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재심 신청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는 손가락이 떨렸다.

'15년 동안 나는 범인이 아닌데 감옥에 있었습니다. 당신의 분석으로 인해. 당신이 저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준호는 그 문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손가락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글자들이 흔들렸다. 그는 손을 주먹으로 쥐었다 폈다. 책상 위의 커피 잔이 식어 있었다. 몇 시간 전 내린 것이었다.

'아직 확정이 아니다.'

준호는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자신의 것이 아닌 듯 들렸다.

'아직 조사 중이다. 한수진이 제시한 증거도 예비적일 수 있다. 타임스탐프 위조라고 해서 박준영이 무죄인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현장에 있었다. 그 이유가 뭔지 알아야 한다. 그게 프로파일러로서의 의무다.'

하지만 그 논리는 종이처럼 얇았다. 마음 어딘가가 계속 울고 있었다.

준호는 파일 상자를 다시 열었다. 2009년 강도살인 사건 기록. 15년이 지난 지금 이 상자는 묘비처럼 느껴졌다. 증인 증언 섹션을 펼쳤다. 총 47건. 그 중 37건은 박준영이 범행 시간대(오후 2시 15분~2시 45분) 은행 근처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3건은 다른 증언을 했다.

증인 ID 004: 정혜경(당시 28세, 기록실 조수) 증인 진술: 오후 2시경 강남역 주변 편의점에서 남성 인물(박준영으로 추정)을 목격. 편의점 CCTV에 기록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

준호는 그 문장 옆의 주석을 읽었다. 빨간 펜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신뢰도 낮음. 증인이 정신질환 병력 있음. 진술 모순 다수. 증거 채택 불가.'

정혜경.

그 이름이 준호의 뇌신경을 압박했다. 1화에서 만난 여성이었다. 기록 관리실에서 자신을 막아섰던 그 여성. 혈액형 위조 파일을 건넸던 그 여성. 그 여성이 15년 전에도 증인이었다.

파일을 더 넘겼다. 증인 ID 007, 008도 비슷했다. 박준영의 무죄를 시사하는 증언들. 모두 '신뢰도 낮음'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증인들의 이름 옆에는 작은 메모가 있었다.

'추가 조사 필요 → 추가 조사 결과 미발견 → 증거 채택 불가'

그 '미발견'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준호의 호흡이 멈췄다.

미발견이 아니라 은폐다.

누군가가 이 증인들을 찾지 않으려고 했다. 아니, 찾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준호는 손가락으로 그 단어를 눌렀다. 종이가 움푹 들어갔다.

준호는 컴퓨터를 켰다. 경찰청 기록 시스템에 접속했다. 정혜경의 신상 정보를 검색했다. 주소가 여러 번 바뀌어 있었다. 2009년 강남구 → 2012년 관악구 → 2015년 마포구 → 2018년 서초구 → 2021년 성북구. 그리고 현재.

성북구 어딘가.

준호는 현재 주소를 메모했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렸다. 그는 마우스를 움직였다. 다음 검색어를 입력했다.

그 순간 파일 상자 안에서 또 다른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오재훈.

준호는 그 이름을 쫓기 시작했다. 2009년 4월 15일자 기록. '참고인 오재훈(당시 38세, 경찰청 특수범죄수사과 과장 보좌) 조사 기록'. 한 페이지뿐이었다. 조사 내용은 간단했다.

'피해자 김태식과의 관계 확인. 영장실 담당자로서 업무 관련 면식 있음. 범죄 관련 혐의 없음. 조사 종료.'

그 다음 페이지는 없었다. 기록이 끝났다.

준호는 다시 검색했다. 오재훈. 경찰청 인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2009년 이후 계속 승진했다. 2015년 과장, 2019년 국장, 2023년 청장 보좌. 그의 이력서는 완벽했다. 오류도, 문제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것처럼.

하지만 2009년의 그 한 페이지 기록. 그 공백이 준호를 옭아맸다.

왜 그의 조사 기록은 한 페이지뿐인가? 왜 피해자 김태식과의 관계가 단순한 '업무 관련 면식'으로 처리되었는가? 그리고 왜 그 이후 모든 기록에서 그의 이름은 사라졌는가?

준호는 법의학 보고서를 다시 펼쳤다. 서명란을 확인했다. 한수진의 서명 옆에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 '검증자: 오재훈'. 그는 당시 법의학 검증 과정에도 개입했다. 그리고 바로 그 보고서의 혈액형 데이터가 손으로 수정되어 있었다.

준호의 호흡이 가빠졌다. 손가락이 그 수정 부분을 따라갔다.

오재훈이 증거를 조작했다. 지시하지 않고, 직접 손을 댔다. 그리고 15년 동안 그것을 은폐해왔다. 박준영을 투옥시킴으로써. 이준호를 조종함으로써.

준호는 손을 들었다. 그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는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경찰청 내 모든 기록에서 오재훈의 2009년 흔적은 지워졌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삭제했다. 그리고 15년간 그것은 발각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누군가가 조직 내에서 충분히 높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준호는 한수진의 경고를 떠올렸다. '더 큰 음모가 있다. 이미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정혜경을 만나는 것이 안전한가? 그 여성도 15년 동안 감시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주소를 추적하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준호는 차 키를 집어 들었다.

더 이상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정혜경만이 그 공백들을 채울 수 있다. 그녀는 기록실에 있었다. 15년 동안. 조작되는 것을 봤을 것이다. 왜 기록이 변경되는지, 누가 지시했는지, 어떤 의도였는지. 모든 것을.

준호는 현관을 나섰다. 밤이 깊어 있었다. 한강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서울의 불빛이 어둠을 먹고 있었다.

그는 차에 탔다. 시동을 걸었다. 네비게이션에 성북구 주소를 입력했다. 목적지까지 25분.

그 순간이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 한수진.

준호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떨리고 있었다.

"준호, 지금 어디야?"

"차 안."

"누구 만나러 가?"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차 안에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정혜경을 만나야 한다는 확신과 그것이 위험하다는 불안이 충돌했다. 그의 손가락이 핸들을 누르고 있었다. 손가락을 펴면 핸들이 흔들렸다.

한수진이 다시 말했다.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내 말 들어. 정혜경 만나면 안 돼. 위험해."

"왜?"

"내가 설명할 수 없어. 하지만 저 여자는 이미 감시 대상이야. 그리고 너도 이미 감시 대상이야. 지금 움직이면..."

"움직이지 않고는 답을 못 얻어."

"너는 이미 답을 알고 있어."

한수진의 말이 끝났다. 침묵만 남았다.

준호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네비게이션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다음 교차로 우회전. 다음 교차로 직진. 그는 성북구를 향해 가야 하는가, 아니면 멈춰야 하는가.

결국 그는 앞을 봤다. 한강대교 방향. 그 너머 성북구. 그리고 정혜경.

준호의 발이 액셀 페달을 밟았다.

차가 움직였다. 그 순간 핸드폰이 또 울렸다.

이명재 검사였다.

"이준호 분석가님, 저 이명재입니다. 혹시 지금 시간 있으세요?"

준호는 차를 몰면서 대답했다.

"네, 있습니다."

"제 사무실로 와주시겠어요? 중요한 증거가 나왔습니다."

"무슨 증거입니까?"

"CCTV 풀 프레임입니다. 2009년 4월 15일 오후 2시 대. 강남역 편의점 주변 CCTV. 그 영상에는 박준영이 아닌 다른 인물이 있습니다."

준호의 손가락이 경직됐다.

"그 인물 뒤에 오재훈이 있어요. 마치 박준영을 감시하듯이."

"...CCTV가 15년간 남아있었습니까?"

"네. 편의점주가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경찰 수사 당시 요청이 없었거든요. 왜냐하면 경찰 기록에는 그 편의점이 없었으니까요."

이명재의 목소리가 계속됐다. 차분했지만 단호했다.

"박준영은 그 날 우연히 그 편의점 근처에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오재훈은 그를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를 거기에 배치했습니다. 당신의 프로파일링이 정확하게 박준영을 지목하도록."

준호는 차를 세웠다. 한강대교 위. 차량이 흐르고 있었다.

"그 증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제 사무실입니다. 하지만..."

이명재가 잠시 멈췄다.

"누가 그 영상을 보고 있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에게 전달되기 전에 없애려고."

"누가?"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알 겁니다. 당신이 이 모든 것을 알아낼 때쯤이면."

준호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앞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낯선 표정. 무언가가 붕괴되고 있었다. 그의 자신감이. 그의 확신이. 그의 모든 것이.

15년.

그 시간이 박준영을 감옥에 가두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15년이 준호 자신도 감옥에 가두고 있었다. 점점 더 깊이. 깨닫지 못한 채.

준호의 손이 다시 시동 키에 갔다.

네비게이션이 새로운 경로를 찾았다. 성북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명재의 사무실로. 그 영상으로. 그 진실로.

차가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후진등이 켜졌다.

검은색 승용차 두 대가 준호의 차를 양쪽에서 막았다.

준호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한수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울렸다.

한수진이 받기 전에, 준호의 차 옆 유리창이 두드려졌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준호 분석가. 나 오재훈입니다. 차에서 내려주시겠어요?"

준호의 호흡이 멈췄다.

오재훈이 차 문을 열었다. 그의 얼굴이 보였다. 15년 전과 같은 표정. 차분했다. 완벽했다. 그리고 준호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 표정이 자신의 프로파일링에서 그렸던 '범인의 심리 패턴'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아니.

일치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표정이 프로파일링의 모델이었다는 것을.

준호는 차에서 내렸다. 손을 들지 않았다. 저항도 하지 않았다. 오재훈의 검은색 승용차 두 대 사이에서 그는 단지 서 있었다. 야경이 그들을 비췄다.

오재훈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경찰 상관이라기보다 다른 무언가에 가까웠다. 무언가 오래되고, 준비된.

"박준영이 거기 있었다는 것. 우연히. 그리고 나도 거기 있었다는 것. 우연이 아니라."

오재훈이 한 걸음 가까워졌다. 준호는 물러나지 않았다.

"당신이 그를 배치했습니까?"

"배치? 그런 말은 너무 거칠지 않나. 나는 단지 당신이 찾기를 원했을 뿐이다. 그리고 당신은 찾았다. 완벽하게."

오재훈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미소라기보다 근육의 움직임이었다. 감정이 없었다.

"15년간 당신의 프로파일링은 흠 없었다. 당신은 신이었다. 경찰청의 신. 하지만 신도 실수한다. 신도 본다. 보고 싶은 것만."

준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그는 침착함을 유지했다. 이것은 심리전이었다. 그가 가장 잘하는 분야였다.

"김태식을 죽인 이유가 뭡니까?"

"죽인? 나는 죽이지 않았다."

오재훈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움직임은 느렸다. 마치 준호를 관찰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누가?"

"당신이 풀어야 할 마지막 질문이다. 하지만 그 답은 당신 안에 있다. 당신이 15년 동안 놓친 것. 당신이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그것이 답이다."

오재훈이 손을 들었다. 검은색 승용차에서 두 명의 남자가 내렸다. 경찰 제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나는 단지 당신을 도구로 만들고 싶었다. 당신의 능력으로 진실을 덮을 수 있는 도구로. 그리고 당신은 완벽하게 그 역할을 해냈다. 의심 없이. 자신감으로."

준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빠르게. 이 모든 것의 구조를. 이 거대한 함정의 설계를. 자신이 어디서 잘못 본 것인지.

그 순간, 한강대교 위에서 사이렌이 울렸다.

경찰차였다. 몇 대가.

오재훈의 표정이 변했다. 그것은 순간적이었지만 분명했다. 놀람. 계획 밖의 무언가.

"뭐지?"

한 명의 남자가 오재훈에게 귀속말을 했다. 오재훈의 얼굴이 굳어졌다.

준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뒤로 물러섰다. 경찰차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재훈이 준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 일이 끝나지 않았다, 준호. 당신은 여전히 내 손 안에 있다. 이 영상들, 이 증거들, 모두 내가 조종할 수 있다. 당신이 감옥에 들어가든, 나가든, 당신의 인생은 끝났다."

경찰차가 멈췄다. 감찰실 수사관들이 내렸다. 한수진도 함께였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준호!"

한수진이 소리쳤다.

준호는 경찰 쪽으로 움직였다. 오재훈과 그의 남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법적 절차가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감찰실 수사관이 오재훈에게 다가갔다.

"오재훈 과장, 당신을 증거 위조 및 무고 혐의로 소환합니다."

오재훈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진정한 웃음이 아니었다. 뭔가 깨진 소리였다.

"증거? 무고? 나는 수사를 진행했을 뿐이다. 당신들이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도 내가 조작한 것이 아니다. 정혜경이 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정신질환자다. 법원도 그렇게 판정했다."

수사관이 오재훈에게 수갑을 채웠다.

준호는 한수진 쪽으로 갔다.

"이 일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이명재가 나에게 연락했어. CCTV 영상을 받으면 당신이 위험할 거라고. 그리고 나는 감찰실에 신고했어. 당신이 오재훈과 만나기 전에."

한수진의 손이 준호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준호, 이것도 모든 게 아니야. 오재훈이 말한 게 맞아. 정혜경, 이명재, 나... 우리가 어디까지 자발적이고 어디부터 조종당한 건지... 그걸 아직도 모른다."

준호는 한수진의 눈을 봤다.

"박준영은?"

"재심 절차가 진행 중이야. 이명재가 법원에 증거를 제출했어. 무죄 판정은 시간 문제야."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준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 박준영.

준호는 전화를 받았다.

"네."

박준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15년 감옥에서 나온 목소리였다. 차갑고, 절대적이고, 무언가를 결정한 것처럼 들렸다. 그 목소리는 준호를 관통했다.

"분석가님, 당신이 한 일을 알아요. 그리고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도. 하지만 이것도 끝이 아닙니다."

"무슨 뜻입니까?"

"당신이 찾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어요. 오재훈 뒤에 누가 있는지. 그리고 김태식을 정말로 죽인 게 누구인지. 그것이 당신이 풀어야 할 마지막 프로파일입니다."

"그게..."

"당신이 풀어야 합니다. 당신의 능력으로. 당신의 눈으로."

박준영이 전화를 끊었다.

준호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한강대교 위에서 야경이 흔들렸다. 경찰차의 불빛이 그를 비추고 있었다.

그 불빛 속에서 준호는 깨달았다.

15년 동안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를.

15년 동안 자신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지금도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든 것이 거울이었다. 증거도, 증인도, 심지어 자신의 능력도.

진실은 다른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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