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혈의 추격
강남의 밤은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한운은 여관 뒤 골목을 나가며 손을 펼쳤다. 손가락이 이미 손목까지 검게 변해 있었다. 천마공의 저주는 팔 전체를 좀먹고 있었고, 이 속도라면 며칠 안에 심장에 도달할 것이다. 한운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오히려 더 빠른 것이 낫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 좋다. 복수의 칼을 빨리 내려놓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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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가 골목 입구에 나타났다. 검은 허리에서 빠져 나와 있었다. 한운은 최호를 바라봤다. 철혈방의 암살자. 십 년 전 자신을 강호에서 지워버리려던 손 중 하나. 하지만 지금 그의 눈빛은 다르다. 살의가 아닌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죽여야 할 자인가?"
최호의 질문은 단순했다. 한운은 대답하지 않고 강남의 외곽으로 몸을 날렸다.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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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의 목소리는 이미 강남 전역에 퍼져 있었다.
"그 놈을 찾아라. 숨도 쉬지 못하게 만들어라."
철혈방의 추격꾼들이 흩어져 나갔다. 삼십 명. 아니, 오십 명. 강남의 밤거리는 순식간에 사냥터로 변했다. 한운은 이를 예상했다. 이재옥의 지시가 내려왔다는 뜻이다. 천정파와 철혈방이 손을 잡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다른 파벌들도 멀지 않을 것이다.
첫 번째 검객이 나타난 것은 강남 시장의 북쪽 골목이었다. 철혈방의 중급 검객. 손에 들린 칼은 긴 창처럼 생겼다. 한운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를 죽이려 오셨나?"
"그렇다."
검객의 답변은 간결했다. 신념이 아닌 명령일 뿐이었다. 한운은 그 순간 자신의 손가락이 더욱 검어지는 것을 느꼈다. 팔뿐만 아니라 가슴까지 차가워지고 있었다. 천마공이 깨어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운의 검이 뽑혔다.
혈천검은 검객의 내공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창을 들고 있던 손가락들이 먼저 검어졌다. 그 다음은 팔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슴이었다. 검객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천마공의 저주 앞에서 비명은 무의미했다. 그는 그냥 무너졌다.
한운은 검을 거두었다. 자신의 팔을 바라봤다. 검은색이 이제 팔꿈치를 넘어섰다. 어깨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 번의 검이 그의 수명을 며칠 깎아먹었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은 대략 십 번 정도일 것이다.
두 번째 검객은 골목을 나오며 나타났다. 이번에는 쌍검을 들고 있었다. 한운은 처음부터 검을 뽑지 않았다. 대신 발을 움직여 검객을 피했다. 쌍검이 공중을 휘젓자, 한운은 그 옆을 스쳐 지나갔다.
"왜 죽이지 않는가?"
검객이 물었다. 한운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 웃음에는 이미 따뜻함이 남아 있지 않았다. 차가운 금속음처럼 울렸다.
"너는 죽을 가치가 없다."
혈천검이 검객의 옆구리를 스쳤다. 한 검이 아니었다. 두 검, 세 검이 연이어 나갔다. 검객의 몸이 세 조각으로 나뉘어 떨어졌다.
한운은 자신의 손을 들어 봤다. 이제 가슴까지 검은색이 올라와 있었다. 목에도 검은 줄이 보였다. 호흡이 차기 시작했다. 가슴이 타올랐다. 하지만 한운은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좋았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세 번째 검객이 나타났을 때, 한운의 몸은 이미 반쯤 검어져 있었다. 팔은 어깨까지 잠식되었고, 목은 완전히 검은색이었다. 검객은 한운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늦었다. 혈천검이 그의 가슴을 관통했다. 검객이 무너지면서 한운의 얼굴까지 검은색이 번져 올라왔다. 왼쪽 뺨에서 시작된 검은 줄이 이마까지 향하고 있었다.
네 번째 검객은 더 강했다. 상급 검객의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한운과 그는 거리를 누비며 수십 번의 검을 교환했다. 한 번의 충돌마다 한운의 얼굴은 더욱 검어졌다. 오른쪽 눈 주변이 검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빠졌다. 목의 검은 줄이 조여오는 듯했다. 하지만 한운의 검은 점점 빨라졌다. 마치 시간이 남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마지막 검이 나갔을 때, 검객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천마공의 저주가 그의 몸을 순식간에 잠식했다. 한운은 검을 거두었다. 손이 떨렸다.
최호가 그 장면을 지붕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한운의 팔에 올라온 검은색. 목에 감긴 검은 줄. 얼굴의 절반을 덮어가는 검은 자국. 그가 휘두르는 검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 최호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한운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죽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것을 파괴하려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최호의 눈이 한운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검객을 처단한 후 한운이 멈춘 순간. 그 순간 한운의 눈에 뭔가가 흔들렸다. 의문이었다. 자신이 정말 이래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
"도구여."
최호는 중얼거렸다. 자신의 목소리를 향해서인지, 아니면 한운을 향해서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은 확실했다. 누군가는 한운을 도구로 만들려 했다. 그리고 한운도 자신을 도구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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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은 강남의 중심 건물에 올라 있었다. 그 위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운이 자신의 검객들을 하나둘 무너뜨리는 모습을. 한철의 얼굴은 창백했다. 창백함을 넘어 회색이었다.
"방주님!"
부하가 나타났다. 손에는 긴급 전령이 들려 있었다. 이재옥으로부터의 메시지였다.
한철은 편지를 펼쳤다. 손이 떨렸다.
'더 강한 전력을 보낼 것. 모든 파벌이 협력한다. 이번에는 반드시 끝내라.'
한철은 편지를 손에 쥐고 주먹을 쥐었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붉어졌다가 이내 공포로 창백해졌다. 그는 창밖을 내려다봤다. 한운이 또 다른 검객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이제 인간이 아니었다. 움직이는 죽음이었다.
"방주님, 저희가 더 나가겠습니까?"
부하가 물었다. 한철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는 한운의 움직임을 계속 따라갔다. 한운이 거리를 가로질러 자신을 향해 오고 있었다.
"물러나."
한철의 목소리는 떨렸다.
"모두 물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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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옥은 장안의 천정파 본산에 있었다. 그의 방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오직 촛불 하나만이 그의 얼굴을 밝히고 있었다.
"완전히 없어야 한다."
이재옥은 중얼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탁자를 두드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리듬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마치 심장이 뛰는 속도처럼.
"완전히."
방문이 열렸다. 다른 정파의 지도자들이 들어섰다. 백련교의 방장, 운몽파의 대검객, 그리고 철혈방의 한철. 한철의 얼굴은 다른 모두와 달랐다. 공포가 가득했다.
"형편이 어떤가?"
이재옥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광기가 감춰져 있었다.
"강남의 오십 명은 이미 전멸했습니다."
한철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다.
"그렇다면 더 보낼 것이다."
이재옥이 일어섰다. 그의 손은 주먹을 쥐고 풀렸다를 반복했다. 마치 뭔가를 부수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 것처럼.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의 눈빛에는 공포가 있었다. 한운이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구파일방의 모든 전력을 한운에게 집중한다. 그 자는 죽어야 한다. 완전히, 철저히, 더 이상 강호에 흔적이 남지 않도록."
다른 지도자들은 이재옥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빛에는 의문이 있었다. 이것이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집착이었다. 두려움이었다.
"그 자가 왜 그리도 위협적인가?"
운몽파의 대검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재옥은 그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이미 광기에 물들어 있었다.
"그 자는 우리가 만든 거짓을 부술 수 있다. 십 년 전의 거짓을 말이다. 운혼자의 죽음. 그 진실이 강호에 알려진다면, 우리 구파일방의 정당성은 모두 무너진다. 우리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이 무너진다."
이재옥의 말은 끝났지만, 그 여운은 방 안에 남아 있었다. 십 년 전의 거짓.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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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는 철혈방의 기록실에 있었다. 방주실에서 가져온 열쇠로 문을 열었다. 십 년 전의 기록들이 쌓여 있었다. 추방 사건의 전말. 관련자들의 진술. 모든 것이 여기에 있었다.
최호는 천천히 문서들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이미 그는 알고 있었다. 기록과 현장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보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르다.
첫 번째 문서: 한운의 추방 이유. '천마공 수련의 혐의로 강호에서 추방.'
두 번째 문서: 증인 진술. 그것은 모두 같은 내용이었다. 모두가 한운이 천마공을 수련했다고 진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진술한 내용은 너무도 일관되었다. 마치 누군가가 미리 대본을 주고 외우게 한 것처럼.
최호는 더 깊이 들어갔다. 현장 조사 기록. 천혼굴 근처에서 발견된 흔적들. 그런데 이상했다. 기록에는 '한운의 천마공 흔적'이라고 되어 있지만, 최호는 그것이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천마 종파의 흔적이었다. 정확히는, 천마 종파의 마두의 흔적이었다.
최호의 손가락이 문서 위에서 멈췄다. 그것은 이재옥의 서명이 있는 종합 보고서였다. 날짜는 십 년 전 추방 사건 직후였다. 그 문서에는 한 줄이 적혀 있었다:
'천마 종파의 마두 운혼자는 이미 사망 상태. 한운을 강호에서 완전히 제거할 것. 흔적이 남지 않도록.'
최호는 손가락을 더 내렸다. 그 아래는 지워져 있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검은 잉크를 칠해 지워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흰 종이에 비친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최호는 촛불을 들었다. 손가락으로 종이를 살짝 들어올리며 빛을 비추자, 지워진 글자들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글자가 떠오르는 순간, 최호의 숨이 멈췄다.
'만약 이 사실이 강호에 알려진다면, 우리 구파일방의 정당성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따라서 그 누구도 이를 말해서는 안 된다. 한운이 살아 돌아올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만약을 위해...'
그 다음 글자들은 더욱 흐렸다. 하지만 최호는 읽을 수 있었다. 촛불을 더 가깝게 가져가며 문서를 기울였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가 가진 모든 것과 함께. 그가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입도, 그가 보유한 증거도, 그의 존재 자체도.'
최호는 문서를 내려놨다. 손가락이 종이 위에서 떨렸다. 종이가 쓸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 소리는 마치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십 년 전, 자신은 한운을 추방하는 데 동의했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천마공의 위협으로부터 강호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지금, 손에 들린 문서는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지켜온 것은 강호가 아니라 구파일방의 거짓이었다. 자신이 추방한 것은 위협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최호의 가슴에 분노가 치솟았다. 배신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것은 결단이었다. 한운을 찾아야 한다. 십 년 전의 거짓을 알고 있는 자, 그리고 그 거짓으로 인해 타락해 가는 자를 찾아야 한다. 이번에는 추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함께 드러내기 위해.
최호는 기록실을 빠져나왔다. 손에는 지워진 문서가 들려 있었다.
강남에서는 여전히 검의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시간이 무너지는 것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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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물러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혼자 남아 한운을 기다렸다.
강남의 밤거리는 이제 한운과 한철 둘뿐이었다.
한운이 나타났을 때, 한철은 그를 바라봤다. 그의 팔은 완전히 검어져 있었다. 목도 검었다. 얼굴의 절반도 검은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천마로의 변화가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왜 날 이렇게 두려워하는가?"
한운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이미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금속음 같았다. 차갑고 날카로웠다.
한철은 한 발 물러섰다. 한운이 한 발 나아갔다.
"우리가 지워버렸다고 생각했다. 완전히."
한철의 목소리는 떨렸다. 강호의 방주, 철혈방의 최고 우두머리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넌 돌아왔다. 우리의 거짓과 함께. 우리가 한 일을 보여주려고. 우리가 죽인 것들을 보여주려고. 그래서 넌 돌아왔다. 그래서 넌 계속 나아간다."
한철의 고백은 계속됐다. 그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너를 지워버렸다고 생각했다. 십 년 전에. 하지만 우리가 정말 지운 것은 무엇인가? 너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의 양심인가?"
한철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용서해 줄 수 있겠는가?"
한운은 한철을 바라봤다. 그 순간, 한운의 눈 안에 뭔가가 흔들렸다. 의문이었다. 자신이 정말 복수를 위해 돌아온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가. 자신이 정말 천마가 되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천마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그 의문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천마공이 다시 깨어났기 때문이었다. 한운의 손이 떨렸다. 검을 쥔 손가락들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목에 감긴 검은 줄이 더욱 조여 올랐다. 숨이 막혔다. 가슴이 타올랐다. 심장의 박동이 점점 빨라졌다. 마치 광기가 신경을 타고 흐르는 것처럼. 자신이 천마가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성의 끈이 하나둘 끊어지고 있었다.
한운은 검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한 검이면 충분했다. 한 검이면 모든 것이 끝났다.
그런데 왜?
검이 멈췄다. 한운의 팔이 심하게 떨렸다. 천마공의 광기와 무언가 다른 것이 충돌하고 있었다. 복수의 칼과 무언가 다른 감정이 싸우고 있었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검의 무게가 점점 무거워졌다. 그것이 무엇인지 한운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이 남자를 죽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니, 죽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무서웠다.
"왜?"
한철이 물었다. 한운이 왜 자신을 죽이지 않았는지.
한운은 검을 내렸다. 손이 계속 떨렸다. 목의 검은 줄이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호흡이 가빠졌다. 자신이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면서도 여전히 무언가를 거부하는 자신. 그것이 무엇인가?
"모르겠다."
한운의 대답은 솔직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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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운은 강남을 떠났다. 뒤에는 한철이 무릎을 꿇은 채로 남겨졌다.
강남의 밤거리를 빠져나가며 한운은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팔은 이미 어깨까지 검어져 있었다. 목은 완전히 검은색이었다. 얼굴도 반 이상이 타락해 가고 있었다. 죽음이 아닌 변화였다. 인간에서 천마로의 변화. 그것이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지 한운은 깨달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며칠이 아니라 몇 시간일지도 모른다.
한운은 손을 펼쳤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것은 죽음의 떨림인가, 아니면 공포의 떨림인가. 자신이 천마가 되는 것이 두려운가. 아니면 자신이 천마가 되어도 여전히 무언가를 지키려는 자신이 더 두려운가.
그 순간,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불빛이 나타났다. 최호가 기록실을 빠져나와 한운을 찾고 있었다. 손에는 지워진 문서가 들려 있었다. 십 년 전의 거짓을 알고 있는 자, 그리고 그 거짓으로 인해 타락해 가는 자를 찾기 위해.
이재옥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었다. 촛불 앞에서 손가락을 두드리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리듬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마치 심장이 뛰는 속도처럼. 그의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두드렸다. 그의 광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시작되고 있었다. 한운이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이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 그 공포가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강남의 밤은 여전히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