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4화 「증인의 침묵」

형광등이 흔들렸다. 법의학실을 나간 준호는 계단을 내려가며 핸드폰을 꺼냈다. 20개의 부재중 전화. 모두 같은 번호였다. 특수범죄수사과 팀장. 경찰청이 자신을 버렸다는 신호였다.

정혜경의 주소는 이명재 검사로부터 얻었다. 강북구 수유동 빌라. 한강을 건넌 지 15분 후 준호는 낡은 골목 안에 서 있었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창문들은 모두 커튼이 쳐져 있었다. 이 동네는 경찰청에서 30분 거리였지만 다른 세상 같았다.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시 눌렀다. 여전히 침묵.

준호는 손가락을 초인종 위에 올린 채로 45초를 셌다.

문이 열렸다. 체인만 채워진 채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목소리는 희미했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악기처럼 거칠었다.

"정혜경입니까? 경찰청 기록 관리실에 다니던 분이죠."

"네."

그 한 글자가 전부였다.

"15년 전 일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경찰청에서 보내셨나요?"

"개인 자격입니다."

침묵이 흘렀다. 준호는 자신의 얼굴이 현관 카메라에 어떻게 비칠지 생각했다. 범죄심리분석가 이준호. 지금은 경찰청이 제거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었다.

"혼자 오셨나요?"

"혼자입니다."

"증거를 가지고 오셨나요?"

"진실을 가지고 왔습니다."

문이 천천히 닫혔다. 체인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다시 열렸다.

정혜경은 예상보다 작았다. 150센티미터 정도. 회색 머리는 단정하게 묶여 있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그녀의 눈은 준호를 마주치지 않았다. 대신 복도의 바닥을 보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거실은 어두웠다. 창문이 두꺼운 커튼으로 차단되어 있었고, 형광등 대신 노란 조명만 켜져 있었다. 소파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지만, 준호는 서 있기로 했다.

"왜 저를 받아주셨나요?"

"경찰청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정혜경은 소파에 앉았다.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무릎 위의 손가락들이 계속 움직였다.

"15년 전 사건의 증인이셨군요."

"그렇습니다."

"증언 기록에는 없습니다."

"네. 없습니다."

준호는 정혜경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 확증편향. 자신이 이미 가진 결론에 맞는 정보만 수집하는 심리 메커니즘. 그것이 자신을 얼마나 깊이 옭아맸는지 지금 깨닫고 있었다. 15년 전 정혜경은 신뢰도 낮은 증인으로 분류되었다. 그 순간부터 그녀의 증언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날 무엇을 보셨나요?"

정혜경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들었다. 그 눈동자에는 15년간 갇혀 있던 것들이 고여 있었다.

"은행 인근에 남자가 두 명 있었어요. 한 명은 젊었고, 한 명은 나이가 많아 보였습니다. 40대쯤이었어요.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정혜경이 말을 잇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그 사람이 더 위험해 보였습니다. 얼굴에 흉터가 있었어요. 왼쪽 관자놀이에서 턱까지 내려오는. 그리고 말하는 방식이 이상했어요. 마치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낮추고 있는 것처럼. 움직임도 그랬어요. 모든 게 계산된 것 같았습니다."

준호의 호흡이 얕아졌다. 정혜경은 계속했다.

"젊은 남자가 그 사람과 싸우고 있었어요. 아니, 싸우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맞고 있었어요. 그런데 젊은 남자가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이미 포기한 것처럼."

"박준영입니까?"

"그렇습니다. 나중에 뉴스에서 그 이름을 알았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어떻게?"

"나이 많은 남자가 박준영을 은행 쪽으로 밀어냈거든요. 마치 무대 위에 배우를 배치하듯이요. 그 다음 박준영은 은행으로 들어갔고, 나이 많은 남자는 다른 쪽으로 사라졌어요."

정혜경의 손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저는 112에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온 뒤 형사가 저를 따로 불렀어요. 미성년자 동반도 없이요."

"누가요?"

"형사라고 했어요. 이름은..."

정혜경이 입을 다물었다. 거짓이었다. 그녀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 준호는 그것을 알아챘다. 상대방이 특정 정보를 피할 때의 신체 언어—눈의 움직임, 목의 긴장, 숨의 깊이.

"기억나실 것 같은데요."

정혜경이 눈을 감았다. 오래도록.

"협박받으셨나요?"

그녀의 눈이 떠졌다. 검은 동공이 준호를 똑바로 응시했다.

"형사가 말했어요. 만약 이 증언을 계속하면 우리 딸이 위험할 수 있다고. 우리 딸이 대학교 1학년이었거든요. 혼자 자취하고 있었어요. 형사는 사진을 보여줬어요. 우리 딸의 사진. 어디서 얻은 사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진 속에 화살표가 그어져 있었어요. 목을 향해서요."

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피부 아래의 혈관이 수축했고, 뇌신경계가 과부하 상태에 진입했다. 이것이 범죄심리분석가의 저주였다. 다른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반응했지만, 그는 즉시 프로파일을 그렸다. 협박의 정교함. 위협의 정밀함. 모든 것이 의도적으로 설계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설계의 도구로 자신이 사용되었다는 깨달음. 자신의 프로파일링 능력이 조작된 증거를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데 동원되었다. 자신은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결론에 자신의 명성이라는 무게를 얹고 있었다.

"그 형사의 이름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정혜경은 다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이유였다. 그녀는 준호의 변화를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모든 것이 붕괴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었다.

"당신도 모르셨나요?"

"뭘요?"

"당신도 조종당했다는 것을요."

준호는 소파 팔걸이에 손을 짚었다. 다리가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할 수 없었다. 15년. 자신의 모든 판단이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었다는 깨달음. 그것은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신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완전히 달랐다.

준호는 소파에 몸을 내던졌다. 호흡이 얕아졌다. 손가락이 경련을 일으켰다. 정보 처리의 과부하. 뇌 속에서 수백 개의 연결고리가 한 순간에 재배열되고 있었다.

정혜경은 거실 창가로 걸어갔다. 커튼의 가장자리를 조금 들었다. 바깥은 저녁이었다. 골목의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고 있었다.

"당신이 가야 할 곳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준호는 정혜경을 보았다. 그녀의 뒷모습은 여전히 작고 위축되어 있었다.

"왜 지금 말씀하셨나요? 15년을 침묵하셨는데."

정혜경은 커튼을 내렸다. 천천히 돌아섰다.

"딸이 결혼했어요. 작년에. 그리고 손주가 생겼어요. 남자아이였어요. 그 아이를 보면서 생각했어요. 이 아이가 커서 누군가에게 억울한 죄를 뒤집어쓴다면? 그리고 그걸 아는 사람이 침묵한다면?"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결연했다.

"그리고 박준영이 재심을 청청했다는 뉴스를 봤어요. 이미 15년이 지났는데도 그 사람은 여전히 싸우고 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깨달았어요. 내가 침묵하는 동안 그 사람은 죽어가고 있었다는 걸."

준호는 천천히 일어났다. 정혜경의 눈을 마주쳤다.

"당신이 말씀해주신 형사의 이름... 꼭 필요합니다."

정혜경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절이 아니었다.

"그 형사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이 이름을 말하면, 당신의 딸뿐 아니라 당신도 위험해진다'고. 그래서 저는 이름을 피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준호를 바라봤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당신의 눈이 말해주고 있어요."

준호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15년 전 사건 현장. 현장에서 자신을 가장 먼저 맞이했던 사람. 증거를 수집하고, 방향을 제시했던 사람. 자신의 프로파일링을 신뢰한다며 모든 것을 맡겼던 사람.

오재훈.

그 이름이 준호의 입에서 나올 때, 정혜경의 눈이 떨렸다.

"당신이 말했어요."

정혜경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그 형사가 말했어요. 당신이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이 모든 것을 지시했다고. 당신이 박준영을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라고 지시했다고."

준호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15년 전의 모든 판단. 모든 결정.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었다는 것.

"그렇다면 진짜 범인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 나이 많은 남자는 분명 범인이었어요. 아니, 적어도 범행에 직접 관여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그 형사는 그 남자를 보호하고 있었어요."

준호는 정혜경을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섰다. 가야 할 곳이 있었다.

"조심하세요."

정혜경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 형사는 당신을 이용하고 버릴 사람입니다. 당신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지는 순간, 당신도 박준영처럼 버려질 거예요."

---

경찰청으로 돌아가는 길에 준호는 한강대교를 지나갔다. 야간 조명이 강물을 주황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차선 위의 수천 대의 자동차들. 그 안에 앉은 수천 명의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진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진실들이 얼마나 거짓으로 왜곡될 수 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경찰청 지하 주차장에 진입했을 때는 밤 10시였다. 주차장은 거의 비어 있었다. 퇴근 시간이 지난 후였다. 준호의 차가 들어갈 때쯤 다른 차가 따라왔다. 검은색 승용차. 번호판이 보이지 않았다.

준호는 자신의 주차 위치에 차를 댔다. 엔진을 끄려는 순간, 누군가 차 창을 두드렸다.

창문을 내렸다.

남자가 서 있었다. 40대.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왼쪽 관자놀이에서 턱까지 내려오는 흉터가 형광등 아래서 선명했다.

준호는 그 순간 알아챘다. 정혜경의 증언 속 그 남자. 은행 쪽으로 사라진 그 남자. 검은 코트의 그림자.

하지만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완성되기 때문이었다.

"경찰청 관계자입니까?"

"그렇습니다."

"저를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남자의 목소리는 낮았고, 차분했다. 위협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그 차분함 자체가 가장 큰 위협이었다.

"누세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남자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을 들었다.

"뉴스를 보셨나요?"

준호는 화면을 봤다.

**[속보] 경찰청 수석 범죄심리분석가 이준호, 증거 조작 혐의로 구속 예상**

**[단독] 오재훈 과장 "이준호가 박준영 사건 조작을 지시했다"**

준호는 화면을 읽을 수 없었다. 글자들이 겹쳐 보였다. 자신의 신화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15년간 쌓은 모든 것. 그 모든 것이 거짓 위에 세워져 있었다.

"오재훈이 당신을 배신했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그 형사는 자신의 생명을 위해 당신을 지시자라고 진술했습니다. 당신이 박준영을 감옥에 보내라고 지시했다고요."

준호는 주차장 벽에 등을 기댔다. 다리가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할 수 없었다. 오재훈. 15년을 함께 일했던 동료. 그 남자가 자신을 배신했다. 아니, 처음부터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자신을 선택했던 것이다.

"박준영을 풀어주려고 하셨나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왜요?"

남자가 한 발 가까워졌다. 주차장의 형광등이 떨렸다.

"박준영이 풀려나면 그 다음에는 누가 책임질 건가요? 경찰청은? 검찰은? 아니면 법원은? 아무도 책임지고 싶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책임져야 합니다."

"저요?"

남자는 웃었다. 진정한 웃음이 아니라, 이미 이겨버린 자의 웃음이었다.

"당신은 이미 책임지고 있습니다. 15년 동안 계속 책임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제부터도 책임질 겁니다."

준호는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기억하려고 했다. 15년 전 사건 현장의 사진들 속에서 이 남자를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그 남자는 애초부터 기록에 남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남자가 한 걸음 물러섰다.

"박준영 사건을 포기하세요. 그리고 경찰청에 돌아가세요. 그럼 당신은 살아남을 겁니다. 하지만 계속 파고들면..."

남자는 말을 마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준호는 이미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정혜경을 만났다는 것이 알려질 겁니다."

남자가 말했다.

"그리고 당신이 증거 조작을 은폐하기 위해 증인을 협박했다는 혐의도 들어올 겁니다. 당신의 말은 이미 신뢰를 잃었어요. 누가 당신을 믿을까요?"

준호의 세상이 한 번에 뒤집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손이 떨렸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저는 정혜경을 협박한 적이 없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그걸 믿을까요?"

남자가 자신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

"잠깐."

남자가 멈췄다.

"당신이 누구인가요?"

남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말했다.

"당신의 프로파일링 능력을 역으로 이용한 자입니다. 당신처럼 누군가를 함정에 빠뜨린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준호는 부분적으로 깨달았다. 자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누군가. 자신의 약점을 아는 자.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진실을 왜곡한 경험이 있는 자.

하지만 전체 정체는 여전히 미해결로 남았다.

남자의 검은 코트가 주차장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준호는 혼자 남겨졌다. 주차장의 형광등이 떨렸다.

자신은 함정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아니, 이미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함정 안에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 함정을 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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