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거래소의 대기실이 언제부터 이렇게 가득했는지 이준호는 알 수 없었다. 어제는 분명 한 줄이었는데, 오늘은 수십 명이 대기 번호표를 들고 앉아 있었다. 누군가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고, 누군가는 휴대폰 화면을 켜 뭔가를 찾고 있었다.
"다음."
이준호의 목소리가 나가자 가장 앞에 앉아 있던 여성이 벌떡 일어났다. 트레이드 코어의 거래 인터페이스가 양쪽 화면에 떴다. 아이템 거래였다. 그녀의 신용도는 387. 거래액 200만 골드, 수수료 책정액 40만 골드.
"수수료 없이 진행해 주실 수 있나요?"
이준호는 거래 수락을 눌렀다. 손가락이 화면에 닿는 순간, 내부 코드가 뒤틀렸다. 수수료 방향이 반전된다. 역방향. 거래가 성립했고, 화면에 녹색 알림이 떴다.
【거래 완료】 【상대방이 수수료 40만 골드를 반환받았습니다】
여성의 눈이 동그래졌다. 휴대폰을 내려다보던 그녀의 손이 떨렸다.
"이... 이게 정말...?"
"네. 수수료 전액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절을 했다. 거래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이준호는 어색했지만 고개를 숙였다.
다음은 청년이었다. 신용도 521, 거래액 850만 골드, 수수료 255만 골드. 이준호는 역수수료를 발동했다. 청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진짜... 거래의 신이 맞네."
누군가가 중얼거린 말이 들렸다. 거래의 신. 그 단어가 대기실에 퍼졌다.
시간이 흘렀다. 정확히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준호의 목은 말이 많아져서 따가워졌고, 손가락은 거래 버튼을 누르다가 지쳤다. 인터페이스는 계속 떴다. 거래 요청은 끊이지 않았다. 신용도는 계속 깎여나갔다. 어제 8600에서 이제 7800이 되었다. 하지만 이준호는 멈출 수 없었다. 대기실 사람들의 눈을 마주칠 때마다, 그들의 얼굴이 밝아질 때마다, 그는 계속했다.
오후 5시쯤, 한 중년 남성이 앞에 앉았다. 신용도 234. 거래액 1200만 골드, 수수료 360만 골드. 이것은 큰 거래였다.
"빌려줄 돈이 있으신가요?" 이준호가 물었다.
"네. 아들 학비입니다. 신용도가 떨어져서...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았어요."
"그럼 역수수료로 진행하겠습니다."
거래가 성립되자 남성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처음에는 한 줄이었다. 그 다음에는 여러 줄이었다. 남성은 얼굴을 묻었다.
"당신 덕분에 빚을 갚을 수 있어요. 당신 덕분에..."
이준호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알았다.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버지가 수수료로 잃은 것을 되찾아주는 일이었다. 매번 한 명씩, 한 명씩. 이것이 자신의 사명이었다.
거래소의 대기실은 그 남성의 울음소리로 조용해졌다. 누군가 손수건을 건넸다. 누군가는 그 남성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모두가 이준호를 바라봤다.
"당신은... 정말."
"거래의 신이다."
말이 퍼졌다. 그림자 거래소의 벽을 넘어 어딘가로 퍼져 나갔다.
저녁 7시, 대기실이 다시 가득 찼다. 이번엔 더 많았다. 거래소의 관리자들은 의자를 더 들고 왔다. 대기 시간은 2시간을 넘어섰다. 하지만 아무도 떠나지 않았다.
이준호는 계속했다. 한 명, 또 한 명. 신용도는 계속 내려갔다. 하지만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거래 버튼을 누를 때마다 누군가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음!"
이준호가 외쳤을 때, 50명이 동시에 일어났다. 강민준이 준 특수 거래 체계였다. 동시 다중 거래. 50개의 인터페이스가 동시에 떴다.
이준호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한 번에 50개의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었다. 동시에 50개의 역수수료를 발동하는 것이었다. 코드가 뒤틀렸다. 50개의 수수료가 동시에 반전했다.
화면이 녹색으로 폭발했다.
【거래 완료】 【거래 완료】 【거래 완료】
알림이 폭주했다. 환호가 나왔다. 누군가 손을 들었다. 그 다음 누군가가 일어났다. 그리고 모두가 일어섰다.
"거래의 신!" "거래의 신이다!"
이준호는 그들의 손에 떠받쳐졌다. 거래소의 천장이 흔들렸다. 환호는 계속되었다. 신용도는 5300으로 떨어졌지만, 이준호는 미소 지었다. 이것이 자신의 능력이었다. 이것이 자신의 사명이었다.
그 순간, 손이 그의 팔을 잡았다.
강민준이었다. 보스의 얼굴은 진지했다. 그는 이준호를 군중 속에서 끌어냈다. 거래소의 뒤쪽 복도로.
"뭐가 문제예요?"
"문제가 있어. 너한테."
강민준의 손은 이준호의 팔을 놓지 않았다. 그들은 강민준의 사무실에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그 안은 조용했다. 모니터들이 켜져 있었다. 화면에는 거래 데이터, 신용도 그래프, 그리고 추적 신호들이 떠 있었다.
"너 봤어? 이 숫자."
강민준이 한 모니터를 가리켰다. 신용도 추락 그래프였다. 어제 8600에서 오늘 5300으로. 하루 만에 3300이 깎여나갔다.
"역수수료 1회당 신용도 -66. 50명 동시 거래는 -3300이야. 이 속도면 한 달이 안 돼서 신용도가 0이 돼."
강민준이 모니터를 끄고 돌아섰다. 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책상을 두드리는 손가락의 리듬이 빨라졌다. 톡, 톡, 톡.
"너는 길드연합이 뭔지 알아?"
"길드연합은 시스템 자체를 지배하는 집단이야. 거래 흐름을 조종하고, 신용도를 조작하고, 거래자들을 통제한다."
강민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사무실의 조명이 어두워 보였다.
"나도 한때 그들을 거역했어."
그의 눈이 이준호를 바라봤다. 깊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신용도를 조작해서 거래를 더 쌌게 해주고, 지시를 받지 않고 움직였지. 그 결과가 뭐냐면..."
강민준이 일어섰다. 이준호 앞에 섰다.
"신용도 0. 거래 추방. 나는 이제 시스템에서 거래할 수 없다. 완전히 죽은 것과 같아."
그의 손이 책상을 내려쳤다. 탁.
"길드연합은 저항하는 자들을 이렇게 만든다. 그리고 넌 지금 그들을 건드리고 있어. 50명 동시 거래? 역수수료? 넌 시스템 자체에 도전하는 거야."
강민준의 눈이 이준호와 마주쳤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너는 이미 너를 추적하고 있는 거 알지?"
이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률 61.2%.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부터는 정말 시작이야. 길드연합은 이미 너를 추격하고 있어."
강민준의 손이 이준호의 팔을 잡았다. 팔뚝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도 괜찮아?"
이준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순간, 거래소의 전등이 깜빡였다. 한 번. 그리고 다시. 두 번.
강민준의 얼굴이 굳었다.
"전등이?"
"신호야. 길드연합 추격자들이 근처에 있다는 신호야."
거래소의 전등이 다시 깜빡였다. 그 빛이 강민준의 얼굴을 비추고, 이준호의 얼굴을 비추고, 다시 사무실 전체를 어둡게 만들었다.
"숨어."
강민준이 중얼거렸다.
"지금 당장."
강민준이 이준호의 팔을 놓았다. 그의 손이 책상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여러 개의 신용도 카드가 들어 있었다. 모두 다른 이름으로 등록된 것들이었다.
"이거 써. 지금부터 넌 '박준영'이야."
카드를 집어 들다가 강민준이 멈췄다. 모니터의 알림음이 울렸다. 추적 신호가 거래소로부터 500미터 거리까지 접근했다는 표시였다.
"늦었어. 거기서 나가."
강민준이 사무실 뒤쪽 문을 가리켰다. 이준호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발이 바닥에 붙어 있었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거래의 신'이었다. 사람들의 손에 떠받쳐지고 있었다. 환호가 자신을 감싸고 있었다.
"가!"
강민준이 이준호의 등을 밀었다. 이준호는 뒤쪽 문으로 들어갔다. 거기는 거래소의 지하로 연결된 통로였다. 어두웠다. 손을 앞에 내밀어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발걸음이 들렸다. 거래소 쪽에서.
이준호는 통로를 따라 내려갔다. 계단이 끝나고 지하 공간이 나타났다. 이곳은 거래소의 물류 창고였다. 수천 개의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그 사이에 이준호는 몸을 숨겼다.
위층에서는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거래자들의 비명소리도 들렸다. 거래가 강제로 중단되는 소리였다.
이준호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손가락 끝이 차가워졌다.
위층의 소음이 멈췄다. 강민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차분했다.
"여기 없어. 이미 도망쳤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답했다. 기계적인 톤이었다. 거래 추격 AI의 음성이었다.
"신용도 추적 신호가 건물 내부에서 감지됩니다. 대상은 500미터 이내에 있습니다."
"그럼 찾아봐. 이 거래소 전체를 뒤져봐. 나는 상관없어."
강민준의 음성이 차분했다. 마치 이런 일을 수백 번 겪은 사람처럼.
"협력하지 않으시면 이 시설도 거래 추방 대상이 됩니다."
"내 신용도는 이미 0이야. 더 깎아낼 게 없어."
침묵이 흘렀다. 그 다음, 발걸음들이 들렸다. 여러 명의 발걸음. 거래소 전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상자 사이에서 숨을 죽였다. 신용도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휴대폰 화면의 빛이 자신을 노출시킬 수 있었다.
창고로 향하는 발걸음이 들렸다.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였다. 이준호는 더 깊숙이 몸을 숨겼다. 상자 뒤에서, 또 다른 상자 뒤에서.
손전등 불빛이 창고를 비추었다. 추격자의 손전등이었다. 그 빛이 이준호가 숨은 곳에 점점 가까워졌다. 어둠이 물러나고 있었다.
"대상이 근처에 있습니다. 신용도 신호가 강합니다."
추격자의 목소리였다. 사람의 목소리였다. 길드연합의 추격자. 실제 사람이었다.
손전등이 이준호 쪽으로 향했다. 빛이 상자의 모서리를 비추었다. 이준호는 숨을 참았다. 심장 박동이 들릴 정도로 크게 뛰고 있었다. 손가락 끝이 차가워졌다.
손전등의 빛이 상자 모서리에 닿는 순간, 이준호는 자신의 신용도가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매초 -1, -2씩. 시스템이 자신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숨 쉬는 것조차 죄인 것 같았다.
그 순간, 위층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추격자가 몸을 날렸다. 손전등이 떨어졌다. 창고 전체가 흔들렸다.
이준호가 고개를 들었다. 위층의 조명이 모두 꺼졌다. 거래소 전체가 정전 상태였다. 오직 비상등만 붉게 켜져 있었다.
"이게 뭐야?"
추격자의 음성이 들렸다. 혼란스러워 보였다.
"시스템 오류입니다. 거래소의 전력 공급 시스템이 손상되었습니다."
AI의 음성이 담담했다.
"강민준이 한 거야. 저기 감시 카메라를 봐. 다 부숴져 있어."
다른 추격자의 목소리였다.
이준호는 그 혼란 속에서 몸을 움직였다. 창고의 반대쪽으로. 어둠 속에서 손을 짚으며 이동했다. 상자 모서리에 발이 걸렸다. 금속음이 울렸다. 추격자들의 발걸음이 멈췄다.
"뭐야? 뭐가 있어?"
이준호는 더 빠르게 움직였다. 발을 끌지 말고, 무릎을 높이 들고 나아갔다. 손전등의 빛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기다! 움직임이 있어!"
발걸음들이 이준호를 향해 다가왔다. 여러 개의 발걸음. 손전등들이 어둠을 헤쳐나갔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했다.
이준호의 손이 무언가에 닿았다. 금속. 문이었다. 그는 문을 밀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어둠이었다.
비상등의 불빛이 새어 들었다. 이곳은 또 다른 창고였다. 하지만 여기는 비어 있었다. 오직 바닥에 무언가가 놓여 있었을 뿐.
이준호는 그것을 보고 멈췄다.
거기는 탈출 루트였다. 통로의 입구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종이 쪽지가 붙어 있었다.
'이 길로 가. 지하 3층까지 내려가면 나올 수 있어. - 강'
강민준이 미리 준비해둔 것이었다. 아니, 애초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것이었다.
이준호는 통로로 들어갔다. 계단을 내려갔다. 어둠 속에서. 한 계단, 또 한 계단. 세어본 적이 없는 계단들.
위층에서는 여전히 발걸음 소리와 음성이 들렸다. 하지만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지하 2층. 지하 3층. 더 내려갔다.
마침내 통로가 끝났다. 문이 나타났다. 이준호가 문을 밀었다.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밤 공기였다. 거리의 냄새였다.
이준호는 거래소 밖으로 나왔다. 좁은 골목이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어두운 밤하늘만 있었다.
휴대폰을 꺼냈다. 신용도를 확인했다.
4800.
500을 더 잃었다. 도망치는 과정에서 자동으로 소비된 신용도였다. 아니면 추격 과정에서 시스템이 강제로 깎아낸 것이었다.
메시지가 하나 들어와 있었다. 발신자는 '박준영'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번호였다. 강민준이었다.
'내일 오전 9시. 동쪽 지하철역. 카페 '아메'에서 만나. 그때까지 숨어 있어. 그리고 휴대폰을 버려. 지금 너를 쫓는 건 사람들만이 아니야.'
메시지를 읽은 후 이준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가락이 떨렸다.
'지금 너를 쫓는 건 사람들만이 아니야.'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시스템이 자신을 쫓고 있다는 뜻이었다. 트레이드 코어 자체가. 거래 추방 목록에 자신이 올라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 번 그 목록에 오르면, 신용도가 0이 될 때까지 시스템은 자신을 쫓을 것이다.
10분 전까지 자신을 떠받쳤던 사람들의 손이 떠올랐다. 거래의 신이라고 불렸던 그 순간이.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남은 건 도망과 추격뿐이었다.
이준호는 휴대폰을 골목 구석에 던졌다. 화면이 깨졌지만, 여전히 빛을 내고 있었다. 신용도 알림이 계속 울렸다.
그가 골목을 빠져나가 큰 도로에 선 순간, 신용도 알림이 또 울렸다. 4500. 그는 멈추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돌아보면 그 손들이 자신을 다시 잡을 것 같았다.
거리의 어둠 속으로 달렸다.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거래의 신이라고 불렸던 청년은 이제 도망자였다.
그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의 정체를 찾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쉬울 것이라는 것. 길드연합은 이미 그의 얼굴을 파악했고, 그의 신용도를 추적하고 있었고, 그의 모든 거래 기록을 분석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강민준이 제시한 '카페 아메'가 정말 안전한 장소인지, 아니면 또 다른 함정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
이준호는 달렸다. 신용도는 계속 떨어졌다. 시스템이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거래의 신은 이제 거래 추방의 길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