당신이 이 판단을 내렸는지입니다."
복도는 조용했다. 새벽 6시 30분, 병원의 복도는 아직도 어둡고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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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윤리위원회 회의실에서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강신혜는 책상 위에 펼쳐진 의료기록들을 보고 있었다. 각각의 기록 옆에는 그녀의 손글씨 메모가 있었다.
"의학적 부적응증 — 근거 없음"
"재평가 시점 의료 상태 변화 불확인"
"환자 사회적 지위 기준 부재"
그녀의 손가락은 한 기록에서 멈춰 있었다. 박민철의 초기 평가서. 김윤희 전임의의 글씨로 적힌 "적응 판정".
강신혜는 그 옆에 이준호의 재평가서를 놓았다. 빨간 펜으로 그어진 항목들이 보였다.
"조기 퇴직자"
"독신"
"저소득층"
그것들은 의료기록에 기재될 수 없는 항목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결정을 내렸다.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것은 이준호 개인의 판단 오류가 아니었다. 이것은 패턴이었다. 병원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편견이었다. 그것을 드러내야 했다.
강신혜는 다시 메모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다른 질문들이었다.
"왜 이 기준들이 선택되었는가?"
"다른 의료진도 같은 판단을 내렸을 것인가?"
"이 시스템을 만든 것은 누구인가?"
밤이 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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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우는 법원 열람실에서 나온 지 정확히 3시간 뒤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오전 10시 15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의료사기 수사팀 앞.
그의 손에 든 파일은 두께가 5센티미터였다. 초기 평가서, 재평가서, 의료비 영수증, 사망 진단서, 의료기록 열람 요청서. 그리고 법률 자문 정우진이 작성한 법적 근거 문서. 혐의는 명확했다. '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한 환자의 불합리한 제외 결정 및 사망'.
박준우는 고소장을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없었다. 있는 것은 냉정한 결정력뿐이었다. 하지만 그 냉정함 뒤에는 아버지를 향한 분노가 억제되어 있었고, 이준호를 향한 복수심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이 순간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했다. 검사의 설명을 듣지 않고 돌아섰다. 그 옆에서 정우진이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의료사고가 아닙니다. 이것은 의료진의 주관적 판단으로 환자의 생명이 좌우되는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섰다.
오후 2시, 조간신문 대신 저녁 뉴스를 장악하려는 기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종합편성채널 두 곳, 경제신문 세 곳, 온라인 매체 여섯 곳. 정우진은 각 언론사에 같은 자료를 보냈다. 박민철의 초기 평가서와 재평가서를 나란히 놓은 이미지. 그리고 한 줄의 제목.
'천재 외과의의 '직관'이 환자 생명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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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병원 12층. 이준호 센터장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정확히 오후 3시 47분에 울렸다.
오세진 병원장이었다. 그 뒤에는 법무팀장과 홍보팀장이 따라왔다.
"이준호."
오세진은 의자에 앉지 않고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손에는 인쇄된 고소장 사본이 들려 있었다.
"고소장이 접수됐습니다. 검찰청에서 공식 통보가 왔고, 동시에 언론이 터졌습니다."
이준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의료기록에 따르면, 박민철의 초기 평가에서는 '적응 판정'이었다고 하는데, 당신의 재평가에서 '부적응'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기간에 환자의 의료 상태 변화가 있었습니까?"
"...의료적 판단의 결과입니다."
"그 판단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이준호는 처음으로 오세진을 봤다. 병원장의 눈은 두려움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임상 경험에 기반한 종합 평가입니다."
"의료기록에 그 근거가 명시되어 있습니까?"
침묵.
오세진이 법무팀장을 봤다. 법무팀장이 한 발 나아왔다.
"센터장님, 법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 의료과실로 판단되면 민사 소송에서 배상 책임뿐 아니라, 형사 소송까지 갈 수 있습니다. 특히 언론이 개입되었으므로..."
"언론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오세진이 물었다.
"'일개 의사의 주관적 판단으로 환자의 생사가 결정되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미 SNS에서 확산 중이고, 의료진 커뮤니티에서도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홍보팀장이 덧붙였다. "병원의 평판이 급격히 하락 중입니다. 이식 대기 환자들의 문의 전화가 끊기지 않고 있습니다."
오세진은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은 분노보다는 절망에 가까웠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의 판단을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할 수 있는 말이 있습니까? 의료적 근거가 있습니까?"
이준호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손이 책상 위에서 움직였다. 떨리고 있었다. 정당화할 말이 없었다. 의료적 근거도 없었다. 있는 것은 자신의 판단뿐이었고, 그 판단은 의료적이 아니었다.
"의료윤리위원회가 정식 조사를 결정했습니다. 내일 오전 10시, 당신은 위원회 앞에 나가야 합니다. 그때까지 당신의 입장을 정리하십시오."
오세진은 고소장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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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15분. 의료윤리위원회 회의실에서 강신혜는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위원회 위원 5명, 외부 의료윤리 전문가 2명, 그리고 김유진 법률자문.
"공식 조사를 개시합니다."
강신혜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랐다. 더 이상 '강신혜 윤리위원'이 아니었다. 그녀는 '강신혜 조사위원장'이 되어 있었다.
"조사 대상: 이준호 센터장의 박민철 환자 제외 결정의 의료윤리적 적절성. 조사 기간: 2주. 조사 범위: 이준호 센터장이 제외시킨 전체 환자의 의료기록 재검토."
김유진이 자료를 나눠주었다. 8명의 환자 정보. 모두 제외된 환자들이었다.
"이 8명의 공통점을 봐주십시오."
강신혜가 말했다. "저소득층, 고령, 사회적 고립, 독신. 반면 같은 의료 조건의 다른 환자들은 모두 이식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우연입니까, 아니면 패턴입니까?"
외부 의료윤리 전문가가 손을 들었다. "이것이 증명되면, 단순 의료사고가 아닙니다. 이것은 의료 판단에서의 차별입니다."
김유진이 덧붙였다. "법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료 판단의 기준이 환자의 사회적 지위라면, 그것은 의료법 제2조 '의료인의 의료 행위는 환자의 인격과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에 명백히 위배됩니다."
강신혜는 박민철의 의료기록을 다시 펼쳤다. 그녀의 손가락이 멈춘 곳은 초기 평가서였다. 그리고 그 옆에 재평가서. 두 문서 사이의 간격은 단 3주였다.
"내일 센터장님을 소환하겠습니다. 그리고 최태호 부센터장, 김윤희 전임의도 함께 불러야 합니다. 이것이 개인의 판단인지, 아니면 시스템적 문제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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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30분. 이준호는 자신의 사무실에 홀로 있었다. 앞에 놓인 것은 박민철의 전체 의료기록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읽은 것은 의료적 수치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가는 시간 기록이었다.
초기 평가: 심장 기능 부전 심도 4단계, 이식 적응 판정. 김윤희 전임의의 글씨.
3주 후 재평가: 의학적 부적응증. 이준호의 글씨. 하지만 의료 상태는 같았다. 심지어 더 안정적이었다.
그 옆의 여백에 적힌 항목들. 조기 퇴직자. 독신. 저소득층.
이준호의 손가락이 그 글씨 위에서 멈춰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필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판단이었다. 의료적 판단이 아닌, 그저 개인의 판단. 자신이 누가 살 자격이 있는지를 결정하려고 했던 판단.
그의 뺨에서 물기가 흘렀다. 눈물이었다. 이전에 경험해본 적 없는 감각이었다. 수술실에서 손이 떨린 적은 없었다. 환자가 죽을 때도 그는 냉정했었다. 그것이 의료진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떨리는 것은 손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구축한 세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였다. 신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실은 도살자였다는 깨달음이 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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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넘어, 의료윤리위원회 회의실에서는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강신혜는 책상 위에 펼쳐진 의료기록들을 차례로 정렬하고 있었다.
환자 1: 72세 여성, 간경변. 초기 평가 적응, 재평가 부적응. 제외 후 4개월 사망.
환자 2: 58세 남성, 심장 기능 부전. 초기 평가 적응, 재평가 부적응. 제외 후 2개월 사망.
환자 3: 65세 남성, 신부전. 초기 평가 적응, 재평가 부적응. 현재 투석 중.
환자 4: 45세 여성, 폐이식 대기. 초기 평가 적응, 재평가 부적응. 제외 후 6개월 사망.
환자 5: 70세 남성, 간이식 대기. 초기 평가 적응, 재평가 부적응. 제외 후 3개월 사망.
환자 6: 62세 여성, 심장 기능 부전. 초기 평가 적응, 재평가 부적응. 현재 입원 중, 상태 악화.
환자 7: 55세 남성, 신부전. 초기 평가 적응, 재평가 부적응. 제외 후 5개월 사망.
환자 8: 박민철.
강신혜의 손가락이 각 기록에 메모를 적었다. 그 옆에는 사망 날짜들이 늘어서 있었다. 8명 중 5명이 제외 후 6개월 내에 사망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통계였다. 의도였다.
그녀는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밤새 눈이 뻑뻑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것은 개인의 의료사고가 아니었다. 이것은 시스템이 얼마나 깊이 병들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8명의 환자 중 5명이 죽었다. 의료 기준이 없는 판단으로. 의료적이 아닌 기준으로.
강신혜는 다시 박민철의 기록을 펼쳤다. 그리고 초기 평가서의 맨 아래에 적힌 문장을 읽었다.
"환자는 수술 후 회복력이 강할 것으로 예상되며, 충분한 자격 있는 대기자입니다. — 김윤희 전임의"
그리고 그 옆에 이준호가 빨간 펜으로 그은 한 줄.
"재평가 결과: 의학적 부적응증 — 이준호 센터장"
그 사이의 공백에 강신혜는 새로운 메모를 적었다.
"왜?"
단 한 글자의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이 곧 범죄의 증거가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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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이준호는 여전히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박민철의 의료기록이 열려 있었고, 그의 손은 초기 평가서 위에 있었다.
그는 자신이 왜 그 결정을 내렸는지 생각해보려고 했다. 의료적 이유? 그것은 없었다. 환자의 예후? 다른 환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수술 성공률? 그의 기술이면 충분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그 결정으로 이끌었는가?
그의 손가락이 떨리며 의료기록의 여백에 적힌 항목들을 가리켰다. 조기 퇴직자. 독신. 저소득층.
그 순간 이준호는 자신이 뭘 했는지 알았다. 그는 의사가 아니었다. 그는 신이 되려고 했던 것이다. 누가 살 자격이 있는지, 누가 살아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신. 하지만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있는 것은 자신의 오만함뿐이었다. 의료 기준이 아닌, 자신의 편견으로 누군가를 죽인 오만함.
그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는 창문을 열었다. 새벽의 찬 공기가 들어왔다. 서울의 야경이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중 일부는 죽을 것이고, 일부는 살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그였다.
그 사실이 처음으로 그를 공포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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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6시 30분. 의료윤리위원회 회의실에서 강신혜는 마지막 메모를 적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8명의 환자 기록이 모두 펼쳐져 있었다. 8명 중 5명이 죽었다. 의료적 기준 없이. 의료적 판단이 아닌 것으로.
"이것은 의료사고가 아닙니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이것은 범죄입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회의실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밤이 새고 있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하루에는 이준호 센터장의 심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8명의 환자 데이터가 증거가 되고, 5명의 사망이 범죄의 결과가 되는 하루.
강신혜는 시계를 봤다. 오전 9시 30분까지 3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최종 준비를 시작했다. 각 기록마다 질문을 정렬했다. 왜? 어떻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당신은 자신이 뭐라고 생각했습니까?"
오전 9시 45분, 이준호는 아직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