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신격화의 함정

신용도 610.

휴대폰 화면의 숫자가 깜빡였다. 이준호는 거리의 편의점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몸을 웅크렸다. 밖에서 검은 정장 두 명이 지나갔다. 길드연합 추격대다. 어제 하수도에서 박서연을 떠난 뒤 14시간. 그 사이 신용도는 700에서 610으로 내려갔다. 역수수료를 쓰지 않았는데도.

시스템이 자동으로 깎아내리고 있었다.

이준호는 화면을 껐다. 손가락 끝이 떨렸다. 밖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추격대는 계속 돌아다닐 것이다. 트레이드 코어의 위치 추적 신호는 꺼낼 수 없다. 신용도가 0에 가까워질수록 신호는 더 강해진다. 이것이 '거래 추방 프로토콜'의 메커니즘이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살아 있는가.

이준호는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편의점 점원은 그를 보고도 고개를 돌렸다. 신용도 610 거래자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거리로 나온 이준호는 서쪽으로 향했다. 강민준이 지시한 대로 '아메'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후 3시. 아직 40분이 남았다.

골목을 돌아 조용한 주택가에 들어섰다.

"이준호?"

목소리가 들렸다. 여성의 목소리. 이준호는 고개를 들었다.

장발의 여자가 서 있었다. 파란 캐디건, 검은 바지. 얼굴에는 무언가 간절한 것이 가득했다. 이준호는 그녀를 본 적이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 유정희라는 이름을 들었던 그림자 거래소의 거래자였다.

"당신이... 이준호님?"

유정희는 천천히 다가왔다. 손이 떨렸다.

"저는 유정희예요. 당신이 저를... 저를 살려주셨어요."

이준호는 한 발 물러섰다. "우리 여기서 만나면 안 돼. 추격대가—"

"저는 상관없어요. 저는 당신만 보고 싶었어요."

유정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가가 축축했다. 이준호는 어색함을 느꼈다. 이 여자는 누구인가. 거래소에서 본 적 없는 사람인데 왜 자신을 찾아왔는가.

"이전에 저는 신용도 480이었어요. 거래 추방 단계였어요. 남편이 투자 사기에 걸려서 우리 신용도가 함께 떨어졌거든요. 자살까지 생각했어요. 아이들 학비도 못 내고..."

유정희는 계속 말했다. 이준호는 그녀의 표정을 마주칠 수 없었다.

"근데 어제 거래소에서 당신을 만났어요. 당신이 저와 남편의 거래를 중개해주셨어요. 수수료를 없애주셨어요."

"그건 그냥..."

"당신은 신입니다."

유정희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당신은 우리의 신입니다."

아스팔트에 닿은 무릎. 유정희의 얼굴은 숭배로 가득했다.

이준호의 호흡이 멈췄다.

그 다음, 서서히 변했다. 입가가 올라갔다. 눈이 반짝였다. 손가락이 움켜졌다 펴졌다를 반복했다.

'옳은 일이다. 내가 하는 일은 옳다.'

그 생각이 가슴을 채웠다. 유정희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준호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유정희가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고마워요. 정말로."

"당신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어요. 남편이 다시 일할 수 있어요. 당신 때문에 우리 가족이 살았어요."

유정희는 계속 말했다. 이준호는 듣고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수수료 때문에 무너져가던 그 얼굴. 그리고 지금 유정희의 눈빛. 구원받은 것처럼 반짝이는 그 눈.

"당신은 우리를 절대 버릴 수 없어요."

유정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마치 약속처럼. 마치 저주처럼.

이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 말 속에 담긴 무게를 감지했다. 하지만 동시에 뭔가 다른 감정이 밀려올랐다. 자신이 신이 된 것 같은 희열. 타인의 절망을 먹이로 삼으면서 느끼는 그 희열.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희열.

그 희열 속에서 이준호는 자신의 이상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으면서도, 그 희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강민준의 손이 이준호의 팔을 파고들었다.

"거기서 나와."

강민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날카로웠다. 유정희는 놀라 물러섰다. 강민준은 이준호를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끌어당겼다.

"저 여자는 너를 신격화하고 있어."

강민준의 얼굴은 진지했다. 턱을 물고 있었고, 눈빛이 차갑게 굳어 있었다. 12년 전 신용도 조작으로 버려진 남자의 눈이었다.

"그건 신뢰가 아니야. 그건 사슬이야. 너를 묶는 사슬이야."

이준호는 고개를 돌렸다. 골목의 끝을 보았다. 저 멀리 검은 정장 두 명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추격대였다. 하지만 유정희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무릎을 꿇은 그 모습. 그 눈빛. 그 목소리.

'당신은 우리를 절대 버리지 않을 거죠?'

그 말을 들을 때, 이준호의 가슴 속에서 뭔가가 부풀어 올랐다. 처음에는 불편했다. 과도한 신뢰. 거짓된 추앙. 그런 것들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점점 그것이 위로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정말로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 자신이 누군가를 구원하고 있다는 증명.

그리고 그 증명이 필요했다. 아버지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을 씻어낼 증명이. 자신의 존재가 의미 있다는 증명이.

강민준이 이준호의 휴대폰을 빼앗아 들었다.

신용도 612.

강민준의 얼굴이 더 굳어졌다.

"8600에서 612야. 이게 뭐라고 생각해?"

"..."

"넌 저 여자와 만나는 동안 신용도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아?"

강민준이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화면이 깨졌다. 이준호는 그것을 보면서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지만, 여전히 말하지 않았다.

"저 여자는 너를 신이라고 생각해. 그럼 넌 뭐가 돼? 신은 버릴 수 없어. 신은 절대 실수할 수 없어. 신은—"

강민준이 말을 멈췄다. 뒤에서 무전기 음성이 들렸다.

"목표물 확인. 좌표 47-북, 82-동. 추격 개시."

강민준이 이준호의 손목을 잡았다.

"가."

그들은 골목을 빠져나갔다. 좁은 거리를 뛰었다. 뒤에서 발소리가 따라왔다. 여러 명이었다. 추격대의 규모가 커지고 있었다.

이준호는 뛰면서 유정희를 생각했다. 그 여자의 표정. 무릎을 꿇었을 때의 그 진지함. 그것이 신격화인지, 아니면 진정한 신뢰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자신이 그 여자를 실망시킬 수 없다는 것.

강민준과 이준호는 강변에 도착했다. 작은 보트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엔진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누군가 이미 준비해놨다는 뜻이었다.

"타."

이준호가 보트에 올랐다. 강민준이 뒤따랐다. 뒤에서 추격대의 발소리가 들렸다. 강민준은 스로틀을 밀었다. 엔진음이 울렸다. 보트가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준호는 뒤를 봤다. 강변에 추격대가 서 있었다. 다섯 명. 아니, 여섯 명. 그들은 더 이상 따라올 수 없었다. 강 위에서는 그들의 기술이 제한된다.

하지만 휴대폰이 울렸다.

신용도 575.

숫자가 한 번에 35를 떨어졌다. 마치 누군가가 자동으로 깎아내리고 있는 것처럼. 트레이드 코어 자체가 이준호를 추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시스템의 자동 방어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었다.

"시스템이 움직이고 있어."

강민준이 말했다.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어. 넌 뭘 할 거야?"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에 들린 휴대폰을 봤다. 신용도 575. 그 숫자가 0이 되기까지 남은 시간. 남은 거래. 남은 기회.

강민준이 이준호의 어깨를 돌려 자신을 마주보게 했다.

"계속할 거야, 아니면 항복할 거야?"

이준호는 강민준의 눈을 봤다. 12년 전 신용도 조작으로 모든 것을 잃은 남자의 눈. 그 눈은 절박했다. 절망했다. 그리고 이준호를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준호의 머릿속에는 유정희의 얼굴만 맴돌았다. 무릎을 꿇은 그 여자. 그 눈빛. 그 말.

'당신은 우리를 절대 버리지 않을 거죠?'

그것이 사슬이라는 것을 이준호는 알고 있었다. 강민준의 말이 맞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니,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사슬이 자신을 신으로 만들어주고 있었으니까.

이준호는 눈을 감았다. 뱃머리가 흔들렸다. 손가락이 떨렸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천천히 내쉬었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가 정해졌다. 돌아갈 수 없는 선이 그어졌다.

"계속할 거야."

이준호가 말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아래로는 절망이 흐르고 있었다.

"유정희 때문에?"

강민준이 물었다.

"아니야."

이준호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부정은 거짓이었다. 자신의 신념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거짓이었다. 자신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계속하는 이유는... 난 돌아갈 수 없어."

이준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보트가 물을 가르며 나아갔다. 강변의 불빛이 점점 멀어졌다.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왔어.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신이라고 생각해. 내가 멈추면 그들이 모두 무너져."

"그럼 넌 영원히 신이어야 한다는 거네."

강민준의 목소리는 차갑게 떨어졌다.

이준호는 대답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휴대폰 화면에 빨간 경고문이 떠올랐다.

【 거래 인터페이스 오류 발생 】 【 신용도 급락 감지 】 【 연쇄 거래 실패 - 사용자 ID: LV-447, LV-892, LV-1205 】

"뭐야, 이게?"

강민준이 이준호의 휴대폰을 빼앗아 봤다. 화면에는 계속해서 오류 메시지가 쌓여갔다.

【 시스템 자동 방어 프로토콜 활성화 】 【 트레이드 코어 신용도 네트워크 격리 중 】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어."

강민준이 중얼거렸다.

"이건... 단순한 추격이 아니야."

보트의 뒤쪽에서 빛이 나타났다. 강변 위의 추격대가 아니었다. 더 큰 규모의 배들이었다. 길드연합의 대형 순찰선들이었다. 여러 척이 동시에 강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더 많은 것들이 있었다. 드론들. 신호 추적 장비들. 이제 이것은 단순한 도주가 아니었다.

"길드연합이 전력을 다 동원했어."

강민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넌 이제 단순한 신용도 조작 대상이 아니야. 넌 시스템 자체의 위협이 된 거야."

이준호는 뒤를 봤다. 강 위에 점점이 떠오르는 불빛들. 그것들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 들린 휴대폰에서는 계속 경고음이 울렸다.

신용도 560.

"그래. 그럴 수밖에 없어."

이준호가 마침내 대답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속에는 어떤 결연함이 있었다. 동시에 그것은 절망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난 영원히 신이어야 한다."

강민준은 말하지 않았다. 대신 스로틀을 더 밀었다. 보트의 속도가 올라갔다. 하지만 뒤의 순찰선들도 빨라졌다.

"당신을 믿어요. 당신은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을 거죠?"

유정희의 말이 이준호의 귀에 계속 맴돌았다. 그것은 신앙이었을까, 아니면 저주였을까. 이제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준호는 이미 선택했으니까.

강 위의 보트는 어둠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뒤에는 길드연합의 순찰선들이 계속 따라왔다. 그리고 도시의 거리 어딘가에서 유정희는 여전히 이준호가 떠난 곳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떨렸다.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 없는 기도였다.

"당신을 믿어요. 당신은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을 거죠?"

그 말은 신앙이었을까, 아니면 저주였을까. 이제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휴대폰의 화면이 또 깜빡였다.

신용도 560.

다음 화 계속 보기 →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