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 셋째 날

셋째 날 아침, 은은 준호가 차려놓은 밥상 앞에서 눈을 떴다. 김이 피어오르는 국그릇, 계란말이, 시금치 나물. 할머니의 손맛이 배어 있는 밥상이었다.

"오늘은 뭘 할 거야?"

은이 수저를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음식은 입 안에서 맛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영양학 교과서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국의 다시마 맛이 혀끝에 살살 녹았다. 계란은 노릇한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준호가 테이블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그의 눈이 은의 입가를 따라가고 있었다.

"소나무 숲에 가볼까. 이맘때 바람이 좋아."

은은 밥을 한 입 더 넣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덜 하는 습관이 아직 남아 있었다.

준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어깨가 들썩거리는 웃음이었다.

"뭐가 웃겨?"

"넌 정말 변했어. 어제는 밥 한 입 더 먹으라고 해야 먹었거든."

은은 준호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 햇빛이 떨어져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초가을 햇빛이었다. 그 빛 속에서 준호의 얼굴은 더욱 선명해 보였다. 어린 시절 친구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먹고 나가자."

---

소나무 숲으로 향하는 산책로는 은이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낡은 아스팔트가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고, 양쪽으로 소나무가 옹기종기 서 있었다. 높은 가지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어서 햇빛이 줄무늬처럼 떨어졌다.

"여기 처음 온 게 몇 살 때였더라?"

준호가 옆에서 물었다. 그의 손이 은의 손과 가까워졌다. 거리는 10센티미터 정도. 닿지 않지만 거의 닿을 뻔한 거리였다.

"여섯 살. 엄마가 데려왔어."

은은 그 거리를 인식했다. 어제까지라면 그 거리를 더 멀게 만들었을 것이다. 몸을 옆으로 돌리거나, 한 발 앞으로 나가거나. 하지만 지금 은은 그대로 걸었다.

산책로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바람이 불었다.

처음엔 약한 바람이었다.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정도. 그런데 그 바람에 실려온 냄새가 있었다. 소나무의 향. 수지 냄새. 흙 냄새. 수십 년 전 기억이 그 냄새에 함께 실려왔다.

은은 멈췄다.

"뭐야? 괜찮아?"

준호가 뒤돌아봤다. 은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더 명확했다. 바람이 뺨을 쓸고 지나가는 감각. 소나무 잎이 흔들리는 소리. 그 소리 속에 섞여 있는 것. 어린 시절의 자신과 준호의 목소리. 웃음소리. 손을 맞잡고 이 길을 걷던 기억.

그때의 손. 지금도 은은 그 온기를 기억했다. 아니, 기억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지금 느끼고 있었다. 준호의 손이 다시 자신의 손을 잡으려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람이 그렇게 느껴지게 했다. 촉각이 기억을 불러왔다.

눈물이 흘렀다.

아무 신호 없이, 아무 예고 없이, 눈가에서 따뜻한 물이 흘러내렸다. 은은 자신의 얼굴이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턱이 떨렸다. 입이 떨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은?"

준호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그가 은의 앞에 섰다. 은은 눈을 뜰 수 없었다. 눈물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흘러나올 때마다 그것이 뭔지 알 수 없었다. 슬픔인지, 그리움인지, 아니면 처음 느끼는 감정이라서 이름이 없는 건지.

준호의 손이 은의 어깨에 닿았다.

"괜찮아. 괜찮아."

그는 은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은은 거부하지 않았다. 준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셔츠가 따뜻했다. 그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면서도 빠른 맥박. 자신의 맥박과 일치했다. 아니, 자신의 맥박이 그의 맥박을 따라가고 있었다.

은은 울었다.

오래 울었다. 얼마나 오래인지는 모를 정도로. 준호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은의 등을 쓸어내렸다. 손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그 손길이 은의 떨림을 가라앉혔다. 아니, 가라앉히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견딜 수 있게 해줬다.

"감정을 느낀다는 게 이렇게 아프구나."

은이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손을 계속 움직였다. 일정한 속도로. 은을 진정시키려는 것처럼. 아니면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것처럼.

---

산책로를 나와 카페로 향했을 때 은의 눈은 여전히 부었다. 준호는 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은은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카페 벽에는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준호의 할머니와 준호, 준호의 어린 시절 친구들, 그리고 준호와 은.

은이 그 사진 앞에 멈췄다.

사진 속 자신은 열 살이었다. 준호는 열한 살이었다. 둘 다 웃고 있었다. 진짜 웃음이었다. 눈가가 찡그러진 웃음. 입가가 크게 벌어진 웃음. 그 웃음이 지금의 자신과 얼마나 다른지 은은 알았다.

"그때는."

준호가 은의 뒤에서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작았다.

"그때는 우리 둘 다 감정을 잃지 않았었지."

은은 준호를 돌아봤다.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소나무 숲에서 느낀 것. 그것이 다시 느껴졌다.

준호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넌 왜 우는 거야?"

은이 물었다. 목소리가 거의 속삭임 수준이었다.

준호는 눈을 피했다. 카페 벽의 다른 사진을 바라봤다.

"미안해. 난 널 도와주고 싶었는데..."

그는 말을 멈췄다. 입을 열었다 다시 닫았다. 말하려는 것이 있지만 그것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뭐가 미안한데?"

은이 다시 물었다. 준호는 웃음을 흘렸다. 어색한 웃음이었다. 그의 입가가 떨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넌 이제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은은 그 말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눈, 그의 목소리, 그의 손이 떨렸다. 무언가가 그의 내부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준호는 창밖을 바라봤다. 초가을 햇빛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창유리에 비쳤다. 그 반영 속에서 그는 얼마나 지쳐 보였는지.

"넷째 날."

준호가 갑자기 말했다.

"넷째 날 내가 없을 수도 있어."

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준호는 한참을 침묵했다. 카페 벽의 사진들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그 속에서 답을 찾으려는 것처럼.

"할머니 카페 일이 있어. 그 일이 내 손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라서..."

그의 목소리가 흐릿했다. 은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니, 거짓은 아니겠지만 전부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 내가 뭐 해?"

은이 물었다. 질문이 튀어나왔다. 자신도 놀랐다.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게.

준호가 비로소 은을 바라봤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아니, 눈물로 흔들려 보였다.

"할머니가 있잖아. 그리고... 내일은 다시 나올 테니까."

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은 내려앉아 있었다. 열흘이 모두 함께할 열흘이 아니라는 것. 그 중간에 공백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차이인지 은은 이제 알았다.

준호가 은의 얼굴을 들었다. 손가락으로 그녀의 뺨을 쓸었다. 아직도 젖어 있었다.

"잘했어. 오늘 잘했어."

그의 손길이 부드러웠다. 하지만 은은 그 손길 아래에 떨림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떨림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준호가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카페의 시계가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초가을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벽의 사진들을 비추고 있었다. 열 살의 은과 열한 살의 준호가 웃고 있는 사진도 그 빛 속에 있었다.

은은 그 사진을 다시 봤다. 그 속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같은 사람인가. 같은 마음인가. 그리고 그 속의 준호와 지금의 준호는.

준호의 손이 은의 어깨에서 떨어졌다. 그 떨어짐이 은에게는 버려짐처럼 느껴졌다. 아직 함께하고 있으면서도 벌써 떠나려는 것처럼.

"내일 아침 같이 밥 먹을까?"

준호가 물었다. 그 질문이 중요한 약속인 것처럼.

은은 대답했다.

"그래."

하지만 그 한 마디 안에는 질문이 가득 차 있었다. 넷째 날은 어떻게 되는 거고, 열흘은 정말 열흘인지, 그리고 열흘 후에는 어떻게 되는 건지. 그 모든 질문이 은의 목구멍에 맺혀 있었다.

준호는 카페의 불을 껐다. 셔터를 내렸다. 은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초가을 저녁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 실려온 소나무 향. 은은 다시 한 번 그 향을 맡았다. 하지만 이번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대신 다른 감정이 들었다.

불안. 그리움. 그리고 아직 이름이 없는 뭔가.

준호가 은의 어깨를 밀었다. 아주 살짝.

"뭐해? 가자."

은은 할머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준호는 한 발 뒤에서 따라왔다. 그 거리가 이상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는 은의 손목을 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걷고 있었다.

"준호."

은이 멈췄다.

"응?"

"넷째 날... 꼭 못 오는 거야?"

준호가 걸음을 멈췄다. 은의 등 뒤에서 깊게 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오랜 침묵이 흘렀다.

"카페 일이 생겼어. 중요한 일이라서..."

그의 목소리가 흐릿했다.

"얼마나 중요한데?"

은이 다시 물었다. 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은의 옆에 섰다. 여전히 거리를 유지한 채.

"하루면 돼. 아마 저녁쯤."

은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준호도 따라왔다. 하지만 그 사이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이미 저녁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된장국, 계란말이, 나물 세 가지. 단순하고 따뜻한 밥상이었다.

"어디 다녀왔냐?"

할머니가 물었다. 그녀의 눈은 은의 얼굴을 먼저 보고, 그 다음 준호를 봤다.

"산책했어요."

은이 대답했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국을 한 그릇 퍼서 은의 앞에 놓았다. 따뜻한 수증기가 올라왔다.

밥을 먹는 동안 준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몇 번 말을 건넸지만 그의 대답은 짧았다. 은은 그 침묵을 느꼈다. 아침의 따뜻함과는 완전히 다른 침묵이었다.

밥을 다 먹은 후 준호가 일어났다.

"할머니, 난 먼저 올게."

"어디 가니?"

"카페 일 좀 봐야 해."

할머니는 준호를 오랫동안 바라봤다. 그의 얼굴을 읽으려는 듯.

"밤 늦지 말아라."

"네."

준호가 나갔다. 은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오늘 아침 그 유연한 어깨가 지금은 경직되어 있었다. 숨을 쉬기도 힘들어 보일 정도로.

할머니가 은의 옆에 앉았다.

"넷째 날 못 온댔나?"

은이 놀라 할머니를 봤다.

"어떻게..."

"저 아이 목소리 들으면 알지. 뭔가 마음에 걸렸을 때 그런 톤이 돼."

할머니가 밥그릇을 걷어갔다.

"근데 그것만은 아닐 거야."

은은 할머니를 바라봤다. 할머니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찬장에서 따뜻한 우유를 꺼냈다.

"마셔. 밤에 잘 자."

은은 우유를 마셨다. 따뜻했다. 하지만 마음은 차가웠다. 준호가 없는 집이 이렇게 낯선가.

밤이 깊어갔다. 준호의 방 문이 닫혀 있었다. 불이 꺼져 있었다. 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은은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바라봤다. 오늘 아침의 햇빛, 소나무의 향기, 바람의 감촉, 그리고 눈물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고 준호의 웃음. 어색하고 떨리는 그 웃음.

휴대폰이 울렸다. 서울 번호였다. 김태식이었다.

은은 받지 않았다. 하지만 문자가 왔다.

'복귀 일정을 잡아야 합니다. 대기 상태도 결국 비용입니다. 이번 주중 답변 바랍니다.'

은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 메시지가 독처럼 느껴졌다. 서울. 직장. 생산성. 감정 표현 불능증. 그 모든 것이 은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새벽 두 시. 창밖을 보니 준호의 자동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불이 꺼지고 그가 내렸다. 어깨가 더 굽어 보였다. 그는 한참 동안 자동차 옆에 서 있었다. 마치 집에 들어갈 용기를 내고 있는 것처럼.

은은 눈을 감았다.

새벽 다섯 시에 은은 일어났다. 할머니는 이미 주방에 있었다. 밥을 지으며 국을 끓이고 있었다.

"준호 왔어?"

"응. 늦게."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넷째 날 아침은 내가 봐줄 게. 넌 혼자 나가 봐."

"뭐하러요?"

"길을 잃어 봐야지. 혼자."

할머니가 밥을 퍼담았다.

"감정을 느끼는 건 혼자 느끼는 것도 있고, 함께 느끼는 것도 있어. 둘 다 필요해.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도 중요하지만, 혼자 설 수 있어야 그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어."

할머니의 말이 은의 가슴에 박혔다.

"그래도 준호는..."

"그 아이는 자기 짐을 내려놓아야 해."

할머니가 은의 눈을 봤다.

"넷째 날, 넌 혼자 가. 어디든."

---

셋째 날이 다 지나갈 무렵, 은은 해변에 나갔다. 혼자서. 준호는 여전히 카페 일로 나가 있었다. 할머니는 집에 있었다.

해변에 도착했을 때 은은 처음으로 무언가를 깨달았다.

준호 없이 세상을 본다는 게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모래 위를 걸으며 은은 생각했다. 준호가 왜 눈물을 흘렸는지. 왜 넷째 날을 비워야 하는지. 왜 그의 목소리가 자꾸만 떨리는지.

그리고 자신은 왜 계속 그를 기다리는지.

해변의 모래는 여전히 따뜻했다. 햇빛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하지만 무언가가 달라졌다.

은은 그 차이가 뭔지 알았다.

그것은 준호의 부재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 부재가 자신을 더욱 명확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알았다.

혼자 바다를 보면서 은은 처음으로 질문했다.

나는 누구인가. 준호 없이도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은은 해변을 걸었다. 혼자. 길을 잃으면서.

해변의 끝자락에서 은은 한 명을 만났다. 할머니의 나이 정도 되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혼자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자주 와요?"

은이 물었다.

여인은 웃음을 지었다. 주름이 많은 얼굴이었지만 눈은 맑았다.

"매일 와. 남편이 떠나간 지 벌써 십 년이 되었는데, 여기 오면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그럼 혼자인 거네요."

"그렇지. 하지만 혼자라는 건 외로운 게 아니더라. 오히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시간이야."

여인이 은을 바라봤다.

"넌 누굴 기다리고 있나?"

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인은 웃음을 지었다.

"그 사람이 돌아올 거야. 돌아오지 않으면 그건 그 사람이 약한 거고, 넌 그런 사람을 사랑할 만큼 약하지 않아."

여인은 다시 바다를 바라봤다. 은은 그 옆에 서서 함께 바다를 봤다. 말 없이. 오래도록.

오후 늦게 준호가 돌아왔다. 얼굴이 창백했다. 눈 아래 검은 자국이 있었다. 마치 밤새 울었던 것처럼.

"미안해. 일이 길어졌어."

"괜찮아."

은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해변에서 만난 여인의 말이 떠올랐다. 혼자라는 건 외로운 게 아니라는 것. 오히려 자신을 알게 되는 시간이라는 것.

준호가 은을 자세히 봤다.

"넌 어디 갔어?"

"해변."

"혼자?"

"응."

준호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할머니가..."

"할머니가 내가 혼자 가라고 했어."

은은 준호를 마주봤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내일은?"

준호가 물었다.

"넷째 날."

"응. 내가 오전에 카페 일 다 마치고 정오쯤 올게. 그 전에 할머니가 있으니까."

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준호를 바라봤다. 그의 어깨 근육이 경직되어 있었다. 숨을 쉬기도 힘들어 보였다.

준호가 은에게 다가왔다. 손을 올렸다. 은의 얼굴에 닿으려던 손이 멈췄다.

"너 괜찮아?"

"응."

그 대답이 나왔을 때 은은 알았다. 자신이 거짓말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감정 표현 불능증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다른 형태의 거짓말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은."

준호가 은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 뭔가 절박함이 있었다.

"뭐야?"

"내일... 내가 못 올 수도 있어."

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준호는 한참을 침묵했다. 말을 하려다 자꾸만 멈추는 것처럼. 그의 손이 주머니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그 일이... 생각보다 복잡해."

"얼마나?"

"모르겠어. 하루로 끝날지, 이틀이 될지..."

준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은은 준호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이 차가웠다. 아침의 따뜻한 손과는 다른 손이었다.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은이 물었다.

준호는 은의 눈을 마주보지 못했다.

"어머니 연락이 왔어. 카페 문제도 있고... 가족 일이 복잡해졌어."

그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은은 그 말의 무게를 느꼈다. 무언가가 준호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이제 그것이 단순한 카페 일이 아니라는 것은 명확했다.

"그럼 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가."

은이 말했다.

"은..."

"나는 괜찮아. 혼자 있을 수 있어. 할머니도 있고."

은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이유였다. 준호를 위한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을 위한 진실이기도 했다.

밤이 되었다. 은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천장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무언가가 자라나고 있었다. 그것이 희망인지, 두려움인지, 아니면 그 둘이 뒤섞인 뭔가인지 은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열흘은 이제 반도 남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반의 시간 안에 준호는 자신에게 뭔가를 말해야 한다는 것. 왜 눈물을 흘렸는지. 왜 넷째 날을 비워야 하는지. 왜 그의 목소리가 자꾸만 떨리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그의 어머니가 왜 연락했는지.

준호가 돌아올 수 있을까.

휴대폰을 집었다. 서울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손가락이 삭제 버튼 위에서 멈췄다. 하지만 삭제하지 않았다. 대신 답장을 썼다.

'확인했습니다.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그리고 저장했다.

밤 열한 시. 은은 여전히 깨어 있었다. 복도를 지나는 발소리를 들었다. 준호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소리였다.

그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아니, 들렸다.

은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대신 머릿속에 자꾸만 떠올랐다.

열 살의 준호와 은이 웃고 있는 사진. 그 웃음이 어떻게 이렇게 변했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준호는 돌아올까.

새벽 두 시, 은의 휴대폰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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