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화면이 손에서 떨어질 뻔했다.
'#한지훈은배우다' 실시간 검색어 1위.
지훈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화면을 다시 들었다. 1위가 맞다. 해시태그 옆의 상승 화살표는 빨간색이었고, 상승 속도를 나타내는 숫자도 붙어 있었다. 어제 아침 4위에서 겨우 하루 만에.
검색창을 눌렀다. 자신의 이름을 쳤다.
'한지훈'
엔터를 누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했다. 이 10년간 자신의 이름을 검색한 적이 몇 번이나 되나. 매번 나왔던 것은 '악역 전문배우', '드라마 악당 배우', '악질 캐릭터 한지훈'. 기사 제목들이 떠올랐다. '또 죽었다, 악역 배우 한지훈', '악역만 10년, 한지훈 어디로 가나'. 한 번은 '악역 너무 잘해서 실제로도 악인 줄 알았어요'라는 시청자 댓글이 기사 헤드라인이 되기도 했다.
엔터를 눌렀다.
화면이 로드되었다. 상단의 기사 제목들을 읽었다. 손가락이 정말로 떨렸다.
'무명배우 한지훈, SNS 팬덤의 응원으로 화제 "배우의 진정성 재평가"'
'한지훈은배우다' 해시태그 50만 뷰 돌파, 유튜브 클립 조회수 100만 육박'
'업계 반응 뜨거운 신인 배우 한지훈, 골든 에이지 오디션 초대 기대감'
기사 제목들이 떨려 보였다. 아니, 지훈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
"배우"라고 불렸다. '악역 전문배우'가 아니라 그냥 "배우"라고.
화면을 내렸다 올렸다를 반복했다. 같은 단어가 계속 보였다. '배우 한지훈', '배우 한지훈', '배우 한지훈'. 검색 자동완성에도 떴다. 자신의 이름 다음에 '배우'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붙어 있었다.
침대 가에 앉았다. 휴대폰을 내려놨다가 다시 들었다. 화면을 끄고 켰다. 다시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다. 같은 기사들이 나왔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지훈? 일어났어?"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지훈은 휴대폰을 내려놨다.
"응. 일어났어."
어머니가 들어왔다. 손에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이거 봤어? 신문이야. 아침에 나왔어."
종이를 받아 들었다. 경제지 아래쪽에 작지만 명확한 기사가 있었다. '배우 한지훈, SNS 여론 역전 프로젝트 성공'. 사진은 지훈이 드라마에서 악역을 연기하는 장면이었지만, 캡션은 달랐다. "악역의 진정성으로 재평가받는 배우 한지훈"이라고 붙어 있었다.
"신문까지 났어?"
어머니가 웃었다.
"TV 뉴스도 나왔어. 오전 8시 뉴스에. 너 모르고 자고 있었어?"
휴대폰을 다시 집었다. 유튜브를 열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검색했다. 공식 채널이 아닌 곳들이 자신의 악역 장면을 클립으로 올려놨다. 조회수는 이미 50만을 넘었다. 댓글 수는 3만을 육박했다.
"지훈? 넌 누구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뭐?"
"넌 누구니?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이게 정말 원하던 건데... 너는 뭘 원하는 거야?"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의 표정은 복잡했다. 기쁘면서도 걱정스럽고, 자랑스럽기도 하면서 불안해 보였다.
"모르겠어. 아직."
그 말이 나오자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구나. 그럼 알아야 할 때가 올 거야."
어머니가 나갔다.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다. 댓글들을 읽었다.
'드디어 한지훈을 배우로 봐주는 사람들이 생겼어'
'악역만 했는데 이렇게 잘했네... 주연 해도 될 것 같은데?'
'연기력 미친... 왜 지금까지 무명이었어?'
'한지훈 응원합니다!! 화이팅!!'
손가락이 떨렸다. 눈도 뜨거워졌다. 10년 동안 본 적 없는 댓글들이었다. 자신을 '배우'로 인정하는 말들. 자신의 연기를 사랑한다는 말들.
휴대폰이 울렸다.
박준호였다. 전화를 받았다.
"형. 봤어?"
"봤어. 뉴스도 보고 기사도 봤어. 어? 왜 이렇게 떨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냥... 실감이 안 나."
"너 지금 어디야?"
"집이야."
"1시간 뒤에 강남역 앞 카페에서 봐. 중요한 얘기가 있어."
박준호가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내려놨다가 다시 들었다.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다. 여전히 1위였다. 기사들은 계속 나오고 있었다.
***
강남역 앞 카페는 한적했다. 오후 1시 30분,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아직 회사에 있을 시간이었다. 박준호는 창가 자리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있었다. 지훈이 들어오자 손짓했다.
"앉아."
앞에 앉았다. 박준호는 컵을 내려놨다.
"너 지금 어떤 기분이야?"
"좋아. 당연히."
"그게 문제야."
박준호가 말했다. 그의 얼굴은 진지했다.
"무슨 말이야?"
"팬덤이 너를 밀어주고 있어. 지금은 좋겠지. 댓글도 많고, 기사도 나고, 검색어도 1위고. 하지만 이건 위험해."
박준호가 음료를 마셨다. 한 모금 마신 후 다시 말했다.
"팬덤은 언제든 돌아설 수 있어."
"그럴 리가..."
"2014년 드라마 '황제'. 기억해?"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그 드라마는 대히트했다.
"그 주인공 팬덤이 10만 명 규모였어. 어느 날 배우가 예능에 나가서 실수를 했어. 농담 하나였는데..."
박준호가 말을 멈췄다. 지훈의 얼굴을 봤다. 지훈은 침을 삼키고 있었다.
"그 다음 날부터 팬덤이 안티가 됐어. 하루 만에 10만 명이 돌아섰어. 악플이 5만 개씩 달렸어. 그 배우는 결국 계정을 삭제했고 연기를 그만뒀어."
박준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팬덤이 자기 삶을 완전히 파괴했어."
침묵이 흘렀다. 지훈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만졌다 뗐다를 반복했다.
"너는 그 팬덤에 의존하고 있어. 오디션도, 여론도. 그게 언제까지 지속될 거라고 생각해?"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내가 너를 말리는 게 아니야. 넌 충분히 능력 있어. 연기도 잘하고. 하지만 이 방법이 맞는지는 모르겠어. 너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명확해야 해. 팬덤의 응원이 아니라 너 자신이."
박준호가 에스프레소를 비웠다.
"골든 에이지 오디션 초대장이 올 거야. 아마 오늘이나 내일. 그런데 그때 넌 뭘 할 거야? 팬덤이 원하는 대로 할 거야? 아니면 너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거야?"
"그건 같은 거 아니야?"
박준호가 눈을 봤다.
"아니야. 절대 아니야."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지훈은 박준호의 손이 움직이는 걸 봤다. 손가락이 탁자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설득하려는 것처럼.
"팬덤은 너를 '성공한 배우'로 만들고 싶어. 주연 배우로. 근데 넌? 넌 뭘 원하는 거야?"
대답할 수 없었다. 박준호가 말을 이었다.
"정답이 없어. 진짜. 하지만 너는 알아야 해. 그 정답을.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힘들어질 거야."
박준호가 일어섰다.
"난 너를 응원해. 그리고 너를 도울 거야. 하지만 이건 너 혼자 결정해야 할 문제야."
박준호가 나갔다. 지훈은 남겨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강남역이 보였다. 사람들이 오갔다. 모두 바쁜 표정이었다. 아무도 자신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휴대폰 화면에는 자신의 이름이 1위로 떠 있었다.
박준호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팬덤은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다. 하루 만에 10만 명이 돌아섰다. 악플이 5만 개씩 달렸다. 그 배우가 울면서 계정을 삭제했다.
손이 떨렸다. 이서은의 메시지를 다시 열었다.
'지훈, 봤지? 50만 뷰. 이제 시작이야. 다음 단계를 준비할게. 넌 그냥 준비만 해. 곧 큰 기회가 올 거야.'
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다. 이전엔 응원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다르게 들렸다. "다음 단계를 준비할게"라는 표현이 마치 지시처럼 들렸다. "넌 그냥 준비만 해"라는 말이 명령처럼 들렸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메시지를 다시 읽으면서 이전 대화들을 스크롤했다. 이서은의 모든 말이 재해석되었다. 응원이 아니라 조종처럼 느껴졌다.
***
오후 3시 30분. 휴대폰이 울렸다.
번호를 모르는 전화였다. 하지만 서울 강남의 지역번호였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한지훈 맞습니까?"
여자 목소리였다. 낮고 차가운 목소리.
"네, 맞습니다."
"저는 드림팩토리 대표 최영미입니다."
숨이 멈췄다. 드림팩토리.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50퍼센트를 제작하는 거대 제작사의 대표. 10년간 이 회사의 드라마에만 악역으로 출연했다.
"네, 안녕하세요."
"한지훈? 그 악역 배우?"
최영미의 목소리에는 명백한 불쾌감이 가득했다.
"죄송합니다?"
"SNS 여론 조성. 팬덤 운동. 이런 걸 주도한 게 맞나?"
"그게... 아니, 저는..."
"네가 주도한 게 아니라는 건가? 그럼 누가?"
"팬분들이 응원해주시고..."
"응원? 업계 질서를 흔드는 게 응원인가?"
최영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훈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악역 배우 한지훈. 10년 동안 정해진 자리에서 최고의 악질을 만들어온 배우가 갑자기 주연 욕심을 내는 게 말이 되나?"
"하지만 저도..."
"하지만 뭐야?"
"저도 기회를 받고 싶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기회는 시스템이 정한다. 넌 그 시스템 안에서 최고의 악역이 돼야 한다. 그게 너의 길이야."
최영미의 목소리가 더 차가워졌다.
"그리고 그 길을 벗어나려고 하는 배우들은 이 업계에서 생존할 수 없다. 명심해. 드림팩토리 캐스팅 디렉터들이 너를 다시는 보지 않을 거다. 어떤 역할로든. 그리고 내 말을 듣는 제작사들도 마찬가지야. 넌 이제 이 업계에서 끝이야. 악역 배우 한지훈."
최영미가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내려놨다. 손이 떨렸다.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숨을 고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강남역 일대의 사람들이 오갔다. 누군가는 웃고 있었다. 누군가는 화난 표정이었다. 누군가는 무표정이었다. 모두가 자신의 삶을 살고 있었다.
휴대폰을 다시 집었다. SNS를 열었다. '#한지훈은배우다'는 여전히 1위였다. 댓글도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팬들은 자신을 응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심의 댓글들도 섞여 있었다.
'한지훈 좋긴 한데... 이게 진짜 자연스러운 반응일까?'
'팬덤 운동이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 이상한데'
'배우로서의 실력은 인정하는데, 이렇게 밀어주는 게 맞나?'
댓글을 더 내렸다. 의심의 톤이 점점 강해졌다.
'#한지훈은배우다라는 해시태그 자체가 기획된 거 같은데'
'팬덤이 조종당하는 건 아닐까?'
'지훈은 팬덤의 괴뢰 배우 아닌가'
손가락이 멈췄다. 마지막 댓글을 다시 읽었다. 좋아요 수는 벌써 300개를 넘었다. 대댓글도 붙기 시작했다.
'진짜 이거 누가 주도한 거 같은데'
'너무 계획적이지 않나?'
'팬덤이 자발적이라고 믿기 힘들어'
지훈은 손가락으로 댓글을 누르고 길게 눌렀다. 스크린샷 버튼을 눌렀다. 카메라 소리가 났다. 사진첩을 열었다. 방금 찍은 스크린샷이 저장되어 있었다. '지훈은 팬덤의 괴뢰 배우 아닌가'라는 댓글이 명확하게 담겨 있었다. 좋아요 300개. 대댓글 수십 개.
다시 SNS로 돌아갔다. 또 다른 의심의 댓글을 찾았다.
'이게 정말 자발적인 팬덤 운동일까? 누군가 배후가 있는 건 아닐까?'
다시 스크린샷을 눌렀다. 카메라 소리가 났다. 사진첩에 저장되었다.
'악역 배우가 갑자기 주연 욕심을 내다니. 누가 시킨 거 같은데?'
또 스크린샷. 또 저장.
손가락이 계속 움직였다. 의심의 댓글들을 찾아다니며 스크린샷을 눌렀다. 카메라 소리가 반복되었다. 사진첩에는 점점 더 많은 스크린샷이 쌓였다.
박준호의 경고. 이서은의 지시. 최영미의 위협. 팬덤의 응원. 의심의 댓글들.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여전히 '#한지훈은배우다'가 1위로 떠 있었다. 의심의 댓글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팬덤의 균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지훈은 사진첩을 닫고 다시 열었다. 스크린샷들이 쌓여 있었다. 의심의 댓글들. 괴뢰 배우. 팬덤의 조종. 모두 자신을 향한 말들이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그리고 그 떨림이 가장 두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