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안의 밤거리는 여전히 어둡고 차가웠다. 백애림은 객잔 뒤 골목의 돌담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검은 옷에 묻은 혈흔이 말없이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증언했다. 한운과의 대결에서 그녀는 검을 거두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싸워온 모든 적들이 정말 악인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이 거짓말을 듣고 거짓말을 행동으로 옮겨온 것인지를 더 이상 확신할 수 없게 된 순간이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지붕 기와를 밟는 소리가 아니라, 지표면을 밟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이었다. 백애림의 손이 검을 향했지만, 나타난 것은 한운이 아니었다.
"검을 그대로 두십시오."
최호였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눈빛은 이전과 달랐다. 마치 누군가의 명령 아래 움직이는 그림자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인간의 눈빛이었다.
"당신은... 철혈방의."
"더 이상 철혈방의 사람은 아닙니다."
최호는 백애림의 옆에 선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은 낡은 종이 묶음이었다. 기록이었다.
"십 년 전, 천마 종파의 마두 운혼자는 병으로 죽어갔습니다. 그의 죽음은 천마 종파의 비밀 동굴에서 일어났고, 아무도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구파일방은 그 죽음을 한운의 소행으로 조작했습니다. 운혼자의 죽음을 뒤집어씌워 한운을 강호에서 지워버렸습니다."
백애림의 손이 떨렸다. 최호가 계속했다.
"이 명령은 이재옥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구파일방 모든 파벌의 수장들이 이를 승인했습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싸워온 모든 적들을, 악의 화신으로 여기며 무찌른 모든 자들이, 실은 정파의 거짓을 감춰주기 위한 도구였다는 뜻입니다."
최호가 문서를 펼쳤다. 기록실의 공식 보고서, 그리고 그 아래 손글씨로 작성된 내용들이 보였다. 이재옥의 서명. 그리고 다른 파벌 수장들의 인장.
"당신이 정파를 위해 해온 모든 행동은 거짓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당신이 추적하고 무찌른 모든 자들은 정파의 음모에 희생된 자들입니다."
백애림이 종이를 집어 들었을 때, 그녀의 손은 더 이상 검객의 손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짓말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떨리는 인간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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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옥의 서재는 장안의 천정파 본산 최상층에 위치했다. 푸른 등불이 켜진 그 방에서 이재옥은 책을 읽고 있었다. 표정에는 침착함이 있었지만, 손가락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떨렸다.
문이 열렸다. 백애림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파주님."
이재옥이 고개를 들었다. 백애림의 표정은 여전히 정파 검객의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십 년 전, 당신이 한운을 강호에서 지운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침묵이 흘렀다. 이재옥의 손이 책장에서 멈췄다. 아주 천천히, 그는 책을 덮었다.
"무엇을 말하는가?"
"그 검객이 정말로 강호에서 지워져야 할 자였습니까? 천마 종파의 마두였습니까?"
이재옥이 일어났다. 그의 움직임은 검객의 움직임이었다. 빠르고, 정확하고, 치명적이었다. 백애림은 한 발 뒤로 물렀다.
"당신이 무엇을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공포와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입 밖에 내는 순간, 당신도 강호에서 지워질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뜻이군요. 그 검객이 정말로 악인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백애림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이제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재옥의 침묵이 모든 것을 증명했다.
"당신은 정파를 배신하려 하는가?"
"저는 거짓을 배신하려 합니다. 정파를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백애림이 돌아섰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재옥의 얼굴에 극도의 공포가 스쳤다. 완벽하게 지웠다고 생각한 과거가, 십 년 전의 그 결정이 이제 되살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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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한 초옥 안에서 세 명이 만났다. 최호, 백애림, 그리고 서아였다. 촛불 아래 문서들이 펼쳐져 있었다.
"이것들을 보십시오."
최호가 가리킨 것들은 구파일방의 공식 기록이었다. 천마 종파의 멸절을 기록한 보고서들, 그리고 그 아래 손으로 추가된 주석들이었다. 같은 필체, 같은 어투, 같은 논리.
"누군가가 구파일방 전체에 같은 거짓말을 가르쳤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천마 종파가 악의 집단이었고, 한운이 그 악을 계승한 자라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이것은 조직적인 거짓말입니다. 한 명의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서아가 문서를 집어 들었다. 그녀의 의료자의 눈은 즉시 진실을 읽었다.
"이재옥이 주도했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모든 파벌이 이에 공모했습니다. 정파의 도의라는 것이, 실은 이 거짓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백애림이 말했다. 그 목소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깨닫는 목소리였다.
"당신들은 이것을 무엇으로 할 생각입니까?"
최호가 답했다.
"증거로 사용할 것입니다. 한운이 더 이상 검을 들 필요가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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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안의 밤거리는 여전히 검은색이었다. 한운은 세 번째 배신자를 찾아내었다. 그는 운몽파의 장로였고, 십 년 전 추방 결정에 손을 들어준 자였다. 그 장로는 한운을 보자 고개를 숙였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한운의 눈빛은 이미 인간의 눈빛이 아니었다. 검은색으로 변한 손가락이 검을 움켜잡을 때, 그 검은 색은 팔을 따라 목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잘못이 무엇입니까?"
한운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마치 죽음의 언어였다.
"당신이 나를 지웠습니다. 나를, 나의 이름을, 나의 존재 전체를 지웠습니다."
한운이 검을 들었다. 혈천검이었다. 그 검이 공중을 가를 때, 운몽파의 장로는 자신의 내공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넘어졌다.
한운이 돌아설 때, 그 뒷모습은 이미 인간의 뒷모습이 아니었다. 팔뚝이 모두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고, 그 검은 색은 목과 얼굴로 계속 번지고 있었다. 호흡이 거칠었다. 심장이 극도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몸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한운이 손을 펼쳤다.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떨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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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의 초옥 앞에 한운이 나타났다. 여전히 검은색으로 변한 팔, 그리고 목과 얼굴로 번지는 저주의 자국. 서아는 그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또 했습니까?"
"배신자들을 처단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더욱 무너지고 있습니다."
서아가 그에게 가까이 갔다. 그녀는 의료자였다. 죽음을 매일 보는 자였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보고 있었다. 한운이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로 변해가는 것을.
"당신이 복수를 하면 할수록, 당신은 당신이 싸우는 것과 같은 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를 깨닫지 못합니까?"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나는 정의를 행하고 있습니다."
"정의? 당신의 눈을 보십시오."
서아가 거울을 들었다. 한운이 그것을 봤을 때, 그 안의 얼굴은 더 이상 한운의 얼굴이 아니었다. 검은색으로 변한 피부, 그리고 그 안에서 타오르는 무언가의 불길. 마치 천마가 인간의 피부 안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
"이것이 당신이 원한 것입니까?"
한운이 거울을 돌려 놓았다. 그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다.
"나는... 강호에 내 이름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지워진 존재가 아닌, 무엇이든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천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당신이 원한 이름입니까?"
서아의 목소리는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깊은 연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한운은 그것을 들을 수 없었다. 이미 그의 귀에는 다른 목소리들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자신을 지웠던 자들의 목소리, 자신을 배신했던 자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들을 모두 침묵시키는 검의 소리.
한운은 초옥을 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숨은 마치 죽음의 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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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질수록 강남의 밤거리는 더욱 검어졌다. 최호, 백애림, 서아가 모인 초옥 위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한 명이 아니었다. 여럿이었다.
문이 열렸다. 철혈방의 밀사였다. 그 밀사는 한 통의 서간을 내려놓았다.
"이재옥 파주의 긴급 명령입니다."
최호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봉인을 뜯었을 때, 그 안의 글씨는 간단했다.
'한운과 그를 돕는 모든 자들을 제거하라. 이것은 정파의 존속을 위한 최후의 결정이다. 구파일방의 모든 검객을 동원한다.'
밀사가 말했다.
"이미 장안에서 천정파의 검객들이 출발했습니다. 강남의 운몽파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철혈방도 방주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호가 고개를 들었다.
"한 가지만 말하겠습니다. 당신들이 지킬 것은 정파가 아니라 거짓입니다."
밀사는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돌아섰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듯이.
백애림이 창문을 통해 밖을 봤다.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새벽과 함께, 구파일방의 모든 검객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 천마의 인 6화
밀사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방 안에 남겨진 세 명의 숨소리만 들렸다. 최호가 그 서간을 다시 펼쳤다. 종이는 얇았지만, 그 위의 글씨는 무겁기만 했다.
'정파의 존속을 위한 최후의 결정.'
백애림이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비통한 웃음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지켜온 것이 거짓이었다는 깨달음의 웃음이었다.
"구파일방이 우리를 죽이려 합니다. 이것은 정당한 명령이 아니라 공포입니다."
서아가 백애림의 옆에 섰다.
"정파의 정의가 그렇다면, 그것을 지킬 이유는 없습니다."
최호는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꺼내 든 것은 또 다른 문서들이었다. 손으로 직접 옮겨 적은 기록들. 십 년 전 추방 사건의 진실을 담은 증거들이었다.
"백애림이 정파를 떠난다면, 이 기록들을 어디로 보낼 것인가?"
백애림이 그 문서를 받아 들었다. 손이 떨렸다. 문서 위의 이재옥의 서명, 그리고 그 아래 적힌 '천마 마두의 죽음을 한운에게 뒤집어씌우라'는 명령. 자신이 추적해온 한운이 왜 강호에서 지워졌는지, 모든 것이 이 한 장의 종이에 담겨 있었다.
"당신은 이것을 어디서?"
"철혈방의 기록실. 한철이 항복한 후, 내가 들어가 직접 찾았습니다."
최호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하지만 그 담담함 속에는 도구에서 인간으로 변하려는 자의 결연함이 담겨 있었다.
"한철은 이재옥의 명령을 받았고, 이재옥은 구파일방의 모든 파주들과 함께 이 거짓을 유지했습니다. 정파의 정의는 거짓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백애림이 문서를 내려놓지 못했다. 손가락이 그 위에서 맴돌았다. 글씨 하나하나가 마치 자신의 과거를 찢어내는 칼날처럼 느껴졌다. 십 년을 넘게 정파의 검객으로 살면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거짓을 지켜온 것인가.
"이재옥이 나를 만났을 때, 나는 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백애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마치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자의 목소리였다.
"'십 년 전 그 검객을 정말로 강호에서 지워야 했나요?'"
서아가 백애림을 바라봤다.
"그의 반응은?"
"극도의 분노였습니다. 그리고 공포였습니다. 마치 과거가 되살아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의 반응이었습니다. 나는 그때 알았습니다. 이것은 정의가 아니라 은폐라는 것을."
백애림이 고개를 들었다. 그 눈에는 더 이상 정파의 검객으로서의 의지가 없었다.
"나는 운몽파를 떠납니다. 한운을 추적하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그를 돕겠습니다."
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증거들을 어디로 보낼 것인가? 강호 전체가 알아야 합니다. 구파일방의 거짓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만들어졌는지."
백애림이 다시 문서들을 들었다. 손이 이제 떨리지 않았다.
"강남의 의료자 서아의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정파든 비정파든. 그곳이 가장 안전한 곳입니다."
서아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의 의료소를 말하는 것입니까?"
"네. 그곳을 통해 이 증거들을 강호 전체에 퍼뜨릴 수 있습니다. 구파일방이 만든 거짓의 선전이 얼마나 조직적인지. 한운을 '악의 화신'으로 묘사하는 방식이 얼마나 일관되게 거짓인지."
백애림이 서아에게 문서들을 건넸다. 손이 서아의 손과 만날 때, 그것은 마치 한 시대의 끝과 다른 시대의 시작을 나누는 손과 같았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증거들을 나의 의료소에서 필사본으로 만들고, 모든 비정파 상인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퍼뜨리겠습니다."
서아의 목소리는 의료자로서가 아닌 하나의 의지 있는 인간으로서의 목소리였다.
"구파일방이 우리를 죽이려 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거짓을 죽이겠습니다."
최호가 창문으로 나갔다. 지붕 위에서 강남의 밤거리를 바라봤다. 이미 곳곳에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천정파의 검객들이 도로를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운몽파의 암살 부대가 골목골목을 누비고 있었다. 철혈방의 병사들이 교차로를 봉쇄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한운을 죽이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모든 것이 최호, 백애림, 서아를 죽이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최호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도구로 태어난 자가 마침내 도구를 거부했다. 그것이 죽음으로 이어진다 해도, 그것은 선택된 죽음이었다. 명령받은 죽음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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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밤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강북의 산길에서는 이미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한운이 세 번째 배신자의 집을 찾아갔다. 십 년 전 자신을 지웠던 자 중 한 명. 그 자는 이제 강북의 외진 산장에서 은거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죄를 피하기 위해.
하지만 그곳도 피할 수 없었다. 한운이 나타나면 어디든 도망칠 수 없었다.
한운이 산장의 문을 열었을 때, 그 안의 남자는 이미 검을 들고 있었다. 열 년 동안 무술을 닦은 내공이 그 검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무의미했다.
한운의 첫 번째 검은 상대의 검을 부수었다. 두 번째 검은 상대의 팔을 자르고 지나갔다. 세 번째 검은 상대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
배신자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용서해... 용서해주십시오."
한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내려다봤다. 그 검 위에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피 위로 검은색이 번지고 있었다. 손가락에서 시작된 저주가 이제 검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한운이 자신의 손을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의 떨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갈망의 떨림이었다. 더 많은 것을 죽이고 싶은 갈망.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싶은 갈망.
한운이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이미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다음은 이재옥이다."
그 순간, 한운의 얼굴에서 검은색이 목까지 올라왔다. 마치 천마가 인간의 피부 안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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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의료소에서 서아는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 손에는 한운의 진맥이 남아 있었다. 몇 시간 전 한운이 찾아왔을 때의 진맥이.
그 맥은 더 이상 인간의 맥이 아니었다.
백애림이 서아의 옆에 섰다.
"그의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일주일. 아마 그보다 적을 것 같습니다."
서아의 목소리는 마치 죽음을 선고하는 의료자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는 점점 더 천마가 되어갈 것입니다. 이미 그의 눈빛이 변했습니다. 마치 다른 존재가 그 안에 깃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백애림이 창문으로 나갔다. 강남의 아침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하늘 아래로 구파일방의 검객들이 계속 몰려오고 있었다.
최호가 지붕 위에서 내려왔다. 그의 손에는 또 다른 소식이 들려 있었다.
"이재옥이 움직였습니다. 모든 파벌을 동원해 우리를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운은?"
"산길을 통해 강남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아마 내일 밤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최호가 그 소식을 전하는 순간, 의료소의 문이 열렸다. 밖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많은 발소리였다.
천정파의 검객들이었다.
그들의 앞에 선 자는 천정파의 파주였다. 그 파주의 입이 움직였다.
"한운과 그를 돕는 자들을 체포하라. 저항하는 자는 즉결처단한다."
최호가 검을 들었다. 하지만 그 검은 저항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한운이 올 때까지의 시간을.
백애림이 최호의 옆에 섰다. 그 손에도 검이 들려 있었다. 운몽파의 검객에서 버려진 자로의 선택.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그녀는 이미 돌아갈 길이 없었다.
서아는 의료소의 뒤쪽으로 나갔다. 그 손에는 증거 문서들을 든 상자가 들려 있었다. 강호 전체에 퍼뜨려야 할 진실을.
"나는 후문으로 나가겠습니다. 이 증거들을 비정파 상인들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가십시오. 우리가 시간을 만들겠습니다."
최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마치 이미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 자의 목소리였다.
천정파의 검객들이 의료소로 몰려들었다.
최호와 백애림이 그들을 맞이했다.
첫 번째 검이 부딪혔다. 그 소리는 강남의 아침하늘까지 울려 퍼졌다. 마치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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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의 산길을 내려오던 한운은 그 소리를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느꼈다. 그것은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 천마공의 감각으로 감지하는 것이었다.
강남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투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시간을 벌고 있었다.
한운이 걸음을 멈췄다. 그 손가락이 떨렸다. 이제 그것은 갈망의 떨림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깨닫고 있는 떨림처럼.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한운의 얼굴에 다시 천마의 빛이 들어왔다. 그 빛 속에서 인간은 사라지고 있었다.
한운이 검을 들었다. 그 검은 이미 혈천검이 아니라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마치 천마 자신이 검이 되어 있는 것처럼.
한운이 산길을 내려왔다. 빠르게. 아주 빠르게.
그의 뒤에는 더 이상 인간의 그림자가 아닌 검은색의 흔적이 남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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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소의 전투는 이미 극한에 도달하고 있었다.
최호의 검이 세 명의 천정파 검객을 동시에 상대했다. 그의 이동 속도는 여전히 암살자의 속도였지만, 이제 그것은 도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저항을 위한 것이었다.
백애림의 검은 천정파 파주의 검과 부딪혔다. 운몽파의 유려한 검술과 천정파의 강렬한 검술의 대충돌. 하지만 백애림은 이미 정파의 검객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선택을 지키는 자였다.
"당신은 정파를 배신했습니다!"
천정파 파주가 외쳤다.
"네. 나는 거짓을 지키는 것을 거부합니다."
백애림의 검이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그 순간, 의료소의 문이 폭발했다.
한운이 나타났다.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온몸이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고, 그 안에서 무언가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천마가 인간의 껍질을 벗고 나타난 것처럼.
한운이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이제 두 개였다. 인간의 목소리와 천마의 목소리가 겹쳐 있었다.
"이제 모두 끝낸다."
한운이 검을 들었다. 그 검은 더 이상 혈천검이 아니었다. 그것은 천마 자신이었다.
최호가 한운을 바라봤다. 그 눈이 흔들렸다. 처음으로.
"한운... 당신이... 남은 것이..."
"없다."
한운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한운의 검이 천정파 파주를 향해 날아왔다. 그 검을 맞는 순간, 파주의 몸은 산산조각 났다. 마치 도자기가 깨지는 것처럼.
의료소의 천정파 검객들이 모두 물러섰다. 그들이 본 것은 검객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최호와 백애림이 한운을 바라봤다. 그들이 함께하려던 그 존재는 이미 사라지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오직 천마만 남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