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고본
상업용 빌딩 로비의 거울. 그 속에서 자신의 웃음을 마주한 지 정확히 몇 시간이 지났는지 이준호는 계산할 수 없었다. 시간이란 개념이 이미 무너져 있었다. 법무법인 정의를 나온 후,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택시를 탔다가 내렸다. 지하철을 탔다가 내렸다. 그 과정에서 검은 차가 여전히 자신을 따르고 있는지 확인했다. 있었다. 그리고 없었다. 자신의 눈이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는 시청역 도서관에 들어갔다.
밤 11시 45분. 도서관 폐쇄 직전이었다.
준호는 자신의 가방에서 오래된 노트를 꺼냈다. 2009년 7월. 15년 전 그것을 기록했을 때, 그는 경찰청 특수범죄수사과의 신입 프로파일러였다. 손으로 쓴 글씨는 성급했고, 여백은 드물었다. 페이지마다 수정액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때의 자신은 완벽함을 추구했다. 완벽함이 정의라고 믿었다.
첫 페이지를 넘겼다.
**강도살인 사건—범인 프로파일 초안**
**2009년 7월 15일 작성**
**1. 기본 특성** **— 나이: 25~35세 (육체적 능력과 심리적 성숙도 고려)** **— 체격: 평균 이상 (피해자와의 물리적 대항 가능성)** **— 성별: 남성 (폭력성 및 범행 시간대 고려)**
준호는 여기서 멈췄다.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호흡이 얕아졌다. 손가락이 종이 위에서 미끄러졌다.
**2. 심리적 특성**
**— 강압성: 피해자에게 저항의 기회를 주지 않음. 이는 심리적 우월감과 계획성을 의미.** **— 조직 경험: 범행의 효율성과 증거 처리 방식에서 조직 활동 경험이 드러남.** **— 권력 욕구: 단순 금품 탈취가 아닌 피해자에 대한 '지배'를 목표로 함.**
준호의 손이 노트에서 떨어졌다. 다시 읽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강압성. 조직 경험. 권력 욕구.
이것들은 박준영의 특성이 아니었다. 박준영은 당시 28세였고, 조직 활동 경험이 없었다. 대학을 중퇴한 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었다. 그의 심리 진단에서 나온 것은 '우유부단함'과 '사회 적응 불능'이었다.
그것은 오재훈에게 있었다.
15년 전 현장에서 준호가 목격한 40대 남자. 박준영과 싸우던 그 남자. 경찰청 특수범죄수사과 팀장 오재훈.
준호는 노트를 덮었다가 다시 폈다. 손가락이 페이지를 넘겼다. 다음 섹션으로.
**3. 현장 행동 분석**
**— 범인은 피해자의 저항을 예상했으나,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함.** **— 이는 피해자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거나, 피해자가 자신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 심리 상태를 시사.** **— 범인은 증거 은폐에 능숙함. 현장 정리, 증거 처리, 증인 제거 등에서 경험이 드러남.**
준호의 눈이 마지막 문장에 고정되었다. 증인 제거.
15년 전, 현장에 있던 증인은 정혜경과 박준영. 그리고 그 40대 남자. 그 남자는 왜 거기 있었는가?
준호는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4. 범인의 심리적 편집증**
**— 범인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한 것'으로 재해석할 능력이 뛰어남.** **— 피해자에 대한 적개심이 단순 금전욕 이상의 무언가를 포함하고 있음.** **— 범인은 자신의 행동이 '필요'라고 믿으며, 그것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소유.**
준호는 이 페이지를 읽고 숨을 쉬지 않았다. 정확히 37초간.
자신의 행동을 정당한 것으로 재해석할 능력. 도덕적 우월성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능력.
그것은 박준영에게 없었다. 박준영은 15년 동안 감옥에서 침묵했다.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지 않았다. 단지 무죄라고 말했을 뿐이다.
오재훈은 어떤가?
준호는 오재훈의 얼굴을 기억했다. 지하 3층 주차장에서 만났을 때, 그의 표정은 무엇이었는가? 죄책감이 아니었다. 자신감이었다. 자신의 행동이 옳다는 확신이 그의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이 조직이 없으면 이 도시는 존재할 수 없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들이 있지. 넌 그걸 몰라."
오재훈의 말이었다.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논리. 그것이 바로 준호가 15년 전 노트에 기록한 '도덕적 우월성'이었다.
준호는 노트를 내려놓고 도서관 천장을 봤다. 형광등의 불빛이 자신의 망막을 태웠다. 눈을 감았다.
도서관 직원이 청소기를 끌고 지나갔다. 밤 11시 50분. 폐쇄 시간이 임박했다.
준호는 노트를 다시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 초안의 끝.
**5. 최종 분석**
**— 범인의 심리 패턴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 이는 프로파일러의 분석 능력이 정확함을 증명한다.** **— 범인의 신원 특정 가능성: 매우 높음 (90% 이상)**
그리고 그 다음 페이지. 초안의 진짜 끝.
**— (메모) 현장에서 40대 남성이 목격됨. 박준영과 싸우는 모습 목격.** **— (메모) 해당 남성의 신원 확인: 경찰청 특수범죄수사과 팀장 오재훈.** **— (메모) 오재훈과 피해자 김태식의 관계 확인 필요.**
준호는 이 문장들을 읽었다. 자신이 15년 전에 쓴 문장들. 그리고 그것들이 최종 보고서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가 삭제했는가?
준호는 최종 보고서를 펼쳤다.
**경찰청 특수범죄수사과 프로파일링 보고서**
**사건명: 강남구 은행 인근 강도살인 사건**
**피의자: 박준영 (28세, 남)**
**프로파일러: 이준호 경위**
**결론: 박준영은 해당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며, 범죄 심리 분석상 100% 확실성을 가짐.**
그리고 그 아래.
**보고서 승인자: 경찰청 특수범죄수사과 팀장 오재훈**
준호의 손이 떨렸다. 초안에는 분명히 있었던 오재훈의 이름이, 최종 보고서의 본문에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그 보고서는 오재훈의 서명으로 승인되었다.
누가 그것을 삭제했는가?
준호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시간은 밤 11시 58분. 도서관은 이제 거의 비어 있었다. 직원이 그에게 다가왔다.
"죄송하지만, 폐쇄 시간입니다."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휴대폰 화면을 켰다. 손가락이 번호판을 눌렀다.
전화가 울렸다.
"누구세요?"
이명재의 목소리였다.
"내 초안에서 오재훈의 이름이 여러 번 나타난다. 그것을 최종 보고서에서 누가 삭제했는지 알아야 한다."
준호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감정이 완전히 제거되었다.
침묵이 흘렀다. 10초.
"그건 너의 서명이 있는 보고서다. 너 스스로 삭제했을 수도 있다."
이명재의 말이었다. 그것은 사실이었고, 동시에 거짓이었다.
"나는 그것을 삭제하지 않았다. 나는 초안을 제출했다. 나머지는 누군가가 했다."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오재훈이거나, 오재훈의 명령을 받은 사람이다."
이명재가 말했다.
준호는 휴대폰을 내렸다. 도서관의 형광등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유리 표면이 자신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책장의 유리. 도서관 입구의 대형 창. 거울은 어디에나 있었다.
"내일 법정에 가겠다."
준호가 말했다.
"나는 증언할 거다. 모든 것을."
이명재가 잠깐 말을 멈췄다.
"넌 그러면 끝난다. 경찰청도 끝나고, 네 경력도 끝난다."
"나는 이미 끝났다. 15년 전에."
전화를 끊었다. 준호는 노트와 최종 보고서를 가방에 넣었다. 도서관을 나가면서, 자신의 모습이 유리 표면에 반사되는 것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도서관 밖, 새벽 12시 3분.
서울의 밤거리는 여전히 깨어 있었다. 택시들이 지나가고, 편의점 불이 반짝였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검은 차가 준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준호는 그것을 봤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검은 차의 방향으로 걸어갔다.
검은 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준호는 차 옆에 멈춰 섰다. 창문이 내려갔다. 오재훈의 얼굴이 보였다. 담배를 물고 있었다.
"법정에 가겠다고?"
오재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렇다."
준호가 대답했다.
"넌 뭘 증언할 생각이야? 네가 쓴 보고서? 그 보고서엔 넌 박준영을 범인이라고 명시했다. 그게 증거다. 넌 그 증거의 출처일 뿐이야. 법원은 물을 거야. 왜 넌 처음엔 그렇게 확신했는데, 이제 와서 다르다고 말이야?"
준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오재훈의 말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이것은 함정이었다. 자신의 분석이 정확했다는 확신 때문에, 자신은 초안을 제출한 후 최종 보고서를 수정할 때 오재훈의 이름을 삭제하는 것을 보고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의심했지만 행동하지 않았다.
"초안이 있다."
준호가 말했다.
"내가 쓴 초안에는 넌 의심 대상이었다."
오재훈이 담배연기를 내뱉었다.
"그 초안이 남아 있나?"
"있다."
준호가 대답했다. 거짓이었다. 하지만 그는 있다고 말했다.
오재훈이 웃음을 터뜨렸다. 낮고 깊은 웃음이었다.
"초안이 남아 있다는 게 뭐가 중요해? 그 초안도 넌 쓴 거다. 넌 15년 전엔 박준영을 범인이라고 확신했어. 넌 그 확신으로 보고서를 썼고, 그 보고서로 그를 감옥에 집어넣었어. 이제 와서 초안이 다르다고? 법원은 넘 물을 거야. 넌 왜 초안과 최종 보고서가 다른지 설명할 수 있나? 넌 왜 자신의 분석을 수정했나? 누가 시켰나? 아니면 넌 처음부터 거짓말을 했나? 그 둘 중 하나면 넌 끝난다. 거짓 증언죄이거나, 직무 유기죄이거나."
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오재훈이 말한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했다. 이것은 법적 완벽성이었다. 이것은 15년 전부터 계획된 함정이었다. 자신이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
"그리고 또 하나."
오재훈이 담배를 끼웠다. 연기가 차 밖으로 흘러나왔다.
"박준영이 죽었다."
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제 새벽 4시경, 감옥 독방에서. 교수형. 자살이라고 기록될 거야."
오재훈이 천천히 말했다. 마치 준호가 이미 알고 있어야 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듯이.
"그럼 이제 넌 뭘 증언할 거야? 죽은 사람을 위해? 그리고 넌 그 죽음의 책임도 져야 해. 왜냐하면 넌 그를 감옥에 집어넣은 사람이거든. 15년 동안 그는 무죄를 외쳤어. 아무도 듣지 않았지만. 그리고 어제 그는 포기했어. 넌 그것을 알아야 해. 그의 죽음은 너의 책임이야."
준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재훈의 말이 정확했다. 박준영의 죽음. 그것은 자신의 프로파일링 때문이었다. 자신의 확신 때문이었다. 자신의 완벽함이라고 생각했던 그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오재훈이 창문을 조금만 내렸다. 준호의 눈과 마주쳤다.
"너의 프로파일링 능력? 그게 정확했던 이유를 알아? 그건 너의 능력 때문이 아니야. 그건 내가 너한테 맞춰서 증거를 만들었기 때문이야. 너의 분석을 내가 증거로 구성했거든. 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던 거야. 넌 자신의 분석을 정확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건 내가 만든 환영이었어. 넌 너 자신을 보고 있었던 거야. 넌 절대 나를 볼 수 없었어."
오재훈이 창문을 올렸다. 검은 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준호는 그 차를 따라가려 했지만,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준호는 거리에 혼자 남겨졌다. 새벽 12시 17분. 서울의 밤거리에서.
그의 손이 떨렸다. 호흡이 얕아졌다. 마치 익사하는 사람처럼. 박준영이 어제 새벽 4시에 느꼈을 그 감각. 그것이 지금 준호를 휩싸고 있었다. 무력감. 절망감. 그리고 그것을 뚫고 나오는 분노.
분노가 준호의 가슴을 태웠다. 차갑고 날카로운 분노였다. 그것은 죄책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결연함이었다.
준호는 휴대폰을 꺼냈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명재에게 전화했다.
"박준영이 죽었다."
"알고 있다."
이명재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어제 새벽. 감옥에서. 자살로 기록될 예정이다."
준호는 침묵했다. 그 침묵 속에서 박준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15년 동안 감옥에서 침묵했던 그 얼굴. 그리고 이제 그 침묵이 영원해졌다.
"계속 진행한다."
이명재가 말했다.
"박준영이 죽었다고 해서 진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오히려 그의 죽음 자체가 증거가 된다. 그리고 너는 법정에서 증언한다. 박준영이 무죄였다는 것을. 그리고 누가 그를 함정에 빠뜨렸는지."
"오재훈이 나한테 말했어. 난 증언해도 진다고. 왜냐하면 내가 초안을 제출했는데 최종 보고서를 수정했으니까, 법원은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거라고. 그리고 그게 맞아. 그는 그걸 이미 계산했어."
"그래,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증언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리고 다른 증거들이 있다. 정혜경이 제출한 원본 파일. 한수진이 제출한 법의학 데이터. 그리고 경찰청 기록실의 기록 조작 흔적. 이 모든 것들이 너의 증언을 뒷받침할 거야."
준호는 침묵했다. 이명재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오재훈은 너무 완벽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너는 또 하나의 증거를 제출할 수 있다."
이명재가 말했다.
"뭐?"
"너 자신. 너의 초안. 너의 분석 노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너의 증언. 너는 법정에서 말해야 한다. 넌 15년 전에 박준영을 범인이라고 결론지었던 이유. 그리고 지금 와서 그 결론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은 이유. 그리고 누가 너를 조종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왜 넌 그걸 받아들였는지. 왜 넌 의심하지 않았는지. 그것이 너의 약점이자, 동시에 너의 강점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실이거든."
준호의 손이 떨렸다. 이명재의 말이 정확했다.
"그럼 난 경찰청을 고소당할 거야."
"그렇다. 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가 원하는 거야. 경찰청 특수범죄수사과가 고소당하고, 오재훈이 법정에 선다. 그리고 박준영의 무죄가 밝혀진다. 그리고 그의 죽음이 정당화되지 않지만, 적어도 의미를 갖게 된다."
"하지만 박준영은 죽었다."
준호가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렇다. 박준영은 죽었다. 하지만 그의 억울함은 살아난다. 그리고 너는 그것을 증언한다. 너는 거울을 깨뜨린다."
전화가 끊겼다.
준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손이 계속 떨렸다. 호흡이 빨라졌다. 마치 산소 부족에 빠진 것처럼. 새벽 12시 34분. 서울의 밤거리. 거리의 가로등이 그의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박준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15년 동안 감옥에서 침묵했던 그 얼굴. 그 얼굴의 눈. 그 눈 속의 절망.
준호는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봤다.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손바닥에 땀이 흘렀다. 호흡이 얕았다. 가슴이 철렁했다. 시각이 흐려졌다.
그것이 죽음의 감각이었다.
그것이 박준영이 어제 새벽 4시에 느꼈던 것이었다.
그리고 준호는 그것을 느끼면서, 동시에 그것을 깨뜨리기로 결심했다.
준호는 택시를 탔다.
"어디로 가세요?"
택시 기사가 물었다.
"강남역."
준호가 대답했다.
택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준호는 창밖을 봤다. 서울의 밤거리가 흘러갔다. 가로등, 편의점, 닫힌 상점들, 그리고 거기 반사된 자신의 얼굴. 거울은 여전히 어디에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준호는 그것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는 그것을 깨뜨리기로 했다.
강남역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새벽 1시 12분이었다. 준호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이 택시 창에 반사되는 것을 봤다. 그 얼굴은 더 이상 자신감으로 가득하지 않았다. 대신 그것은 결연함으로 가득했다.
그는 휴대폰을 켜고, 이명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법정에서 만나자. 모든 것을 증언하겠다.*
메시지를 보낸 후, 준호는 강남역 입구에 서 있었다. 새벽 1시 12분. 서울은 여전히 깨어 있었고, 어딘가에서 경찰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그 사이렌이 자신을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준호는 강남역 지하로 내려갔다. 24시간 편의점이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커피를 한 잔 샀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뉴스를 검색했다.
*감옥에서 변사자 발생, 박준영 재소자 자살로 추정.*
기사가 떴다. 그리고 그 기사의 다음 줄에는:
*경찰청 특수범죄수사과, 15년 전 강도살인 사건 재심 신청 및 증거 조작 혐의로 감찰 중.*
준호는 기사를 닫았다. 그리고 커피를 마셨다. 그 커피는 차가워 있었다.
편의점의 거울에 그의 얼굴이 반사되었다. 이번에는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그 얼굴을 직시했다. 그 얼굴 속에서 자신을 봤다.
진짜 자신. 거울 속이 아닌, 현실의 자신.
새벽 1시 47분.
준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알 수 없는 번호였다. 그는 받았다.
"이준호?"
남자의 목소리였다. 차갑고, 낮고, 위협적이었다.
"누구신가요?"
준호가 물었다.
"난 상관없어. 중요한 건 넌 내일 법정에 가면 안 된다는 거야."
"그럼 뭘 하라는 건가요?"
"도망쳐. 지금 당장. 이 나라를 떠나. 그럼 넌 살 수 있어."
준호는 침묵했다. 협박이었다. 명백한 협박.
"그리고 넌 도망칠 거야. 왜냐하면 넌 겁쟁이니까. 넌 항상 그랬어. 자신의 능력에 취해서, 자신의 완벽함에 빠져서, 거울 속에만 살았거든. 넌 현실을 직시할 수 없어. 넌 항상 그랬어."
준호는 편의점의 거울을 봤다. 그 거울 속의 자신. 그리고 그 자신 뒤로 보이는 거리. 그 거리의 사람들. 그들은 모두 살아 있었다.
"아니다."
준호가 말했다. 자신의 목소리가 낮고 단호했다. 손이 떨렸지만,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난 도망치지 않는다."
"그럼 넌 죽는다. 너의 위치는 이미 파악했다. 지금 강남역 편의점. 혼자다. 우리는 언제든 찾을 수 있어."
준호는 침묵했다. 발신인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죽음이 준호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15년 동안. 박준영의 죽음이 준호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
준호가 말했다. 호흡이 깊어졌다. 가슴이 진정되었다. 손이 여전히 떨렸지만, 이제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결연함이었다.
"난 이미 죽었다. 15년 전에."
전화가 끊겼다.
준호는 휴대폰을 내렸다. 편의점 카운터의 직원이 그를 봤다.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직원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혹은 듣고도 모른 척했다.
준호는 편의점을 나갔다. 그리고 강남역 광장으로 나왔다. 새벽 2시 3분. 서울은 여전히 깨어 있었다.
그리고 준호는 법정으로 가는 길을 걸어갔다. 느리게. 그리고 단호하게.
거리의 거울들이 그의 모습을 반사시켰다. 거울 속의 준호. 그리고 현실의 준호. 이제 그 둘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