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해양의 새로운 시대
조정의 사자는 한 척의 배를 타고 동해 상의 기선에 접근했다. 돛을 내린 검은 돛대, 조정 관료의 상징인 흰 깃발. 이준호는 선루에서 그 배를 바라보았다. 정윤기가 이미 전해준 메시지는 명확했다. 신분 상승. 양반 신분으로의 편입. 천출의 굴레를 벗을 수 있는 조건. 그 대신 기선을 조정에 귀속시킬 것. 기술자로서의 모든 권리를 포기할 것.
이준호의 손가락이 선루 난간을 꽉 쥐었다. 손가락 끝이 하얀색으로 변할 정도로.
"선주님, 사자께서 직접 항해를 나오셨습니다. 이는 조정에서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정윤기가 곁에 섰다. 얼굴은 창백했고, 밤새 기선의 완성을 지켜본 탓에 눈 아래가 검게 내려앉아 있었다.
"신분 상승의 조건이 무엇이냐고 물었는가."
"기선을 조정에 넘기고, 모든 설계와 기술을 국가 기술관의 감독 아래 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선주님은 양반 신분으로 편입되고, 기술자로서의 위치도 보장된다고—"
"기술자로서의 위치가 보장된다고?" 이준호의 목소리가 끊겼다. "양반 신분으로 편입되면 더 이상 기술자가 아니다. 조정의 신분제에서 양반은 기술을 직접 하지 않는다. 설계와 감독만 한다. 그것도 다른 양반의 지시에 따라."
정윤기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천출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 하지만 그것이 정말 벗어남인지, 아니면 다른 형태의 속박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족들이 떠올랐다. 아직 천출 신분으로 남겨진 아내와 아이들. 신분 상승이 거부된다면, 조정의 추격이 시작될 것이고, 그들은 어떻게 될까. 죽음일까, 노예일까. 손이 떨렸다.
"조정은 나를 양반으로 만들어서 기선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이준호가 선루를 내려갔다. 갑판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천출 신분의 기술자는 위험하지만, 양반 신분의 관료는 통제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조정 사자를 이 배 위로 올려라." 이준호가 외쳤다.
"선주님?"
"직접 말하겠다."
갑판 위에서 사자를 맞이했을 때, 이준호의 얼굴은 이미 정해진 표정이었다. 사자는 중년의 양반으로, 서울에서 온 관료의 위엄을 걸친 인물이었다. 조정의 품계를 나타내는 흉배가 가슴에 달려 있었다.
"천출 신분 이준호인가." 사자의 첫 말은 이미 명령조였다.
"그렇습니다."
"조정에서 특별히 신분 상승을 제의한다. 양반 신분으로 편입되면, 이 기선은 국가 기술 사업으로 인정받을 것이고, 너는 국가 기술관으로서의 위치를 보장받을 것이다. 더 이상 밀무역의 죄목도 묻지 않겠다. 응하는가?"
바람이 갑판을 지나갔다. 기선의 연기가 흰 선을 그으며 흘러나갔다. 이준호는 사자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거부합니다."
사자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뭐라고?"
"신분 상승을 거부한다고 했습니다."
"미쳤는가? 천출 신분에서 양반으로 올라갈 기회를 거부한다고?" 사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조정의 제의를 거절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가? 이것은 역모에 가까운 행동이다!"
"그렇다면 역모로 규정하시면 됩니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조정이 제시한 신분 상승은 사실 신분 상승이 아닙니다."
"무슨 말인가?"
"양반 신분으로 편입되는 순간, 나는 기술자가 아니게 됩니다. 조정의 신분제에서 양반은 손을 더럽히지 않는 신분입니다. 설계와 감독은 하지만, 직접 기술을 행하지 않습니다. 조정이 제시한 것은 신분 상승이 아니라 기술자로서의 죽음입니다."
사자가 한 발 물러섰다. 그의 표정에 당혹감이 스쳤다.
"그렇다면 무엇을 원하는가?"
"민간 기술자 집단의 공식 인정을 요구합니다." 이준호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조정이 우리를 양반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천출 신분이라도 기술을 행할 수 있는 신분을 인정해주십시오. 그리고 이 기선이 조선의 기술 자산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십시오."
"조정이 그런 신분을 만들 수 없다. 신분제의 질서가 흔들린다."
"이미 흔들렸습니다." 이준호가 기선의 연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배가 여기에 있다는 것 자체가 신분제의 흔들림입니다. 천출 신분의 밀무역꾼이 조선 최초의 기선을 만들었다는 것. 조정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이미 세상은 알게 될 것입니다."
사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이준호를 향해 한 발 더 나아갔다. 뒤에 따르던 군졸들이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역모죄로 체포한다!" 사자가 외쳤다. "이 배를 압수하고, 너와 모든 종사자를 서울로 압송한다!"
군졸들이 이준호를 향해 움직였다. 정윤기가 비명을 질렀다. "선주님!"
허상이 갑판 아래에서 튀어나왔다. 손에는 화로에서 꺼낸 화염이 들려 있었다. 그는 사자의 배로 통하는 현을 향해 불을 던졌다. 현이 끊어졌다. 사자의 배가 기선에서 밀려났다.
"빨리! 엔진을 최대로!" 이준호가 외쳤다.
기선의 엔진음이 격렬해졌다. 증기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사자의 배는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사자는 손에 신호총을 들고 있었다. 그는 하늘을 향해 총을 쏘았다.
"조정의 신호다!" 정윤기가 외쳤다. "주변 해역의 조정 함대에 신호를 보낸 것입니다!"
기선은 이미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동쪽으로. 북쪽으로. 조정의 감시망을 벗어나는 방향으로.
선루에서 정윤기가 지도를 펼쳤다. 손이 떨렸다. "포항 북쪽으로 항진하면 청의 감시망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가면, 조선 조정의 통제도, 청의 감시도 미치지 않는 영역입니다."
오토가 항로를 조정했다. 기선의 침로가 북쪽으로 꺾였다. 뒤에서 돛단배들의 함성이 들렸다. 조정의 추격함대가 나타났다.
"속도를 높여!" 이준호가 외쳤다.
기선의 엔진음이 더욱 격렬해졌다. 증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조정의 돛단배들은 점점 뒤로 밀려났다. 바람에만 의존하는 배들은 증기 기관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수평선 너머에서 또 다른 돛단배들이 나타났다. 조정의 신호에 응한 함대였다. 기선을 포위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청의 감시망 경계까지 얼마나 남았는가?" 이준호가 물었다.
"30리입니다." 정윤기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저들이 우리를 막으려 할 것입니다."
갑판에서 허상이 엔진실로 내려갔다. 모든 보일러에 불을 때웠다. 기선이 최대 속도로 치달렸다. 엔진음이 하늘을 울렸다.
"저들이 포를 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토가 외쳤다.
연기가 조정 함대에서 피어올랐다. 포탄이 하늘을 그었다. 기선의 우현을 스쳐 지나갔다. 물이 솟아올랐다.
"더 빨리!" 이준호가 외쳤다.
기선은 이미 한계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엔진이 비명을 질렀다. 보일러가 붉게 달아올랐다. 허상은 엔진실에서 계속 불을 때웠다.
또 다른 포탄이 날아왔다. 이번에는 기선의 좌현을 스쳤다. 목재가 부서졌다. 물이 갑판으로 쏟아졌다.
"청의 감시망 경계까지 15리!" 정윤기가 외쳤다.
기선은 파도를 가르며 달렸다. 조정의 함대는 뒤에서 계속 포를 쏘았다. 하지만 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기선의 속도가 돛단배들을 압도했다.
"10리!"
포탄이 더 이상 기선에 가까워지지 않았다. 조정의 함대는 점점 뒤로 밀려났다.
"5리!"
기선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준비를 했다. 조정의 감시망을 벗어나는 경계에 도달했다.
마지막 포탄이 하늘을 그었다. 기선의 돛대를 스쳤다. 돛이 찢어졌다. 하지만 기선은 멈추지 않았다. 엔진이 모든 것을 밀어붙였다.
"경계를 넘었습니다!" 오토가 외쳤다.
조정의 함대는 더 이상 따라올 수 없었다. 신분제의 질서를 벗어난 바다에 기선이 도달했다.
선실에서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숨을 고르고 있었다. 허상이 엔진실에서 올라왔다. 얼굴은 그을렸고, 눈은 광기로 빛나고 있었다.
"엔진이 견뎌냈습니다." 허상이 말했다. "이 배는 조정의 어떤 배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정윤기의 손이 여전히 떨렸다. 그는 지도를 내려놓고 이준호를 바라봤다. 조정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 자신의 가족도 이제 조정의 눈을 피해야 한다. 그 현실이 가슴을 짓눌렀다.
"선주님, 우리는 이제 조정의 추격자입니다. 돌아갈 수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준호가 답했다.
"그런데도 왜 신분 상승을 거부했습니까?" 정윤기의 목소리에 절박함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모두 죽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제 가족은? 제 아내와 아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이준호는 정윤기의 눈을 직시했다. 공포와 분노가 뒤섞인 표정. 그것이 현실였다. 신분 상승 거부의 대가.
"내가 양반이 되는 순간, 이 기선은 조정의 기선이 된다. 기술자로서의 내 이름은 사라진다." 이준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조선의 천출 신분 기술자들은 영원히 이 배를 만들 수 없다. 신분제는 더욱 견고해진다."
"그것이 제 가족의 목숨보다 중요합니까?" 정윤기가 목이 메인 목소리로 물었다.
이준호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기술자로서의 이상과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의 책임 사이의 간극. 그것이 이 순간의 진실이었다.
"당신의 아내와 아이들이 살아갈 조선이 어떤 조선이어야 하겠습니까?" 이준호가 천천히 말했다. "신분에 갇혀 기술을 포기해야 하는 조선입니까? 아니면 천출 신분이라도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조선입니까?"
정윤기는 이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정의 신분 상승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당신의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진다." 이준호가 계속했다. "양반 관료가 되어 조정의 명령에 따르는 기술관이 될 뿐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렇게 도망치면서도 이 기선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신분제를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출 신분이라도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의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입니다."
정윤기의 손이 멈췄다. 이준호의 말이 위로인지 변명인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돌아갈 수 없었다. 기선은 조정의 감시망을 벗어났고, 그들은 이제 추격자였다.
명희가 선실로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은 맑았다.
"밀무역 네트워크로부터 메시지가 왔습니다." 명희가 말했다. "동해의 다섯 항구에서 기선 건조를 시작하겠다고 했습니다."
"누가? 어디서?" 이준호가 물었다.
"부산, 울산, 포항, 강릉, 속초의 밀무역꾼들입니다." 명희가 편지를 펼쳤다. "우리가 조정을 거부했다는 소식이 퍼졌습니다. 천출 신분의 기술자가 양반 신분을 거부했다는 소식이요. 그들은 당신의 도면을 요청했습니다."
이준호는 명희를 바라봤다. "도면을?"
"예. 각 항구에서 기선을 건조하려면 설계 도면이 필요합니다." 명희가 편지를 하나씩 펼쳤다. "부산의 조선소는 톤수 200석 규모의 기선을 계획하고 있고, 울산은 화물 운송용 대형 기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포항은 당신의 기선을 모델로 한 고속 기선, 강릉과 속초는 연안 운송용 소형 기선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기술자를 가지고 있습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아직 부족합니다. 하지만 배우려 합니다." 명희가 또 다른 편지를 꺼냈다. "이것은 조정이 아닙니다. 민간의 움직임입니다. 당신이 신분 상승을 거부한 그 순간, 조선의 천출 신분 기술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허상이 새로운 도면을 펼쳤다. 손은 여전히 떨렸지만, 눈은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도면 위를 훑고 지나갔다. 엔진 배치, 선체 곡선, 보일러 설계. 이번에는 다섯 개의 서로 다른 규모를 고려한 설계였다.
"다섯 항구, 다섯 척의 기선입니다." 허상이 말했다. "각각 다른 용도로. 이번에는 조정의 추격을 피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신분제를 벗어났으니까요."
그는 첫 번째 도면을 가리켰다. "부산의 기선은 상선으로. 울산의 기선은 화물운반선으로. 포항은 고속 기선으로." 손가락이 다음 도면으로 옮겨갔다. "강릉과 속초의 기선은 연안 운송용이지만, 같은 엔진 설계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부품 호환성이 생기고, 유지보수가 훨씬 쉬워집니다."
정윤기는 계산을 시작했다. 손가락이 계산표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다섯 척의 기선 톤수, 각각의 엔진 마력, 건조에 필요한 철재와 목재의 양, 각 항구별 건조 기간. 조정의 기술관이 아닌, 기술자로서의 정체성으로 계산했다. 손이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부산은 6개월, 울산은 8개월, 포항은 4개월이면 가능합니다." 정윤기가 말했다. "강릉과 속초는 동시에 진행하면 5개월이면 충분합니다. 총 1년 반이면 다섯 척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오토가 해도를 펼쳤다. 동아시아의 바다. 조선, 일본, 청. 그리고 그 사이의 미지의 항로. 그는 각 항구의 위치를 표시했다. 부산, 울산, 포항, 강릉, 속초. 그리고 기선들이 항해할 항로를 그려나갔다.
"이 다섯 항구는 조선 동해 연안의 핵심입니다." 오토가 말했다. "여기서 기선이 건조되면, 동아시아의 해상 질서가 바뀝니다. 조선의 기술이 일본의 기술과 만나고, 신분제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집니다."
그는 기선을 바라봤다. 증기 기관의 박동음, 엔진실의 불빛, 조정의 추격을 뚫고 나아가는 그 배.
"저는 조선에 남겠습니다." 오토가 말했다.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이 기선을 보니 돌아갈 수 없습니다." 오토가 계속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결연했다. "일본은 여전히 쇄국 정책 아래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기술은 다릅니다. 천출 신분의 밀무역꾼이 만든 기선. 신분제를 거부한 기술자들의 손으로 만든 배. 이것이 동아시아를 바꿀 것입니다. 저도 이 과정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명희는 밀무역 네트워크로부터 온 편지들을 분류했다. 각 항구에서의 기선 건조 진행 상황, 각각의 도면 요청, 각각의 기술자들의 이름. 손가락이 편지를 정렬하며 움직였다. 부산, 울산, 포항, 강릉, 속초. 새로운 기선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가 있었다. 항구의 주인들, 밀무역꾼들, 기술을 배우려는 장인들. 명희는 그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각 항구의 요청을 정리하고, 도면을 배분하고, 기술자들 사이의 연락을 중개했다.
밤이 내려앉았다. 기선은 동쪽으로 계속 항진했다. 조정의 추격은 이미 멀어졌다. 엔진음이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증기 기관의 박동음. 그것은 조선 해양의 새로운 심장음이었다.
선루에서 이준호가 홀로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허상이 새로 그린 도면이 들려 있었다. 조선의 기술과 서양의 기술이 만난 곳에서 탄생한 도면. 다섯 척의 기선을 위한 다섯 개의 설계.
오토가 옆에 섰다. 일본인은 동쪽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쪽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토가 물었다.
"모른다." 이준호가 답했다. "하지만 조선의 기선이 거기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선실에서 불이 환하게 켜졌다. 허상의 손가락이 도면 위를 훑고 지나갔다. 각 항구별 기선의 세부 사항을 수정하고 있었다. 부산의 기선에는 더 넓은 화물칸을, 울산의 기선에는 더 강력한 엔진을. 정윤기는 계산표 위에 숫자를 기입했다. 각 항구별 필요 자재, 건조 일정, 인력 배치. 명희는 편지를 분류했고, 각 항구의 요청 사항을 정리했다. 오토는 해도 위에 항로를 표시했다. 완성된 기선들이 항해할 경로들.
"이번에는 애초부터 엔진과 선체를 함께 설계합니다." 허상이 말했다. "각 항구의 필요에 맞춰서. 우리만의 기선들이 됩니다."
"동해의 다섯 항구에서 기선 건조가 시작되었습니다." 명희가 말했다. "조정이 인정하지 않아도, 민간 영역에서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조정의 결정이 아닙니다. 우리의 결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이준호가 말했다. "조정도 청도 막을 수 없는 기술의 흐름을 만들어야 합니다."
선루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이준호는 멈췄다. 뒤를 돌아보니, 선실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도면과 계산표, 편지와 해도. 기술자들의 손이 만드는 미래의 형상. 그들은 더 이상 천출도 양반도 아니었다. 기술자였다. 신분제를 초월한 기술자들. 조선의 미래를 만드는 손들.
이준호는 다시 선루로 올라갔다. 동해의 별들이 여전히 떠 있었다. 동쪽 수평선이 여전히 검게 열려 있었다. 바람이 기선의 연기를 흩어 보냈다. 엔진음은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더 멀리서, 새로운 불빛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부산의 조선소, 울산의 해변, 포항의 항구, 강릉과 속초의 선착장. 동해의 여러 곳에서 시작된 기선 건조의 불빛들. 기술자들의 손이 만드는 미래의 불빛. 조정의 신분제를 벗어나 스스로 길을 만드는 자들의 불빛.
조선 해양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직 미약하지만, 확실한 발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