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자의 만남
산림의 깊숙한 계곡을 따라 이틀을 행군한 이준호는 마침내 폐허 같은 조선소 앞에 섰다. 돌로 쌓은 벽은 이끼로 덮여 있었고, 지붕의 기와는 반 이상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한때 조정의 군선 건조소였을 이 장소는 이제 세상의 눈으로부터 완전히 숨겨져 있었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어두운 실내에서 움직임이 있었다. 불빛이 깜빡거렸다.
"오셨군요."
목소리는 생각보다 명확했다. 흰 머리를 헝클어뜨린 늙은이가 등불을 들고 나타났다. 얼굴에는 칼자국 같은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허상이었다.
"정윤기 관료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기선 도면을 가진 이가 올 것이라고." 허상이 손짓했다. "보여주시지요."
이준호는 품에서 도면을 꺼냈다. 종이는 해수에 젖었다가 건조된 흔적으로 주름져 있었고, 잉크의 일부가 번져 있었다. 허상이 도면을 받아 들고 옆으로 옮겨갔다. 작업대 위에 펼쳐진 도면을 등불에 비추어 살펴봤다.
이준호는 허상의 표정을 관찰했다. 처음에는 집중하던 시선이 점차 의심스러운 것으로 변했다. 허상의 입술이 움직였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양 기술만으로는... 조선 해상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이준호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뜻입니까?"
허상이 눈을 들었다. "이 도면은 유럽의 선박입니다. 깊은 수심의 대양을 항해하도록 설계되었어요. 그런데 조선의 동해는 다릅니다." 허상의 손가락이 도면 위를 움직였다. "암초가 많고, 조류가 복잡하며, 바람이 변덕스럽습니다. 선체가 이렇게 깊으면 얕은 곳에서 걸립니다."
"그렇다면 고칠 수 있습니까?"
허상은 대답하지 않고 도면을 다시 내려다봤다. 긴 침묵이 흘렀다. 등불이 타닥거리는 음만 들렸다. 마침내 허상이 입을 열었다.
"조선의 전통 조선술을 알고 계십니까?"
"조금입니다."
"조금이 아니라 깊이 알아야 합니다." 허상이 도면을 한쪽으로 밀었다. "이 기술과 우리의 기술을 섞어야 해요. 그래야 이 배가 조선의 바다에서 살 수 있습니다."
이준호가 다가갔다. 허상이 다시 도면을 펼쳤다. 종이 위에 허상의 손가락이 움직이며 선을 그었다.
"선체의 흘수를 줄이고, 용골의 곡선을 조정하고, 돛대의 구조를 우리 선박처럼 만들어야 합니다." 허상이 도면 위의 선들을 수정했다. "증기 기관은 보조 동력으로만 사용하고, 주 동력은 여전히 돛입니다. 그래야 기름이 떨어져도 항해할 수 있고, 조류 변화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준호는 허상의 손을 따라갔다. 도면이 점차 새로운 형태로 변해갔다. 유럽식 기선의 직선적 효율성이 조선 전통 선박의 유연한 곡선과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용골의 곡선은 물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렇게 만듭니다." 허상이 도면에 매끈한 호를 그었다. "파도 속에서도 배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무게 중심이 여기에 있어야 하고, 돛대의 각도는 이 정도가 적당합니다."
이준호가 허상의 손을 따라 도면을 읽어나갔다. 수백 년 축적된 선박 건조의 경험이 종이 위에 표현되고 있었다.
"돛감을 달 때는 이 각도로 고정해야 바람을 최대한 받으면서도 배가 넘어지지 않습니다." 허상이 계속했다. "얕은 곳에서 배가 걸리지 않도록 흘수는 이 정도로 유지하되, 증기 기관의 무게를 견디려면 선체의 폭을 이 정도로 넓혀야 합니다."
이준호는 허상의 설명을 듣고 유럽 도면의 증기 기관 부분을 다시 살펴봤다. 보일러의 위치, 피스톤의 작동 방식, 동력 전달의 메커니즘. 이것들이 조선 전통 선박의 구조와 어떻게 맞아떨어질 것인가를 계산했다.
"보일러는 선체 중앙 아래에 배치하면 됩니다." 이준호가 도면에 손을 올렸다. "그러면 무게 중심이 안정되고, 굴뚝을 돛대 뒤에 세우면 연기가 돛에 묻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허상이 이준호의 손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의심이 사라진 눈이었다. "기관실은 보일러실 위에 두고, 동력은 나선 스크루로 전달하시오. 그러면 조선 배의 노 대신 스크루가 배를 앞으로 밀어낼 것입니다."
두 기술자는 밤새 도면을 수정했다. 허상이 조선 전통 선박의 용골 곡선을 어떻게 계산하는지 설명하면, 이준호는 그것이 유럽식 증기 기관과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 제안했다. 서로의 지식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갔다. 밤이 깊어질수록 두 기술자 사이의 신뢰도 깊어졌다.
새벽 무렵, 두 기술자는 도면을 다시 펼쳐놓았다.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순수한 유럽 기선이 아니었다. 조선의 전통 선박의 유연함을 갖춘, 증기 기관을 탑재한 새로운 형태의 배였다.
"선체 길이는 십오 간, 폭은 삼 간으로 설정합시다." 허상이 도면에 길이를 표기했다. "이 정도면 동해의 조류를 견딜 수 있고, 증기 기관의 무게도 견딜 수 있습니다."
"보일러실의 높이는?" 이준호가 물었다.
"보일러실을 선체 중앙 아래에 배치하고, 굴뚝은 돛대 뒤에 세웁니다. 돛이 펼쳐질 때 연기가 돛에 묻지 않도록." 허상이 도면 위에 작은 사각형을 그렸다. "기관실은 보일러실 위에 두고, 동력은 나선 스크루로 전달합니다."
이준호는 허상의 손을 따라갔다. 기술자의 손은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허상의 설계는 실현 가능했다.
"이 배를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이준호가 물었다.
"자재가 충분하고, 일꾼이 충분하고, 방해가 없다면..." 허상이 도면을 내려다봤다. "삼 개월입니다."
"삼 개월."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정이 우리를 찾는다면 하루도 길 것입니다."
그 순간이었다. 산림 조선소의 뒤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여러 마리였다. 빠르게 접근하는 소리였다.
이준호와 허상이 동시에 일어섰다.
"감시 세력입니다." 허상이 창문으로 나갔다. 산림의 길을 따라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많은 수였다. "박태현의 수색대입니다."
이준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십 분 안에 여기에 도착할 것입니다."
도면을 어디에 숨길 것인가? 이준호의 눈이 사방을 돌아다녔다. 허상이 가만히 손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천장의 서까래를 가리켰다.
"도면을 올려놓으시오. 흙과 나뭇가지로 덮겠습니다."
이준호는 도면을 들고 서까래 위에 올렸다. 허상이 재빨리 흙을 긁어모아 덮었다. 흔적이 남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말발굽 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당신은 여기 있으면 안 됩니다." 허상이 이준호의 팔을 잡았다. "뒤쪽 출구로 가시오. 산을 넘어 동쪽으로 내려가면 시냇물이 나옵니다. 그 물을 따라가면 포구에 닿습니다."
"당신은?"
"저는 여기 있겠습니다. 이 조선소는 저의 것입니다."
이준호가 허상의 눈을 봤다. 늙은 기술자의 눈빛에 두려움은 없었다. 오직 결연함만 있었다.
"육 시간 안에 증기 기관을 완성할 수 있습니까?" 허상이 갑자기 물었다.
이준호는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당신이 도망칠 때, 저는 여기서 기관을 만들기 시작하겠습니다. 당신이 다시 올 때까지. 육 시간 안에 기관을 완성할 수 있다면, 조정의 눈을 피해 선체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허상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가능합니까?"
말발굽 소리가 조선소 앞에서 멈췄다.
"가능합니다." 이준호가 대답했다.
허상이 뒤쪽 문을 열었다. 어둡고 좁은 통로였다. 이준호는 달려갔다. 뒤에서 말발굽 소리와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있는가!"
그것이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였다.
이준호는 산을 내려갔다. 밤의 산림은 검었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긁었다. 피가 흘렀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육 시간. 그 시간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었다.
시냇물을 따라 내려갔을 때,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동쪽의 지평선이 붉어졌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준호의 마음은 산림에 남아 있었다. 허상이 정말 육 시간 안에 기관을 완성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었다.
포구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는 중천이었다. 이준호는 명희의 배를 찾아야 했다. 밀무역꾼들의 소굴로 알려진 골목을 헤쳤다. 노름판이 벌어지는 주막, 생선 내장이 흩어진 시장, 그리고 무언의 신호로만 출입이 허락되는 창고들. 이곳에서는 신분이 의미 없었다. 오직 돈과 정보, 그리고 신뢰만 통했다.
명희를 만난 것은 항구 뒤편의 폐가였다. 명희는 선반 위의 청자 그릇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조정의 관인이 찍혀 있는 그릇이었다.
"산림 조선소가 적발되었군요." 명희가 먼저 말했다. 정보 수집의 신속성은 명희의 특기였다.
이준호는 놀라지 않았다. "허상이 잡혔을 수도 있습니다."
명희가 청자를 내려놨다. 그릇의 밑면을 들여다봤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허상은 잡히지 않았을 겁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정윤기가 그를 소개했다면, 신원이 보호된다는 뜻입니다." 명희가 창문으로 나갔다. 항구의 풍경이 보였다. 배들이 떠 있었고, 돛대들이 흔들렸다. 그 사이로 조정의 관복을 입은 사람들이 항구의 상인들을 심문하고 있었다. "박태현의 수색은 이미 삼일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준호의 호흡이 가빨라졌다. "박태현이 우리를 추적하고 있다는 뜻입니까?"
"당신이 정윤기를 만났다는 정보가 조정에 흘러나갔거든요." 명희가 돌아섰다. "조정은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기선 도면 때문만은 아닙니다."
침묵이 흘렀다.
"정윤기는 조정 내에서도 민감한 인물입니다." 명희가 창문을 다시 확인했다. "서양 기술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피력해온 사람이죠. 박태현의 보수 진영은 그를 감시해왔습니다."
"도면은?"
"도면은 안전합니다. 허상이 숨겼으니까요."
명희는 청자를 다시 들었다. 손가락으로 밑면의 관인을 더듬었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명희가 이준호에게 가까워졌다. "박태현이 산림을 수색하고 있다는 것은 조정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일주일 안에 기선 건조를 숨길 수 없는 단계로 진행해야 합니다."
"허상이 육 시간 안에 증기 기관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명희의 눈이 커졌다. "증기 기관을?"
"기본 설계는 완성했습니다. 허상이 금속 부품을 주조하고 조립하는 데 육 시간이면 된다고 했습니다."
명희는 청자를 내려놨다. 손가락으로 그릇의 테두리를 따라갔다.
"보일러와 피스톤 연결부의 밀폐가 가장 까다롭습니다." 명희가 중얼거렸다. "금속을 깎아내는 공정이 정밀해야 합니다. 허상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허상은 기술자입니다."
"그렇습니다." 명희가 창문을 닫았다. "하지만 육 시간은 짧습니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어둠이 포구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당신은 지금 쉬십시오." 명희가 폐가의 한구석을 가리켰다. "밤중에 산림으로 가야 합니다."
이준호는 폐가의 한구석에 누웠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허상의 손이 떠올랐다. 그 손이 금속 부품을 깎아내고 있을 것이었다. 육 시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길고도 짧았다.
밤이 깊어갔다. 명희의 조직원들이 모여들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은 조용히 움직였다. 말 위에 자재를 실었다. 목재 묶음, 금속 판, 나선 스크루를 위한 철심. 모든 것이 무음으로 운반되었다.
이준호는 그들 사이에 섞여 산림으로 향했다. 밤의 산길은 여전히 검었다. 나뭇가지가 얼굴을 긁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피신하는 것이 아니었다. 돌아가는 것이었다.
산림 조선소에 도착했을 때, 허상은 여전히 작업 중이었다. 손과 얼굴에 검은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허상의 손이 떨렸다. 피로였다. 하지만 정확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앞에는 금속 부품들이 놓여 있었다. 보일러실을 위한 철판들. 그 사이에 끼워진 연결 부품들. 허상은 한 조각의 금속을 파이프 모양으로 깎아내고 있었다. 피스톤 연결부였다. 정밀한 각도로 깎아진 금속 표면이 등불에 반짝였다.
"이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허상이 금속을 내려놨다. "피스톤의 압력을 견디려면 밀폐가 완벽해야 합니다. 한 치 오차도 있으면 안 됩니다."
이준호는 금속 부품을 들었다. 정밀하게 깎여 있었다. 하지만 완성되지는 않았다. 한쪽 끝이 아직 거칠었다.
"여기를 더 깎아야 합니다." 이준호가 거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피스톤 로드가 들어갈 구멍을 더 정밀하게."
허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금속을 집어 들었다. 파일로 거친 부분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작은 금속 가루가 떨어졌다.
이준호는 다른 부품들을 살펴봤다. 보일러실의 철판들. 그것들은 이미 모양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조립되지는 않았다.
"이 철판들을 어떻게 연결합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리벳으로 고정합니다." 허상이 파일질을 멈추고 대답했다. "하지만 리벳을 박기 전에 구멍을 정렬해야 합니다. 한 개라도 어긋나면 압력을 견디지 못합니다."
이준호는 두 장의 철판을 맞춰봤다. 구멍들이 정렬되어 있었다. 허상의 손이 정확했다.
"당신이 설계를 했습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예. 이 배의 모든 것을 계산했습니다. 용골부터 굴뚝까지. 하지만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허상이 파일질을 다시 시작했다. "당신은 증기 기관을 알고, 나는 배를 압니다. 우리가 함께해야 이것이 완성됩니다."
이준호는 명희의 조직원들에게 지시했다. 자재들을 정렬하기 시작했다. 목재는 한쪽에, 금속 부품은 다른 한쪽에. 조선소는 점차 건조 현장으로 변모해갔다.
밤이 깊어갔다. 허상은 여전히 피스톤 연결부를 깎아내고 있었다. 이준호는 그의 옆에 서서 각도를 확인했다.
"여기는 조금 더 깎아야 합니다." 이준호가 거친 부분을 다시 짚었다.
허상이 파일을 다시 들었다.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움직임은 정확했다. 기술자의 손은 피로해도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마침내 피스톤 연결부가 완성되었다. 허상이 금속을 들어 올렸다. 등불에 비친 금속 표면이 매끈했다.
"이제 이것을 보일러실과 연결합니다." 허상이 말했다. "리벳으로 고정하고, 나머지 부품들을 조립하면 기본 골격이 완성됩니다."
이준호와 명희의 조직원들이 함께 작업했다. 철판들을 맞추고, 리벳을 박고, 연결 부품들을 조립했다. 밤새 조선소 안에서는 망치 소리가 울렸다. 그 리듬 속에는 기술자들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새벽이 가까워질 무렵, 증기 기관의 기본 골격이 완성되었다. 보일러실, 기관실, 그리고 나선 스크루로 이어지는 동력 전달 장치.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허상이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의 작업을 바라봤다. 손과 얼굴은 검은 그을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눈빛은 밝았다.
"기본은 이루어졌습니다." 허상이 말했다. "나머지는 선체가 완성된 후에 미세 조정을 하겠습니다."
이준호는 증기 기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모든 부품이 정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것이 조선의 바다에서 움직일 것이었다. 돛과 함께. 바람과 함께. 살아날 것인가, 죽을 것인가. 그것은 이제 선체의 운명에 달려 있었다.
"선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명희가 조선소 내부를 살폈다. "자재는 모두 여기 있습니다."
이준호와 허상이 눈을 맞췄다. 기술자끼리의 무언의 합의였다.
"시작합시다." 이준호가 말했다.
명희가 조직원들에게 지시했다. 목재가 쌓이기 시작했다. 용골을 이룰 큰 목재부터 시작해서, 갈비뼈처럼 휠 곡목들이 정렬되었다. 금속 판들도 제자리를 찾아갔다. 밤이 깊어갈수록 조선소는 새로운 배의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북쪽의 산 방향에서 횃불이 보였다. 여러 개의 횃불이 움직이고 있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명희의 얼굴이 굳었다. "감시 세력입니다."
이준호가 창문으로 나갔다. 횃불의 행렬이 산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박태현의 수색대와는 다른 규모였다. 더 많은 인원. 더 체계적인 움직임. 더 빠른 속도.
"박태현의 세력입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명희가 횃불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닙니다." 명희가 천천히 말했다. "다른 세력입니다."
"누구입니까?"
"김대우입니다." 명희의 목소리가 낮았다. "동해 해상의 실질적 주인입니다. 우리보다 오래되고, 더 강합니다."
횃불이 계곡을 내려오고 있었다. 이제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말발굽 소리와 함께 명령하는 목소리들.
"그들이 우리를 알고 있습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알고 있을 겁니다." 명희가 창문을 닫았다. "당신의 기선을 원할 겁니다."
"어떻게?"
"새로운 기술은 해상 권력의 판도를 바꿉니다. 기선을 소유한 세력이 동해를 지배하게 될 테니까요." 명희가 이준호를 바라봤다. "그들은 당신의 기선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이준호는 증기 기관을 바라봤다. 밤새 만들어낸 금속 부품들. 그리고 그 옆에 쌓인 목재들. 아직 배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자재들. 이것이 살아날 것인가, 죽을 것인가. 모든 것이 지금부터 결정될 것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이준호가 물었다.
명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창밖의 횃불을 따라가고 있었다. 정보 수집자에서 위기 인식자로, 그리고 결단자로 변해가고 있었다.
허상이 이준호에게 다가섰다. 늙은 기술자의 얼굴에는 결연한 표정이 있었다.
"당신이 선택해야 합니다." 허상이 말했다. "숨기거나, 맞서거나, 협상하거나."
횃불이 조선소 앞까지 내려왔다. 말발굽 소리가 멈췄다. 명령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조선소를 포위하라!"