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박동 사이의 간격이 일정하지 않아서, 마치 누군가 가슴 안에서 드럼을 치는 것 같았다. 김준호는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 앞으로 갔다. 거울 속의 얼굴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흰머리가 거의 전부였다. 검은 머리는 남은 게 없었다. 눈가의 주름은 더 깊어졌고, 눈동자는 흐릿해 보였다. 아, 시력이 또 떨어졌구나.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시계가 보이지 않았다. 손을 뻗어 잡아야 했다. 약국에서 받은 안경을 들었다. 렌즈 도수는 -3.5. 한 달 전만 해도 필요 없었는데.

안경을 쓰니 세상이 선명해졌다. 하지만 선명해진 것은 자신의 몰락뿐이었다. 거울 속 남자는 거의 유령 같았다. 피부는 회색으로 변했고, 얼굴뼈가 뚜렷이 드러났으며, 눈빛은 꺼져 있었다. 이것이 3번째 회귀의 대가였다. 신체 수명은 이제 1년 미만. 의료진은 정확히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표정으로 충분했다.

휴대폰을 집었다. 2001년 6월 12일. 목요일. 오전 9시 47분.

남은 시간폭은 약 3개월. 1차 회귀 때는 5년이었다. 2차 회귀 때는 8개월. 이제 3개월이다. 회귀할 때마다 기억도 흐려진다. 이번엔 20% 희미해졌다. 1차 회귀에서 기억한 수치들이 하나씩 빠져 있었다. 이준영의 스프린트 시간? 4.78초. 아니, 4.83초였나? 최민재의 평균 회전력? 2400rpm. 확실했다. 그것만 확실했다.

라이온스의 훈련장 문을 밀었다. 바깥은 초여름의 습기로 가득했다. 6월의 야구는 이미 승부가 갈리는 시즌이었다. 라이온스는 현재 2위였다. 정확히는 1위와 0.5게임 차였다. 그 수치도 기억에서 빠져 있었다. 정확한 숫자가 필요했는데, 기억이 주지 않았다.

이준영은 타격 연습 중이었다. 스윙 폼이 훨씬 나아졌다. 하체의 회전이 더 부드러워졌고, 팔의 연장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최민재는 불펜에서 변화구를 던지고 있었다. 슬라이더의 회전이 더 빨라졌다. 아, 2400rpm에서 2480rpm으로 올라갔나? 기억 속에 있던 수치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기억은 깨진 유리처럼 산산조각이었다.

박태수 감독이 김준호를 봤다. 그 눈빛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였다. 하지만 그 신뢰 뒤에는 의문이 숨어 있었다.

"선수들이 달라졌어. 특히 이준영 놈, 작년과는 완전히 다른 선수야. 근데 말이야—" 박태수가 말을 멈췄다. "당신은 정말 이걸 다 예측했나?"

김준호는 대답하지 않고 경기장 펜스에 기대었다. 펜스의 철 틀이 등에 닿았다. 그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가슴이 또 철렁했다.

"아니다." 김준호의 목소리는 낮았다. "난 미래를 본 거고, 이들은 그 미래를 현재로 만들었다."

박태수는 뭔가 깊은 말을 들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그리고 나서 한숨을 쉬었다.

"그럼 충분하다."

───

라이온스 사무실. 이민준 경영이사의 책상 위에는 최근 전적이 놓여 있었다. 지난 한 주간 5승 1패. 우승 가능성이 80% 이상이라는 스포츠통신의 예측 기사도 있었다. 이민준은 그것을 읽고 있었다. 그 옆에는 김준호의 회귀 이후 발굴한 선수들의 신체 수치 자료가 있었다. 그것도 읽고 있었다.

정해진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얼굴이 창백했다.

"강수민이 거절했어." 정해진이 앉지 않고 말했다. "대표팀 선발 제안을 거절했다."

이민준이 고개를 들었다.

"강수민이? 왜?"

"본인 말론, 라이온스에서 제대로 경쟁하고 싶다고.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고 싶다고." 정해진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 놈은 이제 라이온스가 자신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민준은 다시 기사를 읽었다. 강수민의 최근 타율은 .325. 평생 최고 성적이었다. 그런데 이준영의 타율은 .338. 그리고 최민재의 평균 자책점은 2.14. 한국 야구 사상 최고 수준이었다.

"라이온스가 우승하면 어떻게 할 건가?" 이민준이 물었다.

"절대 우승 못 한다." 정해진이 대답했다. "우승까지 가는 길에 반드시 우리 팀을 만날 거고, 그럼 끝이다. 저들은 기초가 없는 신인들이야. 한두 경기 우연으로 이길 수 있지만, 토너먼트는 다르다."

하지만 정해진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이민준은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정해진은 자신의 말을 믿지 않고 있었다.

───

경기장. 라이온스 vs SK 와이번스. 우승 결정전. 7차전.

경기는 3대 2로 진행되고 있었다. 라이온스가 이기고 있었다. 9회 말, 투아웃 만루. SK의 최강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최민재가 투수 마운드에 있었다.

최민재의 첫 구는 스트라이크. 그 다음은 볼. 그 다음은 파울. 스트라이크. 풀 카운트. 2아웃 풀 카운트. 이 순간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최민재는 심호흡을 했다. 그의 얼굴은 차분했다. 하지만 그 차분함 뒤에는 절박함이 숨어 있었다. 최민재는 구속 138km의 슬라이더를 던졌다. 회전력 2480rpm. 그 구는 타자의 배트 끝에 맞았다. 그리고 우익 방향으로 약한 뜬공이 되었다.

이준영이 움직였다. 그는 왼쪽 외야에서 우측으로 달렸다. 스프린트 시간 4.83초의 그 다리가 풀로 가동되었다. 그의 글러브가 공을 잡았다. 동시에 경기장의 모든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폭발했다.

라이온스 벤치에서 모든 선수가 뛰어나왔다. 강수민도, 박준호도, 모두가. 그들은 이준영을 안았다. 최민재는 마운드에서 내려와 먼저 그들을 향해 달렸다. 경기장의 모든 관중이 환호했다. 우승이었다. 라이온스의 첫 우승. 신생 구단 한강 라이온스의 우승.

관중석 한구석에서, 김준호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안경 너머로 그 눈물이 흘렀다. 그것은 완벽한 스카우팅의 성공을 기뻐하는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계산이 선수들의 의지 앞에서 얼마나 작은 것인지를 깨닫는 눈물이었다. 이준영의 그 스프린트, 최민재의 그 슬라이더, 그리고 강수민의 그 경쟁 정신. 모든 것이 데이터를 초월했다.

김준호는 손을 들어 눈물을 닦으려 했다. 하지만 손이 떨렸다. 왼손 경련이 시작되었다. 심장도 또 불규칙하게 뛰었다. 박박박, 그리고 쉼. 박박, 쉼쉼. 관중의 환호음이 들렸다. 박박박박박. 박박박박박. 리듬을 잃은 악기처럼 두 가지 소리가 겹쳤다. 승리의 함성과 죽음의 박동. 김준호는 그 사이에 앉아 있었다. 관중석에 앉아 있는 자신을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이미 유령처럼 보이고 있었다.

───

우승 직후. 라이온스 로커룸.

선수들의 환호는 가까웠다. 하지만 김준호가 서 있는 곳은 침묵이었다. 벽에 기대어 있었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박박박, 그리고 쉼. 박박, 쉼쉼. 리듬을 잃은 악기처럼.

이민준이 나타났다. 경영이사의 얼굴은 승리로 붉어져 있었다. 그는 김준호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손을 내밀었다.

"축하합니다."

김준호는 손을 잡으려 했다. 손이 떨렸다. 경련. 이민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느꼈을 것이다. 그 손 안의 죽음을.

"당신의 분석이 맞았어요. 우리가 이겼다."

"네." 김준호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마치 녹음기의 테이프가 낡은 것처럼.

이민준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축하의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승리의 소음 속으로.

김준호는 혼자 남았다. 로커룸의 벽에 기대어. 주머니에서 낡은 수첩을 꺼냈다. 그것은 1차 회귀에서 자신이 작성한 것이었다. 그 안에는 놓친 선수들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25년 후 한국 야구에서 성공했을 선수들. 하지만 이 회귀에서 발굴하지 못한 선수들. 그들의 이름들.

"저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김준호가 중얼거렸다. "저 아이들은 누가 발굴할 거죠?"

박태수 감독이 들었다. 그는 선수들 사이를 빠져나오며 김준호에게 다가갔다. 감독의 얼굴은 우승의 기쁨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기쁨은 김준호를 보는 순간 흐릿해졌다.

"뭐라고 했어?"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무슨 말이야? 우리 우승했잖아."

김준호는 수첩의 페이지를 넘겼다. 손이 떨렸다. 페이지를 여러 장 넘겼다. 이름들, 이름들, 이름들. 25년 후 한국 야구에서 성공했을 선수들의 목록. 하지만 이 회귀에서 만나지 못한 선수들.

"저 아이들이 정해진에게 간다면, 그들은 데이터로만 평가받을 거예요. 신체 조건이 미달이라는 이유로. 평생."

박태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남은 회귀는 한 번뿐이에요." 김준호가 수첩을 닫았다. "마지막 기회에서 저 아이들을 찾지 못하면, 그들은 영원히 버려진 선수로 남는다. 당신들이 놓친 아이들처럼."

박태수의 얼굴이 굳었다.

"회귀를 해야 한다. 한 번 더."

"당신의 몸이—"

"알아요."

김준호가 박태수의 말을 끊었다. 손을 들었다. 왼손이 경련했다. 손가락들이 불규칙하게 떨렸다. 박태수는 그것을 봤다.

"의료진이 말했어요. 다음 회귀는 생사를 건 도박이라고. 신체 수명이 1년 미만으로 남았다고. 하지만 저 아이들 중 한 명이라도 더 발굴할 수 있다면."

김준호의 시선이 박태수를 찾았다. 안경 뒤의 눈빛. 그것은 이미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

박태수는 거울을 봤다. 로커룸의 벽에 붙은 작은 거울. 그 안에는 유령 같은 남자가 서 있었다. 거의 반투명한. 피부는 종이처럼 얇았다. 흰머리는 이제 검은머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주름은 그림을 그으면 피가 흐를 것 같았다.

거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 남자는 정말로 죽어가고 있었다.

"남은 시간은 3개월이에요." 김준호의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하지만 무게는 더 무거워졌다. "3개월 안에 마지막 선수를 찾고, 다음 시즌 전에 회귀할 거다. 그게 내 마지막 기회야."

박태수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는 야구 감독이었다. 30년을 야구와 함께 살았다. 하지만 지금 자신 앞에 있는 것은 야구계의 상식 밖에 있었다.

"당신은..." 박태수가 천천히 말했다. "정말 죽을 생각이야?"

"예."

대답이 빨랐다. 마치 오랫동안 준비한 것처럼.

"왜?"

김준호는 수첩을 다시 펼쳤다. 손이 여전히 떨렸다. 페이지를 가리켰다. 한 이름.

"이 아이는 현재 어디에 있을까요?"

박태수는 이름을 읽었다. 하지만 그 이름은 라이온스 명단에 없었다. 그것도 정해진의 팀에 없었다. 아마 어딘가 하위 팀에서 짐짝처럼 팔려갔을 것이다.

"저 아이는 5년 후에 메이저리그에 가야 해요. 하지만 이 회귀에서는 정해진에게 먹혔어요. 다음 회귀에서 그 아이를 찾으면, 그 아이는 메이저리그를 간다. 하지만 내가 찾지 못하면..."

김준호가 손가락을 페이지에 내렸다. 손가락이 떨렸다.

"영원히 땅을 파는 선수가 되는 거야."

박태수는 그 손가락을 봤다. 죽어가는 손. 그 손이 가리키는 이름. 그리고 그 이름 뒤에 있는 미래. 라이온스가 이룬 우승은 멋졌다. 하지만 그것은 이 남자가 본 미래의 일부일 뿐이었다.

"내가... 뭘 해주면 좋을까?"

박태수가 물었다.

김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그냥... 제가 회귀하기 전까지, 이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해 주세요."

수첩을 박태수에게 건넸다. 손이 경련했다. 수첩이 거의 떨어질 뻔했다. 박태수가 받았다.

"회귀 후에는 제가 없을 거예요. 그 아이들을 지켜줄 사람은 당신뿐이에요."

"당신이... 죽는다는 거야?"

"모르겠어요." 김준호가 웃었다. 하지만 웃음은 울음처럼 들렸다. "의료진도 모르겠대요. 회귀 과정에서 신체가 어떻게 될지."

박태수는 수첩을 들었다. 무거웠다. 아, 이것이 이 남자의 무게구나. 이것이 그가 짊어진 것이구나.

"당신은..." 박태수가 다시 물었다. "혼자야?"

김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경기장 밖을 봤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 불빛들이 떨렸다. 시력 악화 때문일까, 아니면 눈물 때문일까.

"당신이 우승했어요, 감독님.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하지만 박태수는 알았다.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이 남자에게는 절대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

밤. 라이온스 숙소.

김준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낡은 원룸. 침대, 책상, 거울. 그것이 전부였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봤다. 천장도 떨렸다. 시력이 나쁜 탓일까. 아니면 손이 떨리는 탓에 세상이 떨려 보이는 걸까.

3개월.

다음 회귀까지 3개월.

그 3개월 동안 자신의 신체는 얼마나 더 쇠락할까.

의료진은 말했다. 다음 회귀는 생사를 건 도박이라고.

하지만 김준호는 알았다.

이미 자신은 죽어 있다는 것을.

단지 아직 쓰러지지 않은 것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선수들을 위해서라면.

───

다음날. 새벽 4시. 라이온스 스카우팅실.

김준호는 노트북을 켰다. 손이 떨렸다. 키보드를 칠 때마다 잘못된 글자가 입력되었다. 지우고, 다시 입력하고, 지우고. 반복.

남은 3개월.

3개월 안에 찾아야 할 선수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손이 경련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각 선수의 마지막 목격 위치, 추정 현재 소속팀, 접근 난이도를 정리했다.

이준욱(투수, 경주). 발굴 대상. 2001년 7월 현재 상태: 미확인.

최준혁(외야수, 인천). 발굴 대상. 2001년 7월 현재 상태: 미확인.

박형준(포수, 광주). 발굴 대상. 2001년 7월 현재 상태: 미확인.

화면이 떨렸다. 손이 떨려서일까, 아니면 시력이 나빠서일까.

전화기를 들었다. 손이 경련했다. 번호를 누르기가 어려웠다. 한 번, 두 번, 세 번 잘못 눌렀다.

마침내 전화가 연결되었다. 상대는 경주 지역 야구 연맹의 담당자였다.

"경주 고등학교 야구팀 있지?" 목소리가 갈렸다. "거기 투수 중에 이준욱이라는 아이 있나?"

상대의 대답을 기다렸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박박박박박.

"네? 그 아이가 이미 어디로 갔다고? 누구한테?"

김준호의 얼굴이 굳었다.

"정해진? SK의 정해진?"

전화를 끊었다.

손이 떨렸다. 경련이 심해졌다. 키보드를 두드렸다. 정해진의 스카우팅 기록을 검색했다. 수첩에 적힌 아이들의 이름들을 하나씩 검색했다.

이준욱. 정해진 산하 스카우팅 기록에 등재됨. 6월 15일 계약.

최준혁. 정해진 산하 스카우팅 기록에 등재됨. 6월 22일 계약.

박형준. 정해진 산하 스카우팅 기록에 등재됨. 7월 3일 계약.

모두 정해진에게 가 있었다.

모두.

심장 박동이 더 불규칙해졌다. 박박박박박. 리듬을 완전히 잃었다. 손이 떨렸다. 마우스를 잡기도 어려웠다.

김준호는 손을 내렸다. 수첩을 다시 펼쳤다. 기억이 20% 희미해진 탓에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선수들의 이름들. 그 빈 공간들.

정해진은 자신의 기억 속 공백을 노렸다. 자신이 잊은 선수들을 먼저 찾아낸 것이다. 기억 감소라는 약점을 완벽하게 악용했다.

"아직... 아직 3개월이 남았어."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이미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화면 속 검색 결과를 다시 스크롤했다. 정해진의 스카우팅 기록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7월 중순. 정해진이 인천 지역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같은 날짜에 최준혁이 계약되었다. 정해진이 이미 움직인 것이다.

김준호는 휴대폰을 집었다. 인천 지역의 야구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손이 떨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한 명, 두 명, 세 명. 각각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최준혁이라는 외야수 아는 사람 있나? 아직 발굴되지 않은 아이 말이야."

대부분의 대답은 같았다.

"그 아이? 이미 정해진이 데려갔어. 한 달 전에."

김준호는 전화를 끊었다. 손이 경련했다. 정해진은 이미 자신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었다. 자신이 찾을 선수들을 미리 선제 공략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수첩을 다시 펼쳤다. 기억이 희미해진 부분을 채우려고 애썼다. 1차 회귀에서 적었던 이름들. 그 중에서 아직 발굴되지 않은 선수는 누구인가.

손가락이 떨렸다. 페이지를 넘겼다. 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이준욱(투수). 이미 정해진에게 간 상태.

최준혁(외야수). 이미 정해진에게 간 상태.

박형준(포수). 이미 정해진에게 간 상태.

그 다음 이름은?

기억이 희미했다. 20% 감소된 기억 속에서 그 이름은 마치 안개 속의 풍경처럼 흐릿했다. 펜으로 적힌 글자가 희미해 보였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김준호는 눈을 감았다. 1차 회귀 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 때 자신은 분명히 25명의 선수를 기록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몇 명만 기억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아직 정해진에게 가지 않은 선수는?

스카우팅실의 불빛이 희미했다. 시력 악화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이 정말로 그렇게 흐려지는 걸까.

손을 들었다. 경련했다. 왼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키보드를 다시 두드렸다. 기억 속의 이름들을 검색했다. 하나씩.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이름 하나. 아직 정해진의 기록에 없는 이름. 아직 발굴되지 않은 선수.

광주. 남자고등학교. 2학년.

김준호는 광주 지역 야구팀 목록을 검색했다. 손이 떨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하나씩 전화를 걸었다.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이 아이 알아? 이 아이 어디 있어?"

한 시간이 지났다. 두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마침내.

"네, 그 아이 우리 팀에 있어요. 근데 아직 어디도 데려가지 않았어."

김준호의 손이 멈췄다. 심장이 또 불규칙하게 뛰었다. 박박박박박. 하지만 이번엔 다른 종류의 박동이었다.

희망.

"그 아이 언제 만날 수 있어?"

"내일 오후 훈련장에 나올 텐데요. 아, 그런데 정해진 팀에서도 내일 오후 광주 도착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내일 훈련장 방문 계획이 있다더라고."

김준호의 손이 굳었다.

내일 오후. 정해진이 광주에 온다.

자신도 내일 광주로 가야 한다.

그리고 정해진보다 먼저 그 선수를 만나야 한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손이 떨렸다. 하지만 이번엔 경련이 아니었다. 절박함이었다.

3개월 안에 마지막 선수를 찾는 것.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기회였다.

내일. 광주로 가야 한다.

정해진보다 먼저. 아침 기차를 타야 한다.

스카우팅실의 불빛 아래, 김준호는 노트북을 닫았다. 손이 여전히 떨렸다. 하지만 눈빛은 살아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중얼거렸다.

정해진의 노골적인 선제 공략. 자신의 기억 약점을 이용한 그의 전략. 하지만 자신도 알았다. 정해진이 모든 선수를 선점할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이 희미해진 만큼, 정해진도 자신의 다음 움직임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이것은 경쟁이었다.

신체 수명이 1년 미만인 죽어가는 스카우터와, 그를 막으려는 정해진 사이의 경쟁.

그리고 이 경쟁은 시간 경쟁이었다.

3개월.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선수를 찾을 수 있을까.

김준호는 가방을 챙겼다. 손이 떨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새벽 5시 광주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정해진 도착 예정 시간보다 6시간 앞서야 했다.

창밖의 서울 야경이 떨렸다. 불빛들이 물결처럼 흔들렸다.

3개월.

마지막 회귀까지 3개월.

그 시간 동안, 자신이 얼마나 더 죽어갈지는 모르지만.

선수들은 살아날 것이다.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