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수수료의 각성
그림자 거래소는 항상 어두웠다.
지하 3층, 트레이드 코어의 알고리즘이 닿지 않는 데드존. 이곳에서는 공식 수수료 따위는 없었다. 대신 강민준이라는 남자에게 뇌물을 바쳤다. 이준호는 지난 3개월간 이곳에서 중개인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월급은 형편없었지만, 거래의 원리를 배우기에는 충분했다.
"중개료 2퍼센트로 맞춰. 그쪽 손해 아니야."
이준호는 화면 위의 거래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판매자는 중고 게이밍 노트북, 구매자는 신용도 480짜리 직장인이었다. 이 신용도면 공식 플랫폼에서는 거래 수수료가 15퍼센트까지 올라간다. 그림자 거래소의 2퍼센트는 기적 같은 가격이었다.
"알았어요."
구매자의 음성 메시지가 울렸다. 목소리에 안도감이 묻어 있었다. 거래 승인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이준호의 시스템 인터페이스에 이상한 옵션이 떠올랐다.
【역수수료 옵션 활성화 가능】
이준호는 눈을 비볐다. 화면이 깜빡였다. 인터페이스의 오른쪽 상단에 작은 토글 버튼이 나타났다. 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
토글을 켜는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거래 데이터가 역방향으로 흘렀다. 수수료 흐름이 반전되었다. 구매자가 내야 할 2퍼센트가 거꾸로 돌아갔다. 시스템이 재계산했다. 구매자는 정가를 내고도 2퍼센트를 돌려받는다. 판매자의 몫은 줄지 않는다. 수수료가 사라진다. 완전히 사라진다.
거래 완료.
이준호의 신용도 게이지가 깜빡였다. 눈금이 한 칸 내려갔다. 99.9에서 99.8로.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구매자의 통신기에 입금 알림이 떴다. 예상 금액보다 2퍼센트가 더 많았다. 정확히는 덜 빠져나갔다.
"어? 이게... 뭐야?"
구매자의 음성이 떨렸다.
"수수료가... 없어?"
이준호의 손가락이 멈췄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가 다시 솟아올랐다. 이게 정말 일어난 일인가? 시뮬레이션이 아닌가?
구매자의 메시지가 연쇄적으로 들어왔다.
"이게 가능해? 진짜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 누세요? 이게 무슨 일이에요?!"
이준호는 답장을 할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어린 날의 기억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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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이준호는 열 살이었다.
아버지의 사무실은 작은 건물의 2층이었다. 온라인 쇠고기 도매 사업. 아버지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경매장을 돌았다. 이준호는 학교에서 돌아와 아버지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봤다. 항상 계산기를 들고 있었다.
"수수료, 또 올랐네..."
아버지의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낮아졌다.
어느 날 오후, 아버지는 이준호를 무릎에 앉혔다. 얼굴이 창백했다.
"준호야. 아빠가 뭔가 잘못 이해한 건가 봐."
"뭐가요?"
"이 세상은... 공정하지 않은 거야. 아빠가 열심히 일해도, 수수료라는 게 자꾸만 떨어져 나가. 그걸 피할 수가 없어. 거래할 때마다, 거래할 때마다 자동으로."
아버지의 손이 떨렸다.
"마지막 거래에서... 5백만 원 손실이 났어. 수수료가 30퍼센트였거든. 아빠는 이미 손실을 감수했는데, 그 위에 또 깎여 나갔어. 그럼 아빠는... 뭐하는 거야?"
그날 밤, 아버지는 사업을 접었다. 서명을 하고 폐업신고를 했다. 이준호는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했다. 절망이 아닌, 더 깊은 뭔가. 항복.
그리고 12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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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떨렸다. 화면을 봤다. 수수료가 정말로 사라졌다.
시스템 로그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었다. 역수수료. 뭔가 모를 이름의 능력이 그의 것이 되어 있었다.
"이게... 가능한 거야?"
이준호는 중얼거렸다.
거래소의 다른 중개인들이 고개를 돌렸다. 이준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이 기분을 어디에 쏟아야 할까. 아버지에게 전화할까. 아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사업 얘기를 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이 느낌은 확실했다.
수수료 없는 거래. 완벽하게 공평한 거래. 누군가가 손해를 입지 않는 거래. 12년을 기다린 이 순간이 정말 왔다.
이준호는 일어섰다. 화면을 한 번 더 확인했다. 거래 완료. 구매자의 신용도가 새로 업데이트되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감사의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거래는 처음입니다."
이준호의 눈이 맑아졌다.
"거래소 보스님 계신가요?"
강민준은 거래소의 뒤편 사무실에서 나타났다.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대였다. 그는 이준호의 얼굴을 봤고,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뭐야. 표정이 이상한데."
"방금 거래 하나가 완료됐는데, 수수료가 없어요."
이준호는 거래 기록을 보여줬다. 강민준은 화면을 봤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
거래 기록은 명확했다. 판매자는 정가를 받았다. 구매자는 정가를 냈다. 수수료는 흔적도 없었다. 오직 이준호의 신용도만 0.1 떨어져 있었다.
"시스템이... 변했나?"
강민준은 천천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경고가 섞여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역수수료라는 옵션이 나타났어요. 활성화하니까 이렇게 됐어요."
강민준은 이준호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너, 뭔가 달라졌는데?"
그 순간, 이준호의 통신기가 울렸다.
【거래 추적 알림 - 시스템 이상 감지】
화면에 낯선 메시지가 떴다. 발신인은 없었다.
【신용도 변동 추적 중】
이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강민준은 이미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표정이 떠 있었다.
"시작됐네."
그가 중얼거렸다.
"뭐가?"
"너의 전쟁이."
이준호는 통신기를 들었다. 손이 떨렸다. 화면의 텍스트는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었다.
【거래 이상 패턴 분석 중】 【시스템 코드 역추적 진행 중】
"이건... 자동 감시 시스템이야?"
"트레이드 코어의 감시 AI지. 모든 거래자의 신용도 변동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정상 범위를 벗어나면 자동으로 신호를 보낸다."
강민준이 거래소의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움직였다. 무거운 철문이 닫혔다.
"움직이지 마. 당분간 이 거래소에만 있어."
"뭐하는 거예요?"
"전자 신호 차단. 이 거래소는 트레이드 코어의 신호가 닿지 않는 데드존이야. 여기서는 추적이 불가능해."
강민준은 이준호를 바라봤다.
"대신 너는 여기서 나갈 수 없다. 지금 나가면 추적 신호가 정상화되고, 그 순간 시스템 전체가 너를 감지한다."
"얼마나... 얼마나 있어야 해요?"
"모른다."
강민준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준호는 혼자 남겨졌다. 거래소의 다른 중개인들은 벌써 자신을 피하고 있었다.
이준호는 손에 들린 통신기를 다시 봤다.
【이상 판정: 확률 87.3%】
확률이 여전했다. 아직 완전히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사무실 문이 다시 열렸다. 강민준이 나왔다. 손에 들린 것은 낡은 노트북이었다.
"이거 써. 너의 신용도 기록을 삭제하는 중이야."
"그게... 가능해요?"
"이 거래소는 트레이드 코어의 공식 플랫폼이 아니야. 여기서는 거래 기록을 조작할 수 있다."
강민준이 노트북을 켰다. 화면에는 복잡한 코드들이 흘러내렸다. 이준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강민준이 자신을 돕고 있다는 것.
"왜... 저를 도와주세요?"
강민준은 코드를 입력하면서 답했다.
"이상한 거 싫어하거든."
"뭐가요?"
"시스템이 반응한다는 건 뭔가 진짜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는 거야. 20년을 이 거래소에서 일하면서 이런 경우를 처음 봤다."
강민준이 마우스를 클릭했다. 화면의 일부가 붉게 변했다가 사라졌다.
"신용도 기록 일부 삭제 완료. 이제 추적 신호가 약해질 거야."
강민준이 노트북을 닫았다.
"지금부터는 조용히 해야 해. 역수수료를 또 쓰면 안 돼. 한 번만 더 써도 신호가 100% 확정이 될 거야."
"그럼... 수수료 없는 거래는 못하는 거네요."
이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분간은."
강민준이 말했다.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지금은 아니지만."
"방법이요?"
"길드연합을 피하는 방법. 그들이 너를 찾으면 끝이야."
강민준이 사무실로 돌아가려 했다.
"잠깐!"
이준호가 외쳤다.
"뭐?"
"왜... 왜 저를 도와주는 거예요?"
강민준이 멈췄다. 그의 뒷모습이 어두웠다.
"길드연합 때문이야."
"뭐...?"
"내가 한때 그들의 사냥개였거든. 추격자. 신용도 조작으로 버려지기 전까진."
강민준이 돌아섰다. 이제 그의 얼굴이 보였다. 눈에는 오래된 분노가 담겨 있었다.
"너는 그들에게 가장 불편한 사람이야. 시스템을 깨뜨리는 사람."
"그게... 복수...?"
"뭐 그런 거지."
강민준이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이준호는 혼자 남겨졌다.
통신기는 계속 울렸다.
【신용도 변동 추적 중】 【이상 판정: 확률 61.2%】
확률이 줄어들고 있었다. 강민준의 조작이 먹히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준호는 거래소의 창문 밖을 봤다.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거리는 조용했다. 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는 뭔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길드연합의 추격자들이 벌써 움직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직 신호만 감지한 단계일까.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가슴 속의 설렘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두려움이 차 올랐다.
그런데도 한 가지만 확실했다.
역수수료가 자신의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것.
12년을 기다린 이 순간, 이제 정말 시작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