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8화 「거울의 끝」

밤 11시 36분.

지하 1층 현장. 시간이 멈췄다.

이준호는 눈을 떴다. 손에 권총이 들려 있었다. 탄피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세 발. 모두 명중했다. 앞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 얼굴이 자신과 같았다. 아니, 이미 자신이 아니었다. 피가 고여 있었고, 숨이 없었다.

이준호가 일어섰다. 손이 떨렸다. 저주 속에서 처음이었다.

"너는 이제 뭘 하지?"

목소리가 들렸다. 뒤에서.

이준호는 돌아섰다. 거기 서 있는 것은 자신이었다. 정확히는, 자신이 될 것이었던 것이었다. 옷이 달랐다. 검은 정장. 손에는 칼.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3년 전으로 돌아가."

미래의 이준호가 말했다. 목소리에는 음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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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낮 11시 47분.**

이준호의 집. 거실.

아버지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산소호흡기가 연결되어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준호. 와."

아버지가 말했다.

"나 죽을 시간 됐어. 너도 알지?"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뭐가 되고 싶었어? 어렸을 때."

이준호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아. 잊었겠지. 넌 감정이 없었지. 그게 좋다고 생각했어. 그게 강하다고 생각했어."

아버지는 기침을 했다.

"그런데 알아? 가장 약한 사람이 감정을 버리는 사람이야. 가장 강한 사람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고."

이준호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대신 모니터를 봤다. 심박 수치. 산소 포화도.

아버지가 숨을 멈췄다. 이준호는 호흡기 튜브를 보고만 있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낮 11시 47분. 아버지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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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밤 11시 43분.**

강남 오피스텔 지하 1층.

당시의 이준호는 현장을 보고 있었다. 피해자는 목에 압흔이 있었다. 시계는 11시 47분에 멈춰 있었다. 손목에 선명한 흔적. 약 4분간의 질식.

"CCTV?"

당시 이준호가 말했다.

"11시 43분 출입구 카메라에 용의자 포착. 검은 옷. 남성. 신장 약 180cm. 11시 51분 퇴출. 8분 체류."

김태식이 대답했다.

"현장 증거?"

"지문 없음. 섬유 미검출. 피해자 손톱에서 피부 조직 채취됨. DNA 분석 중."

당시 이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CCTV 영상을 다시 봤다. 용의자의 얼굴은 모자로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걸음걸이가 보였다. 팔의 움직임. 왼손에 반지. 은색. 특이한 디자인.

"이 반지로 추적해."

"네, 검사님."

당시 이준호는 몸을 돌렸다. 그 순간, 현장 한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벽에 붙은 포스터. 그 위에 손글씨로 뭔가 쓰여 있었다. 당시 이준호는 그걸 봤다. 하지만 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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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하 1층.**

역행하는 기억 속에서 이준호는 그 포스터를 다시 봤다.

글씨가 선명했다.

*'나는 왜 죽어야 하는가. 나는 무죄다. 아버지, 내가 죽으면 당신은 어디서 날 찾을까.'*

이준호의 몸이 굳었다.

"그 글씨. 그게 뭐였는지 기억났어?"

미래의 이준호가 말했다.

당시 이준호가 뭐라고 했는지 역행 기억 속에서 들렸다.

*"감정적 메시지는 증거가 아니다. 무시하고 계속 추적해."*

당시 이준호는 그렇게 말했고, 돌아섰다. 그리고 김태식은 그 포스터를 찢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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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밤 11시 45분.**

DNA 결과가 나왔다. 72시간 만에.

"오지훈. 전과자. 5년 전 폭행죄로 구속. 출소 후 3개월. 현재 주소 불명."

당시 이준호는 노트북 화면을 봤다. 오지훈의 사진이 있었다. 얼굴이 흐릿했다.

"체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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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밤 11시 47분.**

유치장. 오지훈이 들어왔다. 손목에 반지가 있었다. 은색. 특이한 디자인.

"넌 이 반지를 어디서 얻었어?"

당시 이준호가 물었다.

오지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울었다.

"나 죄 없어요. 제발."

당시 이준호는 고개를 기울였다.

"DNA가 말해주고 있어. 넌 그 현장에 있었어. 자백하면 형량이 줄어들 수도 있어."

오지훈은 계속 울었다.

"아버지. 아버지를 만나게 해 줘."

당시 이준호는 심문실을 나갔다. 오지훈의 울음소리는 뒤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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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하 1층.**

이준호의 눈이 열렸다. 눈물이 흘렀다. 처음이었다.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이 변했다. 오지훈의 얼굴로.

아니. 더 정확히는.

오지훈이 아버지였다.

"오지훈이... 아버지였어?"

이준호가 물었다.

"구치소에 들어갔을 때 신분을 바꿨어. 아니면 처음부터 다른 이름이었어."

미래의 이준호가 말했다.

"아버지는 너한테 잡혀 가기를 원했어. 증거로. 너의 논리로. 그리고 그 안에서 죽었어."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래의 이준호가 계속했다.

"그 다음부터 시작된 거야. 저주. 아버지의 저주가 아니라 너 자신의 저주. 넌 무죄인 사람을 유죄로 만들었어. 증거로. 그리고 그 사람이 아버지였어. 그 순간부터 시간이 역행했어."

이준호는 무릎을 꿇었다. 손이 바닥에 닿았다.

"그럼 난... 아버지를... 죽인 거야?"

"그렇지."

미래의 이준호가 칼을 들었다.

"넌 죽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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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밖. 계단 입구.

서연희가 서 있었다. 손에 파일이 들려 있었다. 3년 전부터의 심리 상담 기록. 그녀는 이준호를 추적해왔다. 그의 시간 역행을 감지한 순간부터. 매번 그의 기억이 과거로 흐를 때마다 자신도 함께 따라갔다. 역행의 흐름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았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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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 이준호와 미래의 이준호가 마주보고 있었다.

칼이 올라왔다.

그 순간.

"잠깐."

서연희가 나타났다. 숨이 차 있었다.

이준호를 봤다.

"넌 이미 알고 있어. 무죄인 사람을 죽였다는 거. 그리고 그 사람이 아버지라는 거."

이준호는 일어섰다.

"난 아버지를 죽였어. 증거로. 논리로. 감정 없이."

미래의 이준호가 칼을 내렸다.

"그럼 이제?"

"이제는..."

이준호가 미래의 자신을 봤다.

"이제는 뭘 하지?"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역행하지 않았다. 미래로. 빠르게.

시계가 빨리 감기하듯 돌았다.

밤 11시 36분에서 밤 11시 38분으로. 밤 11시 40분으로. 계속.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시간이... 미래로 흐르기 시작했어."

서연희가 말했다.

"넌 지금 선택할 수 있어. 왜냐하면 저주가 풀렸으니까."

미래의 이준호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함께 사라지거나. 아니면 한쪽이 죽거나."

시간이 계속 빨리 감겼다.

밤 11시 45분. 밤 12시.

시계 바늘이 미친 듯이 돌았다.

이준호는 손에 들린 권총을 봤다. 탄피가 남아 있었다. 세 발이 남았다.

미래의 이준호는 칼을 들고 있었다. 날이 선명했다.

서연희는 파일을 내려놨다.

밤 12시 30분.

이준호의 손가락이 방아쇠 위에 올라갔다.

시간이 다시 멈췄다.

밤 11시 47분.

3년 전 박수진 변호사의 시계가 멈췄던 그 시각. 정확히 같은 시간.

"우리는 이제 뭘 하지?"

이준호가 물었다.

미래의 이준호가 답했다.

"선택을 해. 난 너를 죽이거나, 아니면 넌 날 죽이거나, 아니면 우리가 함께 사라지거나."

말이 끝나는 순간. 목소리가 변했다.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서연희가 손을 들었다.

"기다려."

그녀의 목소리가 명령처럼 들렸다.

"넌 이미 선택했어."

이준호가 돌아봤다.

"무슨 말이야?"

"3년 전에. 아버지가 유치장에 들어갔을 때. 넌 이미 모든 걸 선택했어. 무죄인 사람을 유죄로 만들었고. 그걸 논리라고 불렀어. 그 순간부터 모든 게 정해진 거야. 시간이 역행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서연희가 파일을 들었다.

"나는 너를 봤어. 그날. 넌 웃지도, 울지도 않았어. 그냥 증거를 정렬했어.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논리적으로. 감정 없이. 그리고 그 사람이 죽었어."

이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다음부터 계속했어. 다음 사건. 그 다음 사건. 또 다음 사건. 계속 무죄인 사람들을 범인으로 만들었어. 그리고 매번 그들이 죽었어."

서연희가 한 걸음 다가갔다.

"그게 저주야. 외부에서 걸려온 저주가 아니야. 넌 스스로 저주를 만들었어. 자신의 양심으로. 그리고 그 저주가 너를 역행시켰어. 시간이 너를 돌려보냈어. 다시 마주하게 하려고."

미래의 이준호가 칼을 내렸다.

"그럼 이제는?"

목소리가 달라졌다. 절망의 목소리. 선택지가 없는 자의 목소리.

이준호가 권총을 들었다.

"난 뭘 해야 되는 거야?"

"넌 멈출 수 있어. 지금. 이 순간에."

서연희가 말했다.

"더 이상 역행하지 말고. 더 이상 죽이지 말고. 여기서 멈춰."

"멈춘다고?"

"응. 멈춰. 그리고 받아들여. 넌 아버지를 죽였어. 그 사실을. 넌 이미 많은 사람들을 죽였어. 그 사실도. 그 둘을 받아들이면 시간이 멈춰. 더 이상 역행하지 않아. 넌 현재에 머물 수 있어."

서연희가 손을 내밀었다.

이준호의 손이 떨렸다. 권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현실의 소리. 역행하지 않는 소리.

미래의 이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난 거기 못 가. 넌 거기 갈 수 있어도 난 못 가."

그가 칼을 자신의 가슴에 들이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난 이미 미래니까. 넌 지금 현재에 있지만 난 이미 끝났어. 난 이미 죽었어. 3년 전에. 아버지랑 함께."

칼이 내려갔다.

피가 떨어졌다.

그것도 역행하지 않았다. 중력을 따라 아래로 떨어졌다.

미래의 이준호가 무릎을 꿇었다.

"이제 넌 선택할 수 있어. 왜냐하면 난 더 이상 너를 당기지 않으니까. 난 여기서 멈춰. 넌 앞으로."

이준호가 서연희를 봤다.

그녀의 손이 여전히 펼쳐져 있었다.

"넌 뭐야? 환각이야? 기억이야?"

"난 너의 양심이야."

서연희가 답했다.

"그리고 양심은 언제나 현재에만 존재해. 과거도 미래도 아니야.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밤 11시 47분.

시계 바늘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미래로. 천천히. 자연스럽게.

밤 11시 48분.

이준호가 서연희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미래의 이준호가 완전히 사라졌다.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오직 이준호와 서연희만 남았다.

지하 1층. 밤 11시 49분.

"우리는 이제 뭘 하지?"

이준호가 물었다. 목소리에 감정이 들어 있었다. 처음으로. 두려움. 후회. 그리고 가늘지만 분명한 절박함.

"우리는 위로 올라가."

서연희가 답했다.

"그리고 모든 걸 고백해. 그 사건들을. 그 사람들을. 넌 그들을 죽였어. 증거로. 논리로. 이제 그걸 인정해."

"그럼 난?"

"너는 감옥에 가. 아마 평생. 하지만 시간은 더 이상 역행하지 않을 거야. 넌 현재에 머물 거야.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넌 구원받는 거야."

이준호가 일어섰다. 다리가 떨렸다.

계단으로 향했다.

밤 11시 52분.

지하 1층을 빠져나갔다.

그 순간.

경찰청 로비의 CCTV에 이준호의 영상이 기록되었다. 단 하나의 이준호. 더 이상 두 개가 아닌.

밤 11시 55분.

이준호가 경찰청 현관을 밀고 나갔다.

박민준이 서 있었다.

"검사. 어디 가는 거야?"

박민준이 물었다. 그의 눈은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자수하러 가."

이준호가 답했다.

"3년 전 오지훈 사건.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사건. 내가 조작한 증거들. 내가 죽인 사람들."

박민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 뭘 하는 거야?"

"선택을 해. 박민준."

이준호가 말했다.

"넌 날 잡아서 이용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보낼 수도 있고."

박민준의 손이 움직였다. 권총을 들었다.

"아니면 넌 나를 죽일 수도 있어."

이준호가 계속했다.

"그럼 모든 게 끝나. 시간도 멈추고. 저주도 풀리고. 넌 그 선택을 할 수 있어. 넌 아직 현재에 있으니까."

박민준의 손이 떨렸다. 권총의 총구가 이준호를 향했다.

밤 11시 59분.

"너는 뭘 선택하니?"

이준호가 물었다.

박민준이 대답하려는 순간.

자정의 종이 울렸다.

시간이 정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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