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의 기선
동해의 수평선이 점점 가까워졌다.
이준호는 선수의 키를 움켜쥔 채 북동쪽을 향했다. 배 아래로는 증기 기관의 리듬 있는 박동이 전해졌고, 굴뚝에서는 회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뒤쪽에서는 조정의 돛배 여섯 척이 돛을 펼쳤다. 앞쪽 수평선 너머로는 청의 감시선 세 척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항로를 정합시다."
정윤기가 선실로 들어오며 손에 든 약도를 펼쳤다. 종이는 누렇게 변색되었고, 그 위에는 빨간 점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청의 해상 감시망을 나타낸 것이었다. 그 사이의 하얀 공간들이 틈새였다.
"저 점들 사이로 빠져나가는 거군요."
이준호가 고개를 숙였다. 약도는 그가 처음 본 것이었다. 정윤기가 조정 내부에서 얼마나 위험한 정보를 품고 있었는지, 그 무게가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감시망을 '뚫어야' 합니다."
정윤기의 손가락이 약도 위를 움직였다. 노랑색으로 표시된 해역이 있었다.
"이곳은 청의 감시선들이 조류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입니다. 물살이 거세거든요. 전통 범선은 저기로 들어갔다가 좌초합니다. 하지만 증기 기관이 있다면..."
"우리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준호가 말을 끝냈다. 정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저 해역을 통과하면 동해 북쪽의 개방 해역에 도달합니다. 청의 감시망 바깥이죠."
배가 흔들렸다. 포탄이 좌측 현에 맞았다. 목재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이준호는 키를 조정했다. 배의 방향이 조금씩 변했다.
"허상, 엔진 압력은?"
무전관을 통한 이준호의 목소리가 굴뚝 아래 엔진실로 전해졌다. 머잖아 허상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안정적입니다. 보일러 압력 정상. 증기 배출 조절 중."
기관의 박동이 더욱 빨라졌다. 배의 속도가 올라갔다. 뒤쪽의 돛배들이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조정의 포졸단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오토가 선미에서 외쳤다. 그는 망원경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청의 감시선들이 속도를 올렸습니다. 예상 접근 시간 30분입니다."
30분.
이준호는 계산했다. 정윤기가 가리킨 해역까지의 거리, 현재의 속도, 조류의 강도. 모든 수치가 머릿속을 지나갔다.
"정윤기, 정확한 침로를 말씀해주십시오."
"북동쪽 23도 방향으로 8해리 항진하면 조류 경계에 도달합니다. 거기서 침로를 북쪽 15도로 변경하십시오. 그러면..."
"감시망의 틈새로 들어간다."
이준호가 핸들을 돌렸다. 배의 침로가 변했다. 선체가 약간 기울었다. 갑판에 있던 상자들이 굴렀다. 명희는 그것들을 능숙하게 밟아 고정시켰다.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배 위에 있었다. 조정의 포졸단을 지연시키고 돌아온 것이었다.
"배 상태는?"
"좌현에 포탄 3발 맞았습니다. 침수는 없지만, 선체 손상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명희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냉정함이 유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준호는 그녀의 눈을 봤다. 눈빛이 달라 있었다. 무서움이 아니라 흥분이었다.
"속도 올려도 됩니까?"
허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올려주십시오. 최대한."
이준호가 외쳤다.
엔진의 박동이 급격히 빨라졌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의 양이 증가했다. 배 전체가 진동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이 숨을 고르고 있는 것 같았다.
배의 속도가 올라갔다. 10노트. 12노트. 14노트.
조선의 전통 돛배는 최대 8노트 정도였다. 청의 감시선도 평균 9~10노트였다. 하지만 기선은 계속 빨라지고 있었다.
"감시선들의 거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토가 외쳤다.
이준호는 눈을 들어 앞쪽을 봤다. 수평선 너머로 세 척의 감시선이 보였다. 처음에는 점처럼 보였던 것들이 이제는 배의 윤곽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 있었다. 하지만 거리는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침로 변경, 북쪽 15도."
정윤기가 외쳤다.
이준호의 손이 키를 돌렸다. 배의 침로가 급격히 변했다. 갑판 위의 모든 것이 흔들렸다. 명희가 균형을 잡으며 밧줄을 움켜쥤다.
배가 조류 경계로 진입했다.
물의 색이 변했다. 푸른색에서 회색으로 변했다. 물살이 보였다.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는 해수의 흐름이 배의 좌현을 때렸다.
배가 흔들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증기 기관이 계속 박동했다. 기선의 선체가 조류를 헤쳐 나아갔다. 전통 돛배라면 이 지점에서 돛이 찢어지고 선체가 회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선은 다르게 작동했다.
"엔진 압력이 올라갑니다!"
허상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류의 저항을 받고 있습니다. 보일러 압력을 더 올려야 합니다!"
이준호는 선실에 있는 정윤기를 바라봤다. 정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올려주십시오. 한계까지."
"알겠습니다. 석탄 투입량을 증가시킵니다."
엔진의 박동이 더욱 거세졌다. 마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처럼 들렸다. 배 전체가 떨렸다. 굴뚝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배가 조류를 뚫고 나아갔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15노트. 16노트. 17노트.
기선의 속도가 계속 올라갔다.
뒤쪽의 감시선들은 점점 작아졌다. 마침내 수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졌다.
"감시선들이 사라졌습니다!"
오토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준호는 앞을 봤다. 조류 경계의 회색 물살도 이제 옅어지고 있었다. 앞쪽으로는 다시 푸른 바다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감시망을 빠져나갔습니다."
정윤기가 선실에서 나와 이준호의 옆에 섰다. 약도를 들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청의 감시망 바깥입니다. 동해 북쪽의 개방 해역입니다. 조정의 영역도 아니고, 청의 영역도 아닙니다."
"누구의 영역입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정윤기가 약도를 펼친 채 웃음을 지었다.
"아무도 지배하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배는 계속 나아갔다. 엔진의 박동은 여전히 안정적이었다. 굴뚝에서는 회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갑판 위에서는 명희가 노끈을 정리하고 있었다. 선실에서는 허상이 엔진의 압력을 조절하고 있었다. 선미에서는 오토가 망원경을 내려놓고 웃음을 짓고 있었다.
조선 최초의 기선이 동해 해상을 누비고 있었다.
이준호는 손을 키에서 놨다. 선체가 자체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증기 기관이 모든 것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순간, 무전관에서 잡음이 났다.
"이준호, 긴급 신호입니다."
명희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어디서부터인가 신호를 받고 있었다.
"무엇입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조정의 메시지입니다."
명희가 천천히 말했다.
"기선 건조에 참여한 모든 자에게 신분 상승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준호, 당신에게는 양반 신분으로의 편입을 제시했습니다. 그 조건은..."
명희가 말을 멈췄다.
"항복입니다. 기선을 조정에 넘기고 항복하면 당신은 양반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준호는 앞을 봤다. 동해의 수평선이 멀리 펼쳐져 있었다. 그곳은 어디인가? 누가 지배하는 곳인가?
아무도. 누구도 지배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정윤기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눈빛에는 이미 답이 있었다.
"이준호,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준호의 입술이 움직였다. 하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배는 계속 나아갔다. 동해의 먼 수평선 너머로.
선미에서 오토가 망원경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묘한 표정이 떠 있었다.
"신호 강도가 약해지고 있습니다. 조정의 메시지는 육지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명희가 무전기를 들고 나왔다.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정윤기가 건넨 청의 감시망 약도 옆에 놓인 것이었다. 그녀는 그 종이를 읽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신분 상승의 조건이 더 있습니다."
명희의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담담했지만, 그 안에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숨어 있었다.
"허상에게는 기술관직. 정윤기에게는 조정의 정식 기술관. 나에게는 동해 항로 관리직. 오토에게는 조선 국적 부여와 함께 해상 무역 특허권."
그녀가 잠시 멈추고 이준호를 바라봤다.
"모두가 원하는 것을 준다고 합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으로."
"기선을 넘기는 것."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손가락이 키의 목재를 꽉 쥐었다. 나무가 손의 열기를 받았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정윤기가 선실에서 나왔다. 손에는 또 다른 종이가 들려 있었다. 조정의 공식 문서였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박태현 측에서 보낸 추가 통보입니다. 기선의 건조 자체가 '해금령 위반'을 넘어 '청의 감시망 침범'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기선을 항복하지 않으면 조정은 청에 우리의 존재를 고발하기로 했습니다."
"고발?"
명희가 예리하게 물었다.
"조선의 신분제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겠다는 뜻입니다. 청은 이를 핑계로 조선을 더욱 강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정윤기가 말을 멈췄다.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었다.
배 위에 침묵이 흘렀다. 엔진의 박동만 계속되었다. 18노트. 19노트. 기선은 여전히 동해를 항해하고 있었다.
허상이 선실에서 나왔다. 얼굴에는 검은 기름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는 엔진음을 들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기술자는 기술의 언어를 안다.
"압력이 안정적입니다."
허상이 이준호에게만 말했다. 다른 누구에게도 아니라, 오직 이준호에게만.
"배는 계속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그 순간, 이준호의 눈이 반짝였다. 불이 들어온 것처럼.
이준호는 한참을 침묵으로 응했다. 손가락이 키의 목재를 더욱 단단히 움켜쥐었다.
천출 신분에서 양반으로 올라설 기회. 그것은 평생을 바쳐도 얻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얻으려면 자신이 만든 것, 자신의 손으로 이루어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이 배, 동해의 자유로운 바다 위에서 얻은 것들을 말이다.
신분도, 양반의 학위도, 조정의 인가도 필요 없었다. 그런 것들은 이미 무의미했다. 여기 이 배 위에서, 동해의 자유로운 바다 위에서, 그는 이미 자신이 될 수 있었다. 신분의 족쇄 없이, 누군가의 허락 없이.
포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선택하는 것이었다. 신분이라는 거짓된 질서보다 기술이라는 진실된 가치를 택하는 것. 조정이 주는 것보다 스스로 이룬 것을 지키는 것. 그것이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자유였다.
"신분 상승을 거부합니다."
목소리가 낮았지만 명확했다. 키를 다시 잡았다. 손가락이 단단히 정착했다.
"우리가 해낸 것은 한 개인의 신분을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든 것은 조선의 미래입니다. 그것을 양반 신분과 맞바꿀 수는 없습니다."
명희가 종이를 내려놨다. 그녀의 입술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알겠습니다."
한 마디였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것을 의미했다. 그녀는 이준호가 이런 선택을 할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그것을 믿고 있었다.
정윤기는 종이를 접었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양반 기술관으로서 조정에 항명하는 것. 그것은 신분 박탈과 죽음까지도 초래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조정의 신분 상승 제시를 거부합니다. 우리는 기술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정윤기의 목소리도 낮았지만 견고했다.
오토가 다가왔다. 그는 조선인이 아니었다. 양반도 아니었다. 신분제의 족쇄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옆에 서 있었다.
"기술은 신분을 초월합니다."
오토가 조선말로 천천히 말했다. 발음이 어눌했지만, 의지는 명확했다.
"이 배는 조선의 배입니다. 조선의 손으로 만들어진 배입니다. 나는 그것을 도왔을 뿐입니다."
선실에서 소음이 났다. 엔진실에서였다. 허상이 뭔가를 조정하고 있었다.
배의 속도가 다시 올라갔다. 20노트. 21노트.
"기선의 성능을 극대화합니다."
허상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렸다.
"조정과 청, 누구도 우리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기술이 그것을 보장합니다."
이준호는 수평선을 바라봤다. 동해는 점점 더 넓어지고 있었다. 아무도 지배하지 못하는 바다. 신분도, 양반의 학위도, 조정의 인가도 필요 없는 공간.
명희가 무전기를 들었다.
"밀무역 네트워크 전체에 신호를 보냅니다. 기선이 성공했습니다. 조선의 해양 독립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배들에게 알리세요. 동해는 이제 자유로운 영역입니다."
무전기를 통해 확인음이 들렸다. 한 번. 두 번. 여러 번.
동해 곳곳에서 밀무역 배들이 신호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알았다. 기선이 성공했다는 것을.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것을.
배가 계속 나아갔다. 엔진의 박동은 여전히 안정적이었다.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하늘을 향해 피어올랐다. 그것은 마치 신호탄처럼 보였다. 조선의 새로운 가능성을 알리는 신호.
정윤기가 약도를 다시 펼쳤다. 이번에는 다른 지도였다. 동해 너머의 바다를 그린 것이었다. 일본 열도. 그 너머의 태평양.
"이준호."
정윤기가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갑니까?"
이준호는 한참을 묵묵히 앞을 봤다.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동해의 바람이었다. 자유로운 바람.
배 위의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엔진의 박동도 파도의 소리도 배경으로 물러났다. 그저 바람만 남았다. 이 순간, 이준호는 자신이 이루어낸 것의 무게를 느꼈다. 신분도, 양반도, 조정의 인가도 없이 이루어낸 것.
그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동쪽입니다."
정윤기의 눈이 반짝였다. 명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토는 웃음을 지었다. 허상은 엔진실에서 무전기를 들고 확인했다.
"동쪽?"
정윤기가 다시 물었다.
"조정도 청도 가지 못한 곳으로."
이준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명희가 나아왔다. 그녀의 눈은 이미 다음을 계획하고 있었다.
"밀무역 네트워크에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동쪽 항로 개척. 모든 배들을 소집합니다."
정윤기도 움직였다. 약도를 펼쳤다 접었다를 반복하며 중얼거렸다.
"동쪽... 그곳까지의 항로, 해류, 기상 조건... 모두 새로 그려야 합니다. 기선이 있다면 가능합니다."
오토는 선미로 돌아갔다. 망원경을 들고 뒤를 바라봤다. 뒤쪽 수평선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조정도, 청도, 감시선도 없었다.
"길이 열렸습니다."
오토가 외쳤다.
기선은 계속 나아갔다. 동해의 수평선 너머로. 더 멀리, 더 먼 바다로.
조정의 신분 상승 제시는 이제 배 위의 누구도 듣지 않았다. 무전기는 꺼졌다. 조정의 메시지는 이제 닿지 않을 거리였다.
하지만 그 순간, 선미에서 오토가 망원경을 다시 들어올렸다. 뒤쪽 수평선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이 굳었다.
"문제가 있습니다."
모두가 돌아봤다.
"세 척의 배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습니다."
오토의 목소리가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긴장이 있었다.
"조정의 포졸단이 아닙니다. 다른 형태의 배입니다."
이준호가 망원경을 집어 들고 뒤를 봤다. 거리는 여전히 멀었지만, 분명히 세 척의 배가 추격해오고 있었다. 그 배들의 형태는 낯설었다.
"김대우입니다."
명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자가 아직도 우리를 쫓고 있다는 말입니까?"
정윤기가 물었다.
"동해 해상에서의 권력은 아직도 그의 손에 있습니다."
명희의 목소리에는 이미 전략이 담겨 있었다.
"조정도 청도 우리를 막지 못했지만, 동해 해상 자체는 아직도 그의 영역입니다. 그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준호는 망원경을 내려놨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아니라 결연함이 있었다.
"속도를 최대로 올립니다."
선실로 향했다.
"허상, 엔진을 극한까지."
"압력을 더 올리면 배관이 견디지 못할 수 있습니다."
허상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음성에는 기술자로서의 우려가 담겨 있었다. 보일러의 한계, 배관의 강도, 증기의 압력. 그 모든 수치가 임계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견뎌야 합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기선이 증명해야 할 것은 신분도 조정의 인가도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가 동해 해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엔진실의 침묵이 길었다. 허상은 그 명령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배관을 극한까지 몰아붙인다는 것. 그것은 기술자로서 자신이 만든 것을 파괴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은, 기술이 그것을 견뎌낼 수 있다는 믿음을 요구했다.
"알겠습니다. 극한 압력으로 진행합니다."
허상의 목소리에는 결연함이 있었다. 그것은 이준호의 결연함과 같은 것이었다.
엔진의 음이 변했다. 더욱 격렬해졌다. 배 전체가 떨렸다. 마치 심장이 폭발할 듯 뛰는 것처럼.
22노트. 23노트. 24노트.
기선이 극한의 속도로 나아갔다. 뒤에서 김대우의 배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기선은 그들을 따돌리고 있었다. 배 위의 모든 것이 진동했다. 선체의 목재가 신음을 내었다.
그 순간, 엔진실에서 비명 같은 소리가 났다.
"압력 과부하! 배관이 터집니다!"
허상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엔진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격렬해졌다.
25노트.
뒤쪽의 세 척 배는 점점 작아졌다. 마침내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감시선들이 사라졌습니다!"
오토가 외쳤다.
이준호는 손에 힘을 줬다. 키를 움켜쥔 손가락이 하얀색으로 변했다. 엔진의 음이 점차 안정되었다. 배의 진동도 천천히 가라앉았다.
"엔진 상태는?"
이준호가 무전기로 물었다.
엔진실에서 오랜 침묵이 흘렀다. 허상이 배관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을 것이다. 기술자로서 자신의 작품이 극한까지 몰려가는 것을 지켜본다는 것. 그것은 고통이자 자부심이었다.
"위기를 넘겼습니다. 배관이 견뎠습니다."
허상의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이 배는... 정말로 대단한 배입니다."
동해의 수평선이 다시 평온해졌다.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정도, 청도, 김대우도.
오직 기선만이 남았다. 조선 최초의 기선이, 조선의 미래를 싣고, 동해의 먼 수평선 너머로 나아가고 있었다.
정윤기가 이준호의 옆에 섰다. 그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떠 있었다.
"해냈습니다."
이준호가 중얼거렸다.
"신분도 없이, 조정의 인가도 없이."
"기술이 있었습니다."
정윤기가 말했다.
"그것이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배는 계속 나아갔다. 엔진의 박동은 이제 안정적이었다. 굴뚝에서는 회색 연기가 하늘을 향해 피어올랐다.
조선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