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크리스탈 궁전의 의료실은 밤 열한 시가 되자 인적이 끊겼다. 카일라는 거울 앞에서 손가락을 펴고 오므렸다. 떨렸다. 어제보다 더 심하게.

코피는 지난 시간 동안 세 번 났다. 손가락 끝이 보라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신경 독성. 의사가 말한 단어였다. 카일라는 웃음을 흘렸다. 자신을 죽이려던 자들을 파멸시킬수록 자신의 몸이 먼저 망가진다니. 얼마나 우아한 아이러니인가.

책상 위의 거울 옆에 놓인 진정제 병이 눈에 들어왔다. 루시앙이 주었던 것. 복용량은 명시되지 않았다. 초과 복용하면 영구적 수면에 빠진다고 했다. 의미 있는 죽음이라고 카일라는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의 손으로 끝낼 수 있다는 점에서.

문이 노크되었다.

"들어와."

로렌스 의사였다. 나이 든 얼굴이 창백했다. 손에는 오래된 의료 기록이 들려 있었다. 무도회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의 죽음을 많이 본 사람의 눈빛이었다.

"카일라 님."

의사는 앞에 앉지 않고 문가에 섰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당신의 진단은 거짓입니다."

카일라의 손가락이 멈췄다.

"심장 중독이라고 했을 때,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거짓말을 강요받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기록을 내려놓았다. 손이 떨렸다. 카일라의 손처럼.

"당신의 심장 손상은 외부 요인에 의한 중독이 아닙니다. 당신의 초감각 능력을 억제하기 위해 투여된 약물의 부작용입니다."

침묵.

카일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그 얼굴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처럼.

"삼 년 전, 당신의 형과 루시앙 님, 그리고 드미트리 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당신의 능력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그것이 당신 자신을 파괴할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당신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 능력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의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약물은 천천히 당신의 초감각을 둔화시켰습니다. 동시에 당신의 심장에 부담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말했습니다. 이것이 당신을 살리는 길이라고. 당신이 능력을 계속 사용한다면, 일 년 안에 죽을 것이라고."

카일라의 손가락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당신은 자신을 죽이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당신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비틀린 방식으로."

의사가 눈을 들었다. 눈가가 젖어 있었다.

"나는 당신을 속였습니다. 그 죄책감으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약한 사람입니다. 그들의 위협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형은?"

카일라의 목소리가 나왔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낯설게.

"칼렐 님은 당신이 복수를 시작했을 때, 당신의 능력 사용이 가속화되는 것을 보고 절망했습니다. 당신이 능력을 쓸수록 당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그는 비밀을 알려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듣지 않았고, 결국..."

의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자살했다고 루시앙이 말했다."

"그것도 거짓입니다. 칼렐 님은 당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담보로 잡혔습니다. 당신이 계속 능력을 사용한다면, 그들은 칼렐 님을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진정제를 마셨습니다. 당신이 그를 찾지 못하도록."

카일라는 거울에서 눈을 돌렸다. 의사를 바라봤다.

"왜 지금 이것을 말하는가?"

"당신이 더 이상 능력을 사용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한 발 다가섰다.

"신문사 편집장에게 에스테반의 죄를 고백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은 자신을 파멸시키고 있습니다. 능력을 쓸 때마다 당신의 신경은 죽어갑니다. 이미 손가락과 발가락이 마비되고 있습니다. 다음은 척수입니다. 그 다음은 뇌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한 모든 것이..."

카일라가 중얼거렸다.

"구원이었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당신을 죽이려 한 사람들은 모두 당신을 살리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요. 당신이 그들을 파멸시킬수록, 당신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을 죽이고 있습니다."

카일라의 손이 멈췄다.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의 얼굴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낯선 사람의 얼굴이었다. 피가 흘러 코 아래 고여 있었다.

"나는 당신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의사가 다시 말했다.

"비록 실패했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것을 원했습니다."

카일라는 입을 열었다. 닫았다. 다시 열었다.

"거짓이야."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은 협박받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신도 그들의 일부야. 당신도 나를 죽이려던 사람이야."

"그렇습니다."

의사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나는 악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당신의 능력은 당신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인간성을 빼앗습니다. 당신이 타인의 비밀을 많이 알수록, 당신은 누군가가 아닌 무언가가 되어갑니다."

의사의 손이 카일라의 손을 잡으려 했다. 카일라는 손을 빼내고 일어섰다.

"나가."

"카일라 님—"

"나가!"

의사는 문을 열고 나갔다. 발걸음이 빨랐다. 마치 자신의 양심에서 도망치듯이.

카일라는 거울 앞에 다시 섰다. 손가락을 펴고 오므렸다. 떨렸다. 더 심하게.

손가락 끝이 검어지고 있었다. 신경 조직이 죽어가고 있었다. 의사가 말한 대로라면,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척수. 뇌. 모든 것이 조각조각 죽어갈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죽음이 자신의 손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카일라는 책상 위의 진정제 병을 들었다. 무겁지 않았다. 가벼웠다. 마치 죽음 자체가 가벼운 것처럼.

라벨에는 '초과 복용 금지'라고 쓰여 있었다. 루시앙의 글씨였다. 그 글씨도 거짓이었을까? 아니면 진심이었을까?

카일라는 병을 다시 내려놓았다.

"내가 누구를 죽이고 있는 건가."

중얼거렸다.

"내가 누구를 죽이고 있는 건가?"

거울 속의 얼굴이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자신의 웃음이 아니었다.

——

밤 한 시. 신문사 인쇄실의 불이 켜졌다.

편집장은 에스테반 주교의 학대 기록 편지를 들고 있었다. 내일 아침 신문의 톱기사가 될 것이었다. 사교계의 모든 것을 뒤흔들 기사.

편집장은 인쇄기 버튼을 누르려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잠깐."

카일라였다. 거울에서 본 자신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인 것처럼. 손가락이 떨렸다. 코에서 피가 흘렀다. 하지만 눈은 맑았다.

"이것을 인쇄하면 안 된다."

"카일라 님?"

편집장이 놀라 물었다.

"이 편지를 가져가십시오."

카일라가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왜 갑자기—"

"이것은 나의 복수가 아닙니다. 이것은 살인입니다."

카일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내가 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나를 살리려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편집장은 말 없이 편지를 카일라에게 건넸다.

카일라는 편지를 들었다. 손가락이 더 심하게 떨렸다. 하지만 편지는 떨어지지 않았다.

"하루만 주십시오."

카일라가 말했다.

"내가 확실하게 죽음을 선택하기 전에, 하루만."

편집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라는 돌아섰다. 계단을 올랐다. 옥상으로.

크리스탈 궁전의 옥상에서 도시가 보였다. 밤의 도시는 검었다. 희망도 절망도 없는, 단지 검은 색깔만 있었다.

카일라는 주머니에서 진정제 병을 꺼냈다. 달빛 아래서 그것은 투명하게 빛났다.

손가락이 떨렸다. 병의 뚜껑을 열 수 없을 정도로.

"내가 누구를 죽이고 있는 건가."

다시 중얼거렸다.

"내가 누구를 죽이고 있는 건가?"

손가락이 떨렸고, 병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아래로 떨어지는 병을 바라보며, 카일라는 깨달았다.

자신의 손이 더 이상 파멸의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손이 구원의 도구도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손이 단지 떨리는 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떨림 속에 무언가 약한 것이, 인간다운 것이 있다는 것을.

——

아침이 오고 있었다. 동쪽 하늘이 회색에서 보라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신문사의 인쇄실은 여전히 조용했다. 에스테반 주교의 학대 기록 편지는 인쇄되지 않았다. 내일도, 모레도 인쇄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신문사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인쇄하고 있었다.

드미트리의 반역 음모. 에스테반의 학대 기록. 루시앙의 비밀 조직.

모든 것이 동시에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 되돌릴 수 없는 일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카일라의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직 변했을 뿐이었다.

# 의사의 진실

밤 세 시. 크리스탈 궁전의 의료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로렌스 의사는 손가락으로 문을 두드렸다. 세 번. 짧고 재촉하는 리듬이었다. 그 리듬 속에는 결정이 있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정.

문이 열렸다. 카일라였다. 거울 앞에서 중얼거리던 자신과는 다른 표정이었다. 거울 속의 웃음이 이제는 없었다.

"의사님. 이 시간에?"

카일라가 물었다. 평온한 목소리였지만, 로렌스는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봤다. 손가락 끝이 규칙적으로 떨렸다. 그것은 신경 독성의 신호였다.

로렌스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뒤를 닫았다.

"당신에게 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오십 년을 의료 현장에서 보낸 노의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카일라는 의자에 앉았다. 로렌스도 앉았다.

"당신의 심장이 중독으로 망가진 것이 아닙니다."

"뭐라고?"

카일라의 눈이 좁혀졌다.

"당신의 심장은... 당신의 능력을 억제하기 위한 약물의 부작용입니다."

침묵이 흘렀다. 길었다. 로렌스는 그 침묵 속에서 카일라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봤다. 단계적으로. 차근차근히.

"그 약물은 누가?"

"비밀 조직입니다.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왜 했는지입니다."

로렌스가 손을 펼쳤다. 손이 떨렸다. 카일라의 손처럼.

"당신의 능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감지하는 비밀들이 많아질수록, 당신의 신체가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능력이 결국 세상을 파괴할 것이라고. 그래서..."

"그래서 뭐?"

카일라의 목소리가 칼이 되었다.

"그래서 억제제를 투여했습니다. 당신의 능력을 천천히, 안전하게 억제하기 위해. 하지만..."

로렌스가 눈을 들었다.

"당신은 그것을 중독으로 해석했고, 복수를 시작했습니다."

카일라가 일어섰다. 천천히. 매우 천천히. 마치 자신의 몸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누구입니까?"

"루시앙, 칼렐, 드미트리."

"드미트리?"

카일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비명이었다.

"드미트리가 나를 지키려고 했다고?"

"그는 가장 먼저 깨달았습니다. 당신의 능력이 자신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협력했습니다. 당신을 억제하기 위해. 당신을 살리기 위해."

"거짓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로렌스가 일어섰다. 나이든 몸이 의자에서 떨어지며 신음을 냈다.

"저는 협박받았습니다. 당신에게 진실을 말하면 안 된다고. 당신이 그 진실을 알면 더 많은 능력을 사용할 것이고, 그러면 당신이 더 빨리 죽을 것이라고. 그래서 저는 침묵했습니다. 죄책감 속에서."

로렌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나는 견디지 못했습니다. 당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거짓 안에서. 그래서 왔습니다. 이 시간에. 이 장소에. 당신에게 진실을 말하기 위해."

카일라는 창 밖을 바라봤다. 아직 밤이었다. 도시는 여전히 검었다.

"당신이 왜 이러는지 압니다."

카일라가 말했다.

"연민입니다. 늙은 의사의 연민. 죽어가는 악녀에 대한 동정. 그것이 당신을 여기로 이끌었습니다."

"아닙니다."

로렌스가 말했다.

"나는 당신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손이 더 이상 살인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당신이 죽을 때, 당신이 무고한 사람의 피를 안고 죽지 않도록."

카일라가 돌아섰다. 로렌스를 바라봤다.

"무고한 사람들?"

"당신이 죽인 사람들입니다. 드미트리, 에스테반, 루시앙. 그들은 모두 당신을 지키려던 사람들입니다."

"거짓입니다."

"진실입니다."

로렌스가 한 걸음 나아갔다.

"나는 당신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렇습니다."

카일라의 손이 떨렸다. 더 심하게. 로렌스의 눈물과 떨리는 목소리 속에서, 뭔가가 흔들렸다. 그것이 무엇인지 카일라는 알 수 없었다.

연민인가?

거짓인가?

아니면 구원인가?

"나가십시오."

카일라가 말했다.

"이 방에서 나가십시오."

로렌스는 돌아섰다. 문으로 향했다.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당신의 형, 칼렐. 그는 당신을 지키기 위해 진정제를 마셨습니다."

"나가십시오!"

카일라가 소리쳤다.

로렌스는 나갔다. 문이 닫혔다.

카일라는 남겨졌다. 혼자. 그리고 처음으로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

밤 네 시. 카일라는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얼굴을 봤다.

코에서 피가 흘렀다. 더 많이. 이전보다 훨씬 더. 손가락이 떨렸다.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들었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누구를 죽이고 있는 건가."

중얼거렸다.

"내가 누구를 죽이고 있는 건가?"

거울 속의 얼굴이 대답하지 않았다. 거울 속의 얼굴은 처음으로 공포를 드러냈다.

——

밤 다섯 시. 신문사 인쇄실의 불이 켜졌다.

편집장은 카일라에게서 받은 에스테반 주교의 학대 기록 편지를 들고 있었다. 손에서는 떨림이 없었다. 결정이 있었다.

내일 아침, 이것을 인쇄할 것이다. 사교계의 모든 것을 뒤흔들 기사로.

편집장은 인쇄기 버튼을 누르려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잠깐."

카일라였다. 손가락은 마비되어 있었다. 코에서는 피가 흘렀다. 눈은 미쳐 있었다.

"이것을 인쇄하면 안 된다."

"카일라 님?"

편집장이 놀라 물었다.

"이 편지를..."

카일라가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비된 손으로 편지를 집으려고 했다.

"왜 갑자기—"

"내가 죽이고 있었습니다."

카일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뭐라고?"

"이 편지를 가져가십시오."

카일라가 편지를 빼앗았다.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아 편지가 떨어질 뻔했지만, 그녀는 강제로 집어들었다.

"이것은 복수가 아닙니다. 이것은 살인입니다."

"카일라 님, 진정하세요—"

"내일 아침 신문에 이것을 싣지 마십시오."

카일라가 말했다.

"내가 확실하게 죽음을 선택하기 전에, 내가 누구를 죽였는지 정확히 알기 전에. 제발."

편집장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일라는 돌아섰다. 계단을 올랐다. 옥상으로.

——

크리스탈 궁전의 옥상에서 도시가 보였다. 밤의 도시는 여전히 검었다. 하지만 동쪽 하늘의 끝이 회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카일라는 주머니에서 진정제 병을 꺼냈다. 루시앙의 글씨로 '초과 복용 금지'라고 쓰여 있는 병.

손가락이 마비되어 있었다. 병의 뚜껑을 열 수 없었다.

"내가 누구를 죽이고 있는 건가."

중얼거렸다.

"내가 누구를 죽이고 있는 건가?"

손가락이 떨렸다. 마비된 손이 떨렸다. 그것은 모순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일어나고 있었다.

병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아래로 떨어지는 병을 바라보며, 카일라는 깨달았다.

자신의 손이 이제 파멸의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손이 이미 구원의 도구도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손이 단지 떨리는 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떨림 속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무언가 약한 것이. 무언가 인간다운 것이.

——

아침이 오고 있었다. 동쪽 하늘이 회색에서 보라색으로, 보라색에서 분홍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신문사 인쇄실은 여전히 조용했다. 에스테반 주교의 학대 기록 편지는 인쇄되지 않았다. 내일도, 모레도 인쇄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신문사들에서는 다른 기사들을 인쇄하고 있었다.

드미트리의 반역 음모. 에스테반의 학대 기록. 루시앙의 비밀 조직 활동.

모든 것이 동시에 드러나고 있었다.

카일라는 옥상에 여전히 서 있었다. 손가락이 마비된 손으로 난간을 잡고 있었다.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도시 속에서 사교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너지는 이유가 이제 명확했다.

복수가 아니었다.

구원의 역설이었다.

자신을 죽이려던 사람들이 실은 자신을 살리려던 사람들이었고, 자신을 살리려던 사람들의 계획이 실제로는 자신을 죽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뒤집혀 있었다.

그리고 카일라는 이제 알았다.

진실이 드러날수록, 자신이 더 죽어간다는 것을.

하지만 동시에.

거짓 속에서 죽는 것보다, 진실 속에서 죽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았다.

옥상의 바람이 불었다. 카일라의 검은 드레스가 휘날렸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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