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회귀한 천재 스카우터가 괴물 신인을 싹쓸이함

거울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 왼손이 떨렸다. 작은 경련이 아니었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듯한 느낌. 김준호는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 길도 길었다. 2001년 9월의 라이온스 숙소 복도는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발을 옮기는 것이 마치 물속을 헤치는 것 같았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두 박자 빠르고, 한 박자 쉬고, 다시 세 박자. 그 리듬이 가슴팍에서 울렸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눈을 뜨기까지 3초가 걸렸다.

흰머리는 이제 검은머리를 뒤덮었다. 관자놀이부터 정수리까지, 마치 누군가 회백색 페인트를 붓으로 칠한 것 같았다. 얼굴은 더 심했다. 주름이 주름 위에 겹쳐 있었고, 눈 아래 검은 자국은 거의 멍처럼 보였다. 왼쪽 눈가에는 떨리는 신경이 자그마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김준호는 손으로 눈을 감싸 안았다. 만지는 것도 싫었다.

목소리를 내보려고 했다. 선수들 앞에서 할 말들을 미리 정리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나온 것은 갈라진 종이를 밀어 넣는 소리 같은 음성이었다. 어제보다 더 약해졌다. 매 회귀마다 기억이 10%씩 희미해진다고 했는데, 신체도 함께 비례하는 것 같았다. 아니, 신체가 더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시간폭은 1개월. 9월 15일에 도착했으니, 10월 15일까지만 움직일 수 있다. 그 이후는—

김준호는 생각을 끊었다. 그 이후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낫다.

사무실에 들어간 것은 오전 9시였다. 박태수 감독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3번의 회귀를 거치면서 그의 얼굴은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얼굴에는 불안이 섞여 있었다.

"네가 왔구나."

박태수가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섰다. 그리고 멈췄다. 김준호의 얼굴을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김준호는 라이온스 숙소에만 있었고, 경기장에 나갈 때는 항상 선글라스를 썼다. 하지만 이 아침, 그 선글라스가 없었다.

"넌... 괜찮아?"

"네."

한 음절이 나왔다. 김준호는 목에 손을 대었다. 애초에 목이 없는 것 같았다.

"이준영과 최민재는?"

"연습 중입니다, 감독님."

박태수가 다시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스카우트가 왔다. 미국에서."

김준호의 몸이 순간 굳었다. 그것은 예상된 일이었다. 3차 회귀 때 남겨 놓은 수첩에도 기록되어 있었다. 이준영이 2001년 10월 초에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의 눈에 띈다. 최민재는 11월에. 그들의 성장 곡선은 그렇게 되어 있었다. 미래의 통계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통계가 현실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누가?"

"MLB 스카우트. 아틀란타 브레이브스의 동부 지역 담당자래. 이준영을 보고 싶다고 했어. 주루 능력과 수비 센스가 특별하다고. 체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박태수의 말이 멀게 들렸다. 아니, 들렸다. 너무 또렷하게 들렸다. 자신이 예측한 미래가 정확하게 따라오고 있다는 것. 데이터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박태수가 잠깐 말을 끊었다.

"최민재도. 다른 팀이지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연락이 왔어. 그 아이의 회전력 데이터를 봤다고. 구속은 평범하지만 구질이 특이하다고."

두 선수 모두. 예상대로였다. 아니, 예상을 조금 앞섰다. 10월 초가 아니라 9월 말이었다. 세상이 빨라지고 있었다. 아니면 자신의 기억이 더 흐려져서 그런 것일까.

"그들을 보내나?"

"당신이 결정해."

박태수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감독으로서의 명령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물음이었다. 이 구단을 살린 사람. 통계라는 이상한 언어로 한국 야구의 미래를 예언한 사람. 그 사람에게 하는 질문이었다.

김준호는 창밖을 봤다. 그라운드에서 이준영과 최민재가 움직이고 있었다. 이준영은 좌측 주루로 향하는 스프린트를 반복하고 있었고, 최민재는 마운드에서 구질 변화를 연습 중이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한 달 전과 달라져 있었다. 더 자신감 있었다. 더 정교했다. 더 완성에 가까워졌다.

김준호는 입을 열었다. 목이 아팠지만, 말해야 했다.

"보내야 합니다."

"그들을?"

"그들은 한국에 있을 선수들이 아닙니다."

박태수가 한참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사무실 문이 열렸다. 정해진이 들어섰다.

그의 얼굴도 많이 변해 있었다. 1차 회귀 때 만났던 그 매서운 눈빛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곳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피로? 아니면 인정?

"김 스카우터."

정해진이 의자에 앉지 않고 섰다.

"당신이 맞네."

"무엇이요?"

"한국 야구를 바꾼 사람. 나는 당신이 실패할 거라고 생각했어. 저 아이들이 무너질 거라고. 신체 조건이 표준을 벗어나면 결국 부상이나 한계에 부딪힐 거라고."

정해진이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그런데 당신이 보여준 것들을 보니까... 그게 아니었네. 모든 게 변하고 있어. 내가 30년을 믿어온 기준들이. 대형 구단들도 이제 데이터 팀을 꾸리고 있고, 젊은 스카우터들이 구속보다 회전력을 말하고 있어. 체형보다 신체 능력 수치를 본다고."

정해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당신이 한 것은... 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야구가 변했어. 그게 전부야."

정해진이 한 발 물러섰다. 그의 눈이 김준호를 직접 마주쳤다.

"당신, 뭘 하려고 그래? 이준영과 최민재를 메이저리그로 보내고도 뭘 더 하려고?"

"놓친 선수들이 있습니다."

"놓친?"

"당신 팀으로 간 선수들입니다. 이준욱, 최준혁, 김태환, 박수진. 그 아이들을 발굴해야 합니다."

정해진이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은 조롱이 아니었다.

"그 아이들? 내가 봤는데, 신체 조건은 좋은데 뭔가 부족하더라고. 그래서 결국..."

"그들은 안 되는 선수들이 아닙니다."

김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신체의 떨림이 아니라 감정의 떨림이었다.

"당신이 발굴을 못 한 거예요. 신체 조건으로만 봤으니까. 그 아이들을 제대로 봐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달랐을 겁니다."

정해진이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는 뭔가 있었다. 인정? 아니면 후회?

"당신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이요?"

"이준영과 최민재만 해도 충분한데, 왜 자꾸 놓친 것들을 보려고 해? 그들을 살리는 데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1개월입니다."

"1개월? 그 정도 시간에 뭘 할 수 있어?"

"그 아이들을 살리는 것."

정해진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이번엔 깊은 한숨이었다.

"당신, 정말 데이터만 보는 게 아니네. 그 숫자 뒤의 사람들을 보고 있었어."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한다고? 당신 몸이 이 정도인데?"

정해진이 돌아섰다. 문 앞에서 멈췄다.

"당신 아이들, 메이저리그 보내. 그들이 거길 정복하면, 그게 완전한 증명이 될 테니까. 그리고..."

정해진이 다시 김준호를 봤다.

"그 네 명, 내가 찾아줄게. 너한테 시간이 없으니까."

문이 닫혔다.

김준호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이 떨렸다. 왼손이 아니라 오른손도. 양손이 동시에 경련했다.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 신체 자체의 신호였다. 회귀의 대가가 극점에 달했다는 신호.

경기장 밖, 라이온스 주차장의 한구석.

김준호는 차량의 옆면에 기대어 숨을 고르고 있었다.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3분이 걸렸다. 손가락의 경련은 여전했다. 왼손 검지가 일정한 간격으로 떨렸다. 떨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남은 수명. 1개월.

정확히는 27일. 라이온스 의료진이 말한 '마지막 회귀까지 견딜 수 있는 시간'이 그 정도였다. 그 이후는 추측일 뿐이었다. 4차 회귀의 대가가 얼마나 클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김준호 자신도.

휴대폰이 울렸다. 박태수 감독이었다.

"어디야? 숙소 와."

"네."

"이준영과 최민재 봤어?"

"네, 봤습니다."

"잘했어. 저 아이들, 진짜 해낼 거야. 당신 덕분에."

김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하늘을 봤다. 9월의 밤하늘은 검었다. 별이 몇 개 떠 있었지만, 도시의 불빛이 그것들을 거의 삼켜버렸다.

"당신 있잖아, 정해진이가 사직서를 냈어. 알아?"

"네."

"그 사람, 당신한테 뭘 했대? 박태수가 물었을 때는 아무것도 안 한다고 했는데, 사람들 말로는..."

"좋은 대사였습니다."

박태수가 웃음을 흘렸다.

"좋은 대사?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다니. 정해진이는 뭐라고 했어?"

"한국 야구를 바꿨다고. 그리고..."

"그리고?"

"그 네 명의 선수들을 찾아주겠다고 했습니다."

박태수가 침묵했다.

"정해진이가?"

"네. 그 아이들을 살리는 데 제 시간이 부족하니까, 자신이 찾아주겠다고."

박태수의 목소리가 변했다.

"그 사람도 변했네. 당신 때문에."

통화가 끝났다.

라이온스 숙소는 강남역 근처의 낡은 건물이었다. 3층 구조, 각 층마다 4개의 원룸.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가 함께 묵는 곳이었다. 김준호의 방은 2층 끝쪽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김준호는 거울을 피했다. 화장실도 들어가지 않았다. 침대에 누우면서 천장을 봤다. 천장에는 금이 가 있었다. 작은 금부터 큰 금까지, 마치 번개 자국처럼 뻗어 있었다. 그것을 보며 자신의 신체를 떠올렸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내부는 이미 금이 가 있을 것이다. 그 금들이 동시에 터지는 순간이 오고 있었다.

밤 11시.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뉴스 앱이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한국 유격수 영입 추진... 브레이브스, 이준영 스카우팅'

기사의 날짜는 오늘이었다. 정확히는 내일 새벽에 나갈 기사였다. 정보가 먼저 흘러나온 것이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예상대로였다. 정확히 예상대로.

다음 알림도 바로 왔다.

'메이저리그 다저스, 한국 투수 최민재에 관심... 회전력 우수한 좌완'

두 선수가 동시에 메이저리그 레이더에 포착되었다. 김준호가 예측했던 시간표 그대로였다. 차이라면 1주일 빠른 것. 하지만 그것도 예측 범위 내였다. 기억이 30% 희미해진 상태에서도, 데이터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김준호는 휴대폰을 내렸다. 천장을 계속 봤다. 그 금들이 점점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신체 안에서.

새벽 3시.

김준호는 깬 채로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신체가 너무 불안정했다. 심장이 한 번씩 크게 뛰다가 느려졌다. 마치 엔진이 정지했다가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았다. 손가락의 경련도 더 심해졌다. 이제 왼손뿐 아니라 오른손까지 떨리고 있었다.

휴대폰을 집었다. 1차 회귀 때 작성한 수첩의 사진을 열었다. 그 안에는 발굴 대상 선수 명단이 있었다. 이준영, 최민재, 박준호(포수). 그리고 그 아래에는 '미발굴 선수'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준욱, 최준혁, 김태환, 박수진. 네 명이 모두 정해진의 영입 대상으로 흘러갔다. 3차 회귀에서 더 이상 개입할 수 없었던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데이터상으로는 그들도 성공할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메이저리그 진출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 야구계에서 충분히 역할할 수 있는 인재들이었다. 하지만 정해진의 팀으로 간 이후, 그들의 기록은 흐릿해졌다. 회귀할 때마다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그들의 미래도 점점 희미해졌다.

그 흐릿함이 견딜 수 없었다.

새벽 6시, 라이온스 훈련장.

박태수 감독이 먼저 와 있었다. 코치들도 함께였다. 이준영과 최민재는 아직 오지 않았다. 김준호는 관중석 한 구석에 앉았다. 손에는 1차 회귀 수첩이 들려 있었다.

박태수가 올라왔다.

"또 못 자?"

"네."

"당신, 진짜 건강 안 좋네. 병원 다시 가봐."

김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첩을 들었다.

"감독님, 혹시 이 사람들 알아요?"

수첩을 보여줬다. 박태수가 이름들을 읽었다.

"이준욱? 최준혁? 이 아이들 왜?"

"정해진이의 팀에 영입된 선수들입니다. 1차 회귀 때 발굴 대상이었던 선수들인데..."

"아, 그 선수들 말이야. 내가 들은 바론, 정해진이가 다 데려갔는데, 별로 안 되더래. 신체 조건은 좋은데 뭔가 부족하다고."

김준호의 손이 떨렸다. 왼손이 아니라 오른손도.

"그들은 안 되는 선수들이 아닙니다."

"뭐?"

"정해진이가 발굴을 못 한 거예요. 신체 조건으로만 봤으니까. 그 아이들을 제대로 봐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김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신체의 떨림이 아니라 감정의 떨림이었다. 수첩의 네 명 선수 사진을 내려다봤다. 흐릿한 사진 속 얼굴들. 자신이 포기해야 했던 선수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선수들.

'이들을 포기할 수 없다.'

그 생각이 가슴을 짓눌렀다.

박태수가 김준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당신, 이미 충분히 했어. 이준영과 최민재만 해도 충분해."

"아닙니다."

"뭐?"

"저는 아직 안 했습니다. 남은 게 많습니다."

박태수가 한숨을 쉬었다. 그것은 연민의 한숨이었다.

"당신, 뭐 하려고 그래?"

"마지막 회귀를 해야 합니다."

"마지막?"

"네. 이 아이들을 살려야 합니다."

박태수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김준호를 봤다. 그 시선에는 뭔가 있었다.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김준호의 신체 상태를 말이다.

"당신, 그 정도 회귀를 감당할 수 있어?"

"모릅니다. 하지만 해야 합니다."

박태수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이번엔 다른 종류의 한숨이었다. 결정을 내린 사람의 한숨.

"좋아. 그런데 당신, 이준영과 최민재는?"

"그들은 스스로 해낼 겁니다."

"확실해?"

"네. 저는 단지 그들을 믿게 해줬을 뿐입니다. 그 믿음은 이제 그들 것입니다."

박태수가 수첩을 들었다.

"이 아이들, 어디서 찾아?"

"서울 외곽과 경주, 부산입니다."

"시간이?"

"1개월입니다."

박태수가 수첩을 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성스러운 문서를 다루는 것 같았다.

"당신, 이 아이들을 위해 마지막을 쓸 거야?"

"네."

"그럼 당신은?"

김준호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하늘을 봤다. 이미 밝아 있었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오고 있었다.

"당신이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박태수가 말했다.

"데이터 스카우터라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그냥... 사람이네."

"감독님."

"뭐?"

"정해진이가 그 네 명을 찾아주겠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니까요."

박태수가 고개를 들었다.

"정해진이가?"

"네. 그 사람도 변했습니다."

박태수가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슬픈 웃음이었다.

"당신, 정말 한국 야구를 바꿨네."

오후 2시, 라이온스 사무실.

이민준 경영이사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 얼굴이 밝았다. 메이저리그 에이전트와의 통화였을 것이다. 계약 조건이 좋다는 뜻이었다.

통화가 끝났다.

"좋은 소식이 있어요. 이준영이, 브레이브스와 3년 계약에 사인할 가능성이 높아요. 연봉 평균 200만 달러. 최민재는 다저스와 협상 중인데, 조금 더 높을 수도."

김준호는 듣고만 있었다.

"당신 덕분입니다. 정말. 이 구단이, 당신 덕분에 이렇게 됐어요."

"아닙니다."

"뭐?"

"이 구단이 아니라, 이 아이들이 스스로 한 겁니다."

이민준이 웃음을 흘렸다.

"당신, 진짜 스카우터네. 자기 공은 절대 안 챙기고."

"저는 데이터만 제공한 겁니다."

"데이터? 그 데이터가 이 모든 걸 바꿨잖아요."

김준호가 일어섰다.

"이민준 이사님, 제가 요청이 있습니다."

"뭐요?"

"제가 놓친 선수들이 있어요. 이 구단에서 그 아이들을 찾아줄 수 있을까요?"

이민준이 얼굴을 굳혔다.

"놓친 선수들?"

"네. 정해진이 구단으로 간 선수들입니다."

"그 선수들을 왜 찾아요? 이미 계약은 끝났는데."

"그 아이들은 안 되는 선수들이 아닙니다. 단지 제가 개입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이민준이 침묵했다. 그 침묵은 계산 중인 침묵이었다. 경영인의 침묵.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세요?"

"1개월입니다."

이민준이 창밖을 봤다. 서울의 도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좋아요. 해보세요. 라이온스가 도와줄게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 모든 게 끝난 후에..."

"알고 있습니다."

이민준이 다시 김준호를 봤다.

"모르겠네. 당신 같은 사람은. 왜 자기 몸을 이렇게 버려가면서까지..."

"데이터는 거짓말하지 않으니까요."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심장이 또 불규칙하게 뛰었다. 두 박자, 한 박자 쉬고, 다시 빨라지고. 손가락도 더 심하게 떨렸다. 이제 손 전체가 떨리고 있었다. 양손 모두.

저녁 7시, 라이온스 숙소.

이준영과 최민재가 방문을 두드렸다. 김준호가 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들어와."

두 선수가 들어섰다. 방은 좁았다. 침대, 책상, 간단한 의자. 그것이 전부였다.

"메이저리그 계약,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 미국 가서 조심해요. 처음엔 힘들 거야. 언어도, 문화도."

최민재가 웃음을 흘렸다.

"저 아저씨, 또 데이터로 설득하려고?"

"아니, 경험입니다."

"경험? 당신이 메이저리그 간 적 있어요?"

"없습니다. 하지만 본 것은 많습니다."

이준영이 김준호의 손을 봤다. 떨리고 있었다.

"감독님, 괜찮으세요?"

"괜찮아. 그냥 피곤할 뿐이야."

"당신, 병원..."

"필요 없어."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저, 물어봐도 돼요?"

이준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뭐?"

"당신은 왜 우리를 봤어요? 정말."

김준호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봤다. 밤이 내려앉고 있었다.

"숫자였어요."

"숫자?"

"너희는 숫자였어. 다른 누구보다 명확한 숫자였어."

"그래서요?"

"그 숫자가 거짓말하지 않았어."

최민재가 다시 말했다.

"그 숫자가 없었으면, 우린 지금도 누군가에게 '신체 조건 미달'이라고 들었을 거예요."

"그래."

"고마워요. 그 숫자가."

김준호가 이준영을 봤다.

"미안해."

"뭐가요?"

"숫자로만 본 것. 너희를 사람으로 본 게 아니라."

이준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 숫자가 우리를 믿게 해줬고, 우리는 그 믿음을 현실로 만들었어요. 그게 전부예요."

그 말을 하며 이준영의 눈빛이 변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불안한 눈빛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그곳에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 그것은 데이터로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의지.

최민재가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스카우터님. 진짜로."

김준호가 손을 잡았다. 손이 떨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상관하지 않고 있었다.

"미국에서 잘해. 너희는 충분히 할 수 있어."

"네, 감독님."

"그리고..."

김준호가 말을 멈췄다. 목이 아팠다. 하지만 말해야 했다.

"다음 회귀에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이준영과 최민재의 얼굴이 굳었다.

"뭐... 뭐라고요?"

"이 회귀가 마지막이 될 거야. 그래서..."

"안 돼요."

최민재가 손을 내저었다.

"당신이 그럴 리가 없어요. 당신은..."

"당신은 우리를 구했는데, 당신이 그러면 안 돼."

이준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제발. 당신 몸을 좀 더 챙겨요. 우리를 위해 그러지 말고."

김준호가 두 선수를 봤다. 그들의 얼굴에는 거부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눈물이.

"너희가 미국에서 해내면, 그게 내 증명이 될 거야. 데이터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증명이."

"그건 당신 증명이 아니라, 우리 증명이잖아요."

이준영이 말했다.

"당신은 우리를 믿어줬을 뿐이고, 우리가 해낸 거예요. 그래서 당신도 살아야 해요."

"당신 없이는 못 해요. 미국에서도."

최민재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발. 다시 생각해 봐요. 제발."

두 선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대신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감사의 눈물이 아니라 거부의 눈물이었다. 자신들을 위해 죽으려는 사람을 앞에 두고 흘리는 눈물.

"약속해줄 거 있어?"

이준영이 물었다.

"뭐?"

"미국에서 잘하면, 당신도 살아있어야 한다는 거. 우리를 위해 당신이 죽으면 안 된다는 거. 약속해."

김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약속해요!"

최민재가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가 성공하는 건, 당신이 살아있어야 의미가 있어요."

"당신이 없으면, 우리 성공도 공허해."

이준영의 손이 김준호의 팔을 잡았다.

"약속해요. 제발."

밤 10시.

라이온스 사무실의 TV 앞. 이민준이 옆에 서 있었다.

화면에는 미국 야구 중계가 나오고 있었다. 브레이브스 대 다저스. 정규시즌 막바지 경기. 9회 초, 브레이브스의 유격수가 타석에 들어섰다.

173센티미터. 그 작은 체형은 경기장에서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크기를 초월했다. 무릎을 구부리고, 팔꿈치를 올리고, 시선을 고정하는 그 모습. 그것은 데이터로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의지.

타구가 나갔다. 좌중간 방향. 외야수가 움직였지만 손에 닿지 않았다. 안타.

관중들의 환호성이 울렸다. 그 소리는 태평양을 건너 서울로 흘러왔다.

김준호의 눈가에 뭔가가 맺혔다. 눈물이었다. 자신이 예측한 미래가 정확하게 현실화되는 순간. 데이터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의 증명. 하지만 동시에 깨닫는 것은, 자신이 예언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자신은 단지 촉매였을 뿐이었다. 그들이 역사를 만들고 있었다.

"대단하네요."

이민준이 말했다.

"당신의 다음 프로젝트는 뭔가요?"

김준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 회귀를 할 시간입니다."

"회귀?"

"네."

"그게 뭔가요?"

화면에서 이준영이 다시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집중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집중 너머에는 더 이상 김준호가 필요 없다는 것이 보였다.

"내가 놓친 모든 것을 다시 보는 것입니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심장이 또 불규칙하게 뛰었다. 두 박자, 한 박자 쉬고, 세 박자. 그 리듬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손가락의 경련도. 눈가의 떨림도.

그리고 그 불규칙한 리듬 속에서, 김준호는 알고 있었다.

1개월 후, 자신은 마지막을 감행해야 한다는 것을.

그 마지막 회귀에서, 자신이 놓친 모든 선수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해야 한다는 것을.

왜냐하면 데이터는 거짓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데이터 너머에는, 아직도 누군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벽 5시, 라이온스 훈련장 주차장.

김준호는 차 안에서 1차 회귀 수첩을 들고 있었다. 손이 떨렸지만, 글씨는 또렷했다. 이준욱의 이름 옆에는 '경주 고등학교'라고 적혀 있었다. 최준혁은 '부산 동부 지역'. 김태환은 '서울 강남'. 박수진은 '경주 인근'.

1개월. 27일.

그 시간 안에, 자신은 이 네 명을 찾아야 했다. 정해진이가 찾아주겠다고 했지만, 자신도 움직여야 했다. 데이터가 거짓말하지 않는다면, 이 네 명도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이었다.

김준호는 차의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는 경주였다. 첫 번째 미발굴 선수 이준욱을 찾기 위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하지만 손은 떨리지 않았다. 이제 할 일이 정해졌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회귀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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