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골든 에이지 1차 합격

골든 에이지 조직위원회의 공식 발표는 오후 6시 정각이었다.

지훈은 강남역 카페에서 휴대폰 화면을 들었다. SNS 알림이 폭주했다.

[@anti_jh_fan_official 공식 채널]

**[속보] 골든 에이지 1차 서류 합격자 발표** 한지훈 배우 포함. 최종 합격자 120명 중 한 명.

조직위원회 평가: "포트폴리오 심사 결과, 한지훈 배우의 연기력은 탁월한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면을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10년을 악역으로만 살아온 자신의 포트폴리오가 '탁월'이라니. 말이 되지 않았다.

펜클럽 채팅방은 이미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절대지훈파_민지:** 와 미쳤다!!! 우리가 이겼다!!! 골든에이지 심사위원들도 지훈이 실력을 아는 거야!!! 2차는 뭐 문제 없지?? 주연 가능!!!

**한지훈_진짜팬:** 어제 악역 장면들도 평가 대상이었대. 그 장면들이 얼마나 완벽했는지 보여주는 거 아니냐고!!

**비판적_지지자_경현:** 근데 조금 이상하지 않나? 포트폴리오가 악역뿐인데... 1차는 통과했는데 2차는 달라. 심사위원들이 직접 지훈이 연기하는 거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팬덤_견제파_준호:** 이건 정상이 아니다. 포트폴리오 심사에서 다른 배우들은 다양한 역할로 준비했을 텐데, 왜 지훈이는 악역만 가지고 합격했어? 우리가 SNS에서 만든 여론이 영향을 미친 거 아닌가?

**절대지훈파_민지:** 뭐라고? 지훈이 10년을 악역으로만 살아온 게 지훈이 잘못인가? 그게 지훈이의 전부잖아! 그리고 그 악역들이 완벽했으니까 심사위원들이 선택한 거지!!

지훈은 채팅을 읽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댓글창을 열었다. 닫았다. 다시 열었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멈췄다.

타이핑을 시작했다가 중단했다. 지웠다. 다시 썼다.

**한지훈:** 악역만 해봤으니까 한계가 있다고요? 그럼 2차에서 증명하겠습니다.

엔터를 누르는 순간, 손가락이 경직됐다. 화면에서 손을 떼려다 멈췄다. 댓글은 이미 올라가고 있었다. 좋아요 수가 올라갔다. 악플도 달렸다.

지훈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가슴이 철렁했다. 호흡이 얕아졌다.

카페의 재즈 음악이 들렸다. 누군가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지훈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이서은이었다.

"봤어?"

"응."

"팬덤 채팅 봤어?"

"...응."

"처음이야. 팬덤 안에서 이렇게 의견이 갈리는 건."

이서은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너 때문에 이런 일이..."

"내 탓이 아니지."

지훈이 말했다.

"맞아. 그런데 이건 더 복잡해질 거야. 1차는 '연기력'으로 통과했는데, 2차부터는 다야. 심사위원들이 직접 너를 봐. 그러면 편견도 함께 봐. 너는 '악역 배우'니까."

"알고 있어."

침묵이 흘렀다. 지훈은 채팅창을 다시 스크롤했다. 팬덤의 균열이 점점 벌어지는 게 보였다.

"그리고..."

이서은이 말을 멈췄다.

"뭐?"

"신태호 쪽에서 움직이고 있어. 너 알지? 신태호?"

지훈은 알았다. 같은 세대의 배우. 신인 때부터 '착한 역할'만 해온 배우. 정석적인 경로의 모범생. 지훈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

"뭐 했어?"

"너의 과거 악역 장면들을 모아서 영상을 만들었어. '연기력의 한계'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렸어. 이미 5만 조회수."

지훈은 휴대폰을 집었다. 유튜브를 켰다. 검색창에 신태호의 이름을 쳤다.

[@newactor_sh 공식 채널]

**[심층 분석] '악역 배우'의 한계 - 연기력 검증**

영상의 썸네일은 지훈의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어떤 내용이야?"

"신태호가 너의 악역 장면 10개를 모아서, 각각을 '기술적 분석'한다고 해. '이 표정은 이런 감정 표현', '이 목소리는 이런 톤'... 근데 마지막에 결론이 뭐냐면, 너는 '부정적 감정 표현'에만 특화된 배우라고 거기서 끝내. 그러면서 '과연 주연급 배우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그건..."

지훈이 말했다.

"비판이 아니라 공격이네."

"맞아. 공격이야. 신태호는 너를 '떨어진 자'로 보고 싶어.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지훈은 영상의 댓글을 스크롤했다.

**유저명_A:** 신태호 말이 맞는데? 악역만 10년 한 배우가 갑자기 주연이라니?

**유저명_B:** 근데 악역 장면들 보면 진짜 잘 했는데... 신태호가 왜 굳이?

**유저명_C:** 이건 정석적 경로를 무시하는 거다. 신인 때부터 제대로 연기 공부한 배우들도 있는데, 이 사람은 악역만 하다가 팬덤 때문에 튀어나온 거지.

지훈은 댓글을 읽다가 멈췄다.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댓글창 아래 텍스트 박스에 손가락을 올렸다.

타이핑을 시작했다. 지웠다. 다시 썼다. 또 지웠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떨렸다. 분노와 자신감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 감정들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욕을 할 수도 없었다. 그것도 공격이 될 테니까.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변명처럼 들릴 테니까.

지훈은 댓글창을 닫았다.

"지훈아."

이서은의 목소리가 진지했다.

"너는 뭐라고 생각해?"

"뭐긴..."

"신태호의 주장. 너는 악역만 해왔으니까 한계가 있다는 거. 맞아?"

지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안 그래. 너는 연기 잘해. 그건 확실해. 근데..."

이서은이 말을 멈췄다.

"근데 뭐?"

"너도 의심하고 있지? 너 자신을."

그 말이 정확했다. 지훈은 침묵으로만 반응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뭔가가 흔들렸다. 자신이 정말 악역만 할 수 있는 배우인지 확인해보고 싶은 욕망. 동시에 그 욕망을 두려워하는 마음.

"너는 악역만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악역 배우'라고 정의했어. 그리고 그 정의에서 벗어나고 싶어. 근데 벗어날 수 있을까? 이게 진짜 질문이야."

지훈은 아메리카노를 집었다. 이미 식어 있었다.

"2차는 뭔데?"

"지정 장면 연기야. 심사위원들이 정한 역할을 하는 거지. 보통은 '착한 주인공' 역할이야."

"그럼 나는..."

"못할 수도 있지. 또는 할 수 있지만, 어색할 수도 있고. 그러면 신태호의 주장이 맞는 거가 되는 거고."

침묵이 흘렀다.

"그래서 뭐 할 거야?"

이서은이 물었다.

"팬덤은 너를 기대하고 있어. '주연 시대'를 기대하고 있어. 근데 너는? 너 자신은 뭘 원해?"

지훈은 대답하지 못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박준호였다.

"지훈아. 지금 어디야?"

"강남역 카페."

"나 지금 가. 30분 뒤."

박준호는 전화를 끊었다.

지훈은 다시 휴대폰을 집었다. 신태호의 영상 댓글창을 다시 열었다. 자신의 댓글이 벌써 수백 개의 답글을 받고 있었다.

**절대지훈파_민지:** 지훈이가 댓글 달았어!!! 지훈이가 직접 응수했어!!!

**팬덤_견제파_준호:** 어? 이건 실수다. 지훈이가 감정적으로 반응한 거야. 이러면 신태호가 더 공격할 거야.

**한지훈_진짜팬:** 아니야. 지훈이가 자신감 있게 나온 거야.

**비판적_지지자_경현:** 근데 이제 2차가 문제가 될 것 같은데... 지훈이가 착한 역할을 하면 배신감을 느낄 팬들도 있을 거고.

지훈은 채팅을 내렸다. 이서은이 여전히 통화 중이었다.

"채팅을 봐. 일부가 '2차는 착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해. 심사위원들의 편견을 피하기 위해. 근데 다른 팬들은 '지훈이가 하고 싶은 거 해'라고 해. 의견이 갈려 있어."

30분 후, 박준호가 카페에 들어섰다.

"봤지?"

"응."

박준호는 지훈 앞에 앉았다.

"신태호 그 영상 봤어?"

"응. 그리고 댓글도 달았어."

박준호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

"악역만 해봤으니까 한계가 있다고요? 그럼 2차에서 증명하겠습니다. 이렇게."

박준호는 한숨을 쉬었다.

"지훈아. 그건 도움이 안 돼. 그건 신태호의 공격에 응하는 거야. 그러면 더 복잡해진다고."

"그냥... 뭔가 해야 할 것 같았어."

"알아. 근데 이제 할 수 있는 건 연기밖에 없어. 2차에서 보여주는 거야. 그게 전부야."

박준호가 말했다.

"근데 2차가 문제가 아니야."

"뭐?"

"최영미가 움직이고 있어."

지훈의 시선이 바뀌었다.

"최영미?"

"응. 드림팩토리 대표. 너 알지? 그 사람이 업계 인사들을 모아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

박준호가 잠깐 멈췄다.

"'이건 정석적 경로의 붕괴'라고. 팬덤 때문에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고. 그리고 그걸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그래서?"

박준호는 테이블 아래 폴더를 꺼냈다. 지훈에게 펼쳐 보였다.

"심사위원 명단이야. 원래는 중립적인 심사위원들로 구성하려고 했는데, 최영미 쪽에서 자기 측 인물들을 넣으라고 강하게 밀어붙였어. 결국 심사위원 5명 중 2명이 최영미와 가까운 사람들로 바뀌었어."

지훈은 명단을 봤다. 심사위원들의 이름과 소속이 적혀 있었다. 그 중 두 명의 이름에 빨간 펜으로 줄이 그어져 있었다. 하나는 드림팩토리의 프로듀서. 다른 하나는 최영미와 같은 영화사 출신의 감독이었다.

"그리고..."

박준호가 말을 이었다.

"너한테 할 말이 있다. 2차 실연 준비할 때 조심해야 할 게 있어."

"뭐?"

"2차는 심사위원들이 정한 장면을 해야 해. 그건 너가 선택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그 장면이 착한 역할일 가능성이 높아. 너는 그걸 해본 적이 없어. 팬덤도 너한테 '주연'을 기대하고 있고. 근데..."

박준호가 지훈의 눈을 봤다.

"너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아. 팬덤의 기대? 업계의 평가? 너의 진정한 욕망? 이 세 개가 충돌하고 있어. 그리고 2차 무대에서는 셋 중 하나를 버려야 해. 다 가질 수는 없어."

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만약 너가 2차에서 착한 역할을 하면, 팬덤의 일부는 배신감을 느낄 거야. '우리가 응원한 악역 배우가 변했다'고. 그들은 너를 떠날 수도 있어. 반대로 너가 악역을 고집하면, 심사위원들의 편견이 더 강해져. '역시 악역만 할 수 있는 배우다'라고. 그러면 2차, 3차에서 떨어질 확률이 높아."

박준호가 말을 멈췄다.

"그래서 넌 뭘 선택할 거야?"

침묵이 흘렀다.

"팬덤이 너한테 '착한 역할'을 하지 말라고 했어?"

"아니. 그런데 채팅을 보면, 일부가 '2차는 착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해. 심사위원들의 편견을 피하기 위해. 근데 다른 팬들은 '지훈이가 하고 싶은 거 해'라고 해."

박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팬덤도 분열되고 있어. 그리고 그 분열이 너한테 압박이 돼. 너는 누구를 선택할 거야? 팬덤의 일부? 아니면 너 자신?"

지훈은 테이블을 봤다.

"일주일이 있어. 너는 이 일주일 동안 뭘 할 거야?"

박준호가 물었다.

"모르겠어.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그럼 이렇게 해봐. 내일부터 착한 역할 연기 연습을 해. 심사위원들이 정할 만한 장면들. 넷플릭스에서 착한 주인공 드라마들 찾아서 장면 분석해. 그리고 동시에..."

박준호가 말을 이었다.

"너가 정말 하고 싶은 역할이 뭔지 생각해봐. 악역이 정말 너의 길인지, 아니면 다른 게 있는지. 그걸 알아야 2차에서 뭘 할지 결정할 수 있어."

"그런데 시간이 부족하지 않나?"

"일주일이면 충분해. 너는 이미 10년을 연기해온 배우잖아."

박준호는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생각해봐. 진심으로."

지훈은 박준호를 잡았다.

"박준호."

"뭐?"

"팬덤이 정말... 날 사랑하는 걸까?"

박준호는 잠깐 멈췄다.

"모르겠어. 그건 너만 알 수 있어.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너가 너 자신을 사랑하는지가 중요해. 너 자신의 욕망을 믿는지가."

박준호가 카페 문을 열고 나갔다.

지훈은 남겨진 아메리카노를 봤다. 완전히 식어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한미영]: 아가, 1차 합격했대? 어머니 친구가 봤대. 축하해.

지훈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밤이 오고 있었다.

카페 창문에 지훈의 얼굴이 비쳤다. 밖의 강남 거리 네온과 안의 카페 불빛이 겹쳐서, 창문은 거울처럼 작동했다. 지훈은 자신의 얼굴을 봤다.

그 얼굴은 누구의 얼굴인가?

팬덤이 바라는 '주연 배우'의 얼굴인가?

업계가 두려워하는 '정석 경로 파괴자'의 얼굴인가?

아니면 10년을 악역으로만 살아온 '악역 배우'의 얼굴인가?

지훈은 창에 손을 댔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손이 움직였다.

그 손이 누구의 손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일은 달라야 한다. 지훈은 손을 내렸다. 착한 역할의 대사를 외워야 했다. 동시에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찾아야 했다. 그 둘을 동시에 해야만 2차에서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훈은 휴대폰을 집었다. 넷플릭스를 켰다. 착한 주인공 드라마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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