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강남의 비 오는 밤이었다.

백애림의 검이 지붕의 기와를 가르며 내려왔다. 한운은 몸을 날려 피했고, 검날이 지나간 자리에 하얀 균열이 생겼다. 운(雲) 계열의 유려한 검술이었다. 공중에서 몸을 굴린 한운이 다시 일어서며 백애림을 마주봤다.

"이재옥의 개찰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한운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십 년 전 추방의 진실을 아직 모르는 백애림은 한운을 악의 화신이라 배워왔다. 구파일방의 공식 기록에서 그렇게 기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천마 공법을 수련한 자, 정파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비정파의 흉마(凶魔). 백애림은 이 명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한운은 어딘가 다르게 보였다.

죽음이 묻어있었다. 단순한 살기(殺氣)가 아닌, 죽음 자체가 이미 그의 몸을 점거하고 있는 듯했다. 팔에서 목으로 번져가는 검은색 자국. 그것은 질병이 아니었다. 저주였다. 백애림은 의료자 서아와 만난 적이 있었고, 서아의 말을 들었다. 이것은 공법의 대가라고. 그렇다면 한운은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계속 검을 들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순간, 백애림의 검이 흔들렸다.

"넌 왜 싸워야 하는가?"

한운이 물었다. 운검(雲劍)을 든 손이 떨리고 있었다.

"구파일방의 명령이다."

백애림의 대답은 자동으로 나왔다. 그것이 강호의 규칙이었다. 파벌의 명령은 절대였고, 개인의 의지는 무의미했다. 하지만 그 순간, 백애림은 자신이 받아온 모든 명령이 얼마나 일관되고 조직적인지를 떠올렸다.

한운을 '악의 화신'으로 묘사하는 방식은, 모든 파벌에서 똑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정파 전체에게 같은 거짓말을 가르친 것처럼.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의도였다.

"이재옥이 넌 뭐라고 설명했나?"

한운이 다시 물었다. 검을 들지 않은 채로.

"천마 공법을 수련한 비정파의 흉마. 강호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자."

"그게 전부인가?"

"......"

백애림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 사이, 한운이 한 발 다가섰다.

"십 년 전, 나는 천마 공법을 수련하지 않았다. 나는 천마 종파의 마두를 만났을 뿐이다. 그 자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고, 나를 죽음의 문턱에서 살려주었다. 그 대가가 이것이다."

한운의 팔을 가리켰다. 검은색 자국이 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나를 지웠던 것은 천마 공법이 아닌, 정파의 거짓을 감춘 것이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백애림의 검이 다시 움직였다. 이재옥의 명령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검의 궤도가 흔들렸다. 의심이 검의 정확도를 죽였다.

한운이 검을 들었다.

혈천검이었다.

검이 공중을 가르는 순간, 하얀 빛이 터져나왔다. 백애림의 운검이 맞섰고, 두 검이 부딪치는 순간 진동이 지붕 전체를 흔들었다. 기와가 무너져내렸다. 백애림은 몸을 날려 피했지만, 그 순간 한운의 모습이 이상했다.

한운의 호흡이 불안정해졌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소리. 숨을 쉬어도 숨을 쉬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더 심각한 것은 다른 감각이었다. 한운은 자신의 팔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이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다른 존재가 자신의 몸을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한운은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이것은 죽음이 아니었다. 이것은 소멸이었다.

"뭐... 뭐야..."

한운이 중얼거렸다. 자신의 목소리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순간, 백애림은 한운의 얼굴을 보았다. 죽음을 받아들인 검객의 얼굴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자의 얼굴이었다.

백애림은 검을 내렸다.

"나가. 이곳을 떠나."

한운은 백애림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감사도, 신뢰도 없었다. 단지 혼란과 공포만 있었다. 한운은 지붕에서 뛰어내렸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백애림은 그 자리에 남겨져 검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이재옥의 명령을 위반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방금 목격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었다.

한운은 악의 화신이 아니었다.

한운은 무언가에 의해 천천히 삼켜지고 있는 자였다.

---

서아의 집은 강남 외곽의 조용한 골목에 있었다. 의료자로서 그녀는 정파와 비정파 모두를 치료해왔기에,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의 공간이 필요했다. 한운이 그 문을 두드렸을 때, 서아는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와."

서아가 말했다. 한운은 들어섰고, 서아는 그의 팔을 잡았다. 검은색 자국이 어제보다 더 진했다.

"며칠 전에는 팔뚝까지였는데, 이제 목까지 올라왔네."

서아의 손가락이 한운의 목을 따라 움직였다.

"얼마나 남았나."

한운이 물었다. 감정이 없는 목소리였다.

"당신의 수명이 급격히 단축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서아가 말을 멈췄다. 한운이 대답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 보였다.

"...몇 개월 내에 당신은 죽을 것이다. 아니, 죽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잠식당할 것이다. 공법이 당신을 집어삼키고 있다."

한운은 서아의 말을 들었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재옥을 처단하기까지 얼마나 필요한가."

"한운..."

"얼마나."

한운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더 차갑게.

"한 달. 많아야 두 달이다. 그 이후로는..."

서아는 말을 완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둘 다 알고 있었다. 두 달 이후에는 한운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럼 이재옥을 죽이고 나면 끝이다."

한운이 말했다.

"그렇지 않다."

최호가 나타났다. 방의 뒤쪽 어둠 속에서. 철혈방의 암살자는 그림자처럼 나타나 말을 이었다.

"나는 십 년 전 사건의 기록을 찾았다. 공식 기록과 현장의 증거가 맞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의 의도적인 조작이다. 그리고 그 조작의 중심에 이재옥이 있다."

최호가 한운에게 문서를 건넸다. 낡은 종이였다. 십 년이 묻어있었다.

"이것은?"

한운이 물었다.

"십 년 전 추방 사건의 현장 보고서다. 공식 기록과는 다르다. 여기에는 너를 지웠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지웠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너는 그 누군가의 죽음을 뒤집어쓰고 강호에서 제거되었다."

한운의 손이 떨렸다. 문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이상했다.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지 않는 손.

"천마 종파의 마두가 있었다."

최호가 계속했다.

"이재옥은 그 마두를 죽였다. 그리고 그 죽음을 너에게 뒤집어씌웠다. 천마 공법을 수련한 비정파 검객으로. 정파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자로. 그렇게 너는 지워졌다."

한운이 문서를 내려놨다.

"그럼 내 복수는."

"너의 복수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최호가 말했다. 철혈방에서 벗어난 암살자는, 이제 진실의 증인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재옥이 주도한 구파일방의 거짓을 완전히 드러내려면,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나는 비밀스럽게 당시 사건에 참여했던 인물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증언을 수집하고 있다."

최호의 눈이 반짝였다.

"이것이 진정한 복수가 될 것이다. 검이 아닌, 진실의 검으로."

한운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팔이 계속 검어지고 있었고, 자신의 호흡이 계속 불안정했고, 자신의 생각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재옥을 죽이는 것만이 자신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자신의 의지인지, 아니면 자신을 잠식하고 있는 무언가의 의지인지, 한운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었다.

---

강안(江安)의 비밀 서재에서 최호는 밤새도록 문서를 정렬했다.

십 년 전 추방 사건의 기록들. 공식 기록에는 없는 현장 보고서들. 당시 참여자들의 증언.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재옥은 천마 종파의 마두를 죽였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한운의 이름을 도용했다. 구파일방 전체에 거짓을 퍼뜨렸다. 정파의 질서를 위협하는 악의 화신으로.

최호의 손가락이 한 장의 문서에서 멈췄다.

이재옥의 서명이 있는 명령서였다.

"천마 마두 운혼자를 제거하라. 이것이 구파일방의 안정을 위한 필요한 조치이다. 그의 죽음을 다른 자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정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 아래에는 다른 파벌의 지도자들의 서명이 있었다. 모두가 이 거짓에 동의했다. 모두가 공범이었다.

최호는 이 문서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서아와 백애림에게 알리기로 결심했다.

강호의 거짓을 드러낼 시간이 왔다.

그 순간, 강남의 밤하늘에서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 정파의 거짓

"그럼 이재옥을 죽이고 나면 끝이다."

한운이 말했다.

"그렇지 않다."

최호가 나타났다. 방의 뒤쪽 어둠 속에서. 철혈방의 암살자는 그림자처럼 나타나 말을 이었다.

"나는 십 년 전 사건의 기록을 찾았다. 공식 기록과 현장의 증거가 맞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의 의도적인 조작이다. 그리고 그 조작의 중심에 이재옥이 있다."

최호가 한운에게 문서를 건넸다. 낡은 종이였다. 십 년이 묻어있었다.

"이것은?"

한운이 물었다.

"십 년 전 추방 사건의 현장 보고서다. 공식 기록과는 다르다. 여기에는 너를 지웠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지웠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너는 그 누군가의 죽음을 뒤집어쓰고 강호에서 제거되었다."

한운의 손이 떨렸다. 문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이상했다.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지 않는 손.

"천마 종파의 마두가 있었다."

최호가 계속했다.

"이재옥은 그 마두를 죽였다. 그리고 그 죽음을 너에게 뒤집어씌웠다. 천마 공법을 수련한 비정파 검객으로. 정파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자로. 그렇게 너는 지워졌다."

한운이 문서를 내려놨다.

"그럼 내 복수는."

"너의 복수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최호가 말했다. 철혈방에서 벗어난 암살자는, 이제 진실의 증인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재옥이 주도한 구파일방의 거짓을 완전히 드러내려면,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나는 비밀스럽게 당시 사건에 참여했던 인물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증언을 수집하고 있다."

최호의 눈이 반짝였다.

"이것이 진정한 복수가 될 것이다. 검이 아닌, 진실의 검으로."

한운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팔이 계속 검어지고 있었고, 자신의 호흡이 계속 불안정했고, 자신의 생각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재옥을 죽이는 것만이 자신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자신의 의지인지, 아니면 자신을 잠식하고 있는 무언가의 의지인지, 한운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었다.

---

강남의 운몽파 본산 밖에서 백애림이 검을 들었다.

이재옥의 명령은 명확했다. 한운을 생포하거나 격파하라. 만약 강남 일대에서 한운이 움직인다면 그것은 정파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다. 그리고 도전은 피로 씻어내야 한다.

백애림은 이 명령을 의심하지 않았다. 한운은 천마 공법을 수련한 비정파 검객이고, 구파일방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악의 화신이다. 정파의 도의를 수호하는 것이 자신의 책무다.

그렇게 생각하며 백애림은 강남의 밤거리를 누볐다.

정보망을 통해 한운의 위치를 추적했다. 오래된 객잔 뒤의 골목. 술냄새와 썩은 음식 냄새가 섞인 곳. 정파의 검객이 발을 디딜 곳이 아니었다.

백애림이 골목 입구에 섰을 때, 한운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운몽파의 검객이군."

한운이 나타났다. 어둠 속에서, 하지만 분명히 보였다. 그의 팔은 손목부터 팔뚝까지 검은색으로 변해있었다. 그의 얼굴도 일부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의 눈은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백애림의 검이 울렸다.

"한운. 너는 정파에 항복하거나 죽어야 한다. 그 외의 선택지는 없다."

"항복?"

한운이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비극적이었다.

"내가 무엇을 했는가?"

"너는 천마 공법을 수련했다. 그것은 강호의 도의를 어기는 행위다."

"나는 천마 공법을 수련하지 않았다. 나는 죽어가는 천마 마두로부터 공법을 받았을 뿐이다.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한운이 한 발 나아갔다.

"너는 정파에서 나에 대해 무엇을 들었는가?"

백애림이 검을 들어올렸다.

"너는 강호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자다. 너는 비정파 세력의 우두머리다. 너는 정파의 많은 검객을 해쳤다."

"그것이 진실인가?"

"그것이 정파가 알려준 것이다."

백애림이 대답했다. 그 순간, 그녀의 뇌리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정파가 알려준 것. 정파가 알려준 것.

백애림은 이제까지 정파의 명령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정파는 정의이고, 정파의 도의는 절대적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한운의 모습이 자신이 들은 설명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운은 악의 화신이 아니었다. 한운은 죽어가는 자였다.

"정파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고?"

백애림이 물었다.

"거짓이 아니라, 부분적 진실과 의도적 왜곡의 혼합이다."

한운이 대답했다.

"내가 정파에 항복했다면, 나는 지워졌을 것이다. 그것이 정파의 방식이다. 모든 증거를 소멸시키고, 모든 기억을 재구성하고, 모든 진실을 덮는다. 나는 그것을 이미 겪었다. 십 년 전에."

백애림의 검이 조금 낮아졌다.

"그렇다면 너는."

"나는 단지 자신의 이름을 되찾으려는 자일 뿐이다."

한운이 말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파의 거짓이 드러날 것이다. 너도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순간, 한운의 몸이 급격히 변했다.

검은색이 목으로 번져올라갔다. 그의 호흡이 불안정해졌다. 그의 눈이 휘어졌다. 마치 무언가가 그의 내부에서 그를 집어삼키려 하는 것처럼.

백애림은 그것을 보며 검을 완전히 내렸다.

"날 죽여야 하는가?"

백애림이 물었다. 그것은 한운을 향한 질문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질문이었다.

한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검이 나왔다. 검은색으로 물든 손가락에 들려진 검. 그것이 공중을 그었다.

백애림은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올렸다.

두 검이 만났을 때, 백애림은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검의 충돌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의 충돌이었다. 정파의 세계와 그 바깥의 세계의 충돌.

그리고 자신은 어느 쪽에 서 있는가?

---

강안의 비밀 서재에서 최호는 밤새도록 문서를 정렬했다.

십 년 전 추방 사건의 기록들. 공식 기록에는 없는 현장 보고서들. 당시 참여자들의 증언.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재옥은 천마 종파의 마두를 죽였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한운의 이름을 도용했다. 구파일방 전체에 거짓을 퍼뜨렸다. 정파의 질서를 위협하는 악의 화신으로.

최호의 손가락이 한 장의 문서에서 멈췄다.

이재옥의 서명이 있는 명령서였다.

"천마 마두 운혼자를 제거하라. 이것이 구파일방의 안정을 위한 필요한 조치이다. 그의 죽음을 다른 자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정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 아래에는 다른 파벌의 지도자들의 서명이 있었다. 천정파의 인장. 백련교의 도장. 철혈방의 표식. 모두가 이 거짓에 동의했다.

최호는 손가락을 더 내려 문서의 끝을 읽었다.

"이 조치가 완수되면, 구파일방은 영원히 천마 종파의 위협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위협을 제거한 자는, 정파의 가장 충성스러운 수호자로 기억될 것이다."

이것이 진짜였다. 정파의 진짜 얼굴.

최호는 이 문서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그리고 그 위에 또 다른 종이를 놓았다. 당시 천마 종파의 기록. 운혼자의 제자들 명단. 그들이 모두 어떻게 죽었는지 기록된 것들.

모두가 '비정한 공법 수련자'라는 이유로 제거되었다.

모두가 거짓이었다.

최호의 눈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자신도 이 거짓의 일부였다. 자신도 도구로서 이 거짓을 실행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최호는 모든 문서를 정리했다. 그리고 봉투에 담았다. 그 봉투에는 세 개의 이름을 썼다.

서아. 백애림. 그리고 한운.

강호의 거짓을 드러낼 시간이 왔다. 아무리 감춘다 해도, 아무리 지운다 해도, 진실은 어딘가에 남아있다.

최호는 창문을 열었다. 강남의 밤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빗소리를 들으며 최호는 생각했다.

이 비가 언제까지 내릴 것인가? 언제까지 이 거짓이 강호를 적실 것인가?

그 답은 한운이 줄 것이다.

---

강남 객잔의 뒤 골목에서 백애림과 한운의 검은 여전히 부딪히고 있었다.

백애림은 느꼈다. 한운의 검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검법이 점점 더 밀리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운의 눈이 자신을 향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의 눈은 어딘가 멀리 있었다. 마치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한운."

백애림이 검을 거두며 말했다.

"무엇을 보고 있는가?"

한운이 검을 멈췄다.

"나 자신을."

그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그 순간, 한운의 몸에서 검은 빛이 흘렀다. 마치 무언가가 그의 내부에서 외부로 흘러나오는 것처럼. 그의 호흡이 끊겼다. 그의 손이 떨렸다.

백애림은 본능적으로 그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한운은 그것을 거절하듯 한 발 물러났다.

"가라."

한운이 말했다.

"정파에 돌아가라. 그리고 이재옥을 만나라. 그에게 묻거라. 십 년 전 너는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지금 너는 무엇을 하려는가."

"내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백애림이 물었다.

"할 수 없다면, 최호를 찾거라."

한운이 대답했다.

"그 암살자는 강호의 거짓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들을 모으고 있다. 그것이 너를 구할 것이다. 그것이 너를 정파의 도구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백애림은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그것이 한운의 마지막 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너는?"

"나는 죽음을 기다릴 뿐이다."

한운이 검을 내려놨다.

"그것이 내가 받은 저주다. 그리고 그 저주를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

---

밤이 깊어갈수록 강남의 골목들은 더욱 침침해졌다.

백애림은 객잔을 떠나며 생각했다. 정파로 돌아가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최호를 찾는 것이 맞는가?

하지만 그녀의 발은 이미 방향을 정하고 있었다. 변경의 시장으로. 철혈방의 옛 본거지로.

최호를 찾아야 한다.

---

강안의 비밀 서재에서 최호는 봉투를 들었다.

세 개의 이름이 적혀있는 봉투.

그리고 그 순간, 최호의 귀에 들렸다. 강남의 밤거리에서 울려오는 검음.

그것은 한운의 검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는 것도 들렸다.

최호는 창문을 열었다. 빗소리와 함께 그 검음도 들려왔다.

그 검음이 멈추는 날, 강호는 완전히 변할 것이다.

최호는 봉투를 다시 접었다. 그리고 서아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진실을 전하는 것은, 이제 시간과의 경쟁이 되었다.

한운의 시간이 다해가기 전에.

정파의 거짓이 영원히 덮히기 전에.

강호의 밤은 여전히 깊었다. 그리고 그 깊은 밤 속에서, 세 개의 길이 교차하고 있었다.

한운의 죽음의 길. 최호의 진실의 길. 백애림의 각성의 길.

그들이 어디서 만날 것인가는, 오직 시간만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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