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귀한 천재 스카우터
세 번째 선수를 찾지 못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김준호는 침대에서 깨어나자마자 그 생각부터 했다. 라이온스와의 협상 조건이 명확했다. 다음 주까지 세 번째 신인의 평가전을 본다. 그 자리에서 '이건 아니다'는 판단이 나오면, 그것으로 끝이다.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할 수 없다. 이민준 경영이사의 말이 얼마나 단호했는지 김준호는 안다.
왼쪽 무릎이 욱신거린다. 어제보다 심하다. 손가락도 떨린다. 왼손 검지와 중지가 자꾸 경련한다. 거울을 봤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정수리까지 번지고 있다.
회귀의 대가.
침대 옆 수첩을 집어 들었다. 벌써 너덜너덜해진 종이 위에는 다섯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1. 이준영 - 확보 완료 (유격수, 하체 폭발력) 2. 최민재 - 확보 완료 (투수, 회전력) 3. ? - 포수, 포지셔닝 능력 4. ? 5. ?
세 명. 이 조건이 깨지면 모든 것이 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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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스 사무실은 회의 중이었다. 이민준 경영이사가 탁자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미 충분하다. 이준영과 최민재. 두 명이면 첫 시즌 신인 투입으로 충분한 임팩트를 만들 수 있다. 나머지는 기존 선수단으로 채우고, 마이너 리그에서 천천히 육성하는 게 맞다."
이민준의 논리는 일관되고 냉정했다. 경영이사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었다. 비용 대비 효율. 리스크 분산. 현실적 계획.
김준호는 책상 앞에 서 있었다. 무릎이 욱신거렸다.
"세 명이 필요합니다."
"왜?"
이민준의 질문에 김준호는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25년 후의 통계를 말할 수는 없었다. 이준영과 최민재 둘만으로는 라이온스가 우승하지 못한다는 것을. 셋이 필요하다는 것을. 셋이 정확히 맞춰떨어져야만 모든 것이 작동한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두 명이면 우연일 수 있지만, 세 명이면 패턴입니다."
이민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불쾌함은 없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미친 스카우터'를 보는 시선이 담겨 있었다.
"김준호 스카우터, 자네는 경영 감각이 없군. 한 번의 성공이 두 번의 성공보다 임팩트가 크다. 시장은 '기적'을 원하지, '통계'를 원하지 않아. 이준영 하나의 성공 스토리가 전국 야구팬의 눈을 모으는 게 낫다. 세 명이 다 성공하면? 그건 '우연'이 아니라 '전략'이 되어 버려. 그러면 우리의 독점성이 사라진다. 경쟁사들이 따라 하기 시작한다."
이민준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것이 경영학의 논리였다. 하지만 김준호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 경영학이 아니라 도박이라는 것을. 그리고 도박의 결과는 패배라는 것을.
"세 명입니다."
김준호의 목소리가 낮고 단호했다. 하지만 그 단호함 뒤에는 절박함이 숨어 있었다.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절박함. 신체가 점점 무너지고 있다는 절박함. 남은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절박함.
이민준이 깊숨을 쉬었다.
"자네가 책임진다는 뜻이지?"
"네."
"그럼 다음 주까지. 세 번째 선수의 평가전을 본다. 그 자리에서 '이건 아니다'는 판단이 나오면, 나머지는 우리 시스템대로 간다. 자네는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것도 통계인가?"
협상은 끝났다. 김준호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박동이 제멋대로 흔들린다. 이것이 신호였다. 회귀가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
아직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 명을 확보해야 한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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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었다.
해안 도시의 습기 찬 공기가 김준호의 폐를 짓눌렀다. 항구 근처 야구장은 낡았다. 녹슨 스탠드, 고르지 않은 흙 그라운드. 여기서 박준호가 뛴다.
포수는 그라운드 왼쪽 베이스라인에서 송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포수의 체형이 아니었다. 어깨가 비정상적으로 좁고, 다리가 불균형했다. 마치 다른 종목 선수가 포수 글러브를 끼운 것 같았다. 기존의 스카우터라면 5초면 평가를 내렸을 것이다. '신체 조건 미달. 다음.'
하지만 김준호는 다르게 봤다.
포수가 2루로 송구를 날렸다. 1.8초. 정확도 100%. 포지셔닝 능력 지수 상위 5%.
신체 불균형은 독특한 중심축을 만들었다. 그 중심축이 오버슬로우 송구를 가능하게 했다. 재래식 포수들은 어깨 근력으로 던지지만, 박준호는 전신의 회전력으로 던진다. 그것이 정확성을 만든다.
경기가 끝났다. 김준호는 박준호를 찾아갔다.
포수는 글러브를 벗고 있었다. 땀에 절은 유니폼. 나이는 스물네 살 정도. 눈빛에 피로함과 체념이 있었다. 여러 팀에 낙오된 선수의 눈이었다.
"박준호?"
포수가 돌아봤다.
"네."
"난 라이온스 스카우터 김준호다."
포수의 표정이 움직이지 않았다. 또 다른 거절을 준비하는 눈이었다.
"당신의 신체 조건은 표준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 팀에서 떨어뜨렸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포지셔닝 능력은 상위 5%입니다. 송구 정확도는 상위 1%입니다. 이것이 통계입니다."
박준호의 눈이 흔들렸다. 누군가 자신을 숫자로 평가해준 것이 처음이었다. 처음이 긍정적이었다.
"라이온스에 와서 전성기를 만들어 보겠습니까?"
포수는 대답하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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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스 사무실로 돌아온 그날 저녁, 회의실이 떠들썩했다.
정해진이었다. SK 스카우팅 부장 정해진이 라이온스 경영진을 불러 모았다. 이민준, 박태수, 그리고 기존 스카우팅팀의 인원들. 총 여덟 명이 회의실에 모여 있었다.
"저 남자의 분석은 통계에 불과합니다."
정해진의 목소리가 차갑고 명확했다.
"통계는 과거입니다. 그런데 야구는 미래를 경쟁하는 스포츠입니다. 이준영이라는 선수를 봅시다. 신체 조건이 미달해서 떨어진 이유가 뭘까요? 미래에 대한 신뢰도가 낮으니까입니다. 신체가 작으면 부상 위험이 높고, 성장 가능성이 낮습니다. 이것은 통계가 아니라 경험입니다. 야구는 경험의 스포츠입니다."
박태수가 끼어들려 했지만, 정해진은 손을 들어 막았다.
"그리고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라이온스의 성공이 아니라 한국 야구 전체입니다. 만약 저런 비정상적 신체 조건의 선수들이 성공한다면, 기본기를 갖춘 정상적인 선수들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들은 절망합니다. 야구를 포기합니다. 한국 야구의 기초가 무너집니다."
이민준이 얼굴을 굳혔다. 정해진의 말이 경영적으로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래서 저는 제안합니다. 이번 시즌, 라이온스의 신인들을 주의 깊게 봅시다. 만약 그들이 실패하면, 김준호 스카우터의 분석 방식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한국 야구계가 단합해서 이런 실험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정해진이 일어섰다.
"라이온스가 우승하면 좋겠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야구의 본질을 지키지 못한 책임."
그는 나갔다.
회의실에 침묵이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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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었다.
김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준영이었다.
"스카우터님... 저 말이에요, 정해진 부장이 저를 떨어뜨리려고 한다고 했어요."
이준영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어디서 들었나요?"
"경기장에서... 다른 스카우터들이 말했어요. '이준영은 신체 미달이다. 라이온스가 망하면 넌 첫 번째 희생양이 될 거다'라고. 그리고... 강수민이 저를 노린다고 했어요. 강수민은 국가대표 유격수인데, 제가 자기 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한다고..."
김준호는 침묵했다. 이준영의 불안감이 전해져 왔다. 통계는 이런 불안감을 막을 수 없다. 숫자가 정신적 압박을 무너뜨릴 수 없다.
"스카우터님? 전... 정말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냥 야구를 포기해야 할까요?"
김준호는 한 번 숨을 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넌 할 수 있다."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통계가 아니라 내가 말한다. 넌 한다. 이준영, 넌 내가 본 모든 선수 중에 가장 강하다. 정해진이 뭐라 하든, 강수민이 뭐라 하든, 넌 자기 자리를 지킨다. 나는 알고 있다. 넌 한다."
전화 너머로 이준영의 호흡이 고르게 변했다.
"... 네. 감사합니다."
전화가 끊겼다.
김준호는 수화기를 내려놨다. 그리고 한 가지를 깨달았다. 자신이 통계로 말하던 사람이 정신력으로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데이터가 아니라 믿음으로 누군가를 구원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모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동시에 필요했다. 이준영에게는 수치보다 확신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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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후, 박준호의 평가전이 있었다.
라이온스 구장에는 이민준이 있었다. 박태수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구단의 스카우터들도 몇 명 와 있었다. 정해진이 보낸 감시자들이었다.
스탠드 뒤쪽에 앉은 그들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다. 팔짱을 낀 채로 경기를 지켜본다. 이따금 서로 귓속말을 나눈다. 박준호가 송구할 때마다 중얼거린다. '느린데?' '신체 조건이 문제네.' '이정도면 평범해.' 그들의 반응은 미리 정해져 있었다.
박준호는 포수로 나섰다.
첫 이닝, 투수가 와일드 피치를 던졌다. 포수가 몸으로 블로킹했다. 낮은 중심축이 공을 정확히 가슴팍에 받아냈다. 신체 불균형이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스탠드의 스카우터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섯 번째 이닝, 도루 시도가 들어왔다. 포수가 일어섰다. 1.8초. 타자의 몸이 살짝 움찔했다. 주자 아웃. 포수의 송구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한지 타자도 느낀 것이다.
스탠드의 한 스카우터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다른 스카우터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아직 확신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여덟 번째 이닝, 또 다른 도루 시도. 이번엔 1.7초. 더 빠르다. 주자는 베이스에 도달하지 못했다. 관중들이 탄성을 질렀다. 포수의 움직임이 기계처럼 정확했다.
아홉 번째 이닝, 마지막 도루 시도. 1.6초. 그라운드에 먼지가 피어올랐다. 주자의 손이 베이스에 닿기 전에 글러브가 공을 잡았다. 스탠드의 스카우터들이 침묵했다. 중얼거림이 멈췄다.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뭔가 예상과 다르다는 신호였다.
경기가 끝났다.
이민준이 일어섰다. 얼굴에는 분명한 인정이 있었다.
"좋다."
한 마디였다. 하지만 그 한 마디가 모든 것을 의미했다.
스탠드의 감시자들은 여전히 침묵했다. 그들의 표정은 흔들렸다. 확신이 없었다. 의심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민준의 한 마디 앞에서는 그들도 움직일 수 없었다. 경영이사의 판단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라이온스의 세 번째 신인이 확보되었다.
하지만 감시자들의 눈은 여전히 박준호를 따라다녔다. 불신의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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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김준호는 라이온스 사무실에 혼자 남았다.
책상 위에는 세 개의 파일이 놓여 있었다.
1. 이준영 - 유격수 2. 최민재 - 투수 3. 박준호 - 포수
세 명이다. 통계상 필요한 세 명.
하지만 그의 손이 떨렸다. 왼손 검지가 경련한다. 그리고 심장이 이상하다. 박동이 불규칙하다.
가슴이 철렁했다.
심장 박동이 극도로 불규칙해진다. 마치 심장이 리듬을 잃은 드럼처럼. 맥박이 분당 120을 넘는다. 숨이 가빠진다. 호흡이 얕아진다. 눈 앞이 흐릿해진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검어진다.
책상에 손을 짚었다.
"아니... 아직..."
하지만 신체는 거역할 수 없었다. 시간이 느려진다. 세상이 천천히 움직인다. 형광등의 깜박임이 프레임처럼 끊긴다.
소리가 역재생된다.
책상 위의 펜이 튕겨 올라간다.
조명이 깜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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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회색의 천장. 낡은 형광등. 라이온스 사무실의 천장이 아니다.
다른 곳이다.
김준호는 일어났다. 침대 위였다. 낡은 침대. 자신의 전셋방 침대. 2001년 2월의 침대.
2차 회귀가 발동됐다.
거울로 향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왼손이 심했다. 중지와 약지가 가만히 있지 못한다. 얼굴을 봤다.
흰머리가 훨씬 많다. 1차 회귀 때는 관자놀이와 정수리에 흰머리가 섞여 있었는데, 이제는 앞머리 전체가 하얀색이다. 얼굴의 주름도 깊어졌다. 눈가의 주름이 뚜렷하고, 입가에도 깊은 법령선이 생겼다. 이마의 주름은 더욱 두드러졌다. 피부는 건조해졌고, 광택이 사라졌다.
거울 속의 남자는 50대 초반이 아니라 60대 초반처럼 보인다. 시간이 빨리 흘렀다. 신체가 빨리 늙었다. 이것이 회귀의 진정한 대가다. 매 회귀마다 신체가 한 세대 더 늙는다. 1차 회귀 후 신체 나이가 5년 더해졌다면, 2차 회귀 후에는 또 5년이 더해질 것이다. 그러면 나는 70대처럼 보일 것이다.
침대 옆 수첩을 집어 들었다. 손이 떨려서 글을 쓰기 힘들 정도였다.
기억을 정리했다.
1차 회귀: 2000년 5월 ~ 2001년 1월 (약 8개월) 2차 회귀: 2001년 2월 ~ ? (약 4~5개월 예상)
시간폭이 줄었다. 1차 회귀에서는 8개월을 자유롭게 움직였는데, 2차 회귀에서는 거의 4~5개월만 가능할 것 같다. 회귀할 때마다 시간이 줄어든다.
그리고 기억이 흐릿하다.
1차 회귀에서 본 통계들이 10% 정도 희미해졌다. 정확한 수치가 기억나지 않는다. 이준영의 정확한 스프린트 속도? 기억나지 않는다. 최민재의 정확한 스핀 레이트? 대략 2400~2500 정도인 것 같은데, 정확한 수치가 없다. 그 불완전한 기억이 다음 행동에 제약을 만들 것이다. 정확한 수치 없이는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없다. 추측만 남는다.
회귀의 대가가 배로 늘었다.
남은 회귀 기회는 3번.
그리고 남은 신체 수명은... 김준호가 병원에서 들었던 의사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무릎 연골 손상으로 인해 신체 수명이 2~3년 단축되었다고.
1차 회귀 때는 신체 수명이 3년 반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2차 회귀 후에는 2년, 많아야 2년 반 정도 남아 있을 것이다.
3번의 회귀 기회. 2년의 신체 수명. 10% 부족한 기억.
이것으로 한국 야구를 바꿔야 한다.
손을 들었다. 손가락이 떨린다. 왼손뿐 아니라 오른손도 미세하게 경련한다.
거울 앞에서 한 장의 종이를 펼쳤다. 1차 회귀 때 적어뒀던 전략서였다. 하지만 기억이 10% 희미해졌으니, 이 종이는 더 이상 완전하지 않다.
"이번엔 뭘 놓칠까?"
자신도 모르게 나온 중얼거림이었다.
회귀할 때마다 뭔가를 놓친다. 1차 회귀에서는 뭐였을까. 아, 이준영이 처음 김준호에게 던진 질문. '당신은 왜 나를 봤어요?' 그 질문에 대해 김준호는 '숫자'로만 대답했다. 그 대답 뒤에 이준영의 눈에서 무언가가 흐릿해졌다. 더 깊은 설명을 원하는 무언가가.
그리고 강수민. 1차 회귀에서 강수민은 어디에 있었나. 전화 통화에서만 간접적으로 언급되었다. 그의 적대감이 얼마나 깊은지, 왜 그렇게 이준영을 노리는지, 그 감정의 근원이 뭔지 김준호는 직접 마주하지 않았다.
이번 회귀에서는 뭘 놓칠 것인가.
남은 것은 불완전한 통계와 3번의 회귀 기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